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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의 이해<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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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홍철 작성일2017.02.20 조회2,5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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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철 (원광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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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불교(圓佛敎)는 1916년 소태산에 의해 한국에서 창립된 새 불교요 새 종교이다. 소태산은 20여 년의 구도고행을 통해 우주의 진리를 깨닫고 궁극적인 진리 자리를 법신불 일원상(一圓相)이라 표현하였으며, 인류와 세계의 미래가 물질만능으로 인하여 한없는 고통에 빠져드는 것을 구원하기 위해 새 종교의 문을 열고 법을 편다고 했다. 소태산은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고 이 진리를 원(○)으로 상징하였다. 원불교는 불법(佛法)을 주체 삼아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파란고해(波蘭苦海)의 일체 생령을 광대 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원불교란 교명은 우주의 궁극적 진리를 상징한 원(圓)과 그 진리를 깨닫는다는 의미의 불(佛), 그 깨달음을 가르친다는 교(敎)의 의미를 담고 있다. 원불교는 우주의 근본진리를 깨달아 생활 속에서 실천하도록 가르치는 종교이다.     

 
I.  약사(略史)

 
  원불교를 창립한 교조 소태산 박중빈(少太山 朴重彬, 1891~1943) 대종사는 1891년 3월 26일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 길룡리에서 태어났다. 궁촌변지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우주 만물과 인간 만사에 대해 의문을 품고 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산신을 만나려 했으나 만나지 못하고 도사를 찾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20여 세가 되면서부터 입정(入定)상태에 들어가 있다가 26세 되던 1916년 4월 28일 대각(大覺)을 이루게 된다. 어떤 스승의 지도나 종교에도 접한 바 없이 스스로 구도하여 큰 깨달음을 이룬 것이다. 그가 도를 이룬 이날을 원불교에서는 개교기념일로 정하고 있다.
  대각을 이룬 소태산은 과거 성현들의 가르침을 알아보기 위해 여러 종교의 경전을 열람하게 된다. 특히 불교의 『금강경』을 본 소태산은 석가모니불을 성중성(聖中聖)이라고 극찬하고 자기가 도를 얻게 된 경로나 깨달은 궁극적 경지가 석가모니 부처님과 일치되기 때문에 장차 불법(佛法)을 주체로 삼아 새로운 종교를 창립하리라고 하였다. 이렇게 불법에 연원을 정한 소태산은 당시의 시국을 관찰해보니 사람들의 정신이 너무나 물질에 끌려가는 현상이었으므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표어 아래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서 파란고해의 일체 생령을 광대 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려 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모여든 많은 사람들 중에 9인의 제자를 뽑아 이들과 함께 소태산은 초기교단의 중요한 일들을 전개했다. 1917년 저축조합을 설치하여 금주, 금연, 소비절약, 공동 출역, 시미운동(匙米運動) 등을 전개함으로써 상당한 기금을 마련하게 된다. 이 자금으로 1918년부터 1년간 바다를 막아 논을 만드는 방언공사(防堰工事)를 전개하여 2만 6천여 평의 농토를 마련, 원불교 창립의 경제적 기초를 다졌고, 일심합력·영육쌍전(靈肉雙全)의 정신을 제자들에게 고취해 나갔다. 1919년에는 9인 제자들에게 도탄에 빠진 중생을 구할 대 종단을 창설하기 위해서는 진리계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고 말하고 그 허락을 얻기 위한 기도를 드리게 한 결과 백지혈인(白指血印)의 이적을 나투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형성된 사무여한(死無餘恨)의 대 봉공정신, 대 희생정신은 원불교 전무출신(專務出身)들의 근본정신이 되었다. 이처럼 초기교단의 저축조합·방언공사·혈인기도 등 몇 가지 중요한 일을 마친 소태산은 1920년에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에 들어가 그 후 5년 동안 교리 초안과 사방의 인연들을 만나는 기간을 보내게 된다.
