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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의 길대순진리회 훈회(訓誨)에 대한 소고(小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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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영수 작성일2018.10.17 조회3,5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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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위원 박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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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언(序言)
  Ⅱ. 자기 수행의 요체(要諦)
    1. 마음을 속이지 말라
  Ⅲ. 대인 수행의 요체(要諦)
    1. 언덕을 잘 가지라
    2. 척을 짓지 말라

  Ⅳ. 대인 수행의 지상과제(至上課題)
    1. 은혜를 저버리지 말라
    2. 남을 잘 되게 하라

  Ⅴ. 결어(結語)

 

 

Ⅰ. 서언(序言)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는 신성·불·보살들의 하소연으로 인간과 신명을 구제하시기 위하여 강세하신 상제님의 대순(大巡)하신 진리를 종지(宗旨)로 하여 인간개조·정신개벽으로 포덕천하 구제창생 지상천국 건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창설된 종단이다. 지상천국 건설은 인간개조(人間改造)로 화평한 사회를 이룩하는 것으로 달성되고, 인간개조는 대순진리의 종교적 법리에 의한 수도(修道)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대순진리회에서 인간개조를 위한 수도의 덕목은 수도인들이 일상적으로 실천 수행해야 할 훈회(訓誨)와 수칙(守則)에 잘 나타나 있다. 특히 훈회에는 해원상생(解冤相生)·보은상생(報恩相生)의 대순진리의 정수(精髓)가 표현되어 있으므로 훈회를 수행(修行)의 관점에서 조명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본 소고에서는 대순진리회의 훈회를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한 수행의 규범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수도와 수행의 의미를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수도란 인륜(人倫)을 바로 행하고 도덕을 밝혀나가는 것이다.01 광의적 개념으로 도를 닦는다는 것[修道]은 『대순지침』에 “대순진리로 창도하신 유법(遺法)의 훈전(訓典)과 요체(要諦)를 봉행하여야 한다.”02는 말씀이 있듯이 상제님께서 대순하신 진리와 도주님의 진법(眞法), 도전님의 유훈(遺訓)을 받들어 대도(大道)를 현창(顯彰)하는 전 과정이 포함된다.
  협의적 개념으로 수도는 『대순진리회요람』에 밝힌 바와 같이 몸과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상제님을 가까이 모시는 영시(永侍)의 정신을 단전에 연마하여 영통(靈通)의 통일을 목적으로 공경하고 정성을 다하는 일념(一念)을 스스로 생각하여 끊임없이 잊지 않고 지성으로 소정의 주문을 봉송하는 과정인데, 공부(工夫)와 수련(修鍊), 기도(祈禱)로 구분한다.03
  수도의 목적은 영통의 통일에 있다. 도(道)를 닦는다고 하여 어디 바깥으로 따로 닦을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내면에 본래부터 간직된 밝고 맑은 인성(人性)의 본질을 회복하여 각자의 표면의식으로까지 드러내는 것이 수도의 진의(眞意)다.
  수도가 도(道)와 덕(德)을 밝히는 것이라면 수행은 밝혀진 도리와 도덕에 맞게 올바르게 행동 처사하는 것을 말한다. 수행은 심수덕행(心修德行)의 준말로 마음을 닦고 덕을 행하는 것이다. 결국, 수행이란 심덕(心德)을 닦고 언어·행동·처사를 예법과 도리에 맞게 행하여 나가는 것을 말한다.
  수행은 내적으로는 자기를 성찰하는 것이고, 외적으로는 대인관계를 올바르게 하는 것이므로 자기 수행(自己修行)과 대인 수행(對人修行)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자기 수행은 자기 자신을 내적으로 관조하여 심기(心氣)를 바르게 하고 의리(義理)를 세우며, 심령(心靈)의 통일을 목적으로 심신(心身)을 닦아나가는 것이다. 대인 수행은 대인관계에서 언어·행동·처사를 법례(法禮)에 합당케 하고, 도리(道理)에 알맞게 행하여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자기 수행과 대인 수행을 대순진리회 훈회의 다섯 가지 덕목과 관련하여 살펴본다면 자기 수행의 요체(要諦)는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이고, 대인 수행의 요체(要諦)는 ‘언덕(言德)을 잘 가지고, 척(慼)을 짓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대인 수행의 궁극적 지향점은 남에게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반드시 갚을 뿐 아니라 남을 잘 되게 하는 데 있으므로 대인 수행의 지상과제(至上課題)는 ‘은혜를 저버리지 않고, 남을 잘 되게 하는 것’이다.

 

 

Ⅱ. 자기 수행의 요체(要諦)  

 

