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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뺐다 넣었다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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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21.05.09 조회1,9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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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부 신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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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징(魏徵)은 밤이면 옥경에 올라가 상제를 섬기고

낮이면 당 태종(唐太宗)을 섬겼다 하거니와

나는 사람의 마음을 뺐다 넣었다 하리라. (교법 3장 33절)

 

 

  상제님께서는 위징(魏徵, 580~643)의 사례를 드시며 사람의 마음을 뺐다 넣었다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자신의 마음을 먹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마음을 빼거나 넣는다고 하셨으니,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 글은 이에 대한 의문점에서 출발하였다. 먼저, 위징이 상제와 당태종을 섬겼다는 이야기의 출처를 확인하고, 사람의 마음을 뺐다 넣는다고 하신 상제님의 말씀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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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징이 밤에는 천상의 옥경(玉京)에 올라가 상제를 섬기고, 낮에는 지상에 내려가 당(唐)나라 태종(太宗, 599~649)을 섬겼다고 하는 내용은 당나라 역사서에는 나타나지 않고, 당나라 초기 때 승려 현장(玄奘, 602~664)을 소재로 한 장편 소설 『서유기(西遊記)』01 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서유기』는 비록 소설이지만, 역사적 사실과 당시에 회자된 여러 설화를 종합한 것이다. 당 태종과 위징에 관한 이야기는 소설의 도입부에 해당하기 때문에, 당시의 전승된 사실을 활용했을 가능성이 더욱 크다. 『서유기』에서 당태종과 위징이 나오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태종이 등극한 지 13년(639)이 되던 때, 당나라 수도 장안성에는 현인인 한 어부에게 고기가 잘 잡히는 곳을 점쳐 주는 비상한 점쟁이가 있었다. 이 점쟁이로 인해 많은 어족이 잡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용왕은 점쟁이를 혼내주기 위해 선비로 변신하여 탐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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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쟁이를 찾은 용왕은 내일의 날씨를 맞히면 점 값으로 오십 냥을 주고, 그렇지 못하면 그를 장안에서 내쫓을 것이라 하였다. 용왕의 신하들은 비를 관장하는 용왕 앞에서 내일 비가 내리는 시간과 강우량을 점친 점쟁이의 점이 엉터리라고 비웃었다. 그때만 해도 내일 비를 내리게 하라는 옥황상제의 교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하들이 점쟁이를 비웃고 있을 때 용왕은 옥황상제의 교지를 받았다. 놀랍게도 점쟁이가 점친 비 내리는 시간과 강우량이 옥황상제의 교지와 일치했다. 그렇지만 용왕은 점쟁이를 쫓아내기 위해 다음 날 옥황상제의 교지를 어기고 비 내리는 시간과 강우량을 조작하였다. 점쟁이 말대로 비가 오기는 했지만, 비 내리는 시간과 강우량이 달랐기 때문에 용왕은 약속대로 점쟁이를 내쫓기 위해 찾아갔다. 점쟁이는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용왕이 옥황상제의 교지를 어긴 죄로 천벌을 받을 것이라 말하였다. 순간,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용왕은 점쟁이에게 사과하였다. 점쟁이는 용왕을 참수할 사람이 당 태종의 신하인 위징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용왕에게 태종을 찾아가 목숨을 구해달라고 부탁하는 길밖에 없다고 말해주었다.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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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용왕은 태종의 꿈에 나타나 자신을 구해달라고 부탁하였고, 태종은 그의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꿈에서 깬 태종은 조회를 소집하여 문무의 관리들을 모았지만, 위징이 보이지 않았다. 위징은 전날 밤 관청에서 천문을 관측하고 있었을 때 미시(未時)에 용왕을 참수하라는 옥황상제의 교지를 받았다. 위징은 관청에서 검을 시험하며 원기를 가다듬느라 조회에 참석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조회에 참석하라는 태종의 교지를 받고 다급히 조회에 참석하였다. 태종은 용왕이 처벌되는 날인 하루 동안 위징의 출궁을 막으면 약속을 지킬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조회가 끝나고 위징과 함께 바둑을 두기로 하였다. 하지만 태종과 바둑을 두던 위징이 잠시 조는 사이 혼백이 육신을 떠나 용왕을 참수하고 돌아왔다. 그날 이후부터 꿈에 용왕이 계속 나타나 억울함을 호소하자 태종은 시름시름 앓게 되었다. 결국, 용왕은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저승의 관청에 상소를 올려서 태종을 심판받게 하였다. 위징의 도움으로 저승으로 가서 심판을 받고 돌아온 태종이 선업(先業)을 닦고자 서천으로 가서 부처님을 뵙고 불경을 구해올 승려를 선발하였는데 그 승려가 바로 현장 법사03이다.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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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도 위징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전북 고창군 상하면에서 전해오는 설화는 위징의 또 다른 능력을 보여준다. 태종은 위징이 정말 옥황상제를 섬기는 능력을 지녔는지 시험하기 위해 별과(別科)에서 장원할 사람을 마음속으로 정한 후 그에게 맞혀보라고 하였다. 이에 위징은 태종이 다음 날 변심한 것도 별과에 합격한 글귀까지도 맞혔다.05 실제 역사적으로 위징은 나라와 백성은 물론 태종을 위해서 직간(直諫)을 아끼지 않았던 정치가이자 사상가이며, 역사학자이다.06 그는 태종의 칙명으로 고관들과 함께 『군서치요(群書治要)』07 를 편찬하였으며 태종이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군주로 평가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위징이 사망하자 태종은 고구려 정벌을 반대했던 위징의 말을 뒤로한 채 결국 고구려를 정벌하려다 실패하고 깊이 후회하였다. 이 사건은 위징의 직간이 뛰어난 상황 판단과 예지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당 태종의 신하인 위징에 대해 정리하면, 그는 밤에는 상제를 섬겼으며, 상제의 일을 행할 때면 혼이 육신을 드나들면서 처리하였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읽고 앞날을 훤히 꿰뚫어 보며, 판단력이 뛰어난 인물이기에 이인(異人)이라 할 수 있다. 상제님께서는 이러한 위징을 말씀하시면서, ‘마음을 뺐다 넣는다’고 하셨다. 이것을 명확히 알 수는 없으나 먼저 『전경』에 나온 마음에 관한 내용을 통해 ‘마음을 뺐다 넣는다’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유추해보고자 한다.

