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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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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은정 작성일2018.11.15 조회3,5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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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2 방면 정리 조은정   


  여덟 살 난 딸아이가 몇 년 전 사시 수술을 받았는데 재발이 되었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이제라도 안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겠지만 치료과정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내가 사는 고장의 대학병원 담당 의사는 간단한 어조로 재수술을 해야 한다며 수술을 할 것인지 의향을 물어왔다. 


  꼭 수술을 해야 하는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수술이 끝나면 재발의 가능성은 있는지. 전신마취는 부작용이 없는지… 환자의 보호자가 다급해하고 궁금해 하는 마음을 표현할 틈을 여간해 주지 않는다. 다음 진료까지 결정해 오란다.


  한 번 수술을 했던 아이인데 꼭 수술을 또 해야 하는 걸까? 전신마취하면 정신이 멍해진다던데. 또 재발되면 어쩌나.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 엄마로서 결정하기 쉽지 않다. 병은 알리란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다 수술보다 안경 등의 대체 수단으로 변화시키는 분이 있다는 귀한 조언을 듣게 되어 현재 사는 곳이 아닌 다른 도시로 방향을 틀었다. 다행이 전화 예약으로 초진 날짜가 빨리 잡혔는데 아이 방학 때이고 나 또한 휴가 때라 조짐이 좋다.


  전화로 예약을 하던 중 진료의뢰서가 있어야 진료비 혜택이 있다는 걸 알았다. 다니던 고장의 대학 병원에 가서 다른 도시 대학병원에 가겠다는 말은 도저히 못 꺼내겠고. 차일피일 미루다 내일이 예약일인데 오늘에서야 진료의뢰서가 생각나 부랴부랴 전에 몇 번 가 본적이 있는, 지역에서 알아주는 개인병원에 들렀다. 의뢰서 떼러 왔다는 말은 처음부터 꺼내지 못하고 수술을 피하려고 지역 대학병원의 수술권유에도 불구하고 다른 도시로 가려한다고 하자 의아해 하는 의사.


  근데 이게 웬일인가? 이전 진료 기록에 대한 의사의 설명을 듣다가 문득 머릴 세차게 얻어맞은 것 같은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사실 딸아이 사시 수술은 당초 또 다른 도시의 저명한 개인 병원에서 했었다. 그것도 물어물어 추천 받은 곳에서 한 것이었는데 수술은 최소한 내 생각엔 성공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추후로 가기가 번거로워 수술한 병원 측에서 향후의 아이 상태를 오늘 방문한 개인병원에 의뢰했던 것.


  나는 그 수술을 끝으로 더 이상의 재발은 없을 거라며, 짐짓 아이의 사시문제에 대해선 나 혼자 일단락 짓고 안심해 오고 있던 터다. 그 당시 이 의사는 아이 눈에 문제가 없다는 말만 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오늘 와서 기록을 보니 당시 의사는 내게 3개월 후 다시 내방할 것을 권했다고 한다. 


  앗! 그렇게 중요한 의사의 지시가 지금에 와서 내겐 왜 이렇게도 생소하게 느껴지는 걸까? 잠시 들러 의뢰서나 떼 갈 심산이었던 내 뒤통수를 치는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알고 보니 그동안 나는 내 스스로 만든 오해를 하고 있었던 거였다. 딸아이 눈에 두 번의 수술을 하게 만드는 책임이 바로 나에게 있었던 것. 


  솔직히 난 그동안 딸아이 사시가 재발된 모든 원인을 처음 수술했던 원장의 수술 후 뒷처리가 성의 없어서였다고 굳게 믿고 있던 터다. 왜냐하면 그 병원에서 따로 내게 주의사항을 일러준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만난 여러 부모들의 말에 의하면 사시수술 후 안경이라든가 향후 점검이 반드시 필요하다던데 그런 말은 도통 내 기억에 없었으며 오히려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 처음 수술을 했던 원장에게 상당히 화가 나 있던 터다. 


  오늘 이 의사는 내게 왜 수술 3개월 후에 병원에 또 오지 않았느냐고 다그쳐 묻는다. 그리고 “최소한 6개월에 한 번쯤은 왔어야지요.” 한다. 


