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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남거치성, 그 의미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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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20.06.17 조회3,0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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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우리는 첨단 정보 시대에 살고 있다. 궁금한 정보나 원하는 물건을 온라인에서 검색해서 구할 수 있다 보니 좀 더 간편하고 신속한 방법을 더욱 선호하게 되었다. 수도에 갓 입문해 이런 세태에 익숙한 사람이다 보면 격식을 갖추고 오랜 시간 동안 모셔야 하는 치성에 대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치성의 의미를 바르게 자각하여 그 가치를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치성은 나 자신에게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예(禮)의 어원은 신(神)을 섬기고 복(福)에 이르게 하는 근거 

  대순진리회에서 봉행되는 치성(致誠)은 가장 신성한 영대(靈臺)에서 구천상제님과 도주님을 비롯한 천지신명께 지극한 정성을 올리는 의례로 종단 중요행사일01과 세시(歲時)02에 맞추어 행해진다. 이날 참여한 수도인들은 진멸지경에 처한 세상을 구하기 위해 인간으로 오셔 천지공사를 펴신 상제님께 극진한 정성을 올려 예로써 감사함을 표하고 도주님의 유법(遺法), 도전님의 유훈(遺訓)을 되새겨 정성을 다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수도에 미진함이 없는지 뒤돌아보게 된다.

  도전님께서는 제사가 조상에게 정성을 표하듯이 우리의 치성은 하늘에 계신 상제님께 정성을 올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치성도 제사와 마찬가지다. 우리 도에서 천상에 계시는 하느님께 올리는 것과 집에서 제사 지내는 것이 비슷한 것이다. 구천상제님 하감지위, 옥황상제님 하감지위라는 말이 있지 않으냐! 모든 음식을 갖다 놓고 하감 하시고 응감하시도록 정성을 들이는 것이다.03 

 

 

  상제님과 천지신명이 하감(下鑑)하시고 응감(應感)하시도록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모든 음식을 올릴 때 상제님의 대업을 받든다는 진실한 마음으로 모든 정성을 다해야만 신명이 응한다는 점을 강조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제사가 조상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정성으로 표현하듯이 치성은 말 그대로 정성을 다하는 것으로 인간이 하늘이나 신에게 드리는 제례(祭禮)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우리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예(禮)’를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공동체에서 구성원 간의 윤리 도덕과 관련된 질서로 이해하고 있다. 제례가 신에게 제사를 모시는 절차라는 예로서만 이해한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예 중에서 한 부분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어원을 찾다보면 신에게 제사를 모시는 행위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알게 된다.

  『설문해자(說文解字)』는 예(禮)의 의미를 “예는 행하는 것이다. 신(神)을 섬기고 복(福)에 이르게 하는 근거이다. 시(示)와 풍(豊)을 따른다.”04라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시(示)’ 자가 하늘이 인간에게 하늘의 뜻을 보여줌05을 뜻한다고 한다면 ‘풍(豐)’ 자는 인간이 하늘에 정성을 올리는 것06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예라는 개념이 신인관계(神人關係)에서 시작되어 복(福)이라는 관념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제례를 통해 얻게 되는 복(福)은 무엇을 의미할까? 『예기』에서는 “어진 이의 제사는 반드시 그 복을 받지만, 세상에서 말하는 복이 아니다. 복은 갖추는 것이요, 갖춘다는 것은 모든 일에 순응함의 명칭이다. 순응하지 않음이 없는 것을 갖추었다 하니, 안으로 자신을 다하고 밖으로 도(道)에 순응하는 것이다.”07라고 하였다. 복이 사적인 이익과 관련된 물질적 혜택이 아니라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하늘의 순리에 따르는 그 마음을 이른다고 할 수 있다.

  여러 의례 중에서도 제례가 가장 중요하게 인식된 이유는 모든 존재의 근원이자 주재자인 하늘에 제사하기 때문이었다.08 옛사람들은 만물이 하늘에 근본을 두고 인간이 조상에 근본을 두듯이 그 근원을 상제(上帝)로 보았다. 그런 점에서 상제께 올리는 교사(郊祀)09가 근본에 보답하고 시원으로 돌이키는 것10이라고 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상제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자기 생명의 근원에 보답하고 생명의 근원과 일치를 추구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11

  제례 중에서도 으뜸이 되는 천제(天祭)는 천자만이 시행할 수 있었다. 이것은 고대 중국에서 왕만이 하늘과 소통할 수 있다는 의식에서 시작된 것으로 당시 왕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 국가적 제의를 주재하면서 최고 통치자로서 무(巫)의 직능을 지녔다.12 그러다가 왕 이외의 신하들이 직접 천제를 집행해 신의 뜻을 알려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했는데, 왕은 신의 뜻을 받드는 권력 체계에서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여겨 이러한 행위를 법으로써 금지해 버렸다.13

