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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도생활 입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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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선예 작성일2018.11.20 조회1,3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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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10 방면 평도인 심선예 

 

  “무극신 대도덕 봉천명 봉신교 도문소자 소원성취케 하옵소서.” 나는 오늘도 퇴근하고 7시 기도를 모신다. 이렇게 기도를 꼬박꼬박 모신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10년 초쯤에 입도를 하고 한 일 년 간은 대순진리회가 무엇인지, 도가 무엇인지, 왜 기도를 모셔야 하는지 그 의미를 깊이 있게 알지 못했다. 그래서 실상 일 년 정도는 말 그대로 선각분들의 속을 꽤 썩이는 말 안 듣는 골칫덩어리 후각이었다.
  입도를 결심하기 전에 왜 수도를 해야 하는지 그 필요성에 대해 역사적 내용과 더불어(나는 그 당시 설명을 들을 때 고대 역사를 듣는 것 같이 여겨졌었다. 학창시절 내가 역사를 좋아해서 흥미를 갖고 진지하게 들었으니 참 다행이다 싶었다. 아니었으면 끝까지 듣지도 않았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 또한 인연이었나 싶은 생각이 요즘에서야 문득 들곤 한다.) 조상님을 제대로 모셔야 하는 이유 등을 듣고 ‘지금부터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리라’는 결심으로 입도했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기도를 등한시 하고 온갖 핑계를 대며 선각분들을 피하려고만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죄송한 일이었지만 당시에는 그게 그렇게 잘못된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밖의 세상을 즐기기에 바빴던 것 같다. 세상에 놀기 싫어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나는 누구보다 노는 것을 즐겼다. 틀에 짜인 것과 규격화된 것들을 멀리하며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한 누렸으니, 참 어찌 보면 시간을 너무 아쉽게 허비했던 것 같다. 순간순간 소중한 것이 시간이요, 또 일 초도 헛되어 쓰면 안 되는 것이 시간인데 말이다.
  나의 선각은 혈육으로 보면 동생이다. 두 살 아래 여동생.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참 많이 티격태격했었다. 동생에게 내가 꽤 얄미운 짓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덩치가 나와 비슷했던 동생은 그런 나를 밀치기도 하고 싸우면 내 얼굴에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면 오빠들과 어머니께 혼쭐이 나곤 했다. 그렇게 8남매의 끝에 태어난 우리 둘은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며 가난했던 시절을 서로 의지하며 지내왔다. 어느 정도 철이 들고 나서는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됐지만 말이다. 그런 동생은 선천적으로 장애를 갖고 태어난 나보다 먼저 직장생활을 했고 집에 올 때마다 언니를 위한 선물을 자주 들고 왔었다. 아마 그때부터 인 것 같다. 동생이 나를 본격적으로 챙기기 시작한 것이….
  철도 나보다 먼저 들어서 생각도 깊고 무슨 행동이든 허투루 하지 않는 언니 같은 동생이었다. 그렇게 내가 철없이 세상을 즐기는 동안에도 잘못되지 않을까 우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돌보듯 늘 신경의 끈을 놓지 않았다. 아마 그 덕에 내가 도에 입문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겨우 우물가에 있는 아이를 데려와 집에 들여놨는데, 그러고도 한동안 더 속을 썩였으니 아마 속이 숯검정이 되었으리라. 그런 동생이 나의 선각이다. 그동안에도 몇 번이나 마음을 잡지 못하는 나를 달래서 제자리에 놓고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무던히도 애를 먹었으리라. 포덕소에 가자고 하면 가기 싫다 하고 휴일에는 논다고, 또 잔다고 가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미안한 마음에 한 번씩 나가곤 했다. 입도하고 일 년이나 되는 허송세월을 보내고 나서야 말이다.
  처음 포덕소에 갔을 때는 많이 어색했다. 뭘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무엇을 하는지도 몰라 엉거주춤하니 서 있었다. 그래서 선각분들이 하는 데로 따라만 하다가 다른 도인들과 섞이지도 못하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있다가 오곤 했다. 나는 낯을 가리는 편이라 상대방을 어느 정도 알기 전까지는 먼저 다가가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포덕소를 자주 가기까지 시간이 더 걸렸던 것 같다. ‘애초에 수도생활을 열심히 했다면 어색함이 덜 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지금은 치성 가서 생판 모르는 방면의 도인들을 만나도 꺼리지 않고 인사를 건네는 것은 물론 간단한 대화를 나눌 정도가 되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수도한 것은 입도 후 일 년쯤 지나서이다. 집에서만 하던 기도를 포덕소에도 했다. 집에서 혼자 할 때 보다 기운이 다를 것이라고 선각분들이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내가 직접 느껴보기 전에는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그냥 그런 줄로만 알았다. 