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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恨)과 신명(神明)의 소리 판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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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3.09 조회1,5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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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 한국영화 서편제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 때의 영화는 아름다웠고 그 속에 그려졌던 우리의 판소리는 더 아름다웠었다. 한 많은 민족의 소리, 그 속에 신명의 어울림이 있는 판소리는 한국적인 정서가 가득한 우리만의 독특한 민속음악이다. 그래서 진정 자랑스러운 한국의 문화임에 틀림없는 판소리. 이제 우리 민족의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판소리란 1명의 창자(唱者)가 부채를 들고 고수의 북장단에 맞추어 창(소리) · 아니리(사설) · 발림(몸짓)을 버무려 이야기를 풀어가는 우리 고유의 민속악이다. 일반적으로 17세기 남도지방 서민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데, 이것은 민중들의 애환과 한을 짐작하게 하는 발생배경이다. 그 기원에 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무가(巫歌) 기원설, 광대 소학지희(笑謔之戱) 기원설, 중국 강창문학(講唱文學) 기원설, 독서성(讀書聲) 기원설, 육자배기토리 기원설, 판놀음 기원설 등이 그것이며, 그 가운데서 판놀음이 가장 유력한 가설이다. 판놀음이란 조선 후기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 전문적인 놀이꾼들이 벌이던 공연으로 광대소리와 성음(聲音)·장단·조(調)·공연방식·공연자편성·사설양식·사설 율조 등의 판소리의 모체가 될 여러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아울러 ‘판소리’라는 명칭도 마당을 놀이판으로 삼아 여러 노래를 순서대로 부르던 판놀음에서 유래했다고 본다. 판소리에서 공연되는 작품은 본래 판소리 열두 마당이라 하여 춘향가·심청가·수궁가 ·흥보가·적벽가·변강쇠타령·배비장타령·옹고집타령·강릉매화타령 ·무숙이타령(왈자타령)·장끼타령·가짜신선타령(또는 숙영낭자전을 들기도 함)의 12가지였지만, 현재는 춘향가·심청가·수궁가·적벽가·흥보가의 다섯 마당만이 시연된다.

  판소리의 장단은 서양음악으로 볼 때 리듬에 해당하는데, 그 장단에는 진양 ·중모리·자진모리·중중모리·휘모리·엇모리·엇중모리의 7가지 장단이 있다. 진양은 주로 여유로운 장면 혹은 탄식하는 대목에, 중모리는 서정적이거나 해설하는 부분에 쓰인다. 자진모리는 사물이나 사건의 나열 혹은 긴박한 상황을 묘사하는데 쓰이며 중중모리는 신명나는 대목이나 통곡하며 몸부림치는 대목에 주로 쓰인다. 휘모리는 상황이나 사물을 빠르게 반복 나열할 때, 엇모리는 신비로운 인물이나 사물을 묘사하거나 그들이 등장할 때 주로 쓰인다. 엇중모리는 생각을 말할 때나 뒤풀이 대목에 쓰이는데, 판소리에서 그 쓰임이 가장 드물다.

  두 옥타브반의 음역에서 이루어지는 판소리는 그 발성법 또한 독특한데 보통 통성(通聲)이라 하여, 횡경막을 위로 밀어 올려 소리를 낸다. 서양음악은 소리의 진동 즉 공명에 주력하지만, 판소리는 그와 달리 목을 조여 내듯 소리를 낸다. 너무 거친 소리를 ‘떡목’이라고 하고, 너무 맑기만 해 깊이가 없는 소리는 ‘양성’이라 하여 판소리에서는 좋지 않게 여긴다. 발성에 있어 개인만의 독특한 기교도 허용되긴 하는데, 떨림이 너무 심한 소리나 비강을 울려서 내는 비성(鼻聲)은 금기로 친다. 또한 판소리의 기본 성음(음색)은 거칠고 쉰 음색인 ‘수리성’이다. 기본 성음에서 나아가 이보다 청아하며 곱고 애절한 맛이 있는 음색인 ‘천구성’을 최고로 친다.