  “마음이란 것은 귀신의 추기(樞機: 지도리)요, 문호요, 도로이다. 추기를 개폐하여 문호를 출입하며 도로를 왕래하는 신은 선한 경우도 있고 악한 경우도 있으니, 선한 것은 본받고 악한 것은 고쳐야 한다.”08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의 마음은 신이 작용하고 드나드는 중요한 기관으로 사람이 신과 소통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통로인 것이다.

  상제님께서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의 뱃속에 출입케 하여 그 체질과 성격을 고쳐 쓰신다고 말씀하신 구절도 ‘마음을 뺐다 넣는다’와 관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09 뱃속을 사람의 마음이라고 본다면10, 상제님의 명을 받은 신명은 사람에게 드나들 수 있는 통로인 마음을 출입하게 될 것이다. 즉, 상제님의 말씀은 상제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통하여 신명을 ‘뺐다 넣었다’ 하여 사람을 고쳐 쓰시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므로 ‘마음을 뺐다 넣었다’고 하신 말씀은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의 마음에 드나들게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국어 문법 중 환유법(換喩法)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환유법이란 쓰이고 있는 낱말이 가진 속성으로 다른 뜻을 나타내는 표현법을 말한다. 예를 들어서 ‘머리를 깎는다’는 말을 하지만 실제 그 뜻은 ‘머리’를 깎는 것이 아니라 ‘머리카락’을 깎는 것이다. 이처럼 환유법은 표현된 단어를 그 단어가 가진 의미의 확장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을 고려하면 상제님께서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의 마음에 드나들게 한다’는 의미가 상제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뺐다 넣었다 하리라’로 표현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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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상제님께서는 왜 사람의 마음을 뺐다 넣었다고 하신다는 말씀을 하실 때 위징의 사례를 드신 것일까? 『정관정요(貞觀政要)』 내용을 통해 본 위징은 태종이 나태해져 황제로서 바르지 않은 행위를 하려고 하면 목숨을 내놓고 직간하여 바른 정치를 할 수 있게 보좌하였다. 위징이 매번 수없이 직간하자 그의 눈치를 보던 태종이 죽이려고 한 적도 있었다. 위징은 태종의 면전에서 허물을 기탄없이 직간할 정도로 뛰어난 판단력과 용기가 있었다. 이러한 그의 성정과 뛰어난 능력은 아마도 그의 혼이 들어갔다 나갔다 하면서 밤에는 상제를 낮에는 당태종을 섬겼던 결과일 것이다. 결국 우리가 수도에 임하면 상제님께서는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의 마음에 드나들게 하여 체질과 성격을 고치셔서 범인들도 위징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위징의 사례를 들어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신명이 사람의 마음을 드나든다고 해서 실제로 체질이나 성격이 바뀔 수 있을까? 따뜻한 음료를 마시면 상대를 보다 좋게 생각하려는 마음이 생기고, 차가운 음료를 마시면 상대를 보다 냉정하게 평가하려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는 심리학자들의 주장이 있다. 이와 같이 인간의 마음이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입증되고 있다. 이렇게 물리적인 조건에서도 사람의 마음이 변할 수 있는데, 하물며 신명이 드나들면 더 큰 변화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음양의 원리로 보면 신과 인간은 음과 양으로 서로 의지하는 관계이므로11, 신명이 드나들면 인간의 체질과 성격이 변화하게 된다.

