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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속 인물탕(湯)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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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9.15 조회4,8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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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나라 왕 성탕(成은湯) 성은 자(子)요, 이름은 이(履)였다. 그의 조상 설(계:契)은 제곡의 아들이며 설의 어머니는 유융씨의 딸(間狄)이었다. 간적은 어느 날 세 명의 친구와 강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데 어디 선가 제비 한 마리가 날아와 알을 떨어뜨리고 가버렸다. 간적은 무심코 그 알을 집어서 깨어 먹었는데 그러자 잉태하여 설을 낳았다고 한다. 설은 요순시대에 사도(司徒)에 임명되어 상(商:河南省(하남성))에 봉해지고 임금으로부터 子라는 성을 받았다. 설은 우(禹)를 도와 치수공사에도 많은 공을 세웠다. 그로부터 13대 천을(天乙)의 대에 이르렀는데 그가 바로 덕이 높기로 유명한 은의 탕왕(湯王)이다. 그는 서울을 박에 정했는데 이곳은 조상 제곡이 도읍 한 자리였었다. 

  탕왕의 높은 덕을 실증해 주는 사실은 《사기(史記)》에 기록되어 있다. 어느 날 탕왕은 몇 명의 시종만을 데리고 교외에 나갔다가 한 사람의 사냥꾼을 만났다. 사냥꾼은 동서남북 사방에 빈틈 없이 그물을 쳐놓고『천지 사방에 날아드는 새들은 모두 내 그물에 걸려라』하며 빌고 있었다. 이것을 본 탕왕은 그대로 두었다가는 새들의 씨가 마르겠다고 생각하여 서쪽 방향에 친 그물을 걷게 한 다음『왼쪽으로 가고 싶은 놈은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가고 싶은 놈은 오른쪽으로 가라. 명령을 어기는 놈만 내 그물에 걸려라.』라고 비는 말을 고치게 하였다. 이 말을 전해들은 제후들은 『아! 탕왕의 덕은 이미 짐승에게까지 미치게 되었구나.』하고 감탄했다고 한다. 이렇듯 덕이 높은 탕은 명재상 이윤의 협력으로 걸왕을 몰아내고 천하 만민이 축복하는 가운데 천자의 위에 올라 덕치에 힘을 기울여 왕도정치를 구현할 수 있었다. 탕왕을 보좌하여 명재상으로 후세에 이름을 날린 이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이윤은 옛날 중국의 신(莘)이라는 나라 사람으로 이수(伊水)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름을 이윤(伊尹)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는 일찍이 궁중에 들어가 살게 되었는데, 국왕은 이윤을 주방의 요리사에게 기르게 하고는 학문도 가르쳤다. 그는 궁중의 가정교사가 되어 국왕의 딸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어느 날 성탕이 동방을 순수할 때 신국을 지나게 되었다. 신왕의 딸이 아름답고 총명하다고 이야기를 들은 성탕은 국왕에게 혼례를 부탁하여 허락을 받았다. 이때 이윤은 평소 성탕을 흠모하던 차 자신의 빼어난 요리 솜씨를 한껏 과시하고 치도(治道)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소견을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이윤은 탕을 위해 주방 일을 맡아 열심히 일했으나 탕이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자 하의 걸왕에게로 가서 어선관(御饍官)이라는 음식을 담당하는 관리가 되었다. 당시 걸왕은 포악 무도한 정치를 했고 백성들의 원성은 날로 더해갔다. 한번은 걸이 요대의 주지육림에서 한창 놀아나고 있을 때 이윤이 잔을 들어 권하면서 간언 하였다. 『국왕께서 저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머지 않아 나라가 망할 것입니다.』이 말을 듣는 순간 걸은 탁자를 내리치면서 벽력같은 소리를 질렀다. 『너 이놈! 요언(妖言)으로 사람을 현혹시키지 말지어다. 내가 천하를 가지고 있는 것은 하늘에 태양이 있는 것과 같다. 그 누가 태양이 멸망한다고 하더냐? 태양이 멸망한다면 나도 망하지』이처럼 걸은 늘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걸이 조금도 회개할 낌새가 없다는 것을 눈치챈 이윤은 착잡한 심정을 억누르면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 날 저녁 길거리를 지나는데 술 취한 몇 사람이 비틀거리면서 이상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왜 박으로 가지 않는가? 왜 박으로 가지 않는가? 박은 크기만 한데…』이윤은 깜짝 놀랐다. 박이라면 은의 탕왕이 세운 도읍지이기 때문이다. 왜 이곳 사람들은 다들 박으로 돌아가라는 노래를 부르는 것인지 궁금하였고 하의 백성들조차 탕왕을 흠모하고 있는지 의문이 쌓여 만 갔다. 그때 또 다시 부근의 골목에서 격양된 목소리의 노래가 들려왔다. 『깨어나라! 깨어나라! 나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었다네! 암흑을 버리고 광명을 찾을 거나. 무엇이 걱정이란 말인가?』 이윤은 그제서야 깨닫는 바가 있었다. 자신을 위해 부르는 노래임이 틀림없었다. 옛날 은의 탕왕을 버리고 하의 걸왕을 섬겼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깊이 뉘우치고는 날이 밝기가 무섭게 박으로 향했다. 탕은 이윤을 재상으로 삼아서 마침내 걸을 토벌하러 떠났다. 탕왕의 군대가 파죽지세로 하걸의 경성까지 진격하였다. 그때 상제(上帝)의 명을 받든 한 대신이 그에게 와서 말했다.『상제께서 당신을 도우라고 했습니다. 성안은 벌써 아수라장이 되었으니 이때를 틈타 쳐들어가도록 하시오. 나는 당신으로 하여금 대승을 거두도록 할 것입니다. 성의 서북 모퉁이에서 불이 오르거든 그곳을 향해 진격하도록 하시오.』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잠시 후 과연 거대한 불꽃이 칠흑 같은 밤을 환하게 밝히는 가운데 성을 공격해 들어가자 경성도 삽시간에 무너졌다. 하걸은 강을 따라 남하하여 현재 안휘성 소현이라는 곳까지 도망쳤다가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울분을 토하면서 죽어갔다.

