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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염원을 담은 솟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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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3.09 조회1,9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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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세월 민중의 애환과 바람을 들어주고 지켜준 솟대. 크게는 나라를 위해 작게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있었던 것이 솟대이다. 지금도 시골의 한적한 마을 입구에는 솟대가 지키고 서서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민족의 삶과 정서, 그리고 문화가 녹아있는 솟대를 찾아가보자.

 

솟대의 의미와 유래

 

  솟대〔立木〕란 수호신(守護神) 및 경계신(境界神)의 상징으로서 나무나 돌로 만든 새를 긴 장대나 돌기둥 위에 올려놓은 것을 말한다. 어원적 의미를 살펴봤을 때, 솟대의 ‘솟’은 ‘솟다’를 뜻하고, ‘대’는 ‘나무’의 의미로 해석되어 ‘솟은 나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솟대는 주로 마을 사람들이 음력 정월 대보름에 당산제(堂山祭)01를 모실 때나, 마을의 안녕과 수호, 그리고 풍농을 위하여 마을 입구에 세워졌다. 솟대 위의 새는 대개 오리를 나타내며 일부 지방에서는 까마귀, 기러기, 갈매기, 따오기, 까치 등을 나타내기도 한다. 솟대는 대부분 홀로 세워지지만 장승, 선돌, 탑(돌무더기), 신목(神木) 등과 함께 세워지기도 하였다.

  솟대는 북아시아 여러 민족에게 나타났으며, 그 발생시기는 청동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북아시아 샤머니즘 문화권에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신앙물인 솟대는 만주·몽골·시베리아·일본에 이르는 광범한 지역에 분포하고 있었는데, 이는 솟대가 고대부터 북아시아 지역에 널리 퍼져있던 보편적인 신앙물이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솟대신앙은 삼한(三韓 : 마한, 변한, 진한)시대에 신을 모시던 장소인 ‘소도(蘇塗)’02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질병과 재앙이 없기를 바라던 것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데, 이때 소도에 세웠던 것이 바로 솟대이다. 솟대는 농경 마을이 사회 구성의 기초 단위로 되어 있을 때부터 마을의 안녕과 수호를 맡고 농사의 성공을 보장하는 마을신의 하나로 성격을 굳혀 갔다. 이후 솟대는 점차 풍수지리 사상과 과거 급제에 의한 입신양명(立身揚名)의 풍조가 널리 퍼지기 시작하면서 크게 행주형지세(行舟形地勢)에 돛대로서 세우는 짐대와 급제를 기념하기 위한 화주대(華柱臺)로 분화, 발전되어 갔다.

  솟대는 한강 이남 지역에 보편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특히 중부지방에서 남부지방으로 내려 갈수록 보다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영남과 호남 지역에 솟대가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고, 다음으로 솟대가 많은 곳은 전남지방으로 특히 강진군, 보성군, 해남군, 함평군, 영암군, 승주군 등 남서부 해안 지역에 보다 많이 밀집되어 있다. 이에 반해 경기, 강원, 충북 일대에는 솟대의 분포수가 적다.

  전남과 경남의 해안 지역 그리고 강원도의 해안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하여 솟대에 대한 믿음과 정성이 더 컸던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한강 이남의 모든 지역이 솟대 위의 새를 대체로 오리라고 생각하는 반면에 경남 해안 지역 일부와 제주도에서는 오직 까마귀라고만 불러 독특한 지방형을 이루고 있다. 게다가 다른 지역에서처럼 장대 위에 새를 앉히는 것이 아니라, 돌무더기 위에 장대를 세우고 그 장대 끝부분에 새를 꿰뚫어서 세우고 있다. 이처럼 탑이나 돌무더기 위에 솟대를 앉힌 복합형은 전남, 경남 지역의 일부 마을에서도 보이고 있다.

