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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행단에서의 공사와 사기(邪氣)를 옮기는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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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1.07 조회4,1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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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대순종교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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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명숙과 최익현의 원을 푸는 공사를 마치신 상제님께서는 문공신(文公信)으로 하여금 돈 33냥02을 지니게 하시고 피노리를 떠나 태인 행단(杏壇)에 이르셨다. 이곳의 주막에 들르신 상제님께서 술을 찾으셨으나 주모는 술이 없다고 대답하였다. 상제님께서 “이런 주막에 어찌 술이 없으리오” 하시니, 주모가 “물을 붓지 아니한 새 독의 술이 있나이다.”고 아뢰었다. 다시 상제님께서 “술은 새 독의 술이 좋으니라. 술에 안주가 있어야 하리니 돼지 한 마리를 잡으라.” 하시고, 글을 써서 주모에게 주시며 돼지 막 앞에서 불사르라고 이르셨다. 주모가 명대로 행하였더니 신기하게도 돼지가 스스로 죽는 것이었다. 상제님께서 주모에게 “돼지를 삶아 먼저 맛을 보는 자는 누구든지 죽으리라.”고 주의를 주셨다. 돼지고기가 다 익자 상제님께서는 그 고기를 그릇에 담아 뜰 가운데 두시고, 또 물을 붓지 않은 전주(全酒) 상태 그대로 술을 내어 와 마루 위에 두게 하셨다. 이런 준비가 모두 끝나자 상제님께서는 주모에게 글을 써 주시면서 뜰 한 가운데서 불사르게 하셨다. 공사를 마치신 상제님께서는 문공신과 주모, 그리고 이를 참관한 행단 마을 사람들과 지나가는 행인들까지 부르시어 술과 고기를 나누어 드셨다. 이때 상제님께서 갑자기 큰 소리로 “무엇을 더 구하느뇨! 글자 한 자에 하나씩만 찾아가면 족하리라.”고 외치셨다.
  다음 날 아침, 상제님께서는 문공신으로 하여금 어제 공사에 쓰인 고기와 술값으로 33냥을 내게 하신 뒤, 문공신을 데리고 길을 나서셨다. 행단을 떠나 소나무 숲을 지나시는데, 갑자기 큰 소리로 “이놈이 여기에 있도다!” 하고 호통치셨다. 문공신이 놀라서 옆을 보니 동자석(童子石) 한 개가 서 있는 것이었다. 상제님께서는 문공신에게 “훗날 보라. 일본 군사가 그곳에 매복하였다가 여러 천 명을 상하게 할 곳이니라. 그러나 글자 한 자에 하나씩밖에 죽지 않게 하였으니 저희들이 알면 나를 은인으로 여기련만 누가 능히 알리오.”라고 말씀하셨다. 과연 1년 뒤에 일진회원들이 떼를 지어 그곳에 있었는데, 일본군들이 의병인 줄 알고 총을 쏘니 죽은 사람의 숫자가 정확히 스물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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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암으로 돌아오신 상제님께서 그곳을 떠나려 하실 때 차경석이 와서 배알하고 “길이 질어서 한 걸음도 걷기 어렵나이다.”고 아뢰었다. 상제님께서 양지에 ‘칙령도로신장 어재순창농암 이우정읍대흥리(喇令道路神將 御在淳昌籠岩 移于井邑大興里)’라 쓰시고 그 종이를 물에 담갔다가 끄집어내어 손으로 짜신 후에 화롯불에 사르셨다. 그러자 갑자기 큰 비가 내리고 그치더니 남풍이 불었다. 