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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문금이 간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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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3.20 조회6,0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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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중국의 할머니가 목에 거는 막대 지게의 양 끝에 다는 두 개의 항아리를 가지고 있었다. 한 항아리에는 금이 가 있었고, 다른 항아리는 완전해서 항상 하나 가득 물을 채워 왔다. 냇가로부터 집으로 가는 긴 길이 끝날 무렵이면 금이 간 항아리에는 물이 반밖에 차 있지 않았다.

2년 동안이나 이것은 매일 계속되었고, 할머니는 한 동이 반의 물만을 집에 가져왔다. 완전한 항아리는 물을 하나 가득 가져오는 것을 항상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가엾은 금이 간 항아리는 자신의 불완전함을 부끄러워했고, 한 동이를 가져와야 하는 물을 반밖에 가져올 수 없음을 불행하게 느꼈다.

그것이 비참한 실패라고 느꼈던 2년이 지난 어느 날, 그 금이 간 항아리는 냇가에서 할머니에게 말했다. “난 이 옆에 난 금이 집으로 오는 내내 물을 새도록 만들기 때문에 나 자신이 부끄러워요.”

  할머니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너는 너의 쪽 길가에 핀 꽃들을 보지 못했니? 나는 너의 결점을 알고 있었단다. 그래서 나는 너의 쪽 길가에 꽃씨를 뿌렸고, 매일 우리가 돌아올 때 너는 그 꽃들에 물을 주었지. 지난 2년 동안 난 그 예쁜 꽃들을 꺾어서 식탁을 장식했어. 네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면 집을 꾸밀 꽃이 없었을 거야.”

   “우리 각자는 저마다 자신의 고유한 결점이 있어. 그러나 우리가 함께하는 생활을 더욱 흥미롭게 하고, 보람 있게 만드는 것은 우리 각자가 가진 그 결점들 때문이지. 너는 있는 그대로 각 사람을 보고 그 속에 있는 좋은 점을 보도록 해야 해.”

       

  사람은 누구나 결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결점이라고 생각했던 그것이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장점인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이치(理致)로 보면 장점이랄 것도 없고 결점이랄 것도 없습니다. 하나의 막대가 있을 때 어떤 사람은 길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짧다고 한다면 누구의 말이 맞는 말이겠습니까? 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다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짧은 것보다는 길 것이고 긴 것보다는 짧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비를 가리기보다는 늘 합덕(合德)과 조화(調化), 상생(相生)을 생활의 원리로 삼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 만물은 음양합덕(陰陽合德)의 원리로 존재합니다. 전적인 양(陽)이 없고 전적인 음(陰)이 없습니다. 그래서 상제님께서는 “전적으로 옳거나 전적으로 그르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일러 올바름이라 한다(不受全是全非曰義).”(교법 3장 47절) 하셨습니다. 자연에서 나는 진짜 보석은 항상 조금이라도 불순물이 섞여 있게 마련입니다. 불순물이 전혀 없다면 그것은 인위적으로 만든 가짜입니다. 사기꾼의 말에도 참이 있고, 성인의 말에도 거짓이 있을 수 있음을 아는 것이 음양합덕의 존재원리를 보는 안목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도하면서 완벽을 추구하되 부족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어디서 누군가의 부족한 모습을 보더라도 미워하는 마음을 두지 말고 잘 용서하여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수도 된 마음가짐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로 교육열이 지나친 부모 밑에서 자라는 자녀가 주눅이 들어 기(氣)를 펴지 못하는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그 부모는 자식이 반에서 2등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반에서 1등을 해도 전교에서 1등을 해야 한다고 다그쳤습니다. 아이의 심성은 가뭄의 논바닥처럼 메말라 갔습니다. 재능이 중요하지만, 덕(德)에 비하면 말단입니다. 부족함을 허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영국 의회에 어떤 초선 의원이 의회에서 연설하는데, 청산유수로 너무나도 완벽한 연설을 했습니다. 연설을 마치고 난 후 연설의 대가인 윈스턴 처칠에게 가서 자신의 연설에 대해 평가를 부탁하였습니다. 물론 처칠로부터 탁월한 연설이었다는 평가와 칭찬을 기대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윈스턴 처칠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다음부터는 좀 더듬거리게나!”