  현재 북한 지역의 솟대에 대한 실태는 알 수 없으며, 단지 1920, 1930년대에 있었던 그 지역 조사기록만이 남아 있다. 이에 따르면 당시 북한지역의 일반 솟대는 많이 사라진 상태이고, 급제 기념의 솟대만 간혹 남아 있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평안도, 황해도 지역 솟대의 특색은 정상에 새가 없고 과거 급제자가 세운 용두(龍頭)를 조부(彫附)한 것뿐이며, 또한 마을에서 공동으로 세운 솟대는 없다고 한다.

 

솟대의 구성과 그 상징성

 

  신앙 대상물로서의 솟대를 구성하는 것은 장대와 그 위에 앉힌 새이다. 고대사회에서 장대는 우주축이나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매개체, 혹은 성역이나 제의의 표시 등으로 쓰였다. 북아시아 샤머니즘의 우주관념에서는 세계가 상계, 중계, 하계라는 3개의 우주층이 있는 것으로 보았으며, 이 3개의 우주층은 우주축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교통하는 것이라 보았다. 여기서 우주축의 기능을 한 것이 바로 장대였다. 다시 말해 장대는 초자연적 존재와의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교통로의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때로는 장대 자체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재 장대는 우주축이나 신령과 인간과의 교통로로서의 기능이 거의 희박해졌고, 다만 액막이나 농경보조신으로서의 기능만 갖추고 있다.

  한편 오리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대표적인 물새로, 물새로서의 오리는 하늘뿐만 아니라 물 위를 떠다닐 수 있고, 때로는 잠수(潛水) 활동을 하기에도 알맞은 신체적 특징을 갖고 있다. 곧 물새는 하늘, 땅, 물을 그 활동 영역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하늘과 땅만을 활동 영역으로 삼는 일반적인 들새나 산새보다는 더 많은 종교적 상징성을 지니기에 충분했다.

  먼저 오리는 물과의 밀접한 관계 때문에 비와 천둥을 지배하는 천둥새03의 속성을 지닌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천둥새로서의 오리는 벼농사를 위주로 하는 농경 마을에서는 비를 가져다 주는 농경 보조신으로써 발달·정착되었다. 그래서 오리는 풍년을 상징하며, 벼농사를 위주로 했던 한강 이남지역의 농경 마을에 솟대신앙이 보편적으로 발달하고 존속되어 왔던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을 거라고 한다. 그리고 오리는 전형적인 물새이기에 홍수나 화재와 같은 자연재해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믿었다.

  또한 오리는 이승과 저승을 주기적으로 넘나들고 계절의 변화와 초자연적인 세계로의 여행을 암시하는 동시에 부활의 의미도 지니고 있는 동물로 여겼다. 오리는 철새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철새는 계절이 오가는 변화를 암시해 주고, 초자연적 세계로의 여행과 산자와 죽은자의 세계를 넘나드는 영혼의 순환적 여행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철새의 일정한 주기성 때문에 죽음을 극복하는 부활의 의미를 지니기도 하였다. 다시 말해 철새는 이승과 저승을 그리고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를 넘나드는 신조(神鳥)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새의 알은 대개 불멸성, 잠재력, 생명의 신비, 생식의 근원 등을 상징하여 곡령(穀靈)04적 힘을 지니고 있다고 여겼는데, 여기에다 오리는 다산성의 대표적인 조류이기 때문에 생산과 풍요의 상징까지도 지니게 되었다. 이와 관련해 전북 부안의 한 마을에서는 음력 정월 보름에 당산제를 지낼 때 ‘알받이 구멍’이라는 구멍마다 쌀을 소복하게 담아 놓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오리 알받이 구멍에 오리알 대신 쌀알을 담는 의례 행위는 새의 알과 곡물의 낟알을 동일시하는 믿음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오리와 그 알로써 농경의 풍요를 비는 의례 행위인 것이다.

  물새인 오리가 갖는 이러한 다양한 종교적 상징성은 각 마을의 특별한 필요성에 따라 하나 혹은 두세 가지의 상징성만이 강조 확대되어 마을을 지켜주고 있다.