  평소 중대한 일에 있어서 꼼꼼하다고 생각해 왔던 내 자신이 이렇게 무심하게 느껴질 줄이야. 왜 나는 그때 의사의 말을 헛들었던 걸까? 현재의 내게, 아니 내 딸아이에게 그 대가는 너무도 쓰디쓰다. 그 말만 귀담아 들었어도 딸아이의 재발가능성을 미리 확인할 수 있었고 최소한 안경이나 기타의 수단으로 재발의 시기를 늦출 수 있었을 거다. 어쩌면 나는 그것도 모르고 ‘환자가 뭘 알겠느냐’는 식의 면죄부를 주며 그렇게도 스스로에게 관대한 태도로 지내왔다니. 의사의 조근조근한 설명이 흐르는 사이 나는 몇 번이나 나의 실수의 원인을 헤아리느라 다른 시공간을 몇 바퀴 돌고 온 듯하다. 


  그리도 똑똑한 줄 알았던 나 자신은 무얼 믿고 의사의 말을 새카맣게 잊고 살았던 거냐? 드디어 의사 앞에서는 차마 말 못했던 그 대답을 해야겠다. 자못 부끄러워 먼저 나 스스로에게 낯 뜨거워지는 답변이다. 


  정말로 솔직히 말하면, 내 마음이 순수하지 못했고 바르지 못했던 것이 최대의 원인이다. 고백하건데, 의사들의 진실을 그대로 믿지 못하는 습성이 내 안에 잠재되어 왔음을 안다. 3개월 후 오라는 의사의 말을 흔한 장삿속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화근이다. 


  이런 생각의 발상에는 내 오랜 피해의식도 한몫했을 거다. 사회에 대한 불신, 나보다 좀 더 배우고 기득권을 가진 자들에 대한 피해의식, 또 영리를 추구하는 상업인들에 대한 무의식중의 불신. 이런 것들이 혼합되어 나는 이번에 너무 큰 대가를 치르고 나의 경솔함을 반성하는 큰 공부를 한 셈이다.


  의사는 내게 단호히 말한다. 올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 오라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고. 그동안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과연 그럴까? 사실 진료가 필요 없고 약만 몇 달치를 주기만 해도 되는 환자에게 매번 2, 3일마다 오게 하여 진료비를 더 받는 건 뭐야?’ 이런 생각을 해왔다. 그런 생각들이 모여 나는 사회에 대한 불신을 키워 왔던 거고 그 불신이 오늘 다시 나의 피해로 고스란히 되돌아 온 거다.


  오 하나님! 이걸 부메랑 효과라 하는 걸까요? 나의 얕은 잔꾀가 더없이 창피해지는 순간이다. 상제님을 믿는다는 내가 이렇게 뼛속 깊이 사회에 대한 불신을 품고 살아왔다니. 


  상제님께서는 읍내 아전과 시골 촌양반의 이야기를 통해 상호 이해에 대해 말씀하셨다. 서로 다른 처지에 놓인 사람들 사이의 뿌리 깊은 반목ㆍ투쟁의 심리가 결국 사회의 상극을 조장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아주 쉽고 예리하게 지적하셨다. 이제 보니 내가 바로 읍내 아전을 불신하고 있는 시골 촌놈이었던 것이다. 


  사시란 눈동자가 안이나 밖으로 쏠려서 사물을 똑바른 시선으로 보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러고 보니 내 아이의 사시가 우연은 아니었다. 사회를 보는, 타인을 보는 내 마음의 사시. 그것이 대물림되어 내 딸아이의 눈을 통해 깨닫고 바꾸라고 내게 온 몸으로 웅변하고 있던 거다. 수도 똑바로 해! 내 영혼을 깨우는 신명들의 죽비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사시는 수술과 대체 수단으로 보정할 수 있겠으나 내 마음의 사시는 진실로 깨닫고 고치기 전에는 나을 수 없는 마음의 병이다. 타인의, 선각의, 도우의, 수반의 말을 진실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야겠다. 내가 먼저 불신의 눈으로 남을 본다면 진실은 어디에도 없는 세상이 되지만 내가 먼저 마음의 눈을 뜨고 남을 신뢰할 때 그들의 진실을 비로소 알 수 있으며 최소한 오해로 인한 상처는 서로 입지 않을 것이다.


  엄마 따라 병원 왔다가 눈치만 보던 예쁜 딸아이, 내 옆에 누워 곤히 잠이 들었다. 딸아, 정말 미안해. 엄마 마음 먼저 고칠게.

<대순회보> 1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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