  1. 마음을 속이지 말라


  자신의 마음을 닦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자기(無自欺)’로 자신이 스스로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정직하고 진실한 마음의 본래 성품을 가리는 사사로운 욕심에 의하여 심기(心氣)를 어지럽히고 의리(義理)를 세우지 못하며 삿된 언행을 일삼는 것이니, 자신의 양심을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말하고 진실하게 행동하는 것이 수행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마음을 내적으로 관조해 보면 크게 두 가지의 마음상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양심(良心)과 사심(私心)이 그것인데, 양심은 천성(天性) 그대로의 본심(本心)이고, 사심은 물욕(物慾)에 의하여 발동하는 욕심(慾心)이다.04 사람들은 양심을 저버리고 사심에 의하여 행동 처사함으로써 시비가 일어나고 불화가 싹트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들 사이에 서로 신뢰하고 화목하여 화평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의 양심을 속이지 않는 ‘무자기’를 생활화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무자기’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선, 모든 면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또 대인관계에서 진실만을 말하도록 생활화하여야 한다. 말은 마음의 소리(言者 心之聲)이니 자신의 양심(良心)을 속이지 않는 정직한 마음은 예법(禮法)과 도리(道理)에 합당한 언행(言行)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사람의 내적 정직성은 그의 말과 행동, 처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사실 지금은 신명(神明)시대이니 말을 하지 않아도 안다. 『전경』에 “크고 작은 일을 천지의 귀와 신이 살피시니라(大大細細 天地鬼神垂察)” 05하셨으니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신(神)이 알고 있는 것이고 신(神)은 우주지간에 무소부재(無所不在)하며 편만(遍滿)한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모든 존재가,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것으로 된다. 그러니 천지 간에 속일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무자기’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서는 다음으로, 매사에 사심(私心)을 버리고 양심인 천성(天性)을 되찾기에 전념하여야 한다.06 인간이 예의를 지키지 않고 도리에 어긋나는 언동을 감행하는 것은 그의 마음이 사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원래 인성(人性)의 본질은 양심이다. 사람의 마음 씀이 양심에 뿌리를 두고 있을 때, 그의 언어·행동·처사가 예법에 합당케 되고 도리에 알맞게 되는 법이다. 그러므로 모든 일을 대함에 사사로운 욕심은 버리고 양심을 되찾기에 전력을 기울여 처신 처세해 나가야 한다.
  ‘무자기’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서는 또한, 인성의 본질인 ‘정직과 진실’로써 일체의 죄악을 근절하여야 한다.07 인간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죄악의 근원은 마음을 속이는 데서 비롯하여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천지가 성공하는 이때에 인간의 운수를 가늠하는 규준이 참과 거짓이다. 상제님께서는 “만물이 가을바람에 따라 떨어지기도 하고 혹은 성숙도 되는 것과 같이 참된 자는 큰 열매를 얻고 그 수명이 길이 창성할 것이오. 거짓된 자는 말라 떨어져 길이 멸망하리라.”08 하셨다. 참으로 진실은 만복의 근본이요, 거짓은 모든 죄악의 근원이다.09 ‘무자기’를 근본으로 생활하여 ‘정직과 진실’의 용천검(龍泉劍)으로 일체의 죄악을 끊어내야 한다.
  이러한 ‘무자기’의 생활화가 주는 효용을 수도의 완성과 언행일치(言行一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면, 먼저 수도의 완성을 기하기 위한 영통(靈通)의 통일(統一)을 목적으로 수도하는 데서 ‘무자기’는 근본이 된다. ‘무자기’는 자신의 심령(心靈)을 통일하는 첩경이다. 도(道)가 곧 나이고 내가 곧 도이며, 나의 본질은 순수한 영(靈)이므로 영이 곧 도다. 그러므로 영통(靈通)이 곧 도통(道通)인 것이다. 심령(心靈)을 통일한다는 것은 심(心)과 영(靈)을 통일하는 것이다. 마음이 맑아져야 영(靈)에 통할 수 있고 마음을 맑고 밝게 하는 근본조건이 ‘무자기’다. 우리가 영통의 통일을 목적으로 수도하면서 ‘무자기’를 근본으로 수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만사의 진리는 하나다. 맹자도 “무릇 도는 하나일 뿐이다(夫道一而已矣).”10라고 하였다. 하나(一)가 도(道)다. 불가(佛家)에서도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 하고 유가(儒家)에서는 오도관일(吾道貫一)이라 하며, 선가(仙家)에서는 포원수일(抱元守一)이라 하고 기독교에서는 유일신(唯一神) 사상으로 모두 하나(一) 자리를 말하고 있다.
  『서전(書傳)』 「서문(序文)」에 “이제삼왕 존차심자야(二帝三王 存此心者也) 하걸상수 망차심자야(夏桀商受 亡此心者也) 태갑성왕 곤이존차심자야(太甲成王 困而存此心者也)”에서 보듯이 그 하나를 얻어 넉넉히 지킨 분이 요·순이고 그것을 간신히 간직한 사람이 태갑·성왕이며 그것을 잃어버린 자가 걸·주다. 그 하나, 진실하고 순결한 인성(人性)의 본질을 회복하여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도리다. 옛 성현의 심법(心法)을 밝히고 자신의 마음을 수양하는 데서 『서전』 「서문」은 좋은 글이다. 상제님께서도 “서전 서문(書傳序文)을 많이 읽으면 도에 통하고 대학 상장(大學上章)을 되풀이 읽으면 활연 관통한다.”11고 하셨다.
  다음으로 생활 속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은 언행일치를 위한 자기 수행에서 큰 효용이 있다. 자신으로부터 나간 말이 거짓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언행일치를 위하여 정성과 노력을 기울일 것이고, 그렇게 이루어진 언행일치는 곧 심행일치(心行一致)가 되어 자신의 내면의 생각을 현실세계에 올바르게 현현(顯顯)시키는 모범적인 창조를 이룰 수 있다. 거짓과 기만으로 쌓은 탑은 사상(砂上)에 누각을 세우는 것과 같아서 일시적인 성공이 보인다 할지라도 무너질 때는 여지가 없다. 반면에 정직과 진실로 쌓은 성탑(誠塔)은 남이 부수려고 해도 무너지지 않는 법이다.
  매사에 ‘무자기’를 근본으로 언행을 삼가나가면 자신의 마음이 맑고 밝아짐은 물론 대인관계에서도 허언(虛言)이 줄어들 것이며 인간 사회에 진실의 푯대를 세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맑고 밝은 청명한 세계로 가는 우리 인류에게 필요한 첫 번째 덕목은 무자기, 즉 ‘마음을 속이지 말라.’이다.

 
  
Ⅲ. 대인 수행의 요체(要諦)

 

  자기 수행의 요체인 ‘무자기’는 대인 수행에서 ‘언덕을 잘 가지고, 남에게 척을 짓지 않는 것’과 ‘은혜를 저버리지 않고, 남을 잘 되게 하는 것’으로 그 결실을 맺게 된다. 다음은 대인 수행의 요체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자기 수행의 요체가 ‘무자기’라면 대인 수행의 요체는 ‘언덕(言德)과 해원(解冤)’이니, 모든 이에 대하여 언덕을 잘 가져야 하며, 존재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척(慼)을 짓지 말아야 한다. 

