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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의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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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영진 작성일2018.11.20 조회3,6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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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3 방면 보정 김영진

  

  금년 4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 금강산토성수련도장에서 실시한 연구위원 연수 기간 중에 몇 가지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후의 나른한 시간대에 몇 시간 하는 작업이라 운동도 되고, 공덕도 쌓을 수 있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도(道)의 일이 모두 그러하겠지만, 작업이 주는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 일화들이 있어서 소개할까 합니다.

  첫 번째 작업은 작년 겨울에 눈이 너무 많이 내려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진 소나무 가지를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연수생 12명은 작업에 앞서 간단한 지시사항과 작업내용을 전해 듣고 각자에게 맞는 역할을 분담하기로 하였습니다. 1조는 ‘사다리조’, 2조는 ‘천상조’, 3조는 ‘바닥조’라고 이름을 붙이고 각자에게 필요한 도구를 챙겨서 작업장인 영대 뒤편의 산으로 이동했습니다.

  작업 장소에 도착해 보니 여기저기 부러진 채 보기 흉하게 붙어 있는 나뭇가지들이 보였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현재 저의 몸을 괴롭히고 있는 ‘계절성 알레르기’라는 겁액처럼 보였습니다. 부러진 가지가 떨어지면서 껍질이 벗겨져 나간 부분에 송진이 흐르는 모습은, ‘겁액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내 모습과 참 많이 닮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분일초라도 빨리 부러진 가지를 정리해 주고,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들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모두들 서둘러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먼저 사다리조가 작업할 나무를 정하여 사다리를 대면, 천상조가 나무 위로 올라가 톱을 이용해서 나무를 자르고, 바닥조는 하나둘씩 떨어지는 나뭇가지들을 차량진입로 쪽으로 옮겨서 모아 두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바닥조는 떨어지는 나뭇가지에 맞지 않도록 수시로 머리 위를 올려봐야 했고, 옮기는 과정에서는 불필요하게 높게 자란 풀이나 작은 나무들을 낫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병행하면서 작업을 진행하여야 했습니다. 풀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가끔씩 코끝을 즐겁게 하는 더덕 향기는 일을 하는 내내 우리에게 피로를 푸는 활력소가 되어주기도 하였습니다. 작업에 막 요령이 생겨서 속도에 탄력이 붙으려고 할 때 오후 참을 먹으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참을 가지고 온 작업책임자가 현장을 둘러보더니 나뭇가지를 자른 부위와 껍질이 벗겨진 부분에 약을 바르지 않은 곳이 있음을 지적하였고, 천상조는 가지고 온 약이 적어서 바르지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작업책임자는 약은 충분했지만 너무 많이 발라서 부족해진 거라고 하며 골고루 적당히 발라 주기를 당부하였습니다.

  대화를 할수록 도인들이 나무를 대하는 마음이, 수반이나 그 외 타인을 대할 때처럼 자신의 입장보다 먼저 상대의 아픔과 상처를 걱정하고, 자신의 정성으로 상대가 상제님의 덕화를 받아 아픔이 치유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듯이, 각자의 마음속에 진정으로 나무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업을 하며 하루하루 보내는 사이, 내 몸을 괴롭히던 계절성 알레르기도 점점 호전이 되고 있었고, 상당수의 나무들도 흉한 모습을 벗고, 위풍 있고 단정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나무의 모습을 보노라니 내 자신의 조그만 괴로움을 뒤로 하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나 스스로에게 얼마나 행복하고 기쁜 일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작업은 도장 내에 있는 영산홍의 떡병을 제거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이 병은 일반적으로 5~6월에 강우량이 많거나 햇빛이 부족한 장소에서 심하게 발생합니다. 철쭉과 진달래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병으로, 그 모습이 마치 불에 구어 부풀어 오른 찰떡과 같다고 해서 ‘떡병’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 병은 나무에 피해를 주기보다는 보기에 좋지 않기 때문에 일종의 미관훼손병(Cosmetic disease)이라고 할 수 있으며, 미국에서는 철쭉 잎에 생긴 혹을 흔히 핀스터 애플(Pinkster Apples)이라고 부르며 즐겨 먹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처음엔 버섯 같기도 하고, 예쁜 것은 열매처럼 보였지만, 작업을 하면서 자세히 살펴보니 사람이나 동물의 몸에 몰래 자리 잡고 퍼져나가서 죽음으로 이끄는 암(癌)세포처럼 보였습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을 해서 그런지 영산홍 나무들이 매우 불쌍하고 가엽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도 빠짐없이 깨끗하게 치우겠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작업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정성을 들인 만큼 영산홍은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고, 그런 만큼 제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 작업은 도장 내에 있는 도인들이 먹을 오이와 토마토를 재배하는 영농작업이었습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오이와 토마토 줄기가 올라올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목작업으로, 작업책임자는 우리에게 옆에 있는 산에서 아직 덜 자란 나무를 베어와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한쪽에 모아달라고 하였습니다.