  탕임금이 걸을 멸망시키고 천자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7년 한발이 몰아 닥쳤다. 태사(太史)에게 그 까닭을 점쳐보게 하였더니 태사는 『사람을 희생물로 바쳐야 비가 올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탕왕은 머리를 가로 저으며『내가 비를 비는 것은 백성을 위한 것이다. 꼭 사람을 바쳐야 한다면 내가 희생물이 되겠다』하고는 허름한 옷을 입고 흰말이 끄는 흰 수레에 올라 상림(桑林)으로 들어갔다. 탕왕은 수레에서 내려 친히 제단을 향해 걸어간 다음 하늘에 기도를 올렸다. 『저에게 죄가 있다면 백성들을 괴롭히지 말아 주시고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이 몸으로 달게 받겠습니다.』기도를 마치고 그는 가위로 자신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잘라 신단 앞의 불구덩이에 던졌다. 그 순간 사해의 구름이 모여들면서 순식간에 비가 쏟아져 만백성들의 근심을 덜었다. 백성의 고통을 덜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알고 한갓 새들에게까지 호생의 덕을 가진 성왕(聖王)이었기에 하늘에서 그를 도와준 것이다.

  《전경》에서는 걸과 탕 그리고 이윤의 관계가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걸은 그때를 악하게 했고, 탕은 그때를 선하게 했는데, 천도(天道)는 걸에게는 악을, 탕에게는 선을 가르쳤다. 걸이 망하고 탕이 흥하게 된 것은 이윤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桀惡其時也 湯善其時也 天道敎桀於惡 天道敎湯於善 桀之亡湯之興在伊尹 (걸악기시야 탕선기시야 천도교걸어악 천도교탕어선 걸지망탕지흥재이윤)』(공사 3장 39절), 걸은 악에 바탕을 두었고 탕은 선에 바탕을 두었는데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말처럼 하늘에서는 탕을 도와 걸을 멸망케 했다. 걸이 멸망하게끔 상제께서는 이윤을 다시 박으로 돌려보내 탕을 도와 천도를 이루게 하였다. 그리고 대신을 보내 조화 불을 일으켜 경성이 무너지게 하였다. 이윤은 사십 구 년이 지난 오십 년 만에 하늘의 뜻을 깨달았다.『상제께서 六월 어느 날 천지공사를 마치신 후 「포교 오십 년 공부 종필(布敎 五十年 工夫終畢)」이라 쓰신 종이를 불사르시고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이윤이 오십이지 사십구년지비(伊尹 五十而知 四十九年之非)를 깨닫고 성탕(成湯)을 도와 대업을 이루었나니 이제 그 도수를 써서 물샐틈없이 굳게 짜놓았으니 제 도수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라.」』 (공사 3장 37절) 고 하셨다.

 《대순회보》 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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