 

  1. 언덕(言德)을 잘 가지라


  어떤 사람을 대하더라도 언덕을 잘 가져야 한다. “말은 마음의 소리요, 덕(德)은 도심(道心)의 자취”12니, 언덕을 잘 가지라는 것은 말에 덕을 붙여서, 나의 말이 그 사람에게 덕이 되게 하라는 뜻이다. 말은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고 단지 귀에 들리는 파동에 지나지 않아 공(空)한 것이지만 한번 울려 나온 말은 공간에 새겨져서 천지간에 그대로 존재하게 된다. “말대로 된다.”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진실로 그러하다.
  언중유도(言中有道)라, 말속에 도(道)가 있다. 말은 우주의 파동을 담는 그릇이니, 말은 현실 창조의 중요한 틀이 된다. 상제님께서 “금산사의 미륵전 육장금신은 여의주를 손에 받았으되 나는 입에 물었노라.”13 하셨고, 도인들의 글 읽는 소리에 신(神)이 응한다고 하셨으니,14 천지(天地)의 조화권(造化權)이 설단(舌端)에 붙어있는 것이다.  
  모든 일이 말대로 되는 법이니, 말을 함에 있어서는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사람들은 말끝마다 “죽겠다.”느니 “미치겠다.”느니 “안 된다.”는 등의 부정적인 말을 하는데, 그것은 장차 자신이 그렇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상적인 습관을 개선하는 것 중에서 언습(言習)을 긍정적인 것으로 고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 조상들은 하늘이 하시는 일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비가 오신다.”, “눈이 오신다.”라고 표현하고, 당돌한 아이를 꾸짖을 때도 마음에 덕을 담아 “이런 장군 될 놈 같으니…”, “이런 크게 될 놈을 보았나!” 하며, 사람을 사귀다 절교할 때도 비난하는 소리를 내지 않았으니(古人絶交不出惡聲)15, 아무리 서운해도 “잘 먹고 잘 살아라!”라는 말과 함께 헤어졌다. 또한, 날씨와 기후를 가지고 탓하는 것도 옳지 않으니, 더우면 덥다고 하고 추우면 춥다고 하여 말썽을 부리면(말로 성질을 내면), 이 또한 역천(逆天)이 된다.16
  언덕을 잘 가지는 것은 대인 수행의 첫 번째 요체다. 나의 선악은 말에 의하여 남에게 표현되는 것이니, 남에게 말을 선하게 하면 그 사람이 잘되고 남은 복이 밀려서 내가 크게 잘되고 남에게 악담을 하면 그 사람이 잘못되고 그 남은 재앙이 조수같이 밀려와 내 몸에 이르게 된다. 인간사 화복(禍福)의 이치가 모두 언덕(言德)에 달려있으니, 언덕을 특별히 삼가야 한다.17
  그러니 말을 할 때는 언제나 말에 덕(德)을 붙이도록 자각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말에는 감정을 싣지 말고 오직 사랑을 담아야 한다. 오직 도리(道理)를 담아야 한다. 감정이 실린 말은 찢어진 문창호와 같아서 바람을 막아주지 못하니 그 말에 직접 노출되면 상처를 입게 된다. 수많은 덕(德) 중에도 언덕이 중요함을 수유(須臾: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말하는 데 힘이 들지 않고 비용이 드는 것이 아니라고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그 척박한 말에 상대방은 용기가 부족하고 힘이 부족하여 견디기는 견디지만, 그 가슴이 오죽하겠는가. 그것이 척이 되어 갚는 날에는 두 배, 열 배로 보복하니, 그 원한의 마음에 악귀 잡귀 똘똘 뭉쳐 접사(接邪)되는 까닭이다. 친절한 말 한마디에 요순지풍(堯舜之風)이요, 척박한 말 한마디에 걸주풍파(桀紂風波)일어나니, 인간 처세에 언덕을 수행의 모본(模本)이 되게 하여야 한다. 상제님의 밝으심과 천지신명의 수찰(垂察) 아래 부탁하고 또 부탁하시는 것은 부디 언덕을 잘 가지라는 것이다.

  

