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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의 길안심(安心)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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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영수 작성일2018.10.11 조회4,158회 댓글0건

본문

​연구위원 박영수

  

 

 목차

  Ⅰ. 머리말  
  Ⅱ. 마음에 대한 기본적 이해     

     1. 마음(心)의 본질

     2. 마음(心)과 영(靈)의 관계

     3. 마음(心)의 작용  

  Ⅲ. 안심(安心)의 정의와 특성    

     1. 안심(安心)의 정의

     2. 안심(安心)의 특성

        1) 마음의 경지로서의 안심

        2) 수행의 훈전으로서의 안심  

  Ⅳ. 안심(安心)에 이르는 길   

     1. 심성(心誠)

     2. 심성(心省)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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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머리말    


  대순진리회의 종지 ⋅ 신조 ⋅ 목적 중에서 신조(信條)는 수도인들이 수도생활과 사회생활, 가정생활에서 늘 견지(堅持)해야 할 믿음의 조목이다. 일반적으로 생활신조라 함은 생활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교의처럼 어김없이 지키고자 하는 신념을 말한다. 종교학에서도 신조는 한 종교를 신앙하는 신앙인들이 내적으로 신념화하여 실천해야 할 종교 공동체의 필수적인 신앙조항에 관한 공인된 간략한 형식의 진술을 의미한다. 

  우리 도에서 신조는 사강령(四綱領)과 삼요체(三要諦)이다. 사강령은 안심·안신·경천·수도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에서 안심·안신은 이율령(二律領)이라 하여 대순진리를 심수덕행(心修德行)해 나가는 데서 견지해야 할 수행의 훈전이다.  
  본고에서는 사강령의 하나이며 수행의 훈전 중의 하나인 안심(安心)을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Ⅱ장에서는 안심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음에 대한 정의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마음의 본질과 작용에 대해서 알아보았고, 이를 기초로 Ⅲ장에서는 안심의 의미를 정의한 후, 안심의 특성으로서 마음의 한 경지와 수행의 훈전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해보았다. Ⅳ장에서는 안심에 이르는 길로서 심성(心誠)과 심성(心省)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Ⅱ. 마음에 대한 기본적 이해 


 1. 마음(心)의 본질


  六월 어느 날 신 경원(辛京元)이 태인에서 사람을 급히 보내어 순검이 날마다 저의 집에 와서 상제의 계신 곳을 묻는다는 소식을 전하게 하였도다. 상제께서 그 사람을 보고 “급한 일로 오는 사람이 도중에서 지체하다가 늦어진 것은 무슨 일이뇨” 꾸짖으시니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오는 길에 당화주역으로 운명을 비판하는 자가 있으므로 잠깐 지체되었사오니 용서하소서” 하니 상제께서 곧 글을 써 주시며 “이 글을 경원에게 주고 보고 난 후에 곧 불사르라” 이르시니 그 글은 이러하니라.   


   天用雨露之薄則 必有萬方之怨
 地用水土之薄則 必有萬物之怨

 人用德化之薄則 必有萬事之怨

 天用地用人用統在於心   


 心也者鬼神之樞機也門戶也道路也
 開閉樞機出入門戶往來道路神
 惑有善惑有惡
 善者師之惡者改之

 吾心之樞機門戶道路大於天地 (행록 3장 44절)  


  도전님께서는 『전경』을 인용하시어 안심에 대하여 이렇게 밝혀주셨다. “『전경』에 ‘사람의 마음은 신의 중요한 용사기관이요, 신이 출입하고 왕래하는 길이라(心也者 鬼神之樞機也 門戶也道路也).’ 하셨으니 마음의 발로(發露)에 사심(邪心)을 버리고 예법에 합당케 하는 것이 안심이다.”01 안심이란 마음의 발로에 사심을 버리고 예법에 합당케 하는 것이라 하셨듯이, 마음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고는 안심을 정의할 수 없다.