  속담에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했습니다. 금이 갔기 때문에 훌륭한 인생을 살다간 사람이 무척이나 많았습니다. 괴테, 톨스토이, 헤밍웨이, 도스토예프스키, 링컨, 처칠, 니체, 쇼펜하우어, 베토벤 등은 심각한 우울증과 조울증에 시달렸었고, 소크라테스, 피타고라스, 시저, 알렉산더 대왕, 나폴레옹, 시인 바이런, 모파상, 단테, 잔 다르크, 알프레드 노벨은 모두 간질을 앓았던 사람들입니다. 루즈벨트는 성인 소아마비로 반신불수의 몸으로 미국 대통령이 되었고, 스티븐 호킹 박사는 루게릭병을 앓아 평생 휠체어에 의지하면서도 우주론과 양자 중력 연구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헬렌 켈러는 귀머거리, 벙어리, 장님이라는 삼중고를 딛고 인권운동으로 인류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습니다. 장애와 단점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실패의 동의어는 더더욱 아닙니다. 앞에 열거한 위인들의 삶이 이것을 웅변으로 예시하고 있습니다.

  상제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대할 때에 그 장점만 취하고 혹 단점이 보일지라도 잘 용서하여 미워하지 말라.”(예시 46절) 하셨습니다. 도전님께서도 『전경』 말씀을 인용하시어 “ ‘처세함에 있어서 온유를 귀중히 하고 억셈과 강함은 화의 바탕이 되니, 말함에 있어서 언제나 더듬거리기를 바라고 일함에 있어서 의당히 어리석음과 같게 하라(處世柔爲貴 剛强是禍基 發言常欲訥 臨事當如癡).’ 하셨으니, 수행에 어긋남이 없도록 힘쓰라.”01 하셨습니다. 이러한 태도가 음양합덕의 원리에 입각한 합덕과 조화의 처세입니다.

  우리가 수도하다 보면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또한 보게 됩니다. 부족한 모습을 보면 사안이 중하다고 생각될수록 쉽게 시비와 판단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때 그가 뿌린 물로 피어난 길가의 꽃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더욱이 상제님의 가르치심이 “선한 것을 보거든 스승으로 삼아 본받고 악한 것을 보거든 자신은 그런 모습이 없는가를 살펴 고쳐라(善者師之惡者改之).”(행록 3장 44절)라 하셨듯이 남을 나의 거울로 보아 선책(善策)해 나가야 합니다.

  남이 잘하는 것을 보면 ‘나도 저와 같이해야지.’ 하고 본받고, 남이 잘 못 하는 것을 보면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는 것으로 족합니다. 남이 잘 못 하는 것은 나 자신이 수도하여 운수를 받는 것하고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일이므로 도(道)에서 남의 일로 불평불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배도(背道)가 아닌 한 임원과 수반, 선각과 후각의 은의(恩義)를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일은 신명 심판(神明審判)이지 인간 심판이 아닙니다. 시비와 판단을 내려놓고 용서와 화해를 위주로 나아가야 합니다. 도전님께서 “체계는 도심(道心)으로써 바로 확립되고, 도심은 위아래의 도인들이 서로 믿으며 변하지 않고 신뢰하는 데에 있음을 모든 도인들은 각별히 유의하기를 바란다.” 하시며,02 “심정(心情)과 믿음 속에서 만사(萬事)를 해결하라.”03 하셨습니다. 모든 일을 상통하는 마음의 정(情)과 상호 믿음을 주고받는 가운데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대순회보> 184호


참고문헌
www.fourwinds1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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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대순지침』, p.28.

02 『대순지침』, p.64.

03 『대순지침』,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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