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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이야기발연사(鉢淵寺)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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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2.17 조회5,7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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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지개다리를 지나면 ‘구유소’라는 소(沼)가 나온다. 동서로 길게 움푹 팬 곳에 푸른 물이 담겨 있는 것이 마치 돌로 된 말구유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서 오른쪽 언덕 위의 평평한 골짜기 안으로 발연사터가 자리하고 있다. 발연사는 8세기 중엽 신라 혜공왕 때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창건한 절인데, 율사는 이곳에서 점찰법회(占察法會)01를 베풀고 7년간 지냈다고 한다.

  지금은 폐사(廢寺)된 지 오래인 이곳에는 다만 동쪽에 삼각형처럼 생긴 발연암(鉢淵岩)이 있는데, 그 바위벽 한가운데에 ‘발연’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서남쪽에는 넘어져서 거의 파묻히다시피 한 돌탑구조물만이 남아있다. 다음의 이야기는 진표율사가 발연사를 창건하기 전에 있었던 일과 관련해 전해오는 전설이다.

  발연사 부근에 제석불상을 새긴 큰 바위가 하나 있었다. 이 바위는 쌀을 가져다준다고 해서 ‘쌀바위’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노승(老僧)이 어린 상좌를 데리고 그 쌀바위 근처에 은거하고 있었다. 그들은 참선하기 위해 그곳에 왔으나 공양미를 구할 길이 막막했다. 그러던 차에 하루는 그 바위 밑의 조그마한 구멍에서 쌀알이 하나씩 흘러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거기서 나온 쌀의 양은 두 사람이 겨우 하루 동안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들은 매일 쌀바위에서 흘러나온 그 쌀로 끼니를 해결하며 지냈다.

  얼마 후 노승은 그곳을 떠나 송림계곡의 부처바위 밑에 가서 참선하게 되었다. 발연소계곡의 쌀바위에서 송림계곡의 부처바위로 가려면 반드시 효양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그 거리가 20리(약 8km)나 되었다. 어린 상좌는 매일같이 그 쌀바위의 쌀을 받아 효양고개를 넘어 노승이 계시는 부처바위까지 가져다주었다.

  어느 해 겨울, 전례 없이 많은 눈이 내려 산길을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렇지만 어린 상좌는 노승을 먹여 살리기 위해 쌀바위에서 나오는 하루분의 쌀을 가지고 효양고개를 넘어 부처바위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떻게 할까?’ 한참을 고민하던 어린 상좌는 한 번에 며칠분의 쌀을 가지고 가려고 쌀바위의 구멍을 좀 넓게 뚫었다. 그랬더니 지금까지 한 알씩 나오던 쌀마저 뚝 끊기고 말았다. 상좌가 아무리 기다려 보아도 쌀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빈손으로 노승이 있는 부처바위로 찾아갔다.

  이런 사연을 전혀 알 길이 없는 노승은 밤낮으로 앉아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만 부르고 있었다. 한 끼니분의 공양미마저 구할 길이 없어 속을 태우던 상좌는 보살만 찾고 있는 스님을 보자 어이가 없고 한편으론 괘씸하기도 했다. 그래서 상좌는 노승을 골려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린 상좌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부르며 참선하고 있는 스님을 향해 “스님!”하고 불렀다. 스님은 상좌를 돌아보지도 않고 “왜?”하고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상좌는 또다시 “스님! 스님!”하고 거듭 불렀다. 이번에도 스님은 “왜? 왜?”하며 반문할 뿐이었다. 그러자 상좌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스님! 스님! 스님! ….”하고 자꾸 스님만 불러댔다. 그제야 비로소 짜증이 난 노승은 상좌를 붙들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상좌는 조금씩 뒤로 달아나면서 계속 “스님! 스님! 스님! ….”하고 불렀다. 그러자 노승이 격분하여 목탁을 집어던지고 상좌를 쫓기 시작했다.

  그때야 어린 상좌는 자기 스님을 향해 공손하게 절을 하고 나서 말했다. “스님께서는 ‘스님!’하고 열 번도 채 부르기 전에 골을 내시는데 아무 대답 없는 관세음보살, 지상보살을 몇 해씩이나 날마다 부르니 보살님들이 화가 나서 쌀바위의 쌀을 못나오게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노승은, “그런 것이 아니다. 쌀바위에서 쌀이 나오지 않는 것은 내가 불공을 잘 드리지 못한 탓이다.” 하고는 부처바위로 발을 옮기려 했다. 이때 상좌가 스님을 다시 부르며, “저는 ‘억만 관세음보살’과 ‘억만 지장보살’을 한꺼번에 불러 참선공부를 다 하였기에 오늘부터 하직합니다.”라고 말하고는 그 노승과 작별하였다.

  그 후, 훌륭한 스님으로 성장한 상좌가 다시 발연소계곡의 쌀바위 밑으로 돌아와 발연사를 창건하였는데 그가 바로 진표율사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대순회보> 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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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점찰경(占察經)에 의거한 법회. 과거의 선악업보와 현재, 미래의 길흉화복을 점을 쳐서 알아 본 후에 그것이 흉수일 때 지장보살에게 빌어 전화위복으로 만들고자 하는 대중적인 불교 집회이다.(김성수, 「진표율사와 미륵신앙」, 『상생의 길』제3호, 대순진리회 출판부, 2005,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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