 『전경』에 마음에 대한 구절이 여러 곳에 나오지만, 마음의 본질과 작용에 대하여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내용이 앞서 인용한 구절(행록 3장 44절)이라 할 수 있다. 위의 내용을 간략하면, 하늘의 작용은 만방에 우로(雨露)를 내리는 것이고 땅의 작용은 만물에 수토(水土)를 베푸는 것이며, 인간의 작용은 만사에 덕화(德化)를 펴는 것이다. 하늘이 우로를 박하게 내리면 만방에 원이 맺히게 되고 땅이 수토를 박하게 쓰면 만물에 원이 맺히게 되며, 인간이 덕화를 박하게 하면 만사에 원이 맺게 되니, 하늘과 땅과 인간의 작용이 다 마음에 달렸다.  
  바로 이 마음의 본질은 신(神)의 중요한 용사기관이요, 신이 출입하고 왕래하는 길이다. 그리고 이 마음의 추기를 여닫고 출입하고 왕래하는 신에는 혹은 선하고 혹은 악한 것이 있는데 선한 것은 스승으로 삼고 악한 것은 고쳐야 한다. 나의 마음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천지보다도 크다는 것이다. 여기서 마음은 신의 중요한 용사기관이고 신이 출입하고 왕래하는 길이라는 것과 하늘이 우로를 내리는 일과 땅이 수토를 베푸는 일, 인간이 덕화를 펴는 일이 모두 마음의 작용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마음(心)과 영(靈)의 관계


  위에서 마음의 본질을 ‘신의 중요한 용사기관이요, 신이 출입하고 왕래하는 길’이라고 보았다. 여기서는 도주님께서 『전경』의 「포유문」에서 밝히신 ‘심령(心靈)’과 관련하여 심(心)과 영(靈)의 관계를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마음 심(心)의 어원은 보통 심장을 형상화한 상형문자로 알려져 있다. 갑골문자에서는 마음 심 자가 좌심방 우심실로 나누어진 심장의 형상을 본뜬 글자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옛사람들은 심장을 중심으로 마음이 분포되어 있어 인간의 여러 가지 심리현상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인간의 심리현상을 나타내는 모든 용어에서는 마음 심(心) 자가 변으로 쓰일 때는 ⋅(심방변)으로, 발로 쓰일 때는 ‘⋅’의 자형으로 붙어 있다.  
  인간의 5장 6부 중에 마음 심 자가 붙은 유일한 장기는 심장이다. 그리고 생체물리학적으로도 심장은 매우 중요한 장기이다. 다른 어떠한 장기보다 심장에 이상이 생기면 인간의 생명은 직접적인 위협을 받는다. 임상적으로 심장이 멈추는 것을 인간의 생명이 다하였다고 진단한다.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은 생(生)의 표현이요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것은 사(死)의 징표다. 이렇게 인간의 마음과 심장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영과 육체, 마음의 관계에 대하여 심오한 통찰력을 주는 저작의 하나인 『혼의 과학』02에서는 심장이 신체의 통솔자인 영의 궁전이라면 뇌는 영의 집무실이라고 표현한다. 신체인 마차 안에는 영(靈, 眞我)이 앉아 있고, 지성은 마부로서 마음인 고삐를 잡고 있으며, 모든 감각기관은 말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특히 마음 안에 영이 있고 영이 심장의 깊은 동굴에 기거하는 모습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저자는 이 세상의 실재(實在)를 ‘생명’과 ‘생명이 없는 물질’로 구분하여 생명이 없는 물질이 성(城)이라면 생명은 그 안에 거주하는 성주(城主)와 같다고 하면서 생명은 영이고 마음은 생명이 없는 물질에 속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마음에서 영을 빼면 마음은 아무런 작용도 하지 못한다. 마음은 오직 영으로부터 원력(原力)을 받아야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동서고금의 모든 각자(覺者)들이 마음을 그 본질에 있어서 공(空)하다고 한 것이리라. 마음이 이러할진대 그 마음이 지어낸 이 세상이 환영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불가(佛家)에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하고 ‘심외무별법(心外無別法)’이라 하여, 마음이 일체를 지어 만들고 이 세계의 만상 만유는 마음의 소현(所現)으로서 마음 외에 따로 만상 만유가 없다고 한다.  
 『전경』에 말은 마음의 외침이요 행동은 마음의 자취라 하였다.03 몸은 마음의 표현이다. 체(體)와 용(用)의 관계로 본다면 몸의 작용에 대하여 마음이 체가 되듯이 마음의 작용에 대하여 영이 체가 된다고 볼 수 있다.