  2. 척(慼)을 짓지 말라


  대인 수행의 요체는 다음으로 “척을 짓지 말라”는 것이다. 척이란 나의 언행으로 인하여 남이 나에게 품는 원한을 말한다. 남이 나에 대해서 갖는 섭섭한 마음이 척이 된다. 척은 마음과 몸과 뜻으로부터 짓게 되는데, 남을 미워하거나, 언덕을 베풀지 않거나, 남을 억울하게 하거나, 남의 호의를 거스를 때, 그것은 다 척을 짓는 행위로 된다.
  남을 미워하는 마음만 품어도 그 사람은 모르나 그의 신명(神明)은 먼저 알고 척이 되어 갚는 것이니, 설혹 좀 부족한 모습이 보일지라도 잘 용서하여 미워하는 마음을 두지 말고 마음으로부터 온화하게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은 마음의 소리이고 마음은 신명의 처소니, 말을 척박하게 하는 것은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자기 자신의 마음이 먼저 상하게 되는 법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먼저 해지치 않고 남을 해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값없이 하는 말이라고 말을 함부로 해서는 결코 안 된다. 부디 말을 좋게 하여 화목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여야 한다. 인간관계의 초입문은 마음을 속이지 않는 데서 서로 신뢰할 것이고 언덕을 잘 가지는 데서 서로 화목할 것이니, 무자기(無自欺)와 언덕(言德)은 참된 인간의 옥조(玉條)다.
  남을 미워하는 것이 나의 마음으로 척을 짓는 것이고, 언덕을 베풀지 않는 것이 나의 말로써 척을 짓는 것이라면 남을 억울하게 하는 것은 나의 행위로써 척을 짓는 것이다. 사람이 마음이 상할 뿐 아니라 몸마저 상하면 그 원한은 깊은 것이니, 폭언과 폭행으로 남을 억울하게 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또한, 남이 좋은 뜻으로 준 음식을 먹고 혹시 배탈이 났다 하더라도 사색(死色)을 내지 말아야 한다.18 만약 호의를 거스르고 말썽을 부리면 이도 또한 오는 정이 막혀 척이 되는 것이니, 잘 받아들여서 그 마음의 뜻만은 감사하게 생각하면 서로 간에 음식보다 더 고귀한 우애의 정(情)을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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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인 수행에서는 척을 짓지 않는 것과 더불어 척지은 것이 있다면 그 원척을 푸는 해원(解冤)도 중요하다. 하지만 궁극적인 마음가짐은 해원, 즉 맺힌 원(冤)과 한(恨)을 풀기에 앞서 매사에 척을 짓지 말아야 한다. 결원(結冤)이 곧 작죄(作罪)라, 인간 세상에는 원을 맺는 것이 곧 죄를 짓는 것으로 되기 때문이다.
  “경인애물(敬人愛物)”이라는 격언이 있다. 흔히 사람을 공경하고 물건을 아껴 쓰라는 말로 이해되고 있는데 그 의미는 보다 더 광대하다. 기성 종교의 가르침은 “서로 사랑하라.”하지만 우리는 “서로 존중하라.”고 한다. 서로 존중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존경하여 귀중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이것이 경인(敬人)의 뜻이다. 식물이나 동물을 보고 사랑한다는 말은 할 수 있으나 존중한다고는 하지 않는다. 부부가 서로 사랑한다 하면서 반말을 할 수 있으나 서로 존중한다고 하면서 반말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서로 사랑하라.”보다 “서로 존중하라.”는 것이 인존시대(人尊時代)에 더욱 걸맞은 가르침임을 알 수 있다.
  애물(愛物)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이다. 만물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물이 존재하는 가치를 인정하고 그 사물의 존재목적을 펼쳐나가는 자기발전 과정을 허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은 자비(慈悲)고 자비는 허용(許容)이며 허용은 ‘밉고 고움이 없이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바다 같은 마음’이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해치면 나무와 척을 맺고 물가에 가서 물을 더럽히면 물과 척을 맺는 법이다. 상제님께서 “천지에 신명이 가득 차 있으니 비록 풀잎 하나라도 신이 떠나면 마를 것이며 흙 바른 벽이라도 신이 옮겨가면 무너지나니라.”19고 하셨듯이 산에 가서 몸을 다치거나 물에 빠지는 것도 다 나무와 물의 정령(精靈)과 원척(冤慼)을 맺은 결과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물 한 방울에도 척을 지어서는 안 되는 법이거늘 하물며 천지의 신명이나 만물의 영장인 사람에게 척을 짓는 행위는 다시 말하여 무엇하겠는가.
  인종과 언어, 문화의 차이, 복귀빈천, 영웅호걸, 이 세상 그 누구를 만나더라도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품지질(天稟之質)은 다 같이 타고났고, 각자 잘난 맛은 똑같으니, 그 누구를 천케 볼 수 있겠는가? 우월감은 환상이다. “경인애물(敬人愛物)!” 사람을 존경하여 귀중히 여기고 만물을 사랑하여, 범사에 척을 짓지 말아야 한다.
  척을 짓지 않는 데서 중요한 것은 또한 자기 자신이 그 무엇으로부터도 원하거나 바라는 바가 없어야 한다. 사람은 기대한 바가 있었으나 그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서운해 하는 법인데, 이 서운한 마음이 커지면 또한 척이 된다. 상대방이 아무리 잘해준다 하더라도 나 자신이 늘 부족을 느낀다면 스스로 척을 부르게 되는 것이니, 자기 자신을 완성하는 영적 수행을 생활화하고, 부족한 것이 없는 구족(具足)한 삶을 살며 범사에 늘 감사하는 마음을 기른다면 무척(無慼) 좋은 삶이 될 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명예를 얻고 영화를 누리며, 재능을 구가하고 소원을 성취하면 잘 사는 것인가? “무척 잘 산다.”는 말이 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척(無慼)이라야 잘 사는 것이다. “무척 좋다.”, “무척 잘 한다.”, “무척 잘 산다.” 하듯이 척이 없어야 하는 일이 잘 되고, 기분과 정신 건강에 좋으며, 근심 걱정이 없이 잘 살게 되는 것이다.
  우주적 변형의 이 시기에 우리는 ‘무자기’로 정신을 개벽하고 ‘언덕을 잘 가지며 척을 짓지 않는’ 생활을 실천함으로써 몸과 마음이 늘 맑고 밝고 깨끗한 무척(無慼) 잘 생긴 신선과 선녀로 거듭날 수 있다. 그리하여 이 소중한 지구별에 지상천국을 건설하며 지상신선을 실현하는 것이다.
  맑고 밝은 청명한 세계로 가는 우리 인류에게 필요한 두 번째 덕목은 ‘언덕을 잘 가지라.’이다. 맑고 밝은 청명한 세계로 가는 우리 인류에게 필요한 세 번째 덕목은 ‘척을 짓지 말라.’이다.

 

 

Ⅳ. 대인 수행의 지상과제(至上課題)  

 

  지금까지 수행에는 자기 수행과 대인 수행이 있으며 자기 수행의 요체는 ‘무자기’고 대인 수행의 요체는 ‘언덕과 해원’이라는 데 대해서 살펴보았다. 다음은 대인 수행의 지상과제(至上課題)에 대하여 논하고자 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숙고해보면 영겁의 세월동안 무한한 은혜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은혜를 자각하고 보은(報恩)하면서 사는 것이 인간의 근본도리다. 은혜를 저버리지 않고 그 은혜에 대한 보은의 도리를 다할 뿐 아니라 여기서 더 나아가 남을 잘 되게 하는 것이 대인 수행의 과제다. 대인 수행에서 궁극적으로 해결하고 지향해야 할 과제는 남에게 받은 혜택을 잊지 않고 갚아야 한다는 것과 지은필보(知恩必報)하는 데서 더 나아가 남을 잘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인 수행의 지상과제는 ‘보은(報恩)과 적덕(積德)’이니, 은혜를 저버리지 말아야 하며, 남을 잘 되게 하여야 한다.