  1924년 소태산은 본부를 전라북도 익산시 신룡동 현 위치로 옮겨 ‘불법연구회(佛法硏究會)’라는 간판을 걸고 본격적인 종교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모여든 제자들과 함께 낮에는 황무지를 개간하여 원예, 채소, 양잠, 양돈, 양계, 약초재배 등 산업을 장려했고, 밤에는 종교이념에 바탕하여 도덕과 윤리로서 정신훈련을 시켜나갔다. 1926년에는 ‘신정예법(新定禮法)’을 제정 공포하여 허례허식에 떨어져 있던 당시의 낡은 예법을 과감하게 개혁하여 간소하면서도 실질적인 예의 근본정신을 더욱 드러나게 하였다. 1930년대로 접어들어서도 산업화의 방향과 정신개혁의 구체적 실현운동은 꾸준히 이어졌고 이 같은 원불교의 새 운동, 혁신운동은 당시 사회에 커다란 반응을 일으켜 각종 언론에서 극찬을 아끼지 아니하였다. 193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일제의 탄압은 날로 가중되어 심한 감시를 받지 아니할 수 없었다. 일경(日警)은 소태산을 한국의 ‘간디’라고 지목하여 그의 독립운동성을 수년에 걸쳐 내사하였으며 마침내 원불교를 해산시키려는 강압까지 가해왔다. 이런 속에서도 소태산은 능란한 솜씨와 역사적 관조로서 미래를 전망하면서 친일에 흐르지 않고 교단의 민족적 자주성을 잃지 않았다. 1943년에는 그의 가르침을 집대성하여 원불교의 기본경전인 『불교정전(佛敎正典)』을 완성하여 인쇄까지 해놓고 그해 6월 1일 5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소태산의 뒤를 이은 정산 송규(鼎山 宋奎, 1900~1962) 종법사는 1945년 해방이 되자 그간 사용해오던 ‘불법연구회’라는 임시 교명을 ‘원불교’로 바꾸고 신생 조국을 위해 여러 가지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전재(戰災) 동포구호사업, 교육사업, 한글보급운동 등이었다.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학병에 끌려갔던 청년들, 징용에 끌려갔던 사람들, 이민을 떠났던 농민들이 해방되자 조국을 찾아 모여들었다. 그러나 이들을 맞이할 준비가 별로 되어있지 않았던 상황에서 원불교에서는 서울, 익산(이리), 전주, 부산역전에 구호소를 설치하여 이들에게 밥을 해 먹이고, 의복을 주고, 병을 치료해 주는 구호사업을 6개월이나 계속하여 80만여 명의 전재 동포를 구호했던 것이다. 1946년에는 교육입국을 전제로 유일학림(唯一學林)을 설립하여 인재양성을 시작했는데 이 교육기관이 오늘의 원불교 산하 각종 교육기관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또한 정산은 『건국론(建國論)』을 저술하여 정국지도(政國指導)의 대의를 밝히고 이를 실천하도록 각 방면으로 교화하였다. 아울러 정산은 원불교의 방향과 목표를 교화·교육·자선의 3방면으로 다시 정비하여 이를 적극 실천하였다. 1961년 정산은 소태산의 일원주의(一圓主義)를 국한 없이 터 나갈 수 있는 대동의 원리로서 동원도리(同源道理)·동기연계(同氣連契)·동척사업(同拓事業)이라는 삼동윤리(三同倫理)를 제시하고 1962년 6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정산의 뒤를 이은 대산 김대거(大山 金大擧, 1914~1998) 종법사는 1965년에 ‘한국종교인협의회’ 창립의 주역이 되어 각 종교 간의 울을 트고 대화와 협력을 통해 종교 본연의 역할을 강조하였으며 해외교화를 시작하는 한편 세계의 모든 종교들이 화합 단결하자는 ‘세계종교협의회(UR)’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1971년 10월에는 ‘원불교 개교 반백 년 기념대회’를 열어 ‘진리는 하나 세계도 하나 인류는 한 가족 세상은 한 일터 개척하자 일원세계’라는 세계 일원화(一圓化)의 상징 표어를 내걸고 성대한 기념대회를 가졌다. 반백 년을 전후한 수년 동안 원불교는 적극적인 교도 불리기, 교당 불리기 운동을 전개하여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1991년에는 ‘소태산 탄신 100주년 성업봉찬대회’가 성대하게 베풀어졌다. 특히 이 대회 행사의 학술분과에서 발행한 기념논문집과 국제종교학술회의 등 수차에 걸친 학술회의는 원불교사상을 대 내외에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1994년에는 좌산 이광정(左山 李廣淨, 1936~ ) 종법사가 취임하여 교구를 비롯한 행정체제의 재정비, ‘맑고 밝고 훈훈하게’라는 표어를 내건 새생활운동의 전개, UR정신을 계승하는 종교교류의 증대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2006년에는 경산 장응철(耕山 張應哲, 1940~ ) 종법사가 취임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2016년 개교 100주년을 앞두고 각종 기념사업을 계획하여 추진하고 있다.
 