  도주님께서는 나의 지극한 보배는 마음이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심령(心靈)이라고 하셨는데, 심령을 통일하면 천지와 더불어 질서를 함께 할 수 있고 귀신과 더불어 수작(酬酢)할 수 있다고 하셨다.04 『대순진리회요람』에도 “‘영통의 통일을 목적으로’ …소정의 주문을 봉송한다.”05라고 수도를 규정하고있다. 이에 수도의 목적이 심(心)과 영(靈)을 통일하는 데 있음은 명확하다. 그러므로 영통(靈通)이 곧 도통(道通)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의 육체는 영(靈)이 자신의 경험을 확장하기 위하여 지어낸 체험의 도구이자 영이 기거하는 성소(聖所)라 할 수 있다. 마음 역시 영이 육체와 만기(萬機)를 통솔이용하기 위하여 지어낸 영적 기틀이다. 이렇게 지어낸 맑고 깨끗한 본연의 마음이 바로 양심(良心)이다. 반면에 이러한 양심이 물욕에 의하여 가려지고 사사로운 욕심이 발동하여 작용하는 마음을 사심(私心)이라 한다.  
 『대순진리회요람』에 ‘영통이 곧 도통’06이라 하였으니 깨달음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영(靈)이 곧 나임을 아는 것이다. 영의 도구인 육체나 마음이 나인 것이 아니라 영이 곧 나임을, 도(道)가 곧 나임을 자각하는 것이 깨달음이다. 마음으로 이 세상을 제도(濟度)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곧 도임을 자각하여 만화도제(萬化度濟)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인보상조(隣保相助)의 미덕으로 밉고 고움이 없이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도(道)의 무한한 진리의 바다에 나 자신이 합류하는 것이다. 이러한 각자(覺者)는 인류와 군생만물의 앞길을 밝히는 등불이 될 것이다.  
  마음의 길은 자신이 왕국의 주인임을 자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정한 주인을 알아보고 그 주인을 올바르게 보필하고 섬기는 데 있다. 이것이 도전님께서 “도주님의 포유하신 인도에 따르라. … 나의 심기(心氣)를 바르게 하고, 나의 의리(義理)를 세우고, 나의 심령(心靈)을 구하여, 상제의 임의에 맡기라.”07고 하신 당부의 말씀을 실천하는 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심(心)과 영(靈)의 관계는 다음에 논의될 마음의 작용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3. 마음(心)의 작용


  옛말이나 시속에 마음이 쓰인 용례를 통하여 마음의 작용에 대하여 살펴보자. ‘심부동여면(心不同如面)’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사람마다 얼굴이 제각각(各各) 다르듯이 마음도 서로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도(道)는 하나이지만 마음은 천차 만차다. 이를 통해서도 마음 이면에 도[靈]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전경』에 “고요하게 가라앉은 마음 아래에 도덕이 존재한다(潛心之下道德存焉).”08라는 구절은 이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대학』의 「정심(正心)」장에 보면, “심부재언(心不在焉)이면 시이불견(視而不見)하고 청이불문(聽而不聞)하며 식이부지기미(食而不知其味)니라”는 구절이 있는데 마음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는 뜻이다. 마음의 작용에 대하여 간단하고도 명료하게 밝혀주고 있는 구절이다. 『대순진리회요람』에도 “모든 것이 마음에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 것이니…”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것은 마음은 일신의 주(主)로서 만기(萬機)를 통솔이용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마음의 작용은 물과 같다. 『도덕경』에도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지 않던가. “심청사백수(心淸師白水) 언중학청산(言重學靑山)”09이라, 깨끗한 마음은 맑은 물에서 본받고 신중한 말은 푸른 산에서 배우라 하였다. 비슷한 의미로 『전경』에는 “심심황하수(心深黃河水) 구중곤륜산(口重崑崙山)”10이라 하여, 마음은 깊게 하기를 황하수와 같이 하고 입은 무겁게 하기를 곤륜산을 매단 듯이 하라고 하셨다. 말은 신중을 기하고 마음은 늘 흐르지만 멈추어 있는 듯이 보이는 황하수처럼 깊고 넓게 써야 하겠다.  
  금강경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로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이란 말이 있다.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뜻인데 불교의 6조 혜능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스님이 읽는 법문 중, 이 구절을 듣고 출가를 결심하였다고 전한다. 마음에 없으면 보아도 보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이 오감의 쓰임이 무용(無用)한 데, 이렇게 마음을 내어 쓰더라도 사사물물에 집착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마음을 쓰더라도 그 마음에 집착하면 마음의 자재(自在)로움을 잃게 된다.  
  도주님께서 1955년에 부산의 감천도장에서 좋은 글이라고 도인들에게 내리신 정심경(定心經)에 보면 “도덕광대(道德廣大) 한사존성(閑邪存誠) 심부재도(心不在道) 도재심공(道在心工)”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도덕이 비록 넓고 크더라도 삿됨을 막고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이니, 마음이 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가 마음 공부하는 데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도를 닦는 것은 도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진법의 도리를 조금씩 깨달아 가면서 확신을 얻어가는 것이다. 소경이 꽃을 보지는 못해도 향기를 맡아 알듯이 도는 보는 것이 아니라 심공(心工)으로 깨닫는 것이다. 마음에 도가 있는 것은 아니나 도는 마음으로 닦은 공력으로 깨닫는 것이다. 마음으로 도를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닦아나가는 과정에 도를 깨닫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마음 심 자를 낚싯바늘과 낚싯밥으로 비유하는 예도 있다. 형상적으로 마음 심 자의 가운데 삐침이 낚싯바늘이고 가운데와 좌우로 찍힌 세 점은 낚싯밥으로 보는 것이다. 이 비유는 마음을 닦아 나가는 데 유용한 측면이 있다. 낚싯바늘에 어떤 미끼를 쓰는가에 따라서 걸리는 물고기의 종류는 달라질 것이다. 잉어가 걸릴 수도 있고 피라미가 걸릴 수도 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먹는가에 따라 선한 일도 겪고 악한 일도 겪는 것과 같다. 이것은 『대순지침』의 “마음이 일신의 주로서 제병 제악(諸病諸惡)을 낚아들이는 것이다.”11라는 훈시와 일치한다. 그러므로 마음을 내적으로 관조하여 선한 마음은 스승으로 삼고 악한 마음은 개선(善者師之 惡者改之)12하여 일상 자신의 과부족을 살펴서 고쳐나가야 한다. 

