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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신앙(山神信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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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2.20 조회1,31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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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간신앙은 민중에 전승되는 미지의 자연에 대한 원초적인 외경심(畏敬心)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조직되지 않은 채 사람들 사이에 전승되고 있는 사회적 종교현상을 말하며,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민중의 살아 있는 현재의 진행적 종교로서 한국인의 정신적 지반이 되어 왔다. 이것은 민간신앙이 한 때 성행했던 과거의 종교나, 또는 먼 이상이나 미래를 전망하는 추상적인 관념과 표상에 치우친 종교가 아닌, 자연스레 우리들 삶의 일부분이 되어 생동하는 종교임을 뜻한다. 구체적인 교리를 갖춘 종교가 일반적으로 먼 이상이나 미래를 추구하는데 비해, 민간신앙은 현실에 앞장서서 민중의 생활 현장에 뿌리를 내려 현재의 삶을 중시하는 종교현상이다. 그 중에서 한국인에게 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온 것이 ‘산신신앙(山神信仰)’이다.

  우리 민족은 산을 신성한 곳으로 여겼다. 오악(五嶽)01의 산신당(山神堂)에서 산신제(山神祭)를 국가나 마을 차원에서 올렸던 제의(祭儀)라든지, 지금도 사람이 죽으면 산에 묏자리를 잡기 전 산신석(山神石)을 세워 산신께 허락을 구하는 제의라든지, 종교나 무속에 무심한 등산객일지라도 등산로 옆 돌무더기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돌을 하나 올려놓고 비원(悲願)하는 것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특히 고산·명산에는 영험(靈驗) 있는 신이 있어 나라에 전란이 있거나 어려운 일이 생겨 신조(神助: 신의 도움)를 바랄 때는 제사를 올리고 기원하였으며, 한 마을의 평안이나 농작·기우 등을 산신께 기원하였다. 이렇게 우리민족은 마을의 안녕을 비롯해서 나라의 번영을 기원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산신에 대한 믿음과 숭배가 두터웠다. 이렇듯 ‘산신신앙’은 산에 거처하면서 산을 지키고 담당하는 산신(山神)께 바치는 믿음이었다.

  산신은 자연신이면서 기능적으로는 수호신(守護神)인데, 그것의 형상은 백발 수염에 지팡이(혹은 부채)와 불로초(不老草)를 들고 있는 신선(神仙)02이나, 그와 함께 등장하는 호랑이를 산신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는 『후한서(後漢書)』와 『삼국지(三國志)』에 “그 풍속은 산천을 존중한다.(其俗重山川)”, “범에게 제사 드리며 그것을 신으로 섬긴다.(祭虎以爲神)”라고 한 것을 볼 때, 오래전부터 호랑이는 한민족의 영물(靈物)로 여겨 산신과 동일시하여 지금까지 전승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무엇보다 우리민족 산신의 시원은 천신(天神)인 환웅(桓雄)이 삼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정상에 있는 신단수(神壇樹)로 하강했다는 ‘단군신화(檀君神話)’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신화에서 환웅이 산정(山頂)에 내린 것은 신의 거처에 내린 것이다. 곧 천신이 좌정한 태백산은 성산(聖山)이 되고, 그 산정에 신단수가 있는 곳은 산신의 거처이자 산신에게 지내는 산신제의 장소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환웅의 아들이자 국조(國祖)인 단군이 사후에 아사달의 산신이 되는데, 이는 천신으로 나타나는 환웅이 산신이 되는 단군을 낳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가야·신라·고구려 등의 개국신화(開國神話)를 보면 한결같이 하늘에서 천신의 아들이 높은 산에 강림하여 산신이 된다. 이것은 ‘천신 → 산정강림(山頂降臨) → 산신’이라는 우리민족의 신관(神觀)과 ‘천신신앙’으로부터 이어져 온 산신의 양태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03

  한편 산은 우리민족의 애틋한 향수를 간직한 ‘솟대신앙’처럼, 세 가지 차원의 세계를 이어주는 우주산(Cosmic Mountain: 세계산이라고도 함)과 관련되어 있다. 세계는 천상의 세계, 중간(혹은 지상)의 세계, 지하의 세계로 나눠진다고 한다. 이 중 인간이 거주하는 곳이 중간계이고, 여기서 산은 신의 세계인 하늘과 인간들의 세계인 땅 사이에 자리하여 두 세계를 이어주며 통로 구실을 하는 우주축의 상징성을 띤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주축의 의미를 지닌 산은 초자연적 존재가 지상으로 하강하여 거처하는 신성한 성역(聖域)이자, 그것을 믿고 숭배하는 집단을 지키려는 수호신의 성격 때문에 성산(聖山) 일대의 잡귀를 막는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우리 민간신앙에서도 마을이 산신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 세계의 중심지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마을마다 산신당을 지어 산신을 숭배하게 되었다.

  또한 우주산은 우주의 배꼽이라는 엘리아데의 관념과 관련 있다. 배꼽이 사람의 몸 중심이자 그 생명력이 모인 곳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에, 우주의 중심을 우주배꼽이라 일컫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집 혹은 마을이 대지의 중앙에 놓여 있지만, 진정한 우주의 중심은 자신이 머물고 있는 우주의 중심인 배꼽, 즉 산으로부터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 비근한 예가 금산사(金山寺)가 있는 모악산신앙(母岳山信仰)이다. 모악산은 국토의 배꼽이자 남조선신앙(南朝鮮信仰)의 배양지로 은밀히 내재되어 왔고, 미륵신앙(彌勒信仰)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수많은 미륵 관련 종교들이 출현했고, 그들은 하나같이 미륵의 나라, 미륵의 세상을 꿈꿨다.

