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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속 인물우(禹)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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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9.15 조회4,6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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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夏)나라는 중국 역사상 최초의 왕조(王朝)로서 기원전 21세기에서 기원전 16세기, 폭군 걸(桀)때에 멸망하기까지 17대 432년 동안 계속되었다. 이 하왕조의 시조가 우임금이다. 하후씨 우(夏后氏 禹)는 성(性)이 사(姒)이고 이름은 문명(文命)이다. 그는 곤(鯤)의 아들이고 전욱(箭頊)의 손자이다. 아버지 곤이 홍수를 막으려고 하다 실패하자, 순임금은 우(禹)에게 그 일을 맡겼다. 우는 노심초사 그 일에 열중해서, 13년 동안이나 집을 떠나 있었다. 우 자신은 도산(塗山)으로 장가를 들었을 때, 마침 홍수가 범람하여 처사를 돌볼 겨를이 없이 신혼 초 4일동안만 집에 들었을 뿐 백성들을 돌보기에 여념이 없었고, 아들 계(癸)가 태어났으나 돌보지 못했다고 한다.(서경) 수년간의 치수사업(治水事業)과정에서 세 번 집 앞을 지날 기회가 있었으나 안에 들어가지 않고 국사에 전념하는 몸이라 그대로 지나쳤다고 한다. 이와 같은 우임금의 치수사업에 임하는 자세는 수도인들 특히, 일꾼들의 본보기라 하겠다. 

  치수사업을 이룩한 구체적인 내용은 「서경」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우(禹)는 물을 바다로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승물(乘物)을 이용하였는데 물이 도도히 흐르는 곳에서 배를 이용하였고, 육지에서는 수레를 이용하였고, 늪이 깊은 곳은 진흙 썰매를 탔으며, 산에서는 나무 썰매를 이용하면서 조사했다.  한편 현신(賢臣) 익(益)과 더불어 백성들의 식생활을 해결하기 위해서 날짐승이며 물고기들을 익혀 먹는 법 등을 가리켰다. 또 익(益)과 더불어 씨 뿌리기며 어려울 때 먹는 음식과 고기를 먹는 법 등을 일러주었다. 그리고 오복(五福)을 정리하고 오 천리 사방 안에 여러 제후국을 두어 그 중에서 출중한 인물 12인을 선출하여 다른 군소 제후를 통솔하는 12사(十二師)를 두었으며, 오제후국(五諸侯國)마다 현자(賢者)를 수장(首長)으로 하는 오장(五長)제도를 확립하고, 각자가 바른 길을 이행해 가도록 온 천하의 질서를 바로잡기에 애썼다. 이와 같은 공적으로 등극하게 된다. 

  순임금 역시 아들 상균(商均)이 있었지만, 어질고 덕(德)이 있으며 하늘의 역수(歷數)가 있는 우에게 제위를 물려준다. 우임금은 전 국토를 잘 살펴 통일을 이루고 익주에 서울을 두고 전국을 아홉으로 대분(大分)하여 소위 구주(九州)의 구역을 정비하였다. 따라서 우의 치수사업은 홍수를 다스려 백성들의 재난을 제거했다는 공적일 뿐만 아니라, 지형(地形)을 잘 살펴 토지의 경계를 뚜렷이 세웠다는 점에 더 큰 의의가 있다.

  우의 음성은 음률(音律)에 맞았고, 그의 일거일동은 모두 법칙에 어긋남이 없었다. 한번 식사할 동안에도 열 번이나 일어나서 정무를 들으며 사람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외출했을 때에 죄인을 보면, 곧 수레에 내려 그 범죄의 원인이며 경과를 물어 보고는 『과인이 천자가 되고서 부터는 모두가 저마다 제멋대로 살아가기 때문에 죄인이 생긴다. 참으로 내가 덕이 없음을 슬프게 생각한다.』라고 울면서 말했다고 한다.

  우의 시대에 의적(儀狄)이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술을 만들었다. 우는 술을 마셔보고서, 참 맛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는 의적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우는 구주의 목(牧)에게 금을 바치게 해서, 그것으로 9개의 솥(鼎)을 만들었다. 발을 세 개로 한 것은 세 가지 덕(三德)을 상징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 구정(九鼎-천자의 상징)은 신께 제사지낼 때에 썼다. (18사략) 

 

  다음으로 《전경》에 나타나는 우보상최 등양명(禹步相催 登陽明)에 대해 알아본다. 『또 칠성경을 백지에 종서하고 그 끝에「우보상최 등양명」이라 횡서하고…』 (공사2장 9절)와 『天回地轉步七星 禹步相催登陽明』 (공사 3장 39절)라고 기록되어 있다. 두 구절 모두 칠성(七星)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 칠성의 사전적 의미는 북두칠성(北斗七星) 즉, 탐랑, 거문, 녹존, 문곡, 염정, 무곡, 파군의 일곱 별을 말한다. 도교에서는 칠성이 인간의 길흉화복을 맡았다 하며, 이것을 칠성여래라고 한다. 우보(禹步)는 느릿느릿한 걸음걸이 즉, 대개 두발이 서로 만나지 않는 것을 일러 우보법이라 한다. 우보란 하우(夏禹)가 부린 술(術)이며 귀신을 불러서 부리는 행보(行步)로서 만술(萬術)의 근원이며 현기(玄機)의 요지(要旨)로 여겨진다. 옛날 우(禹)가 치수(治水)를 함에 높이와 깊이를 예측할 수 없어서 해약(海若)과 지기(地祇)를 불러 판별하였다. 항상 그 보(步)를 만들어 그들로 하여금 입술(入術)하도록 하였다. (도교 사상 사전) 도가의 저서 중《포박자(抱朴子)》에는 우보법(禹步法)을 『바로 서서 오른발을 앞에 두고 왼발을 뒤에 둔다. 다음 다시 오른발을 앞에, 다음 왼발을 앞에 오른발로써 왼발을 따르게 한다. 이것이 이보(二步)이다. 이와 같은 것이 우보(禹步)의 도화(道華)이다.』라고 적고 있다. 이처럼 우임금이 치수사업을 할 때에 사용했던 행보법으로, 그 걸음걸이가 마치 칠성의 7개별을 따라서 걷는 모습이라 해서 우보법이라 하였다. 

  귀신을 부리며 해약과 지기를 판별하여 마침내 치수(治水)를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순임금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우임금은 상고 이래로 제왕들에게 이어져 내려왔던 도(道)를 이어받고 또한 후세에 전한 성군(聖君)이다. 《서경(書經)》에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전한 도(道)가 나타나 있다. 『인심 (人心)은 위 대롭고 도 (道)를 지키는 마음 또한 적으니 정 (精)하며 하나로 하여야 진실로 그 중 (中)을 잡으리라. 『(인심유위(人心惟危) 도심유징(道心惟徵) 유정유일(惟精惟一) 윤집궐중(允執厥中))이에 채침은 《서집전서(書執傳序)》에서 자세히 부연하였다. 『이제삼왕(二帝三王)의 정치는 도에 근본하고 그 도는 마음에 근본으로 하니 그 마음을 얻게 되면은 도와 정치를 진실로 말할 수 있다. 정일집중(精一執中)은 요, 순, 우가 서로 전한 심법(心法)이다.』  이처럼 우임금은 순임금에게 심법을 전해 받았고 이를 후세에 전하였던 것이다. 그는 입극하기 전에 9년 간의 치수사업을 완수했으며, 그 과정에서 집을 지나칠 정도로 공사에 임했던 것이다. 이러한 점은 수도인들에게 있어 맡은바, 책임과 직분에 어떠한 자세로 임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대순회보》 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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