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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각원수도의 주체는 나 자신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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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1.03 조회4,9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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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20여 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그때 나는 대학원생으로 풋풋하고 거침이 없었던 선무였다. 상제님의 대순진리를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수도를 한다는 자부심과 열정만큼은 대단했다. 주위의 도우(道友)들이 도통(道通)을 염원하며 수도에 정진하는 모습은 나에게 많은 부러움을 자아냈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나 또한 도통을 간절하게 기원했다. 그 무렵 도통에 대한 기대가 점점 커질수록 반대급부로 수도의 어려움에 대한 회의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러던 어느 날 선각자인 교감에게 나의 고충을 상의하게 되었다.
 
 
○선무: 도통은 하고 싶은데, 수도가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어요!
○교감: 수도는 자신의 사욕(私慾)을 억제하고 남을 잘되게 하려는 도심을 확충해가는 과정입니다. 혹시 라캉
01의 ‘욕망이론’에 대해 들어 보았나요?
○선무: 네. 라캉의 말 중에 “나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것이 중심 내용이라 알고 있습니다. 곧, 내가 욕망하는 것은 순수한 욕망이 아니라 남들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는 것입니다. 남을 의식한 욕망이랄까! 뭐…, 이 정도만 이해하고  있습니다.
○교감: 선무가 지금 그런 거 같지는 않나요?
 
 
  이 일을 계기로 줄곧 수도와 욕망의 관계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오랜 고민 끝에 도통이라는 수도의 목적 속에 잠재된 나 자신의 내면을 볼 수 있었다. 라캉의 “나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말에 비추어 보면, 나는 진정 도통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도통을 하고 싶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즉, 나는 도통을 위한 수도가 아니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수도를 하고 있었다. 이 왜곡된 욕망이 수도를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나 자신을 억압하며 힘들게 한 것이다. 그것은 타자의 욕망과 자신의 욕망을 구분하지 못해서 발생한 환상일 수도 있다. 도인에게 도통이라는 목적은 동일해도, 수도의 과정과 환경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도통을 목적으로 하는 수도는 누군가가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노력에 의한 자발적 행위이다. 다시 말해서, 나 자신이 주체가 되어 수도가 이루어졌을 때 도통이 가능한 것이다. 『전경』에 “우리 공부는 물 한 그릇이라도 연고 없이 남의 힘을 빌리지 못하는 공부이니 비록 부자와 형제간이라도 함부로 의지하지 말지어다.”(교법 1장 7절)라는 말씀에서 주체적 수도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곧, 수도의 주체는 오직 나 자신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진정 내 인생의 주인은 오직 나이기 때문이다. 
 
 <대순회보 190호>

01 자크마리에밀 라캉(Jacques-Marie-Émile Lacan, 1901-1981)은 프랑스의 철학자, 정신분석학자이다. 프로이트에 대한 해석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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