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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제설 작업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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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지윤 작성일2018.11.16 조회4,3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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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방면 선무 정지윤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에 대한 나의 첫 번째 이미지는 영산홍으로 가득한 어느 봄날의 화사함이란 문구를 떠올리게 한다. 대구가 고향인 나는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이 있는 속초까지의 거리가 이웃집 나들이 가듯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보니 연중행사처럼 도장참배를 가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우연인지 필연인지 매번 영산홍이 만발한 봄에 참배를 가게 되었다. 그러니 나에게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의 이미지는 봄날의 화사함이었고, 산책로를 지나는 걸음걸음마다 다양한 색깔의 영산홍이 빽빽이 둘러싸여 나뭇잎 한 장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꽃잎들이 그득한 ‘이곳이야 말로 지상 천국이 따로 없구나!’라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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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토성도장의 이미지를 또 다른 이미지로 바뀌게 하는 사건이 있었으니 지난 겨울 우연한 기회에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에서 한 달간 생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속초는 엄청 춥다는 말을 들은지라 우리 일행은 든든히 옷을 준비했고 일부는 눈밭에 굴러도 끄떡 없을 스키복까지 장만하고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날씨가 너무 푸근한 것이었다. 아직 동지가 지나지 않은 때라 그리 춥지 않다는 것이다. 아무튼 추위를 많이 타는 일행들은 상제님의 보살핌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 동짓날이 되었다. 


  낮부터 눈발이 조금씩 날리기 시작하는데 정말 솜사탕처럼 보송보송한 눈송이들이 눈의 장막이라도 치려는 듯 우산에 “촉촉” 소리까지 내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눈발 날리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혹시 밤새 얼기라도 해서 빙판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되었다. 


  동짓날이라 치성 시간에 맞춰 본전 3층에서 기도를 모셨다. 기도를 모시고 나온 순간 정말 뭐라 말할 수 없는, 감탄사만이 연발되는,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본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말로 설명하고 싶어도 표현할 수 없는 부족한 표현력을 탓할 밖에. 기도를 모시고 나온 그 1시간 사이에 세상은 빈틈을 남길세라 온통 뽀얀 솜이불로 덮혀 있었고 그것만으로 모자랐던지 하늘에선 계속해서 하얀 솜뭉치들이 지상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그 순간 도장 종사원들과 수호자들은 바쁘게 제설 작업을 하고 있었고 제설차가 지나간 자리엔 순식간에 다시 눈들로 새로운 솜이불이 깔렸다. 마치 세상을 눈 속에 덮어 버리기라도 할 태세였다. 


  동지치성을 마친 뒤라 식당에선 따끈한 동지팥죽이 나오고 밖에는 하얀 눈이 아름다운 야경을 만들어내는 가운데 내 인생의 첫 설경의 밤이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언제나처럼 읍배를 드리기 위해 새벽 5시부터 분주했다. 본전 앞에서 미륵불을 지나 도전님 묘소까지 배례를 드리는 하루를 시작하는 첫 일과였다. 하지만 우리 일행은 아침 배례를 드릴 수가 없었다. 80cm를 넘게 쌓인 눈길을 헤치고 갈 만한 엄두가 나질 않았다. 지난 밤 보았던 설경이 내 인생에 아름다운 설경에 대한 첫 경험이었다면 이 아침 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자연에 대한 경외에 스스로가 작아지는 순간이라고나 할까?


  우리는 한복대신 작업복을 입고 장화와 눈삽으로 완벽한 제설 복장을 갖추고 내정으로의 안전한 통행을 위해 내정 앞 경사로 제설작업에 투입되었다. 태어나서 이런 눈을 보리라 상상해 본적도 없는 거대한 양의 눈더미에 감탄 그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삽으로 퍼서 옮길 곳조차 없을 만큼 도장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는 눈에 감탄하고, 다년간 큰 눈에 대한 경험의 산물에 또 한번 감탄하는 제설현장. 경사로에 깔아 놓은 비닐이 그것이다. 행여 밤새 눈이 얼어 빙판이 생기면 눈을 치워도 미끄러질 위험이 있으니까 눈이 내리기 시작할 때 비닐을 깔아 둔 것이다. 눈이 그치면 쌓인 눈을 치우고 비닐만 걷으면 바닥에 빙판이 생기지 않으니까 일이 훨씬 수월했다. 