    


Ⅲ. 안심(安心)의 정의와 특성    


 1. 안심(安心)의 정의


  지금까지 마음 심(心) 자에 대하여 살펴보았는데, 안심(安心)은 이 마음에 편안할 안(安) 자가 앞에 붙어 있다. 마음은 일신을 주관하고 만기를 통솔 이용하는 의식작용이다. 『대순진리회요람』은 안심에 대해서   


“사람의 행동기능을 주관함은 마음이니 

편벽됨이 없고 사사됨이 없이 

진실하고 순결한 본연의 양심으로 돌아가서 

허무한 남의 꾀임에 움직이지 말고 

당치 않는 허욕에 정신과 마음을 팔리지 말고 

기대하는 바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항상 마음을 안정케 한다.”13 

  
라고 정의하고 있다. 안심은 마음이 평안하게 안정되어 있는 상태를 나타내기도 하고, 항상 마음을 안정케 해야 하는 수심(修心)의 한 과정을 뜻하기도 한다. 위에서 언급된 안심은 후자를 지칭하는 것이다. 
  안심은 마음을 안정케 하는 것이다. 마음을 안정케 하는 이유는 기대하는 바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다. 인간이 마음으로 소정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말이나 행동, 일을 통해 성취해 가게 되는데, 이때 언어나 행동기능을 주관하는 것은 다름 아닌 마음이다. 말은 마음의 소리요 행동은 마음의 자취라, 그러므로 마음가짐이 기대하는 바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 마음가짐이 바로 안심이다. 이렇게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첫째로 평소에 진실하고 순결한 본연의 양심으로 돌아가도록 수심연성(修心煉性)하여야 한다. 양심은 인간 본연의 천품성(天稟性)으로 편벽되거나 사사로운 욕망, 사곡(邪曲)됨이 없는 공명정대한 마음이다. 양심을 간직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무자기(無自欺), 즉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심수덕행(心修德行)하여야 한다.

  둘째로 허무한 남의 꾀임에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밖으로부터 오는 유혹에 넘어가거나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자기 자신도 해보지 않거나 검증이 되지 않은 것을 남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실속이 없고 허무한 것이다. 심지가 굳고 공명정대한 사람은 남의 이목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오직 자신의 진실에 충실하다.  
  셋째로 당치 않는 허욕에 정신과 마음을 팔리지 말아야 한다. 즉 안으로부터 오는 허영에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허영은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헛된 욕망이다. 남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기 자신의 헛된 욕심에 마음을 빼앗기면 진로를 잃고 방황하게 된다. 

  결국 안심은 마음을 안정케 하는 것이다. 안심은 기대하는 바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마음을 안정케 하는 것이다. 안심은 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남의 유혹에 움직이지 않으며, 자신의 허영에 미혹되지 않고, 기대하는 바의 목적에 도달토록 항상 마음을 안정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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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안심(安心)의 특성


  안심의 특성은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하나는 마음의 한 경지로서의 안심이고, 다른 하나는 수행의 훈전으로서의 안심이다. 전자(前者)는 정직하고 진실한 인성의 본질을 회복한 본연의 마음상태를 이르는 것이고, 후자(後者)는 안심 ⋅ 안신 이율령을 수행의 훈전으로 삼는다는 관점이다.