  

  1. 은혜를 저버리지 말라


  대인 수행의 지상과제는 우선, 은혜를 잊지 않고 반드시 갚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많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여러 가지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은혜란 남이 나에게 베풀어준 혜택을 의미하고 은혜를 저버린다는 것은 그 은혜를 망각하고 배반한다는 것이니, 남에게 은혜를 받거든 반드시 갚아야 한다.20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사 도리(人事道理)의 근본은 남에게 받은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 데 있다. 『대순진리회요람』에는 은혜를 잊지 않고 갚아 나가야 할 도리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생(生)과 수명(壽命)과 복록(福祿)은 천지(天地)의 은혜이니 성(誠)·경(敬)·신(信)으로써 천지 보은(天地報恩)의 대의(大義)를 세워 인도(人道)를 다하고, 보명(保命)과 안주(安住)는 국가 사회의 은혜이니 헌신 봉사의 충성(忠誠)으로써 사회발전과 공동복리를 도모하며 국민의 도리(道理)를 다하고, 출생과 양육은 부모의 은혜이니 숭선 보본(崇先報本)의 대의로 효도(孝道)를 다하고 교도 육성(敎導育成)은 스승의 은혜이니 봉교 포덕(奉敎布德)으로써 제도(弟道)를 다하고, 생활과 녹작(祿爵)은 직업의 은혜이니 충실과 근면으로써 직분(職分)을 다하라.”21

  