  따가운 햇살 탓인지 산속에서의 작업이 오히려 반가웠고, 한 달 동안 산속 작업을 계속 해온 터라 익숙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우리는 별도의 의논을 하지 않아도 각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았으며, 일을 하는 내내 손발이 척척 잘 맞아 들어갔습니다. 다만 우리를 괴롭힌 것은 목을 축일 물이 없다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칡이라도 찾아보자고 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우리는 제법 팔뚝 크기만 한 칡을 구하여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산(山)이란 글자는 산다, 살다(生)는 발음과 비슷한 것처럼 산에서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 중에서 못 구할 것이 없으니, 산은 정말 소중한 곳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윗부분의 부목을 작업하여 한쪽에 정리하고, 부목의 아랫부분에 사용할 나무를 베어내어 밭 옆으로 이동시켜서 적당한 크기로 자르는 데 며칠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부목을 윗부분과 아랫부분으로 연결하여 묶어주고, 땅에서 올라오는 줄기가 부목을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끈으로 고정하는 작업이 또 며칠 걸렸습니다. 그리고 이미 열린 오이와 꽃을 따주는 일이 하루가 걸렸습니다.

  꽃과 작은 오이를 따면서 나는 “왜 잘 자라고 있는 오이를 제거해야 하지?”라는 궁금증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작업책임자에게 물어 보았더니, “너무 일찍 생긴 오이는 잘 자라지 못하거나 병에 걸려 정상적으로 자라나는 오이의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에 미리 따주어야 좋은 수확을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날씨나 시기상으로 보아 우리가 작업한 오이나 토마토를 먹어보지 못하고 여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미안한 듯 조심스럽게 하였습니다. 그 말에 나는 “못 먹으면 어떻습니까! 나 대신 다른 도인들이 많이 먹으면 그것이 공덕이지요” 하고 웃으며 대답하였습니다.

  몇 시간을 쪼그려 앉아서 하는 작업이라 수시로 다리에 쥐가 나고, 허리에 통증이 느껴졌지만, 지금의 노력으로 수확한 오이와 토마토를 도장의 많은 도인들이 먹는다고 생각하니 뿌듯함이 온몸에 밀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음 작업은 옥수수 및 다른 작물을 심어 놓은 밭의 풀을 정리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작업책임자에게 얼마 만에 한 번씩 밭을 메냐고 물었더니, 매주 연수자들이 들어올 때마다 하고 있다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해마다 도장에서 나오는 옥수수를 맛있게 먹으면서도, 정작 그 옥수수를 재배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정성이 들어간 것은 알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괜히 미안해졌습니다. 앞으로는 무엇을 먹을 때마다 먹을거리를 제공하기 위하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성을 들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고맙게 먹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니, 남은 시간 동안 남들보다 더욱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작업에 매진했습니다.

  하루는 작업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얼굴과 목이 이상한 것 같아서 샤워실에서 거울을 보니 얼굴과 목이 화상에 가까운 손상을 입은 것이 보였습니다. 몸을 대충 씻은 후, 화기를 빼내야 된다는 주변 분의 조언으로 얼음을 수건에 싸서 냉찜질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4~5시간이 지나자 따갑던 부분이 차츰 진정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폭염은 연일 계속 되었고, 작업은 어느덧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도(道)에서는 가끔 볼 수 있는 날씨 조화가 일어났습니다. 일기예보에서는 장마기간이니 비 피해에 주의하라는 당부의 말과 함께 전라도 지역의 수해상황과 전국에 걸친 비 소식을 보도하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낮에는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었고, 밤에는 뇌성벽력이 몇 시간 동안 계속해서 일어났으나, 비는 잠깐 동안만 소나기처럼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저는 ‘작업이 끝나면 비가 오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열심히 작업에 임하였습니다. 이윽고 작업은 끝이 났고, 그날 저녁부터 예상대로 비는 3일 동안 쉬지 않고 내렸습니다.

  작업이라는 것은 책상에 앉아서 지식과 깨달음을 얻는 것과는 달리, 현장에서 도구를 들고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육체적으로 고통을 느끼면서 자신의 인내와 의지를 시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다시 한번 재조명해 보고, 현재 자신의 모습을 바르게 인식(認識)하여, 보다 성숙한 도인의 자세를 깨달아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고 생각됩니다.

 

<대순회보> 1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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