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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 담긴 모든 것들과 소통하는 그릇 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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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3.09 조회1,5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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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구름 사이로 보름달이 환하게 비치는 늦은 밤, 장독대 위에 정화수 한 그릇 떠 놓으시고 자식의 무사태평을 빌고 비는 어머님의 모습. 그래서인지 고향집 뒤뜰에 자리한 장독을 보면 어머니의 품과 같은 포근함과 소박함 그리고 당신의 정성이 깃들어져 있다. 그 장독대를 채우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크고 작은 옹기들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네 살림살이의 근간을 이루는 시루·항아리·단지·물병들도 모두 옹기들이다. 물론 청자나 백자처럼 수려한 형태도 화려한 빛깔도 없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의 모습을 닮아 소박하면서도 넉넉하고 정감이 넘치고, 자신만의 장점인 숨구멍으로 인해 무엇을 그 안에 담아도 숨을 쉬게 한다. 서로 소통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쉽게 찾아보기는 힘들게 되었지만, 이제 그 옹기와 다시 숨을 한번 쉬어 보는 것이 어떨까!

                                                                                            
옹기의 시작

 

  옹기(甕器)는 옛말로 독, 독그릇, 도깨비그릇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총칭하는 우리 민족 고유의 생활 용기를 가리킨다. 여기서 질그릇은 진흙으로 그릇을 만든 후 잿물유약을 바르지 않은 채 600~700도로 구워낸 것이다. 오지그릇은 질그릇에 잿물유약을 발라 12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낸 것으로, 윤기와 강도가 좋은 그릇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김장독과 장독이 그것이다. 또한 청자나 백자와는 달리 투박하여 세련미는 덜하지만 완만한 곡선을 흘러내리는 풍만함 속에는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의 풍족함과 삶의 여유를 느끼게 한다.

  언제부터 옹기가 우리 생활 속에 쓰이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긴 세월 동안 일반 서민들의 삶 속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우리의 식생활과 생업 등 생활 전반에 걸쳐 전래되어 왔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삼국시대 고려의 안악(安岳) 제3호분 벽화에 시루와 물을 담은 항아리가 나타나며,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신라에서는 와기전(瓦器典)이란 옹기를 굽는 직제(職制)까지 두었다.’라는 기록이 나타나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이전보다 단단하고 가벼운 옹기들이 보편적인 생활용기로 사용되었다. 고려시대 생활 모습을 서술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수옹(水甕 : 물을 저장하는 용기)·대옹(大甕 : 쌀을 저장하는 용기)·도기(陶器 : 과일과 식초를 저장하는 용기) 등 여러 일상생활 용기가 존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이때까지는 유약 없이 구운 강한 질그릇이 주를 이루었으며, 오늘날처럼 유약을 사용한 용기는 나타나지 않았다. 더욱이 『규합총서(閨閤叢書)』에 옹(甕) 대신 ‘독’이라는 우리말을 사용하여 옹기를 부른 것으로 보아 결국 옹이 독의 한자 표현임을 알 수 있다.

  이후 옹기는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근래와 유사한 형태의 도기에 도달한다. 『세종실록』과 『경국대전』에 ‘옹’을 만들었다는 기록이나 ‘옹장’, ‘황옹장’의 기록이 있고, ‘경상도 초계군과 진주목에 세 군데의 황옹(黃甕)을 굽는 가마가 있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초부터 지금의 옹기와 같은 용기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시기에 기존의 잿물유약 방식을 좀 더 발전시키면서 더욱 단단한 도기를 만들고, 물이 새는 것을 막아주며, 광택과 장식효과를 주어 옹기의 전통이 지속되었다. 하지만 도시화와 현대화에 따른 주거형태가 변화하면서 가볍고 실용적인 스테인리스 용기와 플라스틱 용기가 옹기의 자리를 대신하였고, 최근 김치 전용냉장고까지 생겨나면서 옹기의 자리가 더욱 좁아지고 있는 형편이다.

 

옹기의 생김새와 쓰임새, 그리고 그 특성

 

  옹기는 우리 조상들의 생활 지혜가 담겨 있다. 더구나 다른 나라 문화권의 도기에 비해 실용성과 견고성 그리고 통기성·발효성·저장성 등의 특성을 갖고 있어 장독대·부엌·곳간 등에서 사용되는 생활용품에서부터 기와·굴뚝·연가 등 집안 곳곳에서 생김새와 쓰임새에 따라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또한 기후와 자연환경에 따라 특수하고 전문화되어 있으며, 용도와 만드는 사람에 따라 각각의 특색이 있다. 따라서 옹기는 제조기법, 형태, 규모 등이 전국적으로 동일하지 않고 지역마다 독특한 옹기문화를 형성하였다.