이튿날 아침에 보니 땅이 단단하게 굳어있어 걷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상제님께서는 차경석에게 ‘夫主將之法 務攬英雄之心 賞祿有功 通志於衆 與衆同好靡不成 與衆同惡靡不傾 治國安家得人也 亡國敗家失人也 含氣之類 咸願得其志’04라는 글을 외워주시면서 잘 지키라고 이르시고, 수부(首婦)가 들어서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상제님께서는 새 신발을 신으시고는 차경석을 앞장세우신 뒤 정읍으로 가셨다. 그 다음 날인 11월 3일, 차경석은 자신의 이종매(姨從妹)인 고부인(高夫人)을 수부로 천거하니, 고수부의 이름은 고판례(高判禮, 1880∼1935)로 대흥리 신씨(申氏)의 집에 출가하였다가 상부(喪夫)한 과부였다. 
  얼마 뒤 상제님께서는 사기(邪氣)를 옮기는 공사를 보시고자 동곡으로 돌아오셨다. 상제님께서는 농암에서 금강산의 겁기를 벗기는 공사를 보셨는데, 그때 김갑칠에게 양 한 마리를 사 주시며 동곡에서 기다리라고 하셨던 적이 있으셨다.05 상제님께서는 이제 그 공사를 마무리 지으시려고 그 양을 잡게 하시고는, 김형렬과 김광찬, 이도삼이 네 벽에 써 놓았던 12,000개의 ‘侍’ 글자에 양 피를 모두 바르시니 양의 피가 다하는 것이었다. 상제님께서 “‘사기(沙器)’를 김제(金堤)로 옮겨야 하리라.”고 말씀하시자, 갑자기 김제 수각리(水閣里)에 사는 임상옥(林相玉)이 상제님을 배알하기 위해 나타났다. 상제님께서 청수를 담던 사기그릇을 개장국에 씻어 그에게 주시니, 임상옥은 영문을 모르고 그 그릇을 받았다. 며칠 후 그는 그 사기그릇을 어디에 써야 할지를 여쭈었더니 다만 상제님께서는 “인부를 많이 모아 일할 때 쓰라.”는 말씀만 하실 뿐이셨다.
  상제님께서 이 공사를 보시면서 김형렬에게 “내가 삭발하리니 너도 나를 따라 삭발하라.”고 분부하시니, 김형렬이 속으로 달갑지 않게 생각하였지만 어쩔 수 없이 응낙하였다. 또 김갑칠을 불러 “내가 삭발하리니 내일 대원사에 가서 중 금곡을 불러오라.” 하시니, 김형렬은 머리 깎을 일에 크게 걱정하였으나 다음 날 다시 그에 대한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이미 말씀만으로 공사를 처결하셨던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이 공사를 마치시고 박공우를 데리고 전주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전주를 가로질러 흐르는 세천06에 도달하시자 점심 때가 되었다. 박공우는 자신의 친구 집으로 상제님을 모시고 가서 점심을 올렸다. 박공우의 친구는 고송암(高松菴)이라는 한 술사를 추종하고 있던 터였다. 점심을 드시던 상제님께서는 문득 “서양 기운을 몰아내어도 다시 몰려드는 기미가 있음을 이상히 여겼더니 뒷골방에서 딴전 보는 자가 있는 것을 미처 몰랐노라.” 하시고 “고송암에게 물어보고 오너라.”고 박공우에게 이르셨다. 일설에는 그때 고송암이 죽었다는 말이 전해진다. 그 자리에서 상제님께서는 「칠성경」 중에 ‘문곡(文曲)’의 위치를 바꾸어놓으셨다. 이로써 「칠성경」은 ‘… 大魁貪狼 巨文 祿存 文曲 廉貞 武曲 破軍 …’이었다가 ‘… 大魁貪狼 文曲 巨文 祿存 廉貞 武曲 破軍 …’으로 변경되었다.

  <대순회보> 1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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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한국지명총람 12(전북편)』, 한글학회, 2003, p.452.

02 지금의 화폐로 약 66만원에 해당한다.

03 『한국지명총람 11(전북편)』, 한글학회, 2003, p.163.

04 이 글귀는 『육도삼략』 중에서 「삼략」의 ‘상략’ 편에 나온다.

05 「농암에서의 공사와 사명기」, 『대순회보』122호, pp.14~17. 참고.

06 삼천(三川)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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