계속 나가서 수련하다 보니 ‘기운의 크기’라고 할까 그런 것이 차차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희한하게 평소 안 오던 잠도 수련만 하면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신경이 곤두서서 기도를 마치면 온몸이 힘들었다. 근육통처럼 뻐근할 때도 있고 무엇인가에 눌린 것처럼 묵직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선각분들께서는 그때마다 수련하고 난 후의 상황을 물어보셨는데 처음엔 그런 기분을 스스럼없이 전달하는 것도 표현하기도 쉽지가 않았다. 나만이 느끼는 묘한 기분을 말로 전하는 것이 참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각의 말을 잘 듣는 후각이 되어야겠다.’ 마음을 먹고 수련의 횟수도 늘리고 참배나 치성이 있을 때는 최대한 가려고 애를 썼다. 참배를 처음 갔을 때는 가기 전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가는 동안에도 멀미와 두통, 울렁증이 찾아와 나를 힘들게 했다. 그런데 그러던 것이 신기하게 도장에 들어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싹 없어지곤 했다. 처음 그런 기분을 알았을 때 너무 신기하고 거짓말처럼 여겨져서 고개가 갸우뚱해질 때가 있었다.
  어느 날인가 치성 갔을 때 멀쩡하던 다리가 도장 입구부터 아프기 시작하더니 숭도문 근처에 이르렀을 쯤 아픔이 사라지기도 했다. 회관치성 때도 돌아오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는데 오다가 음복한 것을 토해내기도 했다. 그러한 현상들이 무언가가 풀려나가는 것으로 느꼈다. 횟수가 많아지고 교화를 듣고 하면서 ‘왜 이러지?’하고 말던 것들이 ‘아, 이번에 또 무언가를 풀어내 주시려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격이 불같은 부분이 있었는데 그런 부분들도 신기하게 조금씩 덜해졌다.
  늘 듣던 교화 말씀에 “상제님께서는 사람의 체질과 성격을 바꾸어서 상제님의 사람으로 쓰신다.”고 하신 말씀이 있다. 어느 순간 나도 상제님의 사람으로 쓰이고 싶고 후천 오만년을 누리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모든 상극이 없어지는 그 후천 오만 년을 사랑하는 선각과 함께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면 눈물이 왈칵 밀려온다. 어떤 때 회보를 읽다가 다른 도인분이 쓰신 글에 후천에 대해 언급된 부분이 있었는데 그 부분을 읽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서 계속 읽지를 못하고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 선감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기쁨의 눈물, 감격의 눈물이었다.
  나는 한복을 참 좋아했었다. 어릴 때부터 한복이 그렇게 입고 싶었다. 그때는 형편이 어려워 내게는 한복이 없었다. 평상복조차 물려 입던 시절이었으니까. 가끔 한복을 입을 일이 있어 다른 이의 한복을 빌려 입을 때가 있었는데 기분이 어찌나 좋던지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래서 수련할 때 한복을 입고 한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 처음 한복을 맞추러 갔을 때 그 기분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얼마 뒤 완성된 한복을 보았을 때는 감격 그 자체였다. 어릴 때부터 왜 그렇게 한복이 좋았었는지, 한복 입을 일과 맞닿으려고 그랬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예전에 좋아하거나 희망했던 많은 부분이 도와 인연이 맺어지려고 수도해야 하는 도인이 되려고 그리 되었던 것 같다.
  요즘 나는 진정한 도인이 되고자 무진 애를 쓰고 있다. 무엇보다 기도와 심고를 통해 바라던 일들이 조금씩 이루어지는 것을 몸소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생활이 전부가 아니라는 확신이 점점 더 깊어짐을 느낀다.
  기도하고 심고 드리면 상제님은 꼭 들어주신다. 그것이 시일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스스로가 성심으로 심고하고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기도를 열심히 모시면서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바람이 이루어졌을 때 그 감동은 아마 도인이라면 한 번쯤 아니 여러 번 겪어 보았을 것이다. 심고의 결과는 생활하면서 문득 깨닫는 것 같다. 모르고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아!’하고 깨닫게 될 때가 많다. ‘그때 심고를 드렸는데 이제 보니 이미 들어 주셨구나.’라고 말이다. 내가 모르고 지나치는 것을 한 번씩 깨우침을 주시곤 하신다. 그러면 상제님의 덕화에 감읍하지 않을 수 없다. 상제님께서 “나의 말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으리니 잘 믿으라.”고 하셨는데 살아가면서 수도생활을 하면 할수록 더욱 사무치게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이제는 내가 상제님께서 열어주실 후천 오만 년을 위해 더욱 매진해야 할 때이다. 아직도 오랜 수도생활로 기운이 크신 선각분들에 비하면 병아리에 불과하지만 병아리도 언젠가는 닭이 될 것이다. 지금도 한 번씩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 나를 주저앉히며 힘들게 하지만 그것은 더 큰 나를 위함일 것이다. 그 손님들을 이겨내고 나면 그때는 더 커 있을 것이고 또 다른 손님을 이겨내고 나면 더더욱 커 있을 것이다.
  그 날을 위해 오늘도 나는 초에 불을 붙인다. 두 손을 맞잡고 봉축주, 태을주, 기도주를 순서대로 읊어 나간다. 그리고 마음속 깊이 새겨나간다.
 “무극신 대도덕~”

 

<대순회보> 1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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