  
  1) 마음의 경지로서의 안심


  안심은 편안할 안(安) 자에 마음 심(心) 자다. 편안하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편안은 평안(平安)과 통한다. 평은 평정심(平靜心)이라고 할 때의 평(平)이고 안은 안정적(安定的)이라고 할 때의 안(安)이다. 이렇게 안(安)은 평정(平靜)과 안정(安定)의 의미를 모두 포괄하고 있다.  
  평정(平靜)은 마음이 고요하여 동요가 없는 것으로 ‘마음이 평정을 되찾았다.’라는 용례로 쓰이듯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아 들뜨거나 혼란하지 않은 마음의 본래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다. 안정(安定)은 마음이 바뀌어 달라지지 않고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마음이 안정되어 있다.’라는 용례로 쓰인다. 마음이 안정되어 있다는 것은 불안감이나 걱정 근심이 없이 본래 뜻하거나 목적한 바에 집중할 수 있는 마음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공명정대한 마음이 평정한 마음 상태이고, 사사로운 욕심과 삿된 욕망이 없는 마음이 안정된 마음 상태이다. 진실하고 순결한 본연의 양심으로 돌아가서 허무한 남의 꾀임에 정신과 마음을 팔리지 않는 것이 평정이고, 당치 않는 허욕에 경거망동하지 않는 것이 안정이다. 이렇게 마음이 평정되고 안정되어야 자기 자신이 목적하고 기대하는 바를 온전하게 이루어나갈 수 있는 마음 상태가 된다. 인간 본래의 진면목인 정직하고 진실한 인성(人性)의 본질을 회복하였을 때 안심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즉 진실하고 순결한 본연의 마음자리를 안심이라 한다.  


  2) 수행의 훈전으로서의 안심


  사람의 언어 행동을 주관하는 것은 마음이다. 수도인에게 올바르게 마음 쓰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수행의 훈전으로서의 안심이다. 이때의 안심은 마음을 무편무사(無偏無私)하고 공명정대(公明正大)하며, 지극하게 진실하여 순결한 본연의 양심으로 환원토록 연마하여 남의 유혹에 움직이지 않고 자신의 허영에 미혹되지 않으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항상 안정하라는 수행의 지침이다.  
  수행의 훈전으로서 안심을 실천하는 데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에서 기도 ⋅ 수련을 생활화하는 것과 함께 훈회 ⋅ 수칙을 생활화하는 것이다.


   ① 기도·수련의 생활화 
  수행의 훈전으로 안심을 실천하는 데는 일상생활에서 기도 ⋅ 수련을 생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전님께서는 “기도란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여 상제님을 가까이 모시는 정신을 모아 단전에 연마하여 영통의 통일을 목적으로 공경하고 정성을 다하는 일념을 끊임없이 생각하여, 지성으로 소정의 주문을 봉송하는 것을 말합니다.”14라고 훈시하셨다.  
 『대순진리회요람』에 “수도는 심신을 침잠추밀하여 대월 상제의 영시의 정신을 단전에 연마하여 영통(靈通)의 통일을 목적으로 공경하고 정성하는 일념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지성으로 소정의 주문을 봉송한다.”15라 하였듯이, 기도란 ‘영통의 통일’을 목적으로 모시는 것이므로 진실하고 순결한 본연의 마음자리인 안심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기도 ⋅ 수련을 정성껏 꾸준히 모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할 것이다.  
  실제로 安의 어원을 보더라도 安은 기도 ⋅ 수련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安 = ⋅ +女’인데 女는 사람이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아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형상한 것이라고 한다.16 집 면(⋅)도 집 가(家, 豕: 제사 모시는 데 쓰는 돼지), 마루 종(宗, 示: 조상을 모시는 제사상) 등으로 쓰여 신에게 기도를 드리거나 제사를 모시는 집이라는 의미다. 결국 安의 어원은 집 안에 여자가 있으니 편안하다는 일반적인 해석보다는 마음의 정성을 모아 우주의 최고신이신 상제님께 기도를 드리고 조상께 제사를 모시는 것이 인간의 심신이 평안하고 집안이 화평한 근원이 된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더욱 깊이 있는 해설이다. 

  시속의 안심입명(安心立命)이라는 말은 천명(天命)을 깨닫고 생사 ⋅ 이해를 초월하여 마음의 평안(平安)을 얻는다는 뜻인데, 우리 도인들에게 안심입명은 “나의 심기(心氣)를 바르게 하고 나의 의리(義理)를 세우고 나의 심령(心靈)을 구하여 상제님의 임의(任意)에 맡기라”17 하신 도주님의 포유하신 인도에 따르는 길이 될 것이다.    


