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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동곡에 약방을 설치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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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1.08 조회4,0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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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대순종교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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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8[戊申]년 4월, 동곡(銅谷, 구릿골)01에 살고 있는 김준상(金俊相, 1878∼1966)의 부인이 발바닥에 난 종창으로 죽을 고생을 하고 있었다. 김준상은 김형렬의 사촌동생이자 상제님의 종도인 김갑칠(金甲七)의 형이었다. 상제님께서는 그 소식을 들으시고 “환부가 용천혈이니 살기 어려우리라. 준상과 갑칠은 오늘 밤 서로 번갈아 환자를 잠에 들지 못하게 하면서 밤을 새우라. 명부사자와 나의 사자 중 누가 강한가 보리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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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은 상제님의 명을 따라 환자를 돌보았고, 환자는 정신이 혼몽하고 한때 위독해지다가 날이 밝자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상제님께서는 김준상과 김갑칠에게 안심하게 하시고, 쌀뜨물을 환자의 종창 자리에 바르시고 100냥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김준상이 “집안이 워낙 가난하여 가옥을 방매하여야 되겠나이다.”고 하면서 난감해하자, 상제님께서는 김준상의 집을 상제님께 팔도록 하셨다. 김준상은 부인의 병을 고쳐주신 상제님께 진정으로 감사하면서 기꺼이 상제님께 집 문서를 내어드렸다. 상제님께서는 그 문서를 잠시 동안 가지고 계시다가 불사르신 후, 김준상을 계속 그 집에서 살도록 하셨다. 대신 방 한 칸을 빌려 약방으로 쓰고자 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동곡약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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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제님께서는 전주로 가셔서 거부 백남신에게 돈 1000냥을 받아오신 후, 목수 이경문(李京文)을 불러 약방에 필요한 약장과 다른 약방 기구들의 치수와 만드는 법을 일일이 가르치시며 정해주신 기한 안에 끝마치도록 명하셨다. 하지만 이경문은 기한 내에 다 끝내지 못했다. 상제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목재를 한 곳에 모아두게 하시고, 그 앞에 꿇어앉힌 후 크게 꾸짖으셨다. 그리고 봉서 하나를 그에게 주고 불사르게 하시니, 갑자기 번개가 휘몰아쳤다. 크게 놀란 이경문은 두려움에 벌벌 떨었고, 상제님께서는 “속히 마치라.”고 독려하셨다. 그러나 이경문은 수전증이 나서 한 달을 넘기고서야 겨우 일을 끝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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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제님께서는 박공우에게 “천지의 약 기운은 평양에 내렸으니, 네가 평양에 가서 당제약(當劑藥)02을 구하여 오라.”고 명하셨다. 박공우는 행장을 갖추고 길을 떠날 차비를 하였으나 상제님께서는 그에 대한 말씀을 않으시고, 대신 그날 밤에 어떤 글을 써서 불사르셨다. 그리고 김병욱에게 전주에서 300냥으로 약재를 사오게 하셨는데, 마침 비가 내리는 것을 보시고 “이 비는 곧 약탕수(藥湯水)라.”고 이르셨다. 이것은 곧 평양에 내린 천지의 약 기운을 옮겨오신 것이었다. 

  약방에 설치된 약장은 종삼횡오(縱三橫五)로 모두 열다섯의 약 넣는 간과 그 아래로 두 간, 또 그 아래로 한 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상제님께서는 약 넣는 간들의 가운데 간에 ‘丹朱受命’이라 쓰시고 그 간 안에 목단피03를 넣으신 뒤, 그 간 아래에 ‘烈風雷雨不迷’04를 횡서하셨다. 또 백지에 칠성경의 전문을 세로로 쓰시고 그 끝에 ‘禹步相催登陽明’05을 가로로 쓰신 뒤, 약장 위로부터 뒤쪽으로 밑판까지 내려붙이셨다. 그리고 그 위에 ‘陽丁六月卄日陰丁六月卄日’06이라고 쓰셨다.