  내정 앞 작업을 마치고 장소를 옮겨 본전으로 향했다. 그런데 본전 앞뜰에 조경수들이 없어졌다. 너무나 많은 눈에 나무들은 본디의 모습을 감췄고 그저 거대한 눈 산이 하나 서 있을 뿐이었다. 저 많은 나무들이 눈에 덮혀 얼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나의 걱정은 나무들이 입고 있는 비닐 옷을 보는 순간 “오호~” 하는 가벼운 감탄과 함께 사라졌다. 


  작업자들은 삽으로 열심히 눈을 퍼 날라 겨우 통행할 수 있는 길을 냈다. 삽에 퍼 담기는 눈들은 여름철 곱게 갈아 만든 빙수의 보슬보슬함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렇게 작업하는 중간 중간 “쩌억~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잇달아 “악!”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의 정체는 지붕에 쌓인 눈이 스스로의 무게를 못 견디고 지상에서 작업하는 우리를 향해 돌진하는 소리와 그 밑에서 봉변을 당한 이들의 비명 소리였다. 


  일부 인원은 종사원의 지시에 따라 본전 2층으로 올라갔다. 처음 올라가 본 본전 2층 난간은 또 다른 설경이 펼쳐지는 세상이었다. 난간 위 사자상은 눈에 덮혀 새로운 형태의 조각상으로 재탄생했다. 우린 바닥에 쌓인 눈을 삽으로 퍼서 난간 너머로 넘겼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어디가 어딘지 구분조차 되지 않았고 얼기 전에 눈을 빨리 치워야 한다는 생각에 쓱싹쓱싹 바쁜 삽질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한참을 지나 눈을 다 치우고 나니 밝아진 주변이 생생하게 보였다. 와~ 여기가 우리나라인가? 평생 눈 내린 날을 본적이 손가락으로 꼽으라고 해도 될 대구 출신인 내가 결코 본적이 있을 수 없는 세상이었다. 그저 외국 풍경사진에서나 봄직한 두툼한 눈 외투를 어깨에 걸친 침엽수들과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양탄자가 깔린 세상을 사진으로 남길 수 없음을 한할 밖에….


  게다가 돌아 내려오는 길에 마주친 미륵불의 시선은 평생 잊기 어려우리라. 눈썹에 얹혀진 새하얀 눈이 살짝 녹아내려 열심히 눈을 퍼 나른 우리들 대신 땀을 흘리시며, 아침 햇살에 반사된 관모의 황금빛과 함께 우리에게 미소로 ‘수고했네’ 하시는 것 같은 모습. 언제 내가 이런 곳에서 저분의 온화한 눈빛을 마주칠 상상이나 했으랴? 이리하여,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에 대한 나의 두 번째 이미지는 미륵불의 온화한 눈빛으로 남게 되었다.


  그 많은 인원이 움직였어도 다닐 수 있는 길이나 겨우 만들었을 정도였다. 사람의 힘으로는 그 눈밭을 헤치고 한 걸음도 나아갈 수가 없었다. 산간벽지라면 연락두절에 옴짝달싹 못하고 갇힌다는 것이 이해가 절로 되었다. 아마 “상상 그 이상의 세계를 볼 것이다”라는 영화 광고 문구가 꼭 맞는 하루였지 않을까? 


  날은 추웠지만 제설작업에 우리는 온몸이 땀범벅이었고 차가운 새벽 바람에 두 볼이 빨갛게 상기되어서는 마치 눈 구경 처음한 사람처럼 들떠서 행복했다. 잠시 휴식시간에 마시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한 잔의 생강차는 TV속 광고의 한 장면인양 따뜻했다.

<대순회보> 1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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