   ② 훈회·수칙의 생활화
  수행의 훈전으로 안심을 실천하는 데는 또한 훈회와 수칙을 생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수행해야 편벽됨이 없고 사사됨이 없이 진실하고 순결한 본연의 양심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고, 언덕을 잘 가짐으로써 서로 화목할 것이며, 척을 짓지 않음으로써 시비가 끊어질 것이고, 은혜를 저버리지 말아야 배은망덕이 없을 것이며, 남을 잘 되게 함으로써 인존(人尊)과 평화의 대순사상이 구현될 것이니 우리 자신은 절로 안심의 경지에 들 수 있을 것이다. 
  도전님께서는 바른 수도생활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훈회와 수칙을 강조하신 내용을 『대순지침』을 중심으로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훈회를 실천하여 생활화하여야 한다. 

수칙을 실천하여 생활화하여야 한다. 

도인은 훈회 및 수칙을 진실하게 지켜나가야 한다. 

훈회와 수칙을 준행하여 수도의 목적 달성에 전념하여야 한다. 

도인은 훈회와 수칙을 준수하여 사회의 귀감이 되어야 한다..”18 

  
  여기서 한 가지 고려할 수 있는 것은 심신(心身)이 음양의 관계에 있듯이, 안심과 안신이 음양의 관계에 있으며 훈회와 수칙이 또한 음양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의 훈전으로 안심을 실천하는 데는 훈회와 수칙의 생활화에서도 특히 훈회를 생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훈회와 수칙의 생활화는 수행의 훈전으로 안심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나, 사회도덕을 준행하여 사회의 귀감이 되는 데 있어서, 더 나아가 수도의 목적인 도통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실천수행의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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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안심(安心)에 이르는 길


  마음의 한 경지로서 안심에 이르기 위해서는 마음을 참되게 하여 쉼과 틈이 없이 지극한 정성으로 진심(眞心)을 견수(堅守)해야 할 것이고, 일상 자신을 반성하여 과부족이 없는지를 성찰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것이 심성(心性)을 수심연성(修心煉性)하는 방법으로서의 심성(心誠)과 심성(心省)이다. 

  
 1. 심성(心誠)


  심성(心誠)은 정성스러운 마음이다. 정성은 마음의 운용에 있어서 반드시 견지해야 할 기본 덕목이다. 도전님께서도 “자고로 ‘마음이 참되지 못하면 뜻이 참답지 못하고, 뜻이 참되지 못하면 행동이 참답지 못하고, 행동이 참되지 못하면 도통진경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心不誠 意不誠 意不誠 身不誠 身不誠 道不誠).’ 하심을 깊이 깨달으라.”19 하셨고, “‘성(性)은 마음이 밝아져야 천품성을 깨닫는다(開心見性).’ 하였으니, 참된 성품을 살펴서 허망한 일을 하지 않는(眞實無妄) 지성(至誠)에 이르면 신(神)과 같아지느니라.”20고 하시어 마음에 있어서 정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셨다. 

  마음에는 정성, 몸에는 공경, 일에는 믿음이다. 마음은 늘 정성스럽게 하고 몸은 공경으로 처신하며 일을 함에 있어서는 믿음직스럽게 처사하여야 한다. 이것이 대순진리회에서 이야기하는 ‘심(心)·신(身)·사(事) - 성(誠)·경(敬)·신(信)’이라는 공식이다. 이에 관하여 도전님께서는 “도주님께서 ‘먼저 나의 마음을 참답게 함으로써 남의 마음을 참되게 하고, 먼저 내 몸을 공경함으로써 남도 몸을 공경하게 되며, 먼저 나의 일을 신의로써 하면 남들이 신의를 본받게 된다(先誠吾心 以誠他心 先敬吾身 以敬他身 先信吾事 以信他事).’는 말씀을 각각염념(刻刻念念)하라 하셨으니 잘 기억하여 두라.”21고 하셨다.

  심(心)-성(誠), 신(身)-경(敬), 사(事)-신(信) 중에서도 심성(心誠)은 가장 근본이다. 마음이 정성스럽지 못하고서는 몸의 공경은 외면수습에 불과하고 일의 믿음은 사상누각이 될 뿐이다. 몸은 마음의 표현인 것이니, 마음의 정성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몸가짐이 공경이요 신용인 것이다.  
  ‘도기장존 사불입(道氣長存邪不入)’이라 하였다. 도에 대한 마음을 늘 쉼과 틈이 없이 정성스럽게 간직하면 사심(邪心)은 일어나지 못하는 법이다. 이렇듯 마음의 정성을 지극히 하는 것이 마음을 편벽됨이 없고 사사됨이 없이 진실하고 순결한 본연의 양심으로 돌아가 안심에 이르게 하는 길이다. 