  그 예로 상제님께서 박공우에게 “너는 표단이 있으니 인단으로 갈음하라”고 말씀하신 후에 박공우의 표독한 성격이 누그러졌다는 것을 들 수 있다.12 물론 지금까지의 설명으로 상제님 말씀의 참뜻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상제님께서 사람의 마음에 신명을 드나들게 하여 사람을 고쳐 쓰신다고 하셨으니, 내가 수도하여 마음을 닦고 바꾸려고 노력한다면 그에 맞는 신명이 응할 것이며, 체질과 성격도 바뀔 것이다.

 

 

 

 

 

01 중국 명대의 장편 신괴(神怪) 소설로 오승은(吳承恩)의 작품이라 전한다. 당대에 현장이 역경을 극복하고 불경을 가져온 내용을 구술한 것을 제자인 변기(辯機)가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로 펴냈으며, 내용은 차츰 신화화되었다.  『서유기』의 화본(이야기의 대본)으로 현존하는 것은 『대당삼장취경시화(大唐三藏取經詩話)』이다. 

02 오승은, 『서유기』 1, 서울대학교 서유기 번역 연구회 옮김 (서울: 솔, 2008) pp.285-308 참고.

03 실재 현장 법사가 서천에 가게 된 것은 당 태종에 의해서가 아니라 불교 경전에 나오는 중요한 개념들을 이해하기 위해 각지의 스승들을 찾아다녔으나 서로 내용이 모순되므로 인도의 스님에게 직접 들어 해답을 얻기 위함이었다. 현장 법사는 정관 3년(629) 29세에 혼자서 인도에 가서 여러 곳의 성적(聖蹟)을 두루 참배하고 학습하며 17년 후인 정관 19년(645)에 돌아왔다. 태종은 실제로도 귀국한 현장법사를 극진히 대하였다. 김승동, 『佛敎ㆍ印度思想辭典』 (부산: 부산대학교, 2001), p.2271 참고.

04 오승은, 앞의 책, pp.309-347; 오승은, 『서유기』 2, 서울대학교 서유기 번역 연구회 옮김 (서울: 솔, 2008) pp.7-67 참고.

05 박순호, 『고창군구비문학대계』 上 (고창: 원광사, 1993), pp.605-609.

06 위징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대순회보》 83~86호, 「24절후 인물소개-입춘(立春) 절후를 관장하는 위징」 참고.

07 정관(貞觀) 5년(631)에 태종의 명으로 역대 왕조의 사료를 집록하고, 경서ㆍ사서ㆍ제자백가서에서 수신ㆍ제가ㆍ치국ㆍ평천하와 관련된 핵심 내용을 선별한 책.

08 “心也者鬼神之樞機也門戶也道路也 開閉樞機出入門戶往來道路神 或有善或有惡 善者師之惡者改之” 행록 3장 44절.

09 교법 3장 4절.

10 ‘마음’을 속되게 이르는 말.

11 교운 2장 42절 음양경(陰陽經) 참고.

12 교법 2장 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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