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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성이야기추석(秋夕)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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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1.11 조회15,4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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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교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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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는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고 농경생활이 중심이었기 때문에 각 시기에 따른 다양한 세시풍속(歲時風俗)01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인 추석은 음력 팔월 보름을 일컫는 것으로 중추절(仲秋節), 한가위, 가위, 혹은 가배(嘉俳)라고도 불렀다. 추석(秋夕)은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란 뜻이고, 중추절이라 함은 가을을 초추(初秋)ㆍ중추(中秋)ㆍ종추(終秋)로 나누었을 때 음력 8월이 중추에 해당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순수 우리말인 한가위는 ‘크다’는 뜻의 ‘한’과 ‘가운데’라는 뜻의 ‘가위’가 더해져 8월 한가운데의 큰 날을 의미한다. 또 ‘가배’는 신라시대 여인들이 길쌈을 짜며 놀던 것을 말하는데, 후에 이것이 변하여 ‘가위’가 되었다.
  추석의 기원이나 유래에 관해 알려진 바는 없지만 이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유리이사금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라 제3대 임금인 유리왕은 음력 7월 16일에 신라 6부의 여자들을 두 패로 가르고 두 왕녀로 하여금 이들을 거느리고 매일 아침 일찍 넓은 뜰에 모여 길쌈을 시작하게 해서 밤 10시쯤에 파하게 하였다. 8월 보름이 되면 그 성과의 많고 적음을 따져 지는 편이 술과 음식[酒食]을 마련케 하고 서로 노래를 부르며 춤추게 했는데, 이를 가배라 하였다. 이처럼 추석은 신라 초기에 세시명절로 자리 잡았고 고려시대에는 9대 명절02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국가적으로 선대왕에게 추석제(秋夕祭)를 지냈으며, 설날ㆍ한식ㆍ단오와 더불어 4대 명절의 하나로 꼽혔다.
  오랜 세월 우리민족의 대표적인 명절이었던 추석에는 여러 가지 행사와 놀이가 세시풍속으로 전해오고 있다. 이 시기가 되면 조석으로 날씨가 쌀쌀해지므로 사람들은 여름옷에서 가을 옷으로 갈아입는데 이때 입는 새 옷을 추석빔이라 한다. 추석날 새 옷을 입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종가(宗家)에 모여 미리 준비해 둔 제물을 놓고 4대 조상께 차례(茶禮)03를 지내는 것이다. 추석에 올리는 차례는 조상의 음덕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천신제(薦新祭)04를 겸했기 때문에 햇곡식과 햇과일을 비롯해 토실하게 살이 오른 햇닭도 올렸다. 가을 수확을 앞두고 가장 먼저 조상에게 첫 수확물을 올림으로써 한 해 농사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던 것이다. 이때 성주(城主)05ㆍ 같은 집안 신(神)들에게도 새로 난 곡식과 과일을 올려 치성을 모셨다.
  차례가 끝나면 올렸던 음식으로 온 가족이 음복(飮福)을 하고 조상의 산소에 찾아가서 성묘(省墓)를 하였다. 이때 어른들은 산소를 오가며 집안의 내력과 조상의 업적들을 자녀들에게 전함으로써 조상과 혈연에 대한 의식을 강화하였다. 여름 동안 무성하게 자란 풀을 깎는 벌초는 대개 추석이 되기 전에 미리 해두었다. 성묘를 마친 오후에는 가까운 친척과 마을 사람들이 모여 윷놀이, 소놀이, 씨름을 비롯해 다채로운 행사를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속담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는 말이 있듯이, 추석에는 새 곡식과 새 과일이 나와 모든 것이 풍성할 뿐더러 춥지도 덥지도 않아 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추석 음식은 설음식과 큰 차이가 없지만 햇곡식으로 밥과 술과 떡을 만든다는 특징이 있다. 『동국세시기』에는 송편을 대표적인 추석 음식으로 꼽고 있으며, 올벼로 만든 송편이라 하여 올벼송편이란 말도 생겼다. 추석 전날 가족들이 모여서 송편을 빚는데 예쁘게 빚으면 좋은 배필을 만난다고 해서 처녀ㆍ총각들은 송편을 곱게 빚으려고 애썼다. 햅쌀로 빚은 술인 신도주(新稻酒)는 조상과 이웃에게 감사하고 수확의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한 것이어서 송편과 함께 차례와 손님대접에 주로 쓰였다. 이밖에도 추석에는 시루떡이나 인절미, 토란단자, 박나물 등을 계절 음식으로 먹었다.
  한가위에는 지역마다 다채로운 놀이들이 행해졌다. 남도(南道) 지방 농군들은 농사를 짓는 데 큰 힘이 되어준 소에게 감사하는 뜻에서 마을을 돌며 ‘소놀이’를 하였다. 멍석으로 가장한 소와 농악대를 앞세우고 이 집 저 집 찾아다니며 주인이 대접하는 술과 음식을 먹고 한바탕 신나게 놀았다. 경기 남부와 충북 일부에서는 소놀이와 비슷한 ‘거북놀이’를 하였다. 물과 장수(長壽)의 상징인 거북의 영험이 집안에 미쳐 만복이 깃들기를 바랐던 것이다. 전남 남해안 지방 부녀자들은 강강수월래06를 하였다. 추석날 보름달이 높이 솟을 무렵이면 마을 부녀자들이 추석빔을 곱게 차려입고 넓은 마당이나 잔디밭에 모여 서로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노래 부르고 춤을 추었다. 경북 의성 지방에서는 동네 서당의 학동들이 나무로 만든 가마에 바퀴를 달아 서로 부딪치는 가마싸움을 했다. 이 싸움에서 이긴 서당의 학동들이 과거시험에 많이 붙는다는 믿음도 있었다.
  한가위는 1년 중 정월 대보름 다음으로 큰 만월(滿月)의 명절이다. 농경사회에서 만월은 여성, 물과 함께 생산과 풍요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이날 농경민족 최대의 소망인 풍작을 기원하고 감사하는 뜻에서 조상과 신명께 차례와 치성을 모셨다. 둥근 보름달을 구경하며 소원을 비는 달보기는 처음 떠오른 달을 보는 이가 복(福)을 받는 것이어서, 수태(受胎)를 소망하는 여인들에게 좋은 자리를 양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만일 추석날 밤에 달이 없으면 토끼가 수태하지 못하고 메밀이 결실을 맺지 못한다 여겼으며, 달에 구름이 끼어도 흉년이 든다고 해서 꺼렸다.
  추석을 전후하여 그해 농사에서 가장 잘 익은 벼, 수수, 조 등을 한 줌 베어다가 기둥이나 대문 위에 묶어 걸어두는데 이를 ‘올게심니’라고 한다. 내년에도 풍년이 들게 해 달라고 하늘에 비는 풍속이었으며, 이때 술과 반찬을 마련하여 이웃을 청해 대접하기도 하였다. 올게심니를 한 곡식은 다음 해에 종자로 쓰거나 밥이나 떡을 해서 조상의 사당에 올렸다. 한편 추석 무렵에는 농사일이 거의 마무리되기 때문에 여성들은 음식을 장만해 친정 나들이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만일 친정이 멀고 가기 힘들면 ‘반보기’라고 해서 시댁과 친정 중간쯤 되는 경치 좋은 곳에서 친정 식구들을 만나 회포를 풀곤 하였다.
  이처럼 추석은 “오월농부 팔월신선(五月農夫 八月神仙)”이란 말이 있듯이 봄부터 여름까지 땀 흘려 가꾼 곡식과 과일들이 익어가는 가장 풍성하고 즐거운 명절이었다. 이날 벌어지는 다양한 행사를 통해 우리 선조들은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랬으며, 자신의 근원인 조상과 신명께 풍작에 대해 감사하고 다음 해에도 풍년이 들기를 기원했던 것이다.
  도장에서 모시는 추석치성은 한 집안의 조상과 가신(家神)을 대상으로 하던 치성과는 그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 치성은 한 해 농사의 결실에 대해 천지의 운행을 주관하시는 상제님과 천지신명께 감사드림은 물론, 조상들의 음덕에 대해서도 고마움을 표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지만 추석치성의 의미가 농사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만물이 성숙하여 결실을 맺는 우주의 가을에 도인들은 포덕ㆍ교화ㆍ수도 사업을 통해 자기완성과 광구천하(匡救天下)를 위한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치성에 참례하는 모든 도인들은 참된 열매가 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는 양위 상제님과 조상 선령신들의 은혜에 대해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각자가 바라는 대운대통(大運大通)을 이룰 수 있도록 치성에 지극한 정성과 공경을 다해야겠다. 