  
II. 교리개요
 
 1. 신앙의 대상 법신불 일원상(法身佛 一圓相)


  원불교인들의 신앙의 대상이요 수행의 표본인 법신불 일원상은 소태산이 깨달은 진리의 궁극적 자리로서 원불교의 최고 종지이다. 소태산이 20여 년의 구도과정을 통해 도달한 대각의 심경을 처음으로 표현한 것이 이 일원상이다. 소태산이 새로운 종교의 상징으로 내놓은 이 일원상은 “우주만유의 본원이며 제불제성의 심인이며 일체중생의 본성”이라고 그 본질을 밝히고,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뚜렷한 기틀을 지었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만년에는 이를 다시 함축시켜 “유는 무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하면 유와 무가 구공(具空)이나 구공 역시 구족(具足)이라”라는 게송을 지었다. 이는 유무상통의 논리로서 깊은 체험의 달관에 의하여 잡힌 우주의 생성이법을 밝힌 논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태산은 자신의 자각력에 의하여 대각의 궁극적 경지가 무엇인가를 알았고 스스로 체험한 이 깨달음의 경지를 일원상으로 상징한 것이다. 따라서 이 일원상은 테두리 없는 만유의 체성이며 한계가 없는 만법의 근원적 진리인 것이다. 이 자리는 유상과 무상이 둘이 아니요 유와 무가 둘이 아니며 유무를 통섭하되 유도 아니요 무도 아닌 자리인 것이다. 일원의 진경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입정처(入定處)이므로 아무리 현묘한 언어로 표현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을 비유하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또한 소태산은 각종각파로 분립한 세계 모든 종교의 근본 되는 원리도 하나의 진리에 바탕을 두었고 이름은 각각 다르나 어떠한 방면 어떠한 길을 통한다 할지라도 최후 구경에 들어가서는 다 이 일원의 진리에 돌아가는 것이니 이러한 진리에 근원을 세운 바가 없는 종교는 다 사도라고 했다. 이 일원상은 곧 사은(四恩)으로서 인간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으며 절대유일하고 원만평등하며 순환불궁하는 속성으로서 그 진리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정산은 “일원상의 원리는 모든 상대가 끊어져서 생멸거래가 돈연(頓然)히 공(空)하고 대소유무가 또한 없으며 부처와 중생의 차별이 끊어지고 선과 악의 업이 멸하여 말로써 가히 이르지 못하며 사량으로써 가히 계교하지 못하며 명상(名相)으로써 가히 형용하지 못할지라. 이는 곧 일원의 진공체(眞空體)요, 그 진공한 중에 또한 영지불매(靈知不昧)하여 광명이 시방을 포함하고 조화가 만상을 통해서 무시광겁에 요요(耀耀)하게 항상 주(住)하고 천만사물에 은현(隱顯)함이 자재(自在)하니 이는 곧 일원의 묘유(妙有)요, 진공과 묘유 그 가운데 또한 만법이 운행하여 생멸거래가 윤회(輪廻)하고 대소유무가 역역하여 부처와 중생의 차별이 생기고 선과 악의 과보가 달라져서 드디어 육도(六途)와 사생(四生)으로 승급 강급이 생김이라 이는 곧 일원의 인과(因果)인바, 진공과 묘유와 인과가 서로 떠나지 아니해서 한 가지 일원의 진리가 되는 것이다.” 하였다.
 