  이처럼 산에 대한 신앙이 ‘단군신화’에 그 시원을 두고 있으나, 시대에 따라 그 형태나 내용에도 변화가 있었으며 의미도 달랐다. 특히 신라시대에 이르러 그런 양상이 두드러진다. 신라는 국가 제사의 대부분이 산의 주재자로 믿었던 산신에 대한 제사였다. 이는 산신이 국가를 수호한다는 호국신(護國神)이자 강우(降雨)의 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믿음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래서 국가적 위기나 흉년에 처하면 산신이 나타나 이를 경고하기도 했다. 신라 49대 헌강왕이 포석정이나 북악에 행차했을 때, 삼산오악04의 신들이 나타나 춤을 추면서 다가올 위기를 경고했다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반영한다. 또한 토함산에는 탈해왕(脫解王), 선도산(仙桃山)에는 사소성모(娑蘇聖母), 형산(兄山)에는 경순왕(敬順王)을 산신으로 봉한 것을 볼 때, 신라의 산신은 아주 구체적으로 부각시킨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산신의 신격(神格)도 대단히 높은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 내려와서도 이 산신신앙은 계속 유지되었다. 송산신사(松山神祠)·동신사(東神祠)를 비롯하여 각지에 산신당이 있었고, 이 사당(祠堂)이 받들던 각지의 명산에는 국가에서 대개 작(爵)을 봉하고 녹미(祿米: 녹봉으로 주는 쌀)를 내렸으며, 이곳을 무당으로 하여금 받들게 했다. 조선시대는 경성(京城)에서 동산[東山, 타락산(駝駱山)]에 호국지신(護國之神)을 봉하는 등 전국적으로 명산에 호국지신을 봉하고 각 주·군에서도 진산(鎭山)05을 두어 받들면서 평안을 얻고자 하였다.

  이상과 같이 고대 한민족의 ‘산신신앙’은 ‘천신신앙’과 함께 민간신앙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이루었다. 예로부터 산은 천신이 하강하는 신성한 장소였다. 그래서 산신은 천신과 동일한 존재로 받아들여졌고, 신의 세계와 인간 세계 사이의 연결고리 노릇을 하였으며, 그 능력 또한 무한한 것으로 믿어졌다. 특히 구성원 전체의 안녕과 수호의 정신적 기반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마을의 평안(平安)·농작(農作)·기우(祈雨) 등을 위해 산신당을 세우거나, 나라가 흥망성쇠의 기로에 있을 때에도 산신에 신조(神助)를 기원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고대 우리민족의 민간신앙에서 중요한 신앙의 일부분을 차지함을 알 수 있다. 다음 호에는 ‘산신신앙’의 구체적인 면모들을 찾아보려 한다. 산신의 남성과 여성, 산신의 신체(神體)인 호신(虎神), 삼신산(三神山)과 산신의 관계, ‘산신신앙’의 불교 · 도교의 교섭 과정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참고문헌 

강영경, 『한국 고대 산신신앙에 나타난 이상인간형』, 종교와 문화, 2001.

데이비드 메이슨 지음 / 신동욱 옮김, 『山神』, 한림출판사, 2003.

이은봉, 『한국고대종교사상』, 집문당, 1984.

임동권, 『한국민속문화론』, 집문당, 1989.

장정태, 『삼국유사에 나타난 민간신앙 - 산신신앙을 중심으로』, 한국사상문화학회, 2010.

최종석, 『한국불교와 도교신앙의 교섭 - 산신신앙, 용왕신왕, 칠성신앙 중심으로』,

         한국불교학회, 2011.

『한국민속대사전』, 민족문화사, 1993.

『한국민속의 세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7.

M. 엘리아데 지음, 박규태 옮김, 『상징, 신성, 예술』, 서광사,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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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동·서·남·북 및 중앙을 대표하는 백두산·금강산·묘향산·지리산·삼각산(북한산)을 일컫는다. 오악의 개념은 중국의 오행사상(五行思想)에서 비롯되었으며, 오악에는 나라의 수호신(守護神)이 거처한다고 믿어 성산(聖山)으로 여겨 왔다. 신라 때에는 토함산·계룡산·지리산·태백산과 부악(父岳, 지금의 팔공산)을 오악으로, 고려 때에는 덕적산(德積山)·백악(白岳)·목멱산(木覔山, 지금의 남산) 등으로 전해진다.

02 산신이 인간세상을 떠나 산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신선(神仙)으로 나타나 ‘신선사상(神仙思想)’과 관련짓기도 한다.

03 이들을 모신 곳을 주로 산신각(山神閣)이라 부른다. 대개 산신각을 불교 사찰의 하나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불교가 한반도에 수용되면서 민간신앙이 불교를 받아들인 결과로 보아야 한다. 이에 따라 산신은 사찰의 수호신으로 자리 잡는다. 그래서 사찰마다 산신각을 지어 산신을 모시게 되는데, 그 시기는 대략 조선후기로 짐작된다.

04 삼산오악은 신라의 호국신(護國神)이 거처한다는 산을 일컫는다. 삼산(三山)은 나력산[奈歷山, 현 경주의 낭산(狼山)]·골화산(骨火山, 경북 영천 소재의 금강산)·혈례산(穴禮山, 경북 청도의 오례산)을 이르고, 오악은 토함산·계룡산·지리산·태백산과 부악(父岳, 지금의 팔공산)을 이른다.

05 도읍지나 각 고을에서 그곳을 진호(鎭護, 마을이나 나라에 기근과 전란을 막아준다는 산)하는 주산(主山)으로 정하여 제사하던 산. 조선 시대에는 동쪽의 금강산, 남쪽의 지리산, 서쪽의 묘향산, 북쪽의 백두산, 중심의 삼각산을 오악(五嶽)이라고 하여 주산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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