  무엇보다 옹기는 천연의 그릇이다. 재료부터 황토를 사용하다보니 인체에 무해 ·무독할 뿐 아니라 깨뜨리지만 않으면 수십 년 내지 수백 년을 사용할 수 있다. 설사 금이 가거나 깨졌다 해도 풍화작용에 의해 자연으로 매우 빠르게 돌아가는 자연 친화성도 강하다. 전국 각지에서 오래도록 수많은 옹기가 구워지고 사용되었지만 많이 발견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또한 약토(藥土 : 퇴비와 마사토가 섞인 찰흙)와 재 등 자연친화적인 재료로 만들어지는 옹기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숨을 쉬는 데 있다. 유약에 약토와 재를 첨가하여 소성(燒成 : 가마에서 벽돌이나 도기 따위를 구워 만드는 과정)하면 얇은 유리질의 막이 생겨 표면이 매끄럽고 물이 새는 것을 막아 주는 반면, 옹기의 외벽 표면을 구성하는 모래 알갱이들 사이의 작은 숨구멍들을 막지 않으므로 ‘숨을 쉬는 살아 있는 용기’가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예전 우리 어머니들은 물을 항상 옹기에 담아두셨는데, 그 시절 냉장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여름에도 시원한 물맛을 간직하였다. 그것은 숨구멍으로 인해 물속에 들어 있는 독소를 없애주면서 수분에 담긴 열을 옹기 밖으로 발산시켜 그곳에 담겨 있는 물을 항상 시원하게 만들기 때문에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것이었다. 예컨대 시중에 판매되었던 바이오세라믹 물통이 바로 옹기의 숨구멍 원리를 토대로 만들어진 제품이다.

  이 통기성 때문에 발효식품을 중심으로 발달한 우리 음식문화가 더욱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장류를 비롯한 젓갈류 등 우리가 부식으로 먹는 발효식품들은 발효과정에서 액즙이 발생하고 이는 여름이 되면 더욱 심해진다. 발효식품이 담긴 옹기의 외벽 표면에는 내벽에서부터 밀려 나온 불순물들이 밖으로 밀려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우리 어머니들이 아침저녁 하루에 두 번씩 옹기 표면을 닦아 내는 것은 발효과정에서 발생하는 독을 닦아 옹기의 숨구멍이 막히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숨구멍 이외에도 옹기가 발효식품의 저장용으로 적합한 이유는 바로 방부성 때문이다. 소성과정에서 연료로 사용하는 나무가 가마 속에서 연소할 때 발생하는 탄소와 연기가 옹기그릇에 그대로 흡수되는데 이것이 옹기 그릇 내 외벽에 방부성 물질을 입히는 효과를 낸다. 또한 옹기그릇에 바르는 잿물 속에 함유된 식물성 재 또한 동일한 작용을 한다. 옹기는 발효식품의 저장 이외에도 다음 해 농사를 위해 가장 중요한 종자씨앗을 보관하는 데도 요긴하게 쓰였는데 옹기의 방부성이 그만큼 우리 농경과 삶에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장독대는 우리 어머니의 염원과 정성이 깃든 곳

 

  간장·고추장·된장·김장은 뛰어난 발효식품으로 우리의 양식이며 생활 바탕이다. 집집마다 맛있고 특색 있는 음식 맛은 장독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우리 어머니들은 정성을 다해 정갈하게 장독대를 관리하였다. 예로부터 장맛이 좋아야 음식 맛이 좋다고 하며, 장맛이 변하면 집안이 망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들은 장독대 관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대개 부엌과 가까운 뒤뜰 높직한 곳에 있게 마련인 장독대는 벌레가 범접하지 못하도록 돌로 단을 쌓아 높게 만들고 그 위에 돌을 깔고 다시 굄돌로 사방을 받치기도 하고 네모반듯한 벽돌로 장독받침을 따로 만들었다. 그리고 장독대의 자리가 좋으면 좋을수록 집안에 좋은 일만 생긴다고 하여 이사 갈 때도 장독대를 먼저 챙겼다. 또 혼사를 의논하러 온 매파나 시집식구들도 장독대를 보고 그 집의 살림 규모와 가풍을 짐작하고 혼사를 결정하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장독대는 집안의 평안함과 안녕을 바라는 어머니들의 마음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정초에 성주신과 삼신할미에게 자손의 번창을 위해 고사를 지냈고, 집안의 환자나 우환이 생길 때마다 이른 아침 항아리에 물을 길어 장독대 위에 정화수 한 그릇 떠 놓고 하늘에 지극정성으로 빌고 또 빌었다. 이렇게 우리의 어머니들은 장독대에 지극정성을 들이면 하늘이 감응한다고 믿었기에 당신의 고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빌었다. 어떻게 보면 당신보다 집안과 자식의 무사태평함을 기원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렇게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을 닮아 넉넉하고 정감이 넘치던 옹기인데, 어느덧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물론 주거문화와 음식문화의 변화로 우리 부엌풍경이 옹기 없는 부엌풍경으로 변화한 것도 원인일지도 모른다. 또 무겁고 옛 것으로만 여기던 옹기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옹기의 설 자리를 좁게 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근래에 사라져 가는 전통 옹기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려는 노력과 함께 과학적인 입증도 받고 있다. 옹기의 특징인 숨 쉬는 기능을 살려 옛 쌀독의 디자인을 접목시켰고, 일반적인 보관 기능만 있던 김치냉장고에 숨을 쉬는 기능을 접목시킨 것, 일반 유리병이던 술병을 이 옹기로 대체하여 출시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자기문화에 가려져 전시장 뒷전이나 마당 한편에서 비만 맞고 있던 옹기가 다시 우리 생활 속의 도기로 자리매김하려는 움직임일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 조상들의 땀과 정성 그리고 삶의 지혜가 어우러져 빚어낸 결과인지도 모른다.

 

참고자료
• 임도빈, 『자연을 닮은 그릇, 옹기』, 재단법인도자기엑스포, 2006
• 『한국민속대사전』, 민족문화사, 1993
• 박대순, 『한국문화의 원형을 찾아서 - 우리의 옹기』, 한국논단, 1991(12월호)

 

《대순회보》 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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