  이렇듯 천제는 수도에서 100리 외곽에서 열렸던 교사(郊祀)와 하늘에 지내는 봉제(封祭)와 땅에 지내는 선제(禪祭)를 아우르는 봉선제(封禪祭)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교사가 천자라면 누구나 시행할 수 있었다면 봉선제는 태평성대를 이룬 업적이 있는 천자만이 제사를 올릴 수 있었는데, 진시황 이래 한무제(漢武帝), 당현종(唐玄宗) 등 시대의 획을 그었던 황제만이 봉선제를 올릴 수 있었다.14

  이렇게 볼 때 제천(祭天)은 모든 존재의 근원인 상제에게 정성을 올림으로써 인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초월적인 대상에게 복을 얻고자 하는 염원이 강하게 내재하여 있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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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치성에 도통을 염원하는 도문소자로 참석한다.

  종단에서 봉행되는 치성은 구천상제님과 도주님, 천지신명 전에 조상과 인간이 같이 참여하는 천제(天祭)라고도 할 수 있다. 도주님께서는 상제님께서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상제(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上帝)’이심을 정확히 밝혀 봉안하셨다.15 『대순진리회요람』에서 ‘구천(九天)’이 가장 높은 위임과 ‘응원(應元)’이 모든 존재가 상제님의 천명에 응하고 있음을 의미하듯이 우리는 치성 때 우주의 최고신이신 구천상제님께 자기 존재의 근원에 대한 감사를 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후천을 열고자 하시는 상제님의 뜻을 받드는 도문소자(道門小子)의 자격으로 치성에 참석한다. 수도인은 치성 중에 봉축주(奉祝呪)·태을주(太乙呪)·기도주(祈禱呪)·도통주(道通呪)를 봉송(奉頌)한다. 봉축주에 있는 ‘도문소자 소원성취케 하옵소서’라는 염원은 도통주의 ‘이 도통도덕으로 상통천문하고 하달지리하고 중찰인사케 하옵소서’라는 도통에 대한 다짐으로 구체화된다. 이로써 상제님의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받들어 도통군자가 되겠다는 염원을 확인하고 재차 다짐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군자(君子) 개념은 과거 유교에서 천자를 도와 한 국가를 다스리는 정치적 지배자 위치에 있다가 공자 이후 도덕을 실천하는 존재로 이해되었다. 그렇지만 대순진리회에서 도통군자는 수도인이 도통하여 상제님을 받들어 천하를 고쳐 다스려 나가는 존재가 된다.16 도통군자가 후천에서 삼계의 역사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치성은 천지공사에 끝까지 동참하겠다는 결의를 세우는 행사라고 할 수 있다.

  도전님께서는 “음양합덕은 정음정양(正陰正陽)이며 천지인신(天地人神) 정(正) 위치이다. 덕이 합하는 것은 화합(和合)이다. 신인조화(神人調化)는 신과 인간이 서로 화합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17 이때 ‘정(正)’이라는 가치 기준은 상제님의 법방에 있으며 신과 인간 모두 상제님의 가르침에 따라 올바르게 실천해야 한다는 점을 요구한다. 천지신명이 상제님의 법방에 따라 천지공사를 수행하듯이 우리 역시 그 법방에 맞춰 어김이 없이 실천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상제님의 천지공사에 참여할 수 있는 수도인이 되기 위해 올바르게 정성을 다할 때 신과 화합이 되는 것이다.

  치성은 정성으로 시작해서 정성으로 끝난다. 이러한 정성은 경건한 마음가짐과 절도있는 몸가짐으로 나타난다. 주자(朱子)는 군자가 제사를 지낼 적에는 7일 동안 경계하고 3일 동안 재계하여 정성을 지극히 한다고 말하였다.18 치성에 참석하기 위해서 충분히 여유를 두고 도장에 올라오는 것도 정성을 들이기 위한 준비 자세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치성 시간에 임박해 올라간다는 것은 지극한 정성을 들이기 위해서라도 삼가야 할 것이다.

