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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성이야기입추치성(立秋致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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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1.11 조회4,6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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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교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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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의 입추치성은 구천상제님 화천치성과 나흘 간격이어서 모시지 않지만, 입추는 음력으로 6월 20일, 양력으로는 8월 7일 오시(午時)다. 대서(大暑)의 15일 후인데 태양의 황경이 135˚인 날이 입추 입기일(入氣日)이다. 입추의 입(立)은 시작, 추는 추렴으로 수확을 알린다. 입추는 대서와 처서 사이에 있으며,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절후다. 

 『고려사』 역(歷) 선명력(宣明曆) 상(上)에 “입추는 7월의 절기다. 괘(卦)는 리(離) 구사(九四)다. 초후(初候)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중후(中候)에는 진한 이슬이 내리며, 말후(末候)에는 쓰르라미(寒蟬)01가 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입추가 지난 후의 계절의 변화를 잘 나타내는 말이다. 『고려사』 「세가(世家)」정종(正宗) 2년(1036)에는 “입하부터 입추까지 백성이 조정에 얼음을 진상하면 이를 대궐에서 쓰고, 조정 대신들에게도 나눠주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입추까지는 날씨가 무척 더웠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입추 무렵은 벼가 한창 익어가는 시기로 맑은 날씨가 이어져야 한다. 이날 날씨를 보고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친다. 입추에 하늘이 청명하면 모든 곡식이 풍년이라고 여기고, 이날 비가 조금만 내리면 길하고 많이 내리면 벼가 상한다고 여긴다. 

입추 때는 “벼 자라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장마가 끝나고 입추 무렵이 되면 날씨가 좋고 일조시수가 많아 벼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그 성장 속도가 빠르다. 그래서 귀가 밝은 개는 벼가 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그 소리가 크다는 뜻의 다소 좀 과장된 표현이 생겼다. 

  입추 시기의 의례로는 영성제(靈星祭)와 영제(?祭) 등이 있다. 그중에 영성제는 입추 후 진일(辰日)에 영성(靈星)에게 한 해의 농사가 잘된 것을 감사하며 지내는 제사다. 영성은 일반적으로 천전성(天田星)을 가리킨다. 천전성은 28수 가운데 동방 청룡(靑龍)의 왼편에 있는 각수(角宿)로서 농사일을 주관하는 신이라 믿어 농상(農祥)이라 부르기도 한다. 영성제는 중국 주나라 때부터 있었으나 더욱 정확한 기록은 『한서(漢書)』 「교사지(郊祀志)」에 나온다. 한고조가 즉위 8년(B.C. 199)에 영을 내려 천하에 영성사(靈星祠)를 세워 농사를 주관하였던 후직(后稷)에게 제사하던 것을 본받아 영성제를 지내게 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영성제는 삼국시대 초기부터 거행되었던 대표적인 농경의례였다. 『삼국사기』 「제사지」 에는 “입추 뒤 진일에 본피촌(本彼村)에서 영성을 제사지낸다.”라고 하였다. 『국조오례의』에 따르면 조선시대의 영성제는 소사(小祀)로서 제사일은 입추 후 진일이었으며, 헌관은 3품관이며 축판에는 “삼가 생각건대 말없이 자연의 조화를 관리하시어 삼농이 잘 되게 하여 주시고 정갈한 제사에 감통하시어 온갖 복을 많이 내려주셨기에 삼가 조촐한 제품으로 정갈히 차려 올리는 바입니다. 굽어 흠향하소서.”라고 써서 가을걷이가 끝난 후 감사의 뜻을 담았다. 그러나 영성제는 중종 이후 폐지되었다.  
  또 다른 의례로는 장마철처럼 오랫동안 비가 내릴 때 성문에서 거행하였던 기청제(祈晴祭)인 영제가 있었다. 영제는 중국 고대 기양의례(祈禳儀禮) 중 하나이지만 애초부터 기청제로 한정되어 있지 않았으나 가뭄 때 우사와 대비되는 기청제로 간주하기 시작한 것은 한나라 때부터였다. 기청제로서의 영제는 제사 대상보다 제사를 거행하는 제장이 성문이었다는 점이 특색이다. 『설문해자』에서 영(?)은 영(營)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여기서 영(營)은 ‘두르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하여 영제의 본래의 형태를 일식(日蝕)이 발생하였을 때에 ‘붉은 끈으로 사직단을 두르고’ 북을 치며 위협하는 의식으로 보기도 한다. 붉은 끈은 벽사의 의미가 강하였으며 이러한 공간적 독특성은 사방의 대문에서 제의를 거행하는 형태로 변화되었다. 이는 소통의 기능과 방어의 기능으로 보고 있다. 소통의 기능이란 문을 통해 수많은 사람이 출입하고 왕래하는 것처럼 사람 사이의 소통을 원할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반면 방어적 기능이란 문이 외부의 적이 침입하는 것을 막는 기능에서 유추한 것으로 영제를 인사(人事)의 모든 일을 방해하고 가로막는 재난을 물리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조선시대 『국조오례의』에 따르면 한성부 영제는 숭례문, 흥인문, 돈의문, 숙정문의 사대문에서 지냈다. 영제는 기청제로서 농경과 매우 밀접한 의례였다. 농경세시적인 흐름으로 보면 영제는 입추 이후에 주로 거행되었다. 입추 후 벼가 여물 시기에 계속 비가 내리면 농작물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은 입추 이후에 영성제나 영제를 지냄으로써 농사에 대한 감사와 장마철에 비를 멈추게 해달라는 정성을 드렸음을 알 수 있다. 

  현대인들은 과학이 발달한 물질문명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이 대자연의 완벽한 질서와 체계가 모두 천지신명들에 의해 차착이 없이 운행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천지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그분들께 감사의 정성을 드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도주님께서는 운합주에 춘하추동 사시지정(春夏秋冬 四時之精)이라고 말씀하셨듯이 사시지정 가운데 하나인 추(秋)가 결실기로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우주는 시간과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시의 시간을 담당하시는 분들이 이십사절주의 신명들이시다. 그러니 얼마나 중요하고 큰일을 담당하고 계시겠는가! 이렇듯 사립이지(四立二至) 치성의 하나인 입추치성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모든 치성이 그러하듯이 중요하다. 『전경』에 “만물이 가을바람에 따라 떨어지기도 하고 혹은 성숙도 되는 것과 같이 참된 자는 큰 열매를 얻고 그 수명이 길이 창성할 것이오. 거짓된 자는 말라 떨어져 길이 멸망하리라.”(예시 30절) 하셨다. 수도인은 불천불역의 천운구인시대를 맞이하여 천지의 참된 결실을 맺기 위하여 무자기를 근본으로 하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극 정성을 다하여 수도의 완성에 매진하여야겠다.   

 《대순회보》 1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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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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