  판소리에 있어, ‘제’(制)라는 말은 판소리의 유파(類派)를 이르는 말이다. 제에는 크게 동편제(東便制)·서편제(西便制)·중고제(中高制)가 있다. 송흥록·정춘풍·김세종 등이 시초가 된 동편제는 감정을 터트리지 않고 절제하는 창법으로 남원·순창·구례·곡성·고창 등지에서 전승되었다. 현대 판소리에서는 흥보가·수궁가·적벽가에서 주로 사용된다. 서편제는 박유전으로부터 왔는데, 화려한 기교를 부리는 소리이다. 광주·담양·나주·보성 등지에서 전승되었으며 현대 판소리에서는 춘향가·심청가에서 주로 쓰인다. 중고제는 김성옥이 시초이며 충청도지역에 전승된 소리이다. 비동비서(非東非西)라 하여 다소 애매한 소리로 알려진 중고제는 5명창 시대를 끝으로 전승되지 못해, 현재는 부분적으로만 남아 있다.

  판소리의 형성 시기와 배경에 대해서는 보통 17세기 남도지방 서민들 사이에서 퍼져갔을 것으로 보고, 뚜렷한 모습을 갖춘 시기는 18세기 말 영조, 정조 시기로 추정한다. 판소리가 완전한 형태를 갖추자 하한담(하은담)· 최선달·우춘대와 같은 소리꾼들이 등장한다. 19세기가 되어 양반들이 새로운 청중으로 다가서자 비로소 판소리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19세기는 전기 후기를 나누어 전반기를 ‘전기 8명창시대’라 하고 19세기 후반기를 ‘후기 8명창시대’라고 한다. 전기 8명창들은 각자의 독특한 창법과 선율을 개발함과 동시에 각 지방의 민요 선율까지 판소리에 아우름으로써 판소리의 표현양식을 넓히고 다져갔다. 그 뒤 후기 8명창들은 그들의 업적을 이어 나가면서 한편으로는 새로운 개성을 창출했다. 19세기 후반 판소리는 결국 왕실의 인정을 받아 여러 창자들은 고종과 흥선대원군으로부터 벼슬까지 받기에 이르렀다. 19세기부터 판소리의 주요 청중이 양반이 되면서 이전의 서민적 의식은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판소리는 예술적 환경과 형태는 최상의 상태를 이루었지만, 내적인 의미로서 민중적 현실인식과 반봉건적 의지와 같은 문제의식은 외면되어 얼마 동안은 봉건적 의식까지 받아들이게 되었다. 판소리에 있어 ‘전기 5명창 시대’로 일컬어지는 20세기에는 박기홍·전도성·김창환·이동백·김창룡·김채만·정정렬 등의 명창이 있었다. 이때는 국권상실과 갑작스런 서구화의 영향으로 판소리계에도 많은 변화가 생기고, 점차 쇠퇴의 길로 들어선 시기이다. 이 시기, 남성만이 담당하던 광대역을 신재효의 제자 진채선이 최초의 여자 광대가 된 후 여러 여창이 등장했다. 8·15해방 후 판소리는 여성 국극단의 몰이로 한때 흥행하기도 했으나 판소리 명창들이 외도하여 창극에 참여하면서 급기야 1960년대에는 완전 몰락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후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판소리는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 2003년 11월 7일에는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세계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되어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판소리 이야기와 함께, 지친 기색 없이 무려 9시간 20분 동안 판소리를 완창 해 기네스북에 오른 한 소녀 명창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물 마시고 옷 갈아 입는 10분 정도의 시간을 빼고는 쉼 없이 소리를 빚어낸 소녀 명창의 신명나는 모습에서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과 함께 금강석처럼 강한 힘까지 아울러 느낀다.

  하지만 또 한 가지, 판소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가슴 절절한 한의 정서일 것이다. 삶과 역사의 숱한 굴곡 속에서 가슴 깊이 뿌리 내린 그 한이 가슴에 그리고 하늘에 사무쳐 소리가 되고 염원이 되었을 것이다. 한의 민족, 신명의 나라, 판소리의 선율 속에서 또 다시 되새기는 우리 민족의 의미이다.  

 

《대순회보》 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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