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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일심(一心)을 가지지 못한 줄 모르고 복(福)만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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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1.08 조회3,8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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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대순종교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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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8[戊申]년 8월이 되었다. 상제님께서는 동곡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정읍 대흥리에 있던 차경석의 둘째 동생 윤칠이 “선생을 따르면 복을 받는다더니 가운(家運)이 기울기만 하니 허망하기 짝이 없소이다. 제가 직접 선생을 뵈옵고 항의하리이다.”라고 하면서 상제님을 찾아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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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칠이 이런 행동을 하게 된 데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원래 차경석의 집안은 가난했다. 그런데 1년 전에 차경석의 첫째 동생인 윤경이 결혼을 하고 장인으로부터 소작할 논을 얻게 되자 드디어 가운이 좀 피나 싶었다. 하지만 원래 그 논에서 소작을 부치고 있었던 사람은 반대로 살 길이 막히기에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송사가 일어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윤경의 형인 차경석은 전주 관아로 가게 되었다. 그러다가 동곡 앞 용암리 주막에서 상제님을 처음 뵈었고, 상제님의 가르침에 따라 그 송사를 포기함으로써 소작할 논은 원래 소작인에게로 돌아갔다.01 차경석의 동생들은 형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차경석은 그런 동생들을 잘 다독여 상제님을 따르도록 만들었으며, 더욱이 동학농민운동 당시 비참하게 죽임을 당한 부친의 원수를 갚지 말도록 하신 상제님의 가르침을 받들게까지 했다.02 이런 과정에서 윤칠은 형의 말을 믿고 상제님을 따르면 복을 받아 살림도 넉넉해지고 앞날이 창창해지리라 여겼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록 가세가 일어날 줄을 모르자, 윤칠은 괄괄하고 거친 성질을 이기지 못하여 상제님께 항의하기 위해 동곡으로 길을 나섰던 것이다. 
  대흥리에서 동곡까지는 100 리가 넘는 먼 길이었다. 그 길을 가는 동안 윤칠은 큰 비를 맞아 온 몸이 푹 젖었고 흙탕물이 옷과 발에 범벅이 되어 몰골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상제님께서는 그 꼴로 찾아 온 윤칠을 보시고, “이 부근에 의병이 자주 출몰하기에 관군이 사방을 수색하고 있는 중인데, 너의 비를 맞은 행색을 보면 의병으로 오인하고 너에게 큰 화난이 닥치리니 어서 다른 곳에 가서 숨었다가 부르거든 나오라.”고 타이르시며, 그를 다른 곳에 숨게 하시고 옷도 갈아입고 쉬도록 하셨다. 당시는 국권을 찬탈하려는 일본에 맞서 전국 곳곳에서 의병들이 일어났고, 일본군들은 의병들을 색출하여 토벌하고 있던 시국이었다. 그때 전라도는 일본군 토벌대에 붙잡힌 평민 의병장들이 103명이나 될 정도로 의병 활동이 매우 활발한 지역이었다.03 이런 판국이니, 몰골이 엉망인 윤칠이 산에 숨어 지내는 의병으로 오해를 받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얼마 후 상제님께서 윤칠을 부르시어 돈 석 냥을 주시면서 “내가 수일 후에 정읍으로 갈 터이니 네가 빨리 가서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라.”고 말씀하시니, 윤칠은 아무 말도 못하고 정읍 대흥리의 집으로 돌아갔다. 

