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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속 인물오제 금천씨ㆍ고양씨ㆍ고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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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9.15 조회4,6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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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제 헌원씨가 서릉씨의 딸 유조를 정비(正妃)로 삼아 두 아들을 낳았다. 그 중에서 장자(長子)는 현효이며, 차자(次子)는 창의(昌意)라고 했는데 제후로 나와 약수(若水 : 龍江)가에 거주했다.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는 이름은 현효인데 일명 청양(靑陽)이라고도 했다. 오제(五帝)중 첫번째 제왕으로 현 중국의 산동성 곡부(曲阜)에 도읍을 정하였다. 현효는 제후로 강수(江水)가에 거주했으며 제위에 오르자 봉황이 춤추며 날아왔다. 그래서 관직 이름에 새 이름을 붙였다. 금천씨의 관제(官制)가 지금까지 전하게 된 것이 춘추 좌씨전(春秋左氏傳)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소공(昭公) 17년 가을철에 담자가 노나라에 와서 소자(昭子)와 이야기를 나눈다. 『소고씨의 세대에 나르는 새의 이름을 가지고 벼슬이름을 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나이까?』 …… 『나의 선조 소고씨께서 임금이 되심에 봉새가 날아와서 그 새를 수호신으로 삼아 새이름으로 벼슬이름을 삼으셨던 것이오. 봉조씨(鳳鳥氏)는 역(歷)을 주관하는 관장(官長)이었고, 현조씨(玄鳥氏)는 춘분과 추분의 시기를 구별하는 일을 맡았으며 백조씨(佰鳥氏)는 하지와 동지를 구별하는 일을 맡았었고, 청조씨(靑鳥氏)는 양기가 만물의 힘을 열어주는 일을 관장했었으며, 단조씨(丹鳥氏)는 음기가 만물의 힘을 열어주는 일을 관장했었고, 축구씨(祝鳩氏)는 사도(司徒)가 되었으며, 저구는 사마(司馬)가 되었고, 시구씨는 사공(司空)이 되었고, 상구씨는 사구(司寇)가 되었고, 골구씨는 농ㆍ공(農工)을 관장 했었오. 다섯 구(鳩)의 관(官)은 백성들을 모아 영도했었고, 또 다섯 치(稚)의 관은 다섯 분야 공인(工人)을 맡는 관장이 되어 도구(道具)를 편리하게 하고 도량(度量)의 법을 바르게 하여 백성들을 편하게 했었오, 그리고 또 아홉의 호(扈)의 관은 아홉까지 농사일을 맡는 관장이 되어 백성들을 안착시켜 게으르지 않게 했던 것이오』  

  또한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列傳) 제일(第一) 김유신상(金庾信上)에는 「羅人自謂少昊金天氏之後 故姓金, 庾信碑亦傳, 軒轅之商, 小昊之胤」(신라인들이 스스로 소호 금천씨의 후예이므로 성을 김씨이라 한다고 했으며, 유신비문에도 헌원의 후예요 소호의 종손)라고 되었있고, 동서(同書) 백제본기(百濟本紀) 제육(第六)에도 「新羅人自以少昊金天氏後, 故姓金氏」(신라인은 스스로 소호금천씨의 후예이므로 성을 金氏라 하였다 한다)라고 나와 있다.  

  현효가 재위 84년만에 붕어하자 백성들은 공상의 동북산에 그의 능을 만들었고, 그의 아들은 삼년 동안 능을 살폈다.(지금 산동성 곡부현에서 동북 3km에 소호릉이 있다고 한다)                   

  전욱고양씨(顓頊高陽氏) 창의(昌意)의 아들이며 황제의 손자이다. 소호씨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는데 소호의 정치가 쇠퇴해지면서 여씨(黎氏)를 일컫는 아홉 사람의 제후도 덕을 잃고 도를 어지럽혔으므로 백성과 신이 섞여 살아서 쉽사리 이것을 구별할 수가 없었다. 