 2. 신앙문 사은 사요(四恩 四要)
 
  소태산은 자수자각을 이루고 그 깨달음의 경지를 일원(一圓)으로 표현하였거니와 바로 이 일원의 존재성, 생성성, 윤리성이 ‘은(恩)’이라는 말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은이야말로 소태산 사상의 핵심이 된다. 소태산은 이 은을 크게 나누어 천지은·부모은·동포은·법률은의 사은으로 밝히고 이 사은으로부터 은혜입은 내역과 이에 보은하는 실천방법을 제시하였다.

  ① 천지은이란 우주만유 전체의 진리성을 말한다. 우리가 천지에서 입은 은혜를 가장 쉽게 알고자 하면 먼저 천지가 없어도 이 존재를 보전하여 살 수 있을 것인가 하고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니 그렇다면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천지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다 인증할 것이다. 없어서는 살지 못할 관계가 있다면 이 같은 큰 은혜가 있을 수 없다고 소태산은 말했다. 이렇게 천지은은 없어서는 살지 못 할 생존적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보면 천지가 존재하는 그 자체가 큰 은혜요, 천지에 생성대도가 있는 것이 큰 은혜며, 그 도가 운행되어 나타나는 화육의 결과가 큰 은혜이며, 우주 속에서 작용하는 일체 자연현상의 진리적 작용 그 자체가 바로 은인 것이다.  
  ② 부모은은 부모가 나를 낳아 무한자비로써 생육하고 가르치는 기본적인 은적 관계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부모라는 존재가 아니면 우리가 태어날 수도 없고 길러질 수도 없고 인도의 대의를 알 수도 없다고 했다. 부모은 역시 없어서는 살 수 없는 막중한 은혜인 것이다. 물론 사람의 생사라 하는 것은 자연의 공도요 천지의 조화라 할 수도 있지만, 자력이 없을 때 낳아서 길러준 큰 은혜와 더욱 인도의 대의를 가르쳐 줌은 곧 부모의 큰 은혜라고 소태산은 가르쳤다. 이 같은 부모은에 보답하는 방법은 자기 부모에 대한 보은은 물론 특히 무자력자 보호의 도를 강조한다. 자력 없는 타인의 부모라도 내 부모같이
봉양하라는 것이다. 이는 삼세일체부모에 대한 보은의 방법이 된다고 했다.
   ③ 동포은이란 모든 인류나 금수초목까지라도 나의 생존에 없어서는 살지 못할 은으로 맺어진 기본적인 유기적 관계 그 자체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동포란 한겨레나 민족을 가리키나 여기서는 모든 인간은 물론 모든 동물, 더 나아가서는 초목까지도 포함된다. 이 동포의 은혜 역시 없어서는 살지 못할 생명적 관계로 맺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농공상으로 구분된 모든 동포가 자리이타(自利利他)로써 살아야 하고 금수 초목까지라도 함부로 해치거나 살상하지 않는 것이 동포은에 보답하는 길이 된다고 했다.
   ④ 법률은은 성자의 가르침인 종교 도덕이나 국가사회의 법률이 인도정의의 공정한 법칙을 제시하여 사회와 세계의 안녕질서를 확립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평화스럽게 살 수 있는 무한한 은혜를 말한다. 이 은혜 역시 우리가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은혜라 했다. 이렇게 법률이 존재하여 안녕질서가 유지되는 없어서는 살지 못할 기본적인 그 자체를 은이라 본 것이다. 법률은에 보은하는 핵심적인 강령은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세우는 도’라 했다. 
  
