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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문맹사성의 일화가 남긴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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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20.07.18 조회5,5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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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사성(孟思誠, 1360~1438)01은 조선 시대 초기인 태조부터 세종 때까지 오랫동안 관직에 머물면서 청백리(淸白吏)로 칭송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젊고 명석하며 패기에 찬 세종 임금을 황희(黃喜, 1363~1452)와 함께 보필하며 조선 왕조의 기틀을 다지고 문화적 황금기를 여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02 맹사성은 높은 관직에 있었음에도 벼슬이 낮은 자를 대할 때면 관대를 갖추고 대문 밖에 나와서 맞아들였고, 상대가 물러날 때도 손을 모으고 몸을 구부린 채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가 거처하는 집은 초라했고, 바깥출입을 할 때도 가마 대신 소 타기를 좋아해 보는 이들이 그가 재상(宰相)임을 알지 못했다고 할 정도로 검소함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맹사성이 처음부터 그러한 인품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명문가의 자손으로 뛰어난 학식을 지녔던 그가 겸손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게 된 것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하여 군수 자리에 오른 맹사성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과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 날 고을을 돌아보던 중 존경받는 고승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절을 찾아갔다. 맹사성은 고승에게 “스님이 생각하시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최고로 삼아야 할 덕목은 무엇이라 생각하시오?”라고 물었다. 고승은 가만 웃고 있다가 “그건 간단합니다. 나쁜 일을 하지 않고 착한 일을 많이 하시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맹사성은 화를 내며 “그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내게 해줄 말이 고작 그게 전부요?”라고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자 고승이 차나 한잔하고 가라며 붙잡았고, 이에 맹사성은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고승은 맹사성의 찻잔에 찻물을 따랐는데, 잔에 찻물이 차고 넘치는데도 계속 따르는 것이었다. 맹사성은 놀라서 소리치며, “스님, 찻물이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승은 태연하게 찻잔이 넘치도록 계속 차를 따랐다. 맹사성이 화를 내며 “찻물이 넘친다니까요!”라고 하자, 고승은 주전자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들고는 맹사성을 지긋이 바라보고 말하였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망치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고승의 말씀을 들은 맹사성은 흠칫 놀라며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고, 황급히 일어나 방문으로 나가려고 하다가 그만 문틀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고 말았다. 고승은 빙그레 웃으며 말하였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지요.”03

 

 

  그 이후 맹사성은 누구에게도 거만하지 않고, 겸손을 몸에 익히고 실천하며 선정(善政)을 베풀어 많은 이로부터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고 한다. 짧은 일화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이다. 한편으로는 글 좀 읽었다는 관리의 위세가 무너지는 통쾌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산사에 묻혀 수도에 정진해 온 스님의 지혜가 느껴지기도 한다. 이 이야기에서 맹사성이 고을의 관리인 자신을 높이고 상대방을 얕잡아 보는 태도를 보이자 무언가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를 갖추지 못한 그에게 스님이 가르침을 준 것이다. 

  직위는 ‘일에 대한 책임을 맡은 자리’로서 큰 영향력을 가지므로 겸손과 절제의 미덕이 필요하다. 그런데 직위를 바탕으로 상대를 무시한다면 상대방의 신뢰를 얻기는 어렵다. 또한, 상제님께서 “가장 두려운 것은 박람박식(博覽博識)04이니라.”라고 하셨듯이 앎이라는 것은 경험과 함께 세상과 사람에 대한 통찰을 깊게 하여 진리와 경위에 밝아지게 한다. 하지만, 지식의 축적으로 인해 때로는 마음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자만심이 유발되어 남을 무시하는 태도가 생길 수도 있다. 상대를 무시하게 되면 척이 발생하게 되고, 그 척은 수도에 보이지 않는 방해가 된다. 『대순진리회요람』에 “항상 남을 사랑하고 어진 마음을 가져 온공, 양순, 겸손, 사양의 덕으로써 척을 짓지 않도록 하라.”05라고 언급되어 있으니 이는 척을 짓지 않기 위해 겸손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말씀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속담도 있듯이 겸손은 성숙한 인격의 완성을 위해 당연히 갖추어야 할 미덕의 하나이다. 이와 함께 늘 자신의 부족한 점을 생각하며 최선을 다한다면 자만심이 깃들 여지 또한 크게 줄어들 것이다. 겸손이란 무조건 자기를 낮추는 것이 아니며, 남을 존중하기 위해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소통의 방식이다. 즉 상대방을 존중하며 나 자신을 다스리는 일이기도 하다. 수도인으로서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친절하게 대하고, 상대방을 존경하고 배려하여 척을 짓지 않도록 해야겠다. 자만하지 않고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처신한다면 일상 속에서 보이지 않는 문틀에 내 머리를 들이받는 일은 아마도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01 여말선초(麗末鮮初)의 문신으로 호는 고불(古佛)이다. 그의 조부 맹유는 조선이 개국하자 두문동(杜門洞) 72현의 한 사람으로 순절했고, 아버지 맹희도는 출사하지 않고 절의를 지켰다. 최영 장군의 손녀사위이며 고려 우왕 12년(1386)에 문과에 장원급제한 맹사성은 조부가 순절하자 관직을 그만두었으나, 나라가 평온해지자 부친의 권유로 다시 벼슬길에 올랐다. 조선 초 태조의 제수로 관직에 들어와 대사헌, 판서를 거쳐 좌의정을 지내다 세종 17년(1435) 벼슬에서 물러났다. 『해동명신록』에도 기록된 그는 조선 500년사의 명재상으로 황희 등과 함께 청백리에 올랐다. 맹온재, 「고불 맹사성 연구」, 『국악원논문집』 11 (1999), pp.86-90 참고. 

02 김일환, 「고불 맹사성의 재상정치활동 연구」, 『포은학연구』 19 (2017), p.174, 참고.

03 신웅순, 「겸양지덕의 대명사 고불 맹사성」, 《문화재사랑》 125 (2015), pp.9-11, 참고.

04 교법 2장 24절.

05 『대순진리회요람』,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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