  천지간에 오행(五行)의 기운을 받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삶을 깊이 있게 생각해보면 천지(天地)의 은덕과 일월성신(日月星辰)의 은혜, 지수화풍(地水火風)의 4대, 삼라만상의 온갖 혜택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다. 사람이 인세를 살아가면서 지은필보(知恩必報)22하는 정신을 지니고 실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현 세태가 그 은혜를 망각하고 배은망덕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상제님께서는 일찍이 인세를 진단하시면서 “세상에 충이 없고 세상에 효가 없고 세상에 열이 없으니 천하가 다 병이 들었다(世無忠 世無孝 世無烈 是故天下皆病).”23라고 하셨다. 이 천하개병의 상태를 치유하는 것이 해원상생 보은상생의 대순진리에 의한 종교적 법리로 인간을 개조하는 것이다. 인간이 개조되어 전체 인류가 참된 도인으로 거듭나면 인류는 화평하여져 세계평화가 이룩되는 것이고 이것이 지상선경의 초입문이다. 결국, 인세에서 도리(道理)란 남에게 입은 혜택, 즉 은혜를 갚아나가는 것을 이른다.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지켜야 할 도리는 크게 다섯 가지가 있다.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서 행해야 할 도리 중에서도 가장 으뜸이자 근본적인 도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이 받아 누리는 혜택 중에 가장 근본적이면서 중요한 것과 관련이 있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근원적이면서도 중요한 것은 생명과 수명과 복록이다. 생(生)과 수명과 복록은 천지의 대은(大恩)이므로 천지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큰 의리를 세워서 성(誠)·경(敬)·신(信)을 다하여 상제님 은혜에 보답하여야 한다. 이것이 인간의 근본도리인 인도(人道)다. 인간은 누구나 구천상제님(하느님) 주재 하의 인간임을 자각하여야 한다.24 나 자신이 숨을 쉬고 살 수 있는 생명과 수복(壽福)을 주신 하느님의 은혜를 자각하고 그 은의를 잊지 않고 공경하고 정성을 다하는 삶을 사는 것이 인간 된 근본도리다. 
  하늘이 이 세상에 사람을 낼 때에는 헤아릴 수 없는 공력을 드린다고 하였다. 조상선령신들이 쓸 만한 자손을 타내기 위해서 60년 동안 공에 공을 들여도 얻지 못하는 선령도 많다고 하였다. 이렇게 어렵게 태어난 것을 생각할 때 꿈같은 한세상을 어찌 잠시인들 헛되이 보낼 수가 있겠는가.25 인간의 도리를 생각할 때는 이치로 궁구하여 보이지는 않아도 상제님의 은혜를 자각할 뿐 아니라 나의 출생 이전의 조상의 공력까지 생각하여 그 근본에 보답하는 정신을 지녀야 한다. 뿌리가 깊지 않은 나무가 지엽이 어찌 무성할 수 있으며, 샘이 얕은 물이 가뭄에 어찌 마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선천과 후천의 과도 역정에서 전체 인류에 대한 생사판단의 기준은 숭선보본(崇先報本)의 정신에 있다. 선령신(先靈神)을 섬길 줄 모르는 자는 뿌리가 고사한 나무와 같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다.26 모든 만물은 생장 발전하게 하는 근원인 생장점이 있고, 그것이 식물에는 뿌리에 있으며 인간에게는 생명의 중심인 심장에 있다. 뿌리 없는 식물이 없고, 근원이 없는 강물이 존재하지 않듯이, 사람 또한 조상선령신이 없는 자는 없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이치는 하나다. 자신의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 것은 사람의 근본 소양 중의 하나로서 배은망덕한 자는 천지간에 쓸 데가 없다. 그러므로 『전경』에 “배은망덕 만사신(背恩忘德萬死神)”27이라 하였다. 배은망덕은 신도(神道)에서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도전님께서도 “은의(恩義)를 알고 그 은의에 보은하여야 하며 배은망덕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28라고 하셨다.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지켜야 할 도리는 다음으로 국가 사회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사회의 기본단위인 가정에서부터 학교생활, 사회생활에 이르기까지 은의 어린 사회를 떠나서는 인간답게 살아갈 수 없다.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목숨을 유지하고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나라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나라 없는 백성의 설움이 무엇과 같은지 뼈저리게 겪었다. 실로 국가 사회는 ‘나’라는 인생의 존립을 위한 근간이다. 그러므로 ‘충즉진명(忠則盡命)’이라 하는 것이다. 한 나라의 국민 된 도리는 국법을 준수하고 사회도덕을 준행하여 사회발전과 공공의 복리를 증진하는 일에 헌신 봉사함으로써 성충(誠忠)을 다하는 데 있다. 이것이 국민의 도리, 즉 민도(民道)다. 내가 사는 조국은 우리 조상들의 피와 땀으로 일구어진 삶의 터전이자 유산이니 우리 또한 조국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뿌리도 소중히 보전하며 조상의 빛난 얼을 계승 발전시켜 자랑스러운 민족문화를 우리의 후대들에게 전해야 한다.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지켜야 할 도리는 또한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은혜는 하해(河海)와 같다. 우주지간의 그 어떤 존재도 지구상에 인간으로 오면 강포에 싸인 3년 동안은 누군가는 돌보는 사람이 옆에 있어 진자리는 마른자리로 갈아주고 제때에 젖을 주며, 안전하게 보살펴주어야 생존할 수 있다. 이 강포에 싸인 3년의 은혜를 갚기 위하여 옛날 조상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3년간 시묘살이를 했던 것이다. 실제로는 그 후로도 하나의 사회적 구성원으로 자립할 때까지 부모님의 노고는 계속된다. 이러한 부모님의 은혜를 갚는 데는 나의 온 힘을 다하여야 한다. 그래서 ‘효당갈력(孝當竭力)’이라 하였다. 중국 속담에 “말똥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雖臥馬糞 此生可願).”29 하고, 우리 속담에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듯이 죽어 진수성찬보다 살아서 한 잔 술이 나은 것이다. 부모님 살아생전에 자식 된 도리, 즉 효도(孝道)를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의 기본단위가 가정이듯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효행이 백행의 근본이 된다. 우리의 일반적인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부모님께 잘하는 사람은 사회생활에서도 경위가 밝고 예의 바른 경우가 많다.
  조상선령을 받들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인세에서 복(福)을 받는 근원이기도 하다. 나무의 뿌리가 땅에 있다면 인간의 뿌리는 하늘에 있다. 숭선(崇先)하여 보본(報本)하는 것은 나무의 뿌리에 물과 거름을 주는 것과 같아서 자신이 잘되고 복을 받는 이치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인간의 뿌리는 하늘에 있고 복은 우로(雨露)와 같이 하늘에서 내린다. 그러므로 상제님께서 교훈하시기를 “복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오.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것이 아니니 사람의 도의로서 부모를 잘 공양하라.”30 하신 것이다.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지켜야 할 도리는 또한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격과 소양을 갖출 수 있도록 가르쳐 인도하고 정신과 마음을 육성하는 것은 스승의 은혜다. 흔히 부모의 은혜는 하해와 같이 넓다고 하고 스승의 은혜는 하늘과 같이 높다고 한다. 하늘같이 높은 스승의 은혜를 생각하여 감히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현 세태는 제자가 스승을 해하는 하극상(下剋上)의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는 선천세상의 상극지리가 인간과 사물을 지배하여 도수가 그릇되어 일어나는 것이나 앞으로는 인륜과 도덕이 바로 서게 되므로 그런 불의를 감행하지 못하게 된다. 『전경』에 그런 짓을 감행하는 자에게는 배사율(背師律)의 벌이 있을 것이라 하였다.31 진실로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다. 정신과 마음을 육성시켜 주신 스승의 은혜를 깊이 자각하고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들어 익혀 받은 지식과 재능으로 천하에 덕을 펴는 것이 제자 된 도리[弟道]를 행하는 것이다.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지켜야 할 도리는 또한 직업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다. 인간이 먹고산다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본능이기도 하지만 인류의 문명은 이런 생활적 본능에 기초한 욕망으로 그 발전이 추동되기도 하는 것이다. 육체를 위하여 먹고살고 부모를 공양하고 처자를 돌보는 생업에 종사하는 것은 그 자체가 바로 생존의 도리(道理)이며 직업의 신성성(神聖性)이다. 그러므로 직(職)에 상하가 없고 업(業)에 귀천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먹고사는 데만 너무 몰입하면 탐(貪)이 되니, 생업과 영적 수행이 조화를 이루어야 이상적인 사회생활이 될 것이다. 생활의 풍성함은 직업의 은혜니, 근면하고 성실하게 맡은 바 직분에 충실한 것이 직업인의 도리다.
  생(生)과 수명과 복록은 천지의 대은(大恩)이니 성(誠)·경(敬)·신(信)으로써 하느님께 보답해야 하고, 사회적 존재로서 지위와 가치가 유지되는 것은 국가 사회의 대은이니 사회발전과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하여 성충(誠忠)을 다하여 헌신 봉공하며, 생장 양육은 부모의 대은이니 효성(孝誠)으로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고, 교양 육성은 스승의 대은이니 익혀 받은 학식으로 국가 사회발전에 헌신 봉사하고, 풍요로운 생활은 직업의 대은이니 충실 근면으로 직무에 전력하여야 한다.32