 

늘 민중의 곁을 지켜온 솟대

 

  우리나라의 마을신은 크게 상당신(上堂神)과 하당신(下堂神)으로 구별된다. 하당신은 하위신(下位神)의 개념이며 솟대는 바로 이 하당신에 속한다. 하지만 솟대는 민중들에게 있어 마을의 상당신인 산신보다도 더욱 친근하며 밀접한 신앙대상이 되었다.

  솟대는 당산제의 한 과정으로서 마을의 풍농이나 수호를 위해 모시는 것 외에도 각 개인이나 가정에서 복을 빌거나 재액(災厄)을 막고, 질병 퇴치 등등을 위해서도 모셔진다. 즉 각 개개인의 사사로운 일도 살펴줌으로써 마을 공동체 전체와 관련된 문제를 살피는 산신보다 솟대가 더욱 밀접하고 친근한 신앙 대상물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산신당이 마을 전체를 조망(眺望)하는 듯한 장소, 즉 마을 뒷산 중턱쯤에 세워지는 반면, 솟대는 마을 입구에 세워져서 실질적인 제액초복(除厄招福)과 풍농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이렇듯 실질적인 마을의 안녕과 풍요뿐만 아니라 농민들의 마음까지도 보살펴준 존재가 솟대였다.

  뿐만 아니라 솟대신앙은 마을사람들의 공동체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사회결합 기능도 지니고 있다. 솟대신앙의 제례의식이 치러지는 때는 모든 마을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몰입되어 종교적 의식을 행한다. 솟대신앙에서는 거리제라는 제의를 통해서 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였는데, 이때에는 마을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춤과 노래를 가지고 신명나는 놀이판을 벌인다. 거리제 자체는 신을 불러서 위로하고 마을의 염원을 기원하는 잔치지만,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집단의 정서적 연대감 속에서 긴장을 완화시키고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그리고 솟대를 세움으로써 자신의 마을이 신의 보호를 받는 신성지역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자신이 속한 마을이 잘 되기를 기원하는 바람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된다. 이렇게 솟대신앙에는 신과 인간 사이에 주고 받는 엄숙한 의식 외에도 마을 사람들에게 어떤 공통된 유대감이나 생각을 공유케 하고 행동을 같이 함으로써 마을공동체 의식을 확인하고 상호 신뢰와 우호의 관계를 만들어 서로 화합하게 하는 기능이 컸던 것이다.

  이처럼 한국의 솟대신앙은 한국인들의 생활과 삶 속에 밀착되어 왔다. 엄청난 박해와 수난의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 솟대신앙은 이 역사 속에서 민중 사이에 뿌리를 내려 오랜 세월 민중의 사랑을 받았다. 솟대신앙이 민중들에게 사랑받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역사적으로 친숙하며, 또한 대내외적인 격변 속에서 늘 불안감을 안고 살아 온 민중의 아픔과 한을 달래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문헌>

ㆍ이필영, 『솟대』, 대원사, 2003

ㆍ이종호, 『신토불이 우리 문화유산』, (주)한문화멀티미디어, 2003

ㆍ『한국민속대사전』, 민족문화사, 1993

ㆍ『브리태니커백과사전』, 한국브리태니커회사, 1999-2004

 

01 마을의 조상신과 수호신에게 마을 사람들의 연중무병과 평온무사를 비는 제사로서 동제(洞祭)·동신제(洞神祭)·대동치성(大同致誠)·산제(山祭)라고도 한다.

02 삼한시대에 제사를 지내던 곳. 국법의 힘까지도 미치지 못하였던 신성지역으로서 심지어는 죄인도 이곳에 오면 벌을 면할 수 있었다.

03 북아메리카 인디언 신화에 나오는 새의 모습을 한 정령으로, 비와 천둥을 주관한다.

04 사람에게 영혼이 있듯이 곡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원시 신앙의 한 가지.  

 

《대순회보》 1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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