  도장은 경건한 마음으로 극성극경(極誠極敬)의 예를 몸으로 실천하는 성역(聖域)이다. 그런 점에서 치성에 참석하더라도 숭도문(崇道門) 안 정내(庭內)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절도에 맞지 않은 것이다. 특히 영대에 올라갈 때는 지성의 예로 국궁(鞠躬)의 자세를 갖춰야 한다. 치성을 마치고 음복할 때까지도 심고를 드리며 정성에 끊임이 없어야 할 것이다. 성(聖)의 세계에 들어오고서도 나 자신이 속(俗)에 있을 때의 행동을 해버린다면 그 자신만 홀로 속역(俗域)에 서 있는 셈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정성스러움이 예(禮)를 통해 표현될 때 그 정성스러움을 다하는 것이 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치성에서 스스로 질서를 올바르게[正] 지켜나갈 때 치성 참여자로서 도리(道理)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예의 어원이 신과의 관계에서 복을 받는 근거라고 하였듯이, 치성이 끝날 때까지 우리 자신이 올바른 마음가짐과 행동을 갖출 때라야 진정한 복(福)을 받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이 많이 참석하는 치성이 큰 치성이라고 하신 도전님의 말씀은 수도인의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상제님께서는 “신은 사람이 먹는 대로 흠향하니라.”19라고 말씀하셨다. 나 자신이 참석해야 조상도 참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의 행동이 직접적으로 신명과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치성에 참여하더라도 치성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치성을 모시는 것이 그냥 좋다고만 듣고 왔다면 의무감으로 몸만 참석하는 셈이 된다. 도전님께서는 치성 참석 시에는 방면 선감, 선사가 교육을 철저히 해야 한다20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방면에서 치성에 대한 의미와 자세를 충분히 설명해줌으로써 치성 참여자들이 치성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져 좀 더 정성을 다할 수 있게 하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오늘날까지 대순진리회에서 시행되는 치성은 정해진 의례 순서에 맞추어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그대로 시행되고 있다. 나 자신이 치성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고 정성스럽게 행동할 때 도법(道法)을 온전히 지키고자 하는 수호(守護)를 실천하는 것이 된다. 그런 점에서 지난번 참석했었던 치성과 오늘 참석하게 될 치성에서도 나의 마음가짐은 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치성 참석을 통해 일상에서 자기 안주에 머물렀던 자신을 뒤돌아보고 도통에 대한 의지를 스스로 표명하게 된다면 자기 완성에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될 것이다.

 

 

 

 

 

01 구천상제님과 도주님의 성적(聖蹟)과 관련된 기념일과 성전(聖殿)인 각 도장의 영대 봉안일 등에 거행된다. 

02 일반적으로 치성 드는 시간은 축시(丑時)이지만, 사립이지(四立二至) 치성의 경우에는 절기가 드는 해당 시간에 거행된다.

03 『도전님 훈시』(1991.2.12.)

04 허신(許愼), 『설문해자(說文解字)』, “禮, 履也. 所㠯事神致福也. 從示從豊.”

05 『설문해자』에 있는 설명에 의하면 ‘示’는 하늘에서 상(象)을 내려주는 것인데 이는 길흉을 표시하여 사람들에게 제사하려는 것이라고 하였다. 세 줄이 내려져 있는 것은 해·달·별인데, 이것으로 천문을 관찰하고 시간의 변화를 살펴서 신이 하는 일을 보여준다고 하였다.

06 ‘豐’자의 아랫부분인 ‘豆’자는 나무로 만든 제기(祭器)를 의미하는데, 『의례』에 나타난 6옥4두(六玉四豆)도 모두 제사에 쓰였던 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금장태, 『유교사상과 종교적 세계』, 한국학술정보, 2004, p.157 재인용.

07 『예기(禮記)』 「제통(祭統)」, “賢者之祭也, 必受其福, 非世所謂福也. 福者, 備也, 備者, 百順之名也, 無所不順者謂之備, 言內盡於己而外順於道也.”

08 박미라, 「중국 교사의례에 나타난 천신의 성격과 구조 연구」, 『종교학연구』16권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p.83 참조.

09 유교를 체계화한 전한(前漢)의 동중서(董仲舒)는 그의 저서 『춘추번로(春秋繁露)』의 「교사대책(郊祀對策)」에서 천자가 행하는 예에서 교사(郊祀)가 제일 중요하다(天子之禮, 莫重郊祀)라고 기술하고 있다.

10 『예기(禮記)』 「교특생(郊特牲)」, “萬物本於天, 人本乎祖, 此所以配上帝也, 郊之祭也, 大報本反始也.”

11 금장태, 『귀신과 제사』 (서울: 제이앤씨, 2009), pp.62~63.

12 김주우, 『조선의 천민, 무당』, 《대순회보》69, p.87.

13 이러한 사건을 절지천통(絶地天通)이라고 하는데, 『국어(國語)』 「초어(楚語)」에 등장한다. 이 사건 이후 땅의 백성과 하늘의 신이 서로 소통하지 못하게 되고 천자만이 신과 소통하게 됨으로써 천자가 정치적 권위를 차지하게 된다.

14 이주해, 「오악(五嶽)과 중국 고대산문」, 『인문과학』88권 (연세대학교인문학연구원, 2008), pp.63~64 참조.

15 교운 2장 32절.

16 박인규, 「대순진리회의 도통군자상-유교 군자상의 이해를 통해」, 《대순회보》132 참조,

17 『도전님 훈시』(1984.5.1.)

18 『논어집주(論語集註)』 「팔일(八佾)」 주자 주(朱子註), “范氏曰, 君子之祭, 七日戒, 三日祭, 必見所祭者, 誠之至也.”

19 교법 1장 49절.

20 『도전님 훈시』(199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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