  상제님께서는 약방에 『통감(通鑑)』, 『서전(書傳)』도 각 한 질씩 비치하셨다. 또 둔궤(遁櫃)를 만드셨으니, 그 안에 ‘烏江錄’, ‘八門遁甲’이라 쓰신 뒤 그 글자 위에 ‘舌門’ 두 자를 낙인하셨다. 또 반쯤 핀 국화 한 송이를 그리시고 양피[羊血]로 24점도 찍으셨다. 이 둔궤는 도지(道旨)와 도통(道通)이 숨겨져 있다고 알려진 궤로서, 훗날 도주님에 의해 개봉되어 도수에 쓰이게 된다.07 

  상제님께서는 약방 설치를 모두 마치신 후에 ‘元亨利貞奉天地道術藥局 在全州銅谷生死判斷’이라는 글을 쓰셔서 불사르셨다. 그리고 밤나무로 ‘萬國醫院’이라고 새긴 약패(藥牌)를 만드시고, 그 글자마다 경면주사(鏡面朱砂)를 모두 바르신 뒤 박공우에게 “이 약패를 원평 길거리에 갖다 세우라.”고 명하셨다. 박공우가 약패를 들고 원평으로 가려고 하자, 상제님께서는 그를 불러 세우시고 “이 약패를 세울 때에 경관이 물으면 대답을 어떻게 하려 하느뇨?” 하고 물으셨다. 박공우가 “만국의원을 설치하여 죽은 자를 재생케 하며, 눈먼 자를 보게 하고, 앉은뱅이도 걷게 하며, 그 밖에 모든 질병을 다 낫게 하리라고 하겠나이다.” 하고 아뢰니 상제님께서는 “네 말이 옳도다. 그대로 시행하라.” 하시고는 박공우 손에 들려 있던 약패를 그 자리에서 불살라 버리셨다. 이미 말씀만으로 공사를 다 보신 것이었다. 
  상제님께서 동곡에 약방을 설치하심은 천하 만민을 살리실 것임을 보여주기 위함이심은 물론, 둔궤의 예에서 보듯이 앞으로 도주님과 도전님으로 종통이 이어져 도통법방이 펼쳐져 나갈 것을 비장(秘藏)하시는 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상제님께서는 다시 약방 뒤뜰에 손수 푸른 대나무를 여러 그루 심으신 뒤에, 약방에 갖추어진 모든 물목을 빠짐없이 기록하여 박공우와 김광찬에게 주시며 “이 물목기(物目記)를 금산사에 가지고 가서, 그곳에 봉안한 석가불상을 향하여 그 불상을 업어다 마당 서쪽에 옮겨 세우리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 불사르라.”고 이르셨다. 금산사에서 석가모니가 봉안된 곳은 대장전(大藏殿)이다. 『금산사 사적기(寺蹟記)』에 의하면, 진표율사가 금산사를 중창할 때 석가모니를 목탑에 봉안해 두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목탑 안에 불상이나 경전을 봉안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그 목탑은 조선시대 인조 13년(1635년)에 전각 형태인 대장전으로 바뀌어져 미륵불이 봉안된 미륵전 바로 앞에 마주하여 서 있게 되었다. 대장전의 지붕에 있는 복발(覆鉢)과 보주(寶珠)는 과거 목탑의 잔영을 보여주는 것이다.08 박공우와 김광찬, 두 사람은 상제님의 명에 따라 동곡약방의 물목기를 대장전 앞에서 불사르며 불상을 서쪽으로 옮기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과연 이로부터 14년이 지난 1922년에 대장전은 멀리 서쪽으로 옮겨져 지금의 위치에 자리하게 되었고, 이로써 미륵전 앞은 넓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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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순회보> 1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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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現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동곡마을.