 
  2. 남을 잘 되게 하라


  대인 수행의 지상과제는 다음으로 남을 잘 되게 하는 것인데, 남을 잘 되게 하는 것은 화평한 사회를 이룩하는 기본원리며 구제창생의 근본이념이다. 남을 위해서는 수고를 아끼지 말고, 어려운 일에는 내가 먼저 어깨를 들이밀며, 일을 이루기 위해서[成事]는 남과 힘을 합하여야 한다는 협동정신을 가져 범사에 화합과 화목을 수위(首位)로 삼고 나가야 한다.33
  춘무인(春無仁)이면 추무의(秋無義)34라, 봄에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수확할 수 없듯이 인간관계에도 사랑을 심지 않으면 신의(信義)를 거둘 수 없다. 또한, 내가 먹어야 내 배가 부르듯 내가 짓지 아니한 복이 어느 겨를에 나에게 이르겠는가를 생각하여 적선적덕의 복을 많이 지어야 한다. 적선적덕이란 남이 어려울 때 도와주는 것이며, 적선적덕을 많이 하면 샛강이 한강에 이르듯 자연히 대복이 되는 법이다.
  복을 구할 때는 남은 복이 크다. 남이 잘 되는 것을 부러워하지 말고 남들이 다 잘 되고 남은 복만 차지하여도 크고 무궁한 복이 많이 있다.35 우리 시대의 운수는 강원도 감자밭에서 감자를 캐듯이 처음에는 자잘한 감자알이 먼저 나오고 크고 실한 것은 나중에 나오는 것과 같아서 사두용미(巳頭龍尾)의 운이다. 그리고 이것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감자를 자루에 담을 때 상처가 나고 조금만 썩어도 비록 아깝지만 자루에 담지 않는데, 그것은 다른 모든 감자가 장차 썩게 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맑게 정화하는 것은 이처럼 중요하다. 운수가 아무리 좋아도 자기 자신을 맑고 깨끗하게 정화하지 못한다면 운수마당에 동참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명심하여야 한다. 새로운 사회에는 또다시 원한의 씨를 심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인간사 개운(開運)의 비법은 남을 잘되게 하는 것이다. 남을 잘되게 하는 것이 내가 잘되는 길이다. 사람의 인격은 그의 덕이 미치는 범위다. “덕분(德分)에 잘 되었다.”는 말을 하듯이 그 사람의 덕을 나누는 범위가 곧 그 사람의 인생의 범위로 된다. 남을 잘 되게 하면 사람들의 인망(人望)을 얻게 되고 인망에 오르면 신망(神望)에 올라 어진 신명들이 서로 도와줄 것이니, 인망과 신망이 곧 그 사람의 덕망(德望)이다.
  분리는 환상이다. 세상에 온통 내가 아닌 것이 없는데, 분리의 체험을 겪고 있는 영혼들이 상대를 내가 아닌 남으로, 심지어 사라져야 할 적으로 보기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다. 옛 선승도 “천지는 나와 더불어 한 뿌리요, 만물은 나와 더불어 한 몸이다(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36라고 읊었다. 너와 내가 한 몸이라는 정신으로 대순진리회가 주창하는 해원상생의 평화사상을 인류가 받아들인다면 지구에 더 이상의 전쟁과 분쟁은 없을 것이다. 각종 사고에 사람들이 보여주는 온정의 손길은 이 아여일체(我汝一體) 정신의 반영이다. 남의 일같이 느끼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입장을 바꾸어놓고 생각하는 것도 훌륭한 깨달음의 도구다. 그 사람의 신을 신고 걸어보지 않고서는 진실로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니 예수의 “남이 너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그에게 하라.”는 말씀과 공자의 “네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금언은 역시 인간관계의 황금률이다.
  우리 시대에 피흉추길(避凶追吉)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덕을 쌓고 사람을 올바르게 대우하는 데 있다. 옛날 천지의 기운이 하늘에 있을 때(天尊時代)는 별을 보고 사람의 운명을 예단하였고, 나라의 길흉화복도 천문을 보고 점쳤으며, 길성소조(吉星所照)라 하여 길한 별이 조림(照臨)하는 곳을 찾아다녔다.37 그리고 천지의 기운이 땅에 있을 때(地尊時代)는 지기를 얻고자, 바람을 피하고[風] 물을 얻는[水]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을 찾아 조상의 묘를 쓰고 가옥을 지어 명당의 발음을 기대하였다.
  이제 바야흐로 천지의 기운이 인간에게 임하는 때가 되었다. 우리 시대를 인존시대(人尊時代)라 한다. 이때는 사람이 모든 조화 권능의 중심이 되는 고로 당연히 모든 길흉화복은 사람을 통하여 들어오고 나간다. 한 사람이 품은 원한으로도 천지의 기운이 막히고38, 불천불역(不遷不易)의 천운구인(天運救人) 시대가 바로 지금이다.39 그러므로 원한 중에 사람과 맺는 척보다 큰 것이 없고, 복(福) 중에 인복(人福)보다 큰 것이 없는 것이다. 항상 남을 사랑하고 어진 마음을 가져, 따뜻하고 공손하며, 선량하고 겸손하여 남을 대할 때 척을 짓지 말고, 보은과 적덕으로 은혜를 잊지 않고 남을 잘 되게 해나가는 것이 피흉추길(避凶追吉)의 첩경이다.
  사람이 잘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사람이 잘 된다는 것은 자신의 지극한 보배인 심령(心靈)을 깨닫고 심령을 통일하여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심령을 통일하여 하나가 된다는 것은 순결하고 진실한 인성(人性)의 본질을 회복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도(道)가 곧 나이고 내가 곧 (道)라는 경지에서 만물의 생성 변화 발전과 조화 질서에 이바지하는 것이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일원인 인간으로서 천지보은(天地報恩)의 궁극적인 길이다. 그러므로 남을 잘 되게 하는 데 있어 그 내면의 신성(神性)을 보고 신성으로서 대하며, 그가 상제님을 받드는 천지 보은의 대의(大義)를 세워 인도(人道)를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이것은 대순진리회에서는 포덕(布德)이라 한다. 남을 잘 되게 하는 실천의 도구는 마음과 말과 행동이 있으니, 상호존중의 마음을 가지고, 언덕을 잘 가져 서로 화목하게 지낼 것이며, 남이 어려울 때 도와줌으로써 상생의 도리를 실천하여야 한다.
  새로운 사회로 가는 우리 인류에게 있어서 필요한 네 번째 덕목은 ‘은혜를 저버리지 말라.’이고, 그 다섯 번째 덕목은 ‘남을 잘 되게 하라.’이다.

