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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옷 한복(韓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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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3.09 조회1,5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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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장에서 치성(致誠)이 있을 때면, 형형색색의 한복(韓服)을 차려 입고 움직이는 많은 수도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에 밤안개라도 피어오르면, 마치 선계(仙界)의 신선(神仙)들이 구름 위로 옷깃을 잔잔히 흩날리며 움직이는 것 같다. 더군다나 주변의 청사초롱 불빛으로 인해 오방색(五方色 : 황, 청, 백, 적, 흑) 한복의 실루엣이 은은하게 반짝여 지나가는 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렇게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한복을 수도인들은 늘 가까이 하고 있지만, 바쁜 현대생활에 젖어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개화기 이후 급격히 유입된 서구문화의 영향으로, 한복은 거추장스럽고 보관과 관리가 어려운 옷으로 인식되어 혼례복(婚禮服)과 예복(禮服)으로서의 역할만 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복은 서양 옷과 달리 몸을 구속하지 않고 건강을 충분히 고려한 옷이며, 디자인에서도 해외 전문 의복 디자이너들의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장점이 많은 옷이다. 수도인들이 늘 가까이 하고 있는 한복의 변천과정과 그 특색을 알아보기로 한다.


한복의 변천사

 

  한복은 한민족이 오랜 기간 착용해 온 우리 옷이다. 그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한복의 가장 오래된 형태를 삼국시대의 고구려 벽화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벽화에는 남녀 모두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긴 저고리를 상의로, 바지나 치마를 하의로 입고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외투인 포(袍 : 두루마기와 비슷한 외투)를 걸쳤고, 머리에는 여러 형태의 모자를 착용하고 있다. 또한 좌측 방향으로 옷깃(옷의 목을 둘러 앞에서 만나는 부분)을 여미고, 아래 단 · 소매 끝에는 몸판과 다른 색 옷감을 대어 장식을 하였다. 백제와 신라의 의복도 고구려와 그 기본형은 유사하나, 의복의 크기나 색채 등의 장식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외국과 활발하게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상류층의 옷은 당나라풍의 유행을 따라가게 되고, 일반 서민들의 경우는 커다란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유행도 우리 정서에 녹아들지 못한 탓인지,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그런 풍이 완전히 소멸되어 버렸다.

  고려시대는 몽고풍이 상류층 전반에 걸쳐 유행을 하였고, 서민들의 경우는 역시 커다란 변화 없이 삼국시대의 의복을 고수했다. 현재 입고 있는 한복은 삼국시대의 복식에 원형을 두고 있다. 특히 이 시기에 몽고에서 화관(花冠 : 부녀자들의 예장용으로 머리 위에 쓰던 관)과 족두리가 들어오면서, 우리 한복에 있어 장신구의 한 부분으로 흡수된다. 그러나 그 형태가 지나치게 화려하고 사치 경향이 짙어지자 조선(朝鮮) 광해군에 이르러서는 착용을 금지시키기도 하였다.

  조선시대는 우리 한복의 아름다운 양식이 완성된 때이다. 특히 조선조 남자 한복은 포(袍 : 두루마기)의 문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형태의 외투가 발달하였다. 여자 한복은 저고리와 치마에 화려한 직물의 색상과 장식이 가미(加味)되어져, 전 시대에 비해 여성의 매력을 물씬 풍기게 하였다.

개화기에는 서양 옷이 들어오면서, 한복은 그 비중이 점차 줄게 된다. 그리고 한복은 개화기 이전까지 일상복이었기에 특별한 이름조차도 없었으나, 양복(洋服)과 구별을 하고자 우리 옷을 한복(韓服)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복의 구성

 

  한복은 평면으로 재단하여 입으면서 입체적인 성격이 부각되는 것이 특징이다. 곧 서양의 옷은 마네킹에다 천을 올려놓고 옷을 만드는 입체재단을 사용하는 것에 반해, 한복은 평평하게 펼쳐진 옷감에 치수를 재어 자르고, 이것을 사람 몸의 굴곡에 따라 주름을 잡거나 끈으로 고정시켜 온화하면서도 여유 있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식인 것이다. 그래서 여성의 겹겹이 입은 속옷 위로 치마를 입어 풍성하게 나타나는 볼륨감은 모든 것을 감싸주는 듯한 너그러움을 느끼게 해주고, 남성의 여유 있고 풍성한 옷매무새에 풍류남아의 기개가 담겨 있음을 짐작케 한다. 트임을 사용하여 몸의 움직임을 편리하게 해주는 활동성과 생리적인 기능을 돕는 기능성도 더불어 갖추고 있다.