  이렇게 마음의 한 경지로서 안심에 이르는 데는 심성(心誠)이 중요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앞의 안심입명에서 언급한 ‘상제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안심의 경지에 이르는 첩경이다. 이것을 다음 구절이 명백하게 밝혀주고 있다.

  
“다행히 이 세상에 한량없는 대도가 있으니, 

나의 심기를 바르게 하고, 

나의 의리를 세우고, 

나의 심령을 구하여, 

상제의 임의에 맡기라. 

상제께서 한없이 넓게 위에 계시고, 

도주님은 광대하게 명을 받드시니, 

도수는 밝고 밝아서 무사지공하다. 

인도하심이 아닌가! 

끝없는 극락 오만 년의 깨끗하고 번성한 세계 

(幸於此世 有無量之大道 

正吾之心氣 立吾之義理 求吾之心靈 任上帝之任意 
洋洋上帝在上 浩浩道主奉命 明明度數無私至公 引導乎 
無量極樂五萬年 淸華之世).”
22   


 2. 심성(心省) 


  심성(心省)은 자신의 마음을 성찰하는 것인데, 省을 파자하면 적을 소(少), 눈 목(目)으로 아주 작은 것까지 세세하게 살펴 반성한다는 의미다. 도전님께서는 “상제님의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겨 언행과 처사가 일치되게 생활화하여 세립미진(細入微塵) 되고, 마음이 무욕청정(無慾淸淨)이 되었을 때 도통진경에 이르니라.”23고 하셨다. 

  여기서 세립미진은 세밀하게는 미세한 티끌에까지 미친다는 뜻인데, 세립미진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담겨 있다. ‘상제님의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겨 언행과 처사가 일치되게 생활화하여 세립미진 된다.’는 의미는 상제님의 말씀과 나의 언행과 처사가 늘 일치되게 생활화하여 일상의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미치게 한다는 뜻이다. 일상의 아주 소소한 부분까지 상제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상제님의 말씀과 나의 언행과 처사가 차착이 없고 빈틈이 없이 꼭 그대로 실천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상제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명심하여 언어·행동·처사에서 미세한 티끌 같은 작은 일에도 어김이 없이 하고, 티끌만 한 틈도 없이 말씀에 일치되게 생활화하여 마음이 무욕청정(無慾淸淨)하게 되었을 때 도통진경에 이른다고 하신 세립미진(細入微塵)의 의미가 바로 ‘아주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게 살피는’ 심성(心省)에 내포된 깊은 뜻과 상통한다 하겠다.  

  심성(心省)은 또한 일상생활에서 자신을 내적으로 성찰하여 과하거나 부족한 면이 없는지를 살펴서 고쳐나가는 것이다. 도전님께서는 “공사(公私)의 분(分)과 상하(上下)의 의(義)를 바로 지켜서 도인의 본분을 다하고, 자기를 반성하여 상극(相克)을 막도록 하라.”24고 하시면서 “자기를 반성하여 보지 않고 불만과 불평을 감정화하여 고집한다면 스스로 상극(相克)을 조장하는 것이다.”25, “허령은 사람이 보기에 곧 광증(狂症)이므로 ‘허가 내리면 진을 받지 못한다.’ 하셨으니 매사를 경홀히 생각 말고 일상 자신을 반성하여야 한다.”26고 하시어, 일상 자신을 반성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심성(心省)은 일상 자신을 반성하여 과부족이 없는가를 살펴 고쳐 나가는 것이다.  
  심성(心省)은 상제님의 말씀에 나의 언행과 처사를 티끌같이 아주 작은 일에까지 티끌만 한 빈틈도 없이 일치되게 생활화하는 것이고, 또한 일상 자기 자신을 내적으로 성찰하여 과하거나 부족한 점이 없는지를 살펴서 고쳐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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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맺음말 


  안심을 고찰하면서 먼저 마음의 본질과 작용에 대하여 『전경』에 기록된 마음의 의미와 심(心)의 상형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사람의 마음은 신의 중요한 용사기관이고 신이 출입하고 왕래하는 길이다. 사람이 어떤 마음을 먹는가에 따라 군자신이 응하기도 하고 도적의 기운이 따르기도 하는 것이므로 마음의 발로(發露)에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고 진실하고 순결한 본연의 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한데, 이것이 안심이다. 

