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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허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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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정락 작성일2018.09.13 조회3,8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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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양57 방면 교정 최정락 

 

  오늘 나는 지난날의 어떤 일에 대한 후회 때문에 생각이 많아졌고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안 된다며 자신을 돌이켜보다가 선각자에게 전화를 드렸다. 이런 습관이 생긴 건 어느 후각 덕분인데, 오늘따라 그 후각이 생각난다. 

  2012년 신록(新綠)이 우거진 어느 봄날이었다. 대학 선후배 사이인 후각으로부터 특별한 연락이 왔다. 친한 후배(허00)에게 자신의 수도 생활을 이야기했더니, 관심을 보여서 나에게 교화를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때 서울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집중적으로 공부해야 했기에 수도 생활에 전념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선각께 말씀드린 후 『전경』과 『대순지침』을 읽고, 어떤 교화를 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면서 정성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홍대입구역 근처의 한 커피숍에서 후각의 후배와 처음 만나서 자연스럽게 우리 도(道)에 대해 교화를 하였다. 따뜻한 햇볕과 상쾌한 바람이 우리를 감싸며 더욱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다행히도 그는 수도에 관심을 보였다. 그날 이후 나는 그를 자주 만나면서 정성을 들였다. 포덕 사업을 함께했던 방면 교감께서도 꾸준히 정성을 들이면 훌륭한 도인이 될 것 같다며 나를 응원해주셨다. 어느덧 나도 그와 친한 선후배 관계로 발전했다. 

  후배는 마음을 열었는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후회스러웠던 자신의 과거 기억을 말하기 시작했다.

 

후배: “만약 제가 어렸을 때 인생의 목표와 장기적인 계획들에 대해 부모님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았을까요?”

 

  후배는 표정이 밝지 않았고 목소리조차 무거웠다.

 

나: “과거에 너무 연연하지 말아요. 중요한 건 지금이니까요.”

후배: “그래도 후회가 되는 일이 너무 많아요.”

나: “되돌릴 수 없는 과거에 집착하면 무의미하니까 그럴 땐 생각을 잠시라도 멈춰보세요.”

 

  나는 그저 가볍게 대답했다. 그 이후로 후배는 과거에 자신이 잘못했던 실수를 자책하며, 되돌리고 싶은 일들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 우리는 만담하듯 가볍게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후회에 관한 내용이 나올 땐 내 마음도 그리 편치 않았다. 

  당시에 나는 후회에 관한 대화가 시작되면 도무지 공감도 이해도 되지 않았다. ‘지나간 일을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지’라고만 생각했다. 그와 친해지면서 나는 도인으로서 교화했다기보다 그를 친한 동생으로 여겼던 것 같다. 만나는 일이 잦아지자 대화의 주제 중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과거 일들에 대한 자책과 한탄이었다. 이런 대화는 실속 없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면서 후회의 기억을 하찮게만 여겼다. 그래서 방면 교감께는 진지하게 후배의 심리상태에 관해 말씀드리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그가 입도식을 하게 되었다. 방면의 여러 도인의 참여로 입도식을 마치고 축하를 받았다. 나는 선각자로서 입도한 허외수에게 이제 도문소자(道門小子)로서 함께 최선을 다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그를 배웅했다. 

  그런데 허외수가 입도한 후부터 나에게 신기한 일이 하나 생겼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공부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과거에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후회스러운 생각이 간혹가다 떠올랐다. 그러다 얼마 후 내 인생의 과거에 대한 후회가 폭풍처럼 몰아치는 시기가 왔다. 과거와 연결 고리가 있는 순간이나 상황을 만나면 후회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한번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자책의 시간이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대학원생 신분으로 과제가 많았던 시절이라 피로가 쌓여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과거 특정 시점에 사로잡히면 그 생각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나 자신의 모습에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내가 과거에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았다면 어땠을까? … 포덕소 생활하면서 내 성질을 더 잘 통제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방면 도인들과 더 잘 소통했을 것이고 관계도 더 좋았을 것이다. … 후각이 나를 좋게만 바라봐 주기를 원해서 듣기 좋은 이야기만 하지 않고 힘들고 어려운 점들도 공유했더라면, 후각이 수도 생활에 더 전념할 수 있었을 텐데 ….’ 

  이런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나를 짓눌렀다. 가만히 자신을 되돌아보니, 허외수와 대화할 때도 그랬지만 후회에 빠지는 현상을 나는 수도적인 측면보다 개인의 문제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방면 선각과 상의하기보다는 나 혼자 극복하려고 했었다. 20대 초반만 해도 무슨 일이든 선각과 의논했었는데 말이다. 그러던 중 나는 점점 더 바빠졌다. 나와 후각의 정성이 소홀해지면서 허외수는 점차 연락이 뜸해졌고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았다. 

  ‘그때 허외수는 자기 이야기를 하며 수도적인 측면에서 도움을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후각을 챙겨야 하는 선각자로서 나는 얼마나 그의 마음을 살피고 헤아렸을까? 그동안 허외수의 가정사나 삶의 이력에 대해 진지하게 묻지 않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허외수도 상처가 많아 힘들었을 텐데 ….’ 

  조금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습관이 몇 달 계속 이어지니 겁이 났다.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이 상태가 지속될 것 같았다. 혼자 이 상황을 빠져나가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이러한 내 문제를 교감께 말씀드렸다. 그러자 교감께서는 몹시 아쉬워하며 말씀하셨다.

  “허외수의 심리상태와 최교정의 고민 등을 미리 말해주었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내가 아는 선에서 챙겨주었을 테고 내가 해결하기 힘든 것은 내 위의 선각께 말씀드려서 함께 의논해 보고 대안을 찾았을 거예요. 이런 것은 도의 일인데 개인의 일처럼 혼자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러니 다음부터는 어려움이 생기면 함께 고민해봅시다.” 

  그랬다. 나는 당시 교감과 소통하면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나갔어야 했다. 도의 일은 혼자의 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허외수를 만나기 전에 나는 3년이 넘게 간부로 군 생활을 하였다. 그 기간 임무 수행을 하며 스스로 결정하고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았다. 군 간부로서 장병들에게도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점차 이것이 나의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선각과의 소통도 예전과 같지 않아졌다. 평도인과 선무를 거쳐 지금처럼 수도하는 것은 나 자신의 힘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 선각분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과 정성이 있었기 때문임을 잊고 있었다. 나를 도에서 성장하게 해주신 분들이 방면에 계신데도 다른 곳에서 답을 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나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귀중한 수도의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그 후 문제가 생겨서 잘 풀리지 않을 때면 그것에 집착하기보다는 도의 체계 속에서 선각과 대화하며 문제를 풀어가려고 노력했다. 앞으로도 수도 과정에는 수많은 실패와 난관이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상제님께 정성을 들이고 선각분과 소통하는 자세를 유지하려고 한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고 나니 후회하는 습관이 점차 사라졌다. 많이 부족하지만 앞으로 내가 선각께 더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서려고 한다. 지금도 문제가 생기면 나 자신에게 ‘선각과 진심으로 통심정(通心情)이 되고 있는가’하고 반문하곤 한다. 이렇게 수도의 측면에서 변화된 나를 발견할 때면 떠오르는 이가 있다. 

  ‘허외수, 꼭 한번 보고 싶어요.’

 《대순회보》 2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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