  한복에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버선[襪]이다. 버선은 한국 특유의 것이며, 남녀노소 누구나가 다 신었다. 모양은 끝(버선코)이 뾰족하여 위로 치켜졌고, 들어가는 부분(버선목)에 비해 회목(발목의 잘록한 부분)이 조금 좁게 되어 있는데, 버선목의 바느질 눈이 오른쪽으로 된 것은 오른발, 왼쪽으로 된 것은 왼발에 신어 좌우를 구별한다. 긴치마 밑으로 하얀 버선의 갸름한 발 맵시가 흰 오이씨같이 뾰족하게 나오는 모습은 우리 옷과 잘 조화되어 한복의 아름답고 우아한 멋을 더하고 있다.

  남녀 한복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남성은 바지·저고리·조끼·마고자·두루마기, 여성은 속바지·속치마·치마·저고리·배자(背子 : 저고리 위에 입는 소매 없는 짧은 옷)·두루마기를 착용한다.


한복의 특색

 

  한복은 타 민족들의 옷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특색이 있다. 선(線)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과 사람의 건강을 고려한 옷이라는 것이다.

먼저 한복은 선(線)의 아름다움이 뛰어나다. 저고리의 배래선과 도련은 마치 한옥 지붕 추녀의 곡선과 같이 하늘을 향한 듯하다. 목덜미의 동정은 직선이지만, 동정을 받치고 있는 깃의 모서리가 곡선으로 마무리되어 있어 고름을 펼치면 두 줄기 직선이지만, 접으면 한 마리 나비의 날개 선이 된다. 여기에 둥글면서도 뾰족한 작은 섶코의 선은 저고리를 한층 돋보이게 해준다. 한복에 나타나는 이 같은 선의 조화는 너그럽고 부드러우며 우아한 가운데에도 이지적인 매력을 풍기게 한다.

  다음은 한복이 건강을 충분히 고려한 옷이라는 점이다. 디자인 면에서 한방(韓方)의 ‘흉허복실(胸虛腹實 : 가슴을 비우게 하고, 배를 충실하게 함)’의 원리에 입각하고 있다. 깃 사이를 넓게 하여 가슴이 시원하도록 하고, 허리를 묶어 배가 따뜻하도록 돕고, 그뿐만 아니라 한복은 넉넉한 공간이 형성되어 있기에 서양 옷처럼 몸을 조이거나 관절의 움직임을 제한받지 않아 몸에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 이 넉넉함은 옷과 몸 사이에 충분한 공기층을 만들어 단열효과가 생겨 추울 땐 따뜻하게, 더울 땐 선선하게 해주는 구실을 한다. 더구나 남성 바지에 있는 대님은 발목이 삐기 쉬운 겨울철에 부목(副木) 구실을 함과 밖의 찬 기운을 막아준다. 대님은 이런 점과 함께 ‘삼음교(三陰交 : 발 안쪽 복사뼈의 중심에서 위로 세 치 올라간 곳에 있는 혈)’라고 말하는 경혈자리를 묶어 마사지 효과를 주어, 비장(지라), 간장, 신장(콩팥)의 기능을 원활하게 하여 질병을 예방해 준다. 또한 우리 한복의 직물도 모두 천연의 것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염색을 할 경우에도 단순하게 색만을 고려한 방식이 아니라 그 옷을 입는 사람의 몸까지 배려하였다. 예를 들어 쪽물을 사용하여 가려움증과 날벌레의 접근을 막는 등 식물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이용하였다.

  이렇게 오랫동안 입어 온 한복에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얼이 담겨져 있고 선조들의 지혜와 정성이 깃들어 있다. 시대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기도 했지만 한복은 기본적인 형태를 유지하면서 우리 민족의 기호와 정서에 맞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갖게 되었다. 비록 근대에 서양 문화의 영향을 받아 낡은 시대의 것으로 치부되면서 우리의 생활에서 멀어지기도 했으나 이제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그 독특한 형태의 아름다움을 인정받고 있어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수도인들은 공부나 치성 그리고 기도를 모실 때 늘 한복을 착용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계승(傳承)하는 것이며, 또한 종단의 발전을 통해 한복의 세계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대순회보》 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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