  전욱은 이와 같이 난세(亂世)의 뒤를 이어받았으므로 남정(南正)의 관직에 있는 중(重)이라는 사람에게 명해서 하늘에 관한 일을 관리케 하여 그에게 모든 종교행사를 맡겼다. 또 화정(火正)의 관직에 있는 여(黎)라는 사람에게 지상에 관한 일을 관리시켜 그에게 모든 민정(民政)을 맡겼다. 그래서 백성과 신이 서로 범하는 일이 없고 욕되게 하는 일이 없게 되었다. 

  그는 사람됨이 조용하고 깊이가 있으며 계략이 있고 만사에 정통했다. 적합한 토지를 골라 오곡을 번식시키고 사계절의 행사는 하늘의 시간에 맞춰 순응해서 행하였다. 역서(曆書)를 만들어 맹춘(孟春)-孟은 처음, 봄은 첫달)으로서 원(元-해의 처음이므로 정월)을 삼았다. 신의 권위를 배경으로 존비의 제도를 마련하고 사시(四時)와 오행(五行)의 기(氣)를 조화시켜 백성을 교화시키고 청결한 참마음으로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북으로는 유릉(幽陵 ; 河北省 療寧省의 일부)에 이르고, 남으로는 교지(交趾 ; 五嶺 以南의 일대)에 이르고, 서로는 유사(流沙 ; 中國 西北方의 사막지대)에 이르고, 동으로는 반목(蟠木 ; 東海의 성에 있는 名山)에 이르렀다. 조수(鳥獸)와 초목(草木)이나 크고 작은 산천의 신들도 해와 달이 비춰주는 범위에서는 그의 덕으로 알고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전욱이 세상을 떠나자 현효의 손자 고신(高辛)의 즉위했는데 그가 제(帝)곡(嚳)이다.             

  제곡고신씨(帝嚳高辛氏) 황제의 증손이다. 고신의 부친을 교극(嶠極)이라 하고 교극의 부친이 현효라고 한다. 곡은 극(極)의 뜻으로 도덕을 닦아 긍극까지 실행했으므로 이러한 이름을 가졌으며, 고신(高辛)은 지명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는 나면서부터 신성(神性)을 갖추고 있어 갓난 아이 때부터 자기의 이름을 스스로 말할 수 있었으며, 도읍을 박(亳)에 정하였다. 널리 덕을 끼쳐 만물에 이익을 주고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지 않았다. 총명해서 멀리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 차렸고, 눈이 밝아 미세한 것이라도 다 판별하였다. 하늘의 뜻을 따르고 백성들의 급무를 알고, 인덕을 갖추어 위엄이 있었다. 자애롭고 신의가 있으며 자신의 덕을 닦았으므로 천하가 성심을 다하여 순종하였다. 땅에서 나는 재물을 절약해서 사용했으므로 만민을 어루만져 이익으로 인도한 도덕으로 가르쳤으며, 일월(日月)의 운행을 헤아려 역서를 만들어 가는 날을 보내고 오는 날을 맞이했다. 신의 권위를 밝혀 공경하고 섬겼다. 그의 얼굴빛은 부드러웠으며 그의 덕은 드높았다. 그가 움직일 때에는 천시(天時)를 따랐으며 그의 의복은 일거 선비의 복색에 지나지 않았다. 제곡은 제후인 진봉씨(陳鋒氏)의 딸을 얻어 방훈(放勳)을 낳았다. 또 제후인 추자씨의 딸을 얻어서 지(摯)와 방훈(放勛)을 낳았는데 방훈(放勛)이 곧 요(堯)이다.  

  끝으로 「전경」에서 살펴보자. 傳囂頊嚳勛華禹 初統初會世世聖(전하건데 효, 욱, 곡, 훈, 화, 우는 초통 초회때 대대로 성인이었다) 日出萬暈同發明 春回品物共華盛 初統之中降中秀 聖不承承但一時(해가 뜨면 만물이 비치는 광훈으로 모두 동시에 밝게 드러나게 되고, 봄이 오면 만물이 동시에 번성한다. 초통에서 계속 내려와 초통중회에서 계회까지는 성인이 계속, 계승되지 않았다. 계승되어도 단지 한번이다.  

  이처럼 三皇五帝에 해당되는 효, 욱, 곡은 도(道)를 계승한 성인으로써 상고시대에 인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분이었다. 

《대순회보》 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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