 

 《대순회보》1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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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세시(歲時)의 ‘세(歲)’는 1년을 가리키고, ‘시(時)’는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의 사시(四時)를 뜻한다. 그래서 세시풍속이란 예부터 1년을 단위로 계절에 따라서 관습적으로 되풀이 되는 생활행위를 뜻한다.(김지영, 「韓·中名節文化比較硏究」, 경기대학교 교육대학원, 2007, p.4.)

02 설, 정월대보름, 상사(上巳: 3월 3일), 한식, 단오, 추석, 중양절(重陽節: 9월 9일), 팔관회(八關會), 동지.

03 매달 초하루와 보름, 명절과 조상 생일에 간단히 지내는 낮 제사.

04 국태민안과 풍농 및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철 따라 새로 난 과실이나 농산물을 먼저 신위(神位)에 올리고 지내는 제사.

05 가정에서 모시는 신의 하나. 집의 건물을 수호하며, 가신(家神) 가운데 맨 윗자리를 차지한다.

06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창안한 병법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으나, 학계에서는 고대부터 전해오던 것이 임진왜란을 계기로 전남 남해안 지방을 중심으로 확대 전승된 것으로 보고 있다.(한국민속학회 저, 『민속놀이ㆍ축제ㆍ세시풍속ㆍ통과의례』, 민속원, 2008, pp.3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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