02 환자 개개인의 상태에 맞추어 조제해주는 약이 아니라, 특정한 병에 정해져 있는 치료법에 따라 미리 조제해 놓고 파는 약. 당약(當藥)과 같은 말.

03 한방에서 모란 뿌리의 껍질을 약재로 이르는 말. 모란은 목단이라고도 한다. 중국이 원산지이며 꽃을 감상하거나 뿌리를 약으로 쓰기 위해 널리 심고 있다. 양지 바른 곳에서 잘 자라며 뿌리가 깊지 않다. 맛은 맵고 쓰며 성질은 차서 월경불순이나 혈증(血症), 타박상, 피부 반진 따위를 고치는 데 쓰인다. 

04 몹시 거세게 바람이 불고 천둥소리와 함께 비가 내려도 길을 잃어 헤매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 말의 출전은 『서경(書經)』의 「우서(虞書)」 <순전(舜典)>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愼徽五典 五典 克從 納于百揆 百揆時敍 賓于四門 四門 穆穆 納于大麓 烈風雷雨 不迷. (요가 순에게) 오륜을 삼가 아름답게 하라 하니 오륜이 잘 퍼지게 하였고, 백규(百揆: 영의정에 해당하는 자리)의 직책을 맡기니 그 직무를 잘 처리하였다. 사대문에서 손님을 맞이하게 하니 거기에 화목함이 넘쳐났고, 큰 숲 속에 들어가게 하였더니 열풍(烈風: 맹렬한 바람)과 뇌우(雷雨: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옴)에도 정신을 잃지 않았다.
05 우보(禹步)로써 나아가서 (마침내) 양명에 오르다. 이 구절은 도가(道家)에서 전해 내려오는 수련법 중 하나인 하우씨칠성보(夏禹氏七星步)를 수련할 때 사용하는 구결의 일부분이다. 우보는 하나라 우임금의 걸음걸이로 뒷발이 앞발을 지나갈 수 없도록 하면서 걷는 모양을 말한다. 갈홍(葛洪: 283~343)은 『포박자』에서 ‘똑바로 서서 오른쪽 발은 앞으로 왼쪽 발은 뒤에 있게 한다. 다음에 다시 오른쪽 발을 앞으로 하고 왼쪽 발이 오른쪽 발을 뒤따르게 하며 합친다. 이것이 제1보이다. 다음에 또 오른쪽 발을 앞으로 한다. 그 다음 왼쪽 발을 앞으로 하고 오른쪽 발을 왼쪽 발에 뒤따르게 하며 합친다. 이것이 제2보이다. 다음에 또 오른쪽 발을 앞으로 하고 왼쪽 발로 오른쪽 발을 뒤따르게 하며 합친다. 이것이 제3보이다. 이로써 우보(禹步)를 끝마친다.’라고 우보법(禹步法)에 대해 서술한 적이 있다. 현재 전해지는 우보법은 이 외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우보의 유래에 대해서는 우임금이 13년간 황하의 치수사업을 할 때, 몇 차례나 자기 집 앞을 지나면서도 들어가 볼 틈이 없을 정도로 일에 몰두한 나머지 반신불수의 증세가 생겨 억지로 걷기는 했지만 절룩거렸던 모습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도교에서는 우보를 신령을 부르는 술법으로 여겨 우보법(禹步法)이라는 보법으로 발전시켰으며, 현재도 우보법은 도교의 각종 의례와 기문둔갑 장신(藏身) 수련법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양명(陽明)은 북두칠성 중의 제1성(星)인 탐랑(貪狼)의 별칭이다.

06 양력 6월 20일, 음력 6월 20일을 의미함.
07 도전님께서는 둔궤를 찾아오신 뒤 성궤(聖櫃)라 이름 하셨다. 자세한 내용은 「대순진리회의 성지(聖地) 바로보기」, 『대순회보』 83호, 2008, pp.24~25쪽 참조.
08 『금산사』, 한국불교연구원, 1994, pp.72~73쪽. 기존 회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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