  

 

Ⅴ. 결어(結語)

 

  지금까지 수도(修道)와 수행(修行)의 의미를 살펴보고 수행에는 자기 수행과 대인 수행이 있다는 것과 자기 수행의 요체는 ‘무자기(無自欺)’이고, 대인 수행의 요체는 ‘언덕(言德)과 해원(解冤)’이며, 대인 수행의 지상과제는 ‘보은(報恩)과 적덕(積德)’이라는 데 대하여 논의하였다.
  자기 수행의 요체는 ‘무자기’로 스스로의 양심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무자기’는 마음을 닦고 덕을 행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무자기’는 또한 도통의 첩경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예법과 도리에 어긋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사사로운 욕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고, 인간세 모든 죄악의 근원은 마음을 속이는 데서 비롯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성의 본질인 정직과 진실로써 일체의 죄악을 근절하고, 매사에 사심을 버리고 양심인 천성을 되찾기에 전념하여야 한다.
  대인 수행의 요체는 ‘언덕과 해원’으로 남을 대할 때 언제나 언덕을 잘 가지고, 척을 짓지 말아야 한다. 말은 마음의 소리고 덕은 도심의 자취니, 항상 남에게 말을 좋게 하여 덕이 되게 하여야 한다. 인간사 화복(禍福)의 이치가 모두 언덕에 달려 있으니, 언덕을 특별히 삼가야 한다. 그리고 언제나 남을 사랑하고 어진 마음을 가져 온공(溫恭)·양순(良順)·겸손(謙遜)·사양(辭讓)의 덕으로써 남을 대할 때 척을 짓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인수행의 지상과제는 ‘보은과 적덕’으로 남에게 입은 혜택에 대하여 은혜를 저버리지 말고, 모든 기회를 통하여 남을 잘 되게 하는 것이다. 상제님의 은혜에 성·경·신으로 보답하는 인도(人道)를 행하고, 국가사회의 은혜에 성충(誠忠)으로 보답하는 국민의 도리를 행하며, 부모님의 은혜에 효로써 보답하는 효도(孝道)를 행하고, 스승의 은혜에 봉교(奉敎)·포덕(布德)으로 보답하는 제도(弟道)를 행하며, 직업의 은혜에 충실과 근면으로 보답하는 직업인의 도리를 다하여 지은필보(知恩必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남을 잘 되게 하는 것은 상생대도(相生大道)의 기본원리며 구제창생의 근본이념이다. 남을 위해서는 수고를 아끼지 말고,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힘을 합하여야 한다는 협동정신으로 매사에 협력하여 일을 도모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자기 수행과 대인 수행의 제 규범은 대순진리회의 훈회에 완벽하게 체현되어 있다. 이렇게 대순진리회의 다섯 가지 훈회는 맑고 청명한 지상천국을 건설하는 데 있어서 전체 인류가 보편적으로 견지해야 할 생활규범이자 심적(心的) 수행의 향도성(嚮導星)이다. 

“마음을 속이지 않는 데서 서로가 신뢰할 것이고,
 언덕을 잘 가지므로 화목할 것이며,
 척을 짓지 않는 데서 시비가 끊어질 것이고,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 데서 배은망덕이 없을 것이며,
 남을 잘 되게 하는 공부이니
 이것이 우리 도의 인존사상이며 바로 평화사상인 것이다.”40

 
       훈회(訓誨)

一, 마음을 속이지 말라.
二, 언덕(言德)을 잘 가지라.
三, 척(慼)을 짓지 말라.
四, 은혜(恩惠)를 저버리지 말라.
五, 남을 잘 되게 하라. 

 <대순회보> 156호

 

[참고문헌]
·『전경』
·『대순지침』
·『대순진리회요람』
·『대순회보』
·『서전(書典)』
·『맹자(孟子)』
·『벽암록(碧巖錄)』
·『이담속찬(耳談續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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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대순지침』, p.37 참조.
02 『대순지침』, p.50.
03 『대순진리회요람』, p.18 참조.
04 『대순진리회요람』, pp.18~19 참조.
05 공사 3장 40절.
06 『대순진리회요람』, p.19 참조.
07 상동.
08 예시 30절.
09 교법 3장 24절 참조.
10 『맹자(孟子)』, 「등문공상(滕文公上)」
11 교법 2장 26절.
12 『대순진리회요람』, p.19 참조.
13 행록 2장 16절.
14 교법 2장 23절 참조.
15 교법 3장 13절 참조.
16 권지 2장 36절 참조.
17 『대순진리회요람』, p.19 참조.
18 교법 2장 46절 참조.
19 교법 3장 2절.
20 『대순진리회요람』, p.20.
21 『대순진리회요람』, p.20.
22 은혜를 알고 반드시 갚는다.
23 행록 5장 38절.
24 『대순지침』, p.50 참조.
25 교법 2장 36절 참조.
26 공사 3장 9절 참조.
27 공사 3장 9절.
28 『대순지침』, p.67.
29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명나라의 왕동궤(王同軌)가 엮은 『이담(耳談)』에 우리나라 고유의 속담을 증보하여 만든 속담집 『이담속찬(耳談續纂)』에 나오는 속담.
30 교법 1장 41절.
31 교법 3장 34절 참조.
32 『대순회보』, 2호, 「도전님 훈시」
33 『대순진리회요람』, pp.20~21 참조.
34 교법 2장 45절.
35 교법 3장 9절 참조.
36 승조법사(僧肇法師, 383~414)의 말로 『벽암록』 제40칙 「남전일주화(南泉一株花)」에 나온다.
37 교법 2장 20절 참조.
38 교법 1장 31절.
39 『대순지침』, p.22 참조.
40 『대순지침』,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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