  며칠 후, 상제님께서는 정읍의 와룡리(臥龍里)로 가셨다. 그리고 차경석에게 사람을 보내시어 고부의 학동(鶴洞)으로 오도록 전하게 하신 뒤에, 학동으로 다시 자리를 옮기셨다. 다음 날 차경석이 상제님을 뵈러 학동에 오자, 상제님께서는 “내가 윤칠이 두려워서 너의 집으로 가기 어려우니 이 일극(一極)04을 가져가라.”고 하시며, 돈 열다섯 냥을 내어 주셨다. 차경석이 돈을 받아들고 “무슨 일로 그렇게 엄절하신 말씀을 하시나이까⋅” 여쭈니, 상제님께서 “일전에 윤칠이 동곡에 온 것을 보니 살기를 띠었는데, 돈이 아니면 풀기가 어려우므로 돈 석 냥을 주어 돌려보낸 일이 있었느니라.”고 일러주셨다. 놀란 차경석이 급히 집으로 돌아가 동생 윤칠에게 따져 물었더니, 윤칠은 그 사실을 자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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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읍 와룡리의 오늘날 모습. 現 전북 정읍시 정우면 회룡리 괴동마을

  

  윤칠이 집안의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상제님께 항의하러 갔던 행위는 참으로 철이 없는 짓이었다. 무릇 잘 살고 싶고 복도 받고 싶은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지, 누군가에게 의탁한다고 되는 게 결코 아니다. 물론 윤칠의 기대처럼 상제님을 따르는 일은 남이 죽을 때 잘 살게 되는 일이요, 남이 잘 살 때에는 그보다 더한 영화와 복록을 누리게 되는 일임은 분명하다.05 하지만, “인간의 복록은 내가 맡았으나 맡겨 줄 곳이 없어 한이로다. 이는 일심(一心)을 가진 자가 없는 까닭이라. 일심을 가진 자에게는 지체 없이 베풀어주리라.”는06 상제님의 말씀으로 볼 때, 수행이 부족하여 일심을 가지지 못했으면서도 상제님을 따라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복을 바라는 것은 허무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윤칠과는 별개로, 그의 큰 형 차경석은 상제님께서도 인정하실 정도로 성경신이 지극한 인물이었다.07 그는 세 동생들을 다독여 가면서 상제님의 공사를 극진히 받들었고, 그래서인지 시간이 갈수록 그의 집안 살림은 점차 나아지기 시작하였고, 윤칠도 더 이상 불만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종도들 사이에서 구전으로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상제님께서 차경석에게 평생의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자 차경석은 돈을 물처럼 쓰는 것이라고 아뢰었다고 한다. 상제님께서는 돈이 아니라 덕을 물처럼 써야 옳은 것이라고 그를 책망하시면서도, 그가 바라는 대로 해원이 될 것이며 자칫하면 그것이 큰 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경계하셨다고 한다. 차경석은 기국도 크고 능력도 있는 인물이었으나 재물과 권력을 탐하여 자기의 분수를 지키지 못하였고, 결국 동학 신명들의 해원 두목으로서의 길을 가고 만다.08 

  경석이 집으로 돌아 간 다음 날, 상제님께서는 박공우를 데리고 학동을 떠나 길을 나서셨다. 그때 상제님께서는 “나의 이번 길은 한 사람의 절을 받기 위함이니, 이 절이 천하에 널리 미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순회보> 1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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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차경석이 상제님을 배알함」, 『대순회보』 117호, 2011, 12~13쪽 참조.
02 「정읍에서 차경석이 상제님의 공사를 받들다」, 『대순회보』 119호, 2011, 13~14쪽 참조.
03 구본창, 『패자의 역사』, 도서출판 정한PNP, 2003, 171쪽.
04 일기(一氣)가 함축된 극(極). 극(極)이란 기(氣)가 집약되어 있는 하나의 자리 또는 단위를 말하는 개념이다. 상제님께서 15냥을 일극(一極)이라 말씀하신 것은, 15가 주역에서 우주의 본체와 질서를 상징하는 숫자인 것과 관련되는 것으로 보인다.
05 『전경』, 교법 1장 6절.
06 『전경』, 교법 2장 4절.
07 『전경』, 공사 1장 9절.
08 「정읍 교동에서의 공사」, 『대순회보』 124호, 2011, 16-17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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