   소태산은 또 사회개혁과 평등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구체적인 덕목으로 자력양성·지자본위·타자녀교육·공도자숭배의 사요(四要)를 제시했다. 자력양성이란 정신, 육신, 물질의 자력을 길러 타에 의존하는 타력생활을 자력생활로 돌리자는 것이요, 지자본위란 남녀노소 빈부귀천에서 오는 불합리한 차별을 청산하고 오직 지혜의 차별만 인정하여 우자(愚者)가 지자(智者)의 인도를 따르도록 하자는 것이며, 타자녀교육이란 지우(智愚)의 차별마저 해소하기 위해 타자녀까지도 지자가 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기회를 보장하자는 것이요, 공도자 숭배란 공익심 없는 사람을 공익심 있는 사람으로 돌려서 누구보다도 공도에 헌신하는 사람들을 숭배하는 사회를 이룩하자는 것이다. 이 사은 ·사요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밟아가야 할 ‘인생의 요도’라 했다.
 
 3. 수행문 삼학 팔조(三學 八條)
 
  소태산은 인격을 완성해 나가는 수행방법으로서 삼학과 팔조를 제시했다. 삼학은 인격완성을 위한 3가지 공부요목으로 정신수양(精神修養)·사리연구(事理硏究)·작업취사(作業取捨)이다. 이 삼학은 육신생활의 의식주가 필수적이듯 정신생활에 꼭 필요한 요소라 했다.

 ① 정신수양: 정신이란 마음이 뚜렷하고 고요하여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본연의 상태요, 수양이란 안으로 분별성과 주착심을 없이 하며 밖으로 나의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경계에 끌리지 아니하고 뚜렷하고 고요한 정신을 양성함을 이름이다. 그러나 고요한 상태를 함양한다고 고요한 처소만 추구해서는 안 된다. 수양하되 동정(動靜)에 구애됨이 없이 정력(定力)을 쌓아야 한다고 하였다. 정신수양의 방법은 염불, 좌선, 기도, 주문 등이다.
  ② 사리연구: 사(事)란 인간의 시비이해(是非利害)를 이름이요, 리(理)란 천조(天造)의 대소유무(大小有無)를 가리킨다. 여기서 대(大)란 우주의 본체를 이름이요, 소(小)란 삼라만상이 형형색색으로 구분되는 현상세계, 유무(有無)란 변화무쌍한 변화의 세계를 말한다. 연구란 이 같은 사와 리를 연마하고 궁구하여 리무애 사무애(理無碍 事無碍)하는 혜력(慧力)을 얻자는 것이다. 사리연구의 방법은 경전연마, 강연, 회화, 의두, 성리, 정기일기 등을 제시하였다.
  ③ 작업취사: 작업이란 무슨 일에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육근(六根)이 작용함을 이름이요, 취사란 정의는 취하고 불의는 버림을 이름이다. 육근이 작용할 때 원만구족(圓滿具足)하고 지공무사(至公無私)한 각자의 마음을 찾아 바르게 작용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정의는 죽기로써 취하고 불의는 죽기로써 버리는 취사력(取捨力)을 강조한 것이다. 작업취사의 방법은 계문준수, 불편불의하고 과불급이 없는 중도행(中道行)을 제시했다. 이 삼학이 각기 떨어져 있으나 마치 쇠스랑의 세 발과 같아서 무슨 일을 할 때나 삼학은 병진되어야 한다. 그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하고는 원만한 인격을 이룰 수 없다고 했다.
 
  팔조는 삼학수행을 촉진하는 신·분·의·성(信忿疑誠)의 진행사조와 수행에 저해되는 불신·탐욕·나·우(不信·貪慾·懶·愚)의 사연사조로 나눈다. 진행사조는 적극 추진시키고 사연사조는 버려야 한다고 했다. 이 삼학 ·팔조는 수도를 해나가는 요긴한 방법이기 때문에 ‘공부의 요도’라고 소태산은 가르쳤다.
(141호 2부에서 계속)

 

《대순회보》 1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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