  안심의 특성을 두 가지 관점에서 고찰해 보았는데, 하나는 마음의 한 경지로서의 안심이고 다른 하나는 수행의 훈전으로서의 안심이다.

  마음의 한 경지로서 안심은 진실하고 순결한 본연의 마음자리이다. 이러한 마음의 경지에 요구되는 두 가지 요소는 평정(平靜)과 안정(安定)이다. 평정은 편벽됨이 없는 마음 상태이고 안정은 사사로운 욕심이나 삿됨이 없는 마음 상태이다. 또한 평정은 허무한 남의 꾀임에 움직이지 않는 마음 상태이고 안정은 나 자신의 당치 않은 허욕에 정신과 마음을 팔리지 않는 마음 상태이다. 평정되고 안정된 마음의 경지가 곧 안심이다.

  수행의 훈전으로서 안심은 마음이 사람의 언어 행동기능을 주관하는 것이므로 편벽되거나 사사됨이 없이 정직하고 진실한 본연의 양심으로 돌아가서 허무한 남의 유혹에 부동(不動)하고 당치도 않은 나의 허영에 불혹(不惑)하여 기대하는 바의 목적에 도달토록 항상 마음을 안정케 하라는 것이다. 

  수행의 훈전으로서 안심을 실천하는 데는 기도 ⋅ 수련을 생활화하는 것과 훈회⋅ 수칙을 생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도⋅ 수련의 목적은 ‘영통의 통일’에 있으므로 인성의 본질인 양심을 회복하고 기대한 바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 기도⋅ 수련을 꾸준히 정성껏 모시는 것은 필요불가결한 요소이다. 또한 훈회와 수칙을 생활화하는 것이 중요한데 훈회와 수칙의 생활화는 사회도덕을 준행하여 사회의 귀감이 되고 수도의 목적인 도통의 완성을 이루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심성(心性)은 심성(心誠)과 심성(心省)으로 수심연성(修心煉性)한다. 마음의 한 경지로서 안심에 이르기 위해서는 마음을 참되게 하여 쉼과 틈이 없이 지극한 정성으로 진심(眞心)을 견수(堅守)해야 하고, 일상 자신을 반성하여 과부족이 없는지를 성찰해 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안심에 이르는 첩경은 “나의 심기를 바르게 하고, 나의 의리를 세우고, 나의 심령을 구하여 상제님 임의에 맡기라” 하신 도주님의 포유하신 인도에 따르는 것임을 명심하여야 하겠다. 

 <대순회보> 131호 

 
[참고문헌] 
1. 대순진리회 교무부, 『전경』, 대순진리회 출판부, 2010.
2. 대순진리회 교무부, 『대순지침』, 대순진리회 출판부, 1984.
3. 대순진리회 교무부, 『대순진리회요람』, 대순진리회 출판부, 2010.

4. 대순진리회 교무부, 「도전님 훈시」 『대순회보』 4호, 대순진리회 출판부, 1986.
5. 사라스와티/나종우 외 옮김, 『혼의 과학』, 영풍문고, 1997. 
6. 김혁제, 『대학집주(全)』, 명문당, 2007.
7. 노자/황병국 옮김, 『노자도덕경』, 범우사, 2001.
8. 유덕선, 『추구집』, 홍문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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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대순지침』, 48쪽.
02 사라스와티/나종우 외 옮김,『혼의 과학』, 영풍문고, 1997. 

03 교법 1장 11절 참조.

04 교운 2장 41절 참조.
05 『대순진리회요람』, 18쪽.
06 『대순진리회요람』, 9쪽. 
07 『대순지침』, 90~91쪽.

08 교법 3장 47절.

09 『推句集』은 옛날 서당에서 학동들이 사용하던 교재로 세상의 이치를 담은 5언 절구의 시집.

10 교법 3장 47절.

11 『대순지침』, 48쪽 참조.

12 행록 3장 44절. 
13 『대순진리회요람』, 15쪽. 
14 『대순회보』 4호,「도전님 훈시」
15 『대순진리회요람』, 18쪽.
16 네이버 한자사전(http://hanja.naver.com) 참조.
17 『대순지침』, 91쪽.
18 『대순지침』, 42~44쪽.

19 『대순지침』, 76쪽.
20 『대순지침』, 75쪽.
21 『대순지침』, 70쪽.
22 『대순지침』, 91쪽.
23 『대순지침』, 39쪽.
24 『대순지침』, 26쪽.
25 『대순지침』, 92쪽.
26 『대순지침』, 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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