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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으로 돌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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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은희 작성일2018.11.20 조회1,4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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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 방면 선사 이은희  

 

  1년 전, 어느 분이 “≪대순회보≫에 글 하나라도 올린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하셨다. 없다고 대답한 순간, ‘≪대순회보≫ 발간도 도의 일인데 너무 방관자 태도를 가져왔던 게 아닌가?’ 라는 자성의 소리가 내 안에서 울려 나왔다. 그래서 ‘언젠가는 쓰자, 조만간 써 보자!’ 마음먹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일 년이 또 지나가려 한다. 사실 자신에 대한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민망하다. 그래도 이번에는 무작정 써 보기로 한다. 그저 일기 쓰듯이 자성의 목소리로, 격려의 목소리로!
  올해로 입도한 지 20년이 되었다. 입도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강산이 2번이나 바뀔 시간이 지나면서 ‘그동안 난 무엇이 바뀌었는가?’ 곰곰이 생각해 본다. 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다짐하지만 이번에는 더욱 절박하다. 여태껏 살아온 내 인생의 지도를 그려보고, 입도할 당시의 상황과 심경도 되뇌어 보고 점검해야겠다. 그래야 앞으로 그릇된 길로 더는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올곧게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을 바로 보고, 앞으로 살아갈 자신감을 얻으며, 도통이라는 궁극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도 점검은 반드시 필요하리라.
  이야기가 으레 이렇게 시작하듯 나는 시골의 한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자식들이 잠든 시간에도 부모님은 잠 못 드시고 돈 걱정, 끼니 걱정 하셨지만 난 우리 집이 그렇게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우리가 있어서 ‘늘 행복하다, 부자다.’라고 하셨기에 먹을 반찬이 김치, 고추장, 간장밖에 없어도 맛있었고 행복했다. 부자의 기준이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는 것을 부모님으로부터 배웠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잘 사는 사람들을 보아도 그다지 부럽지가 않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이던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사는 세상 사람들의 인생살이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삶에 대한 회의가 밀려왔다. 내가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 허무함에 공부가 손에 잡히질 않았다. 출세하거나 먹고 살기 위해 공부하고 직장 다니며, 돈 벌어 결혼해서 자식 낳고, 그 자식을 키우기 위해 또 돈 벌고, 그러다가 늙고 병들어 죽고 ….
  그러던 어느 날 『세상의 모든 딸들』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원시 부족시대나 과학기술이 발달했다는 현시대나 물질문명만 발달했지 사람 살아가는 큰 틀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다. 대체 인간은 왜 너나 나나 똑같은 삶을 반복하며 사는가? 지금이 원시 부족사회 때와 무엇이 다른가? 태어나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병들어 죽는 것은 국가와 인종을 막론하고 다 똑같다. 이러한 삶은 동물과 별반 다름이 없지 않은가? 대체 진리란 게 있긴 한 것인가? 우리가 태어난 목적이 있긴 한 것인가? 그냥 ‘우연히’ 태어났다가 돈 벌어서 맛있는 거나 먹으러 다니고, 유흥거리를 찾거나 여기저기 여행이나 다니면서 즐기고, 그나마 크게 바란다는 것이 명예와 권력을 얻기 위한 것인가? 그렇게 의미 없이 살 바에야 차라리 안 살고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수없이 했다. 
  하지만 눈앞에 학업이란 현실이 있기에 그 지독한 허무를 겨우 한 편으로 젖혀두고 현실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몇 년 뒤 대학 생활하면서 쌓여있던 허무가 더 지독하게 몰려왔다. 다시 찾아온 허무는 무기력증까지 몰고 왔다. 잘 있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기운이 빠져버리고 삶에 의욕마저 사라져 버리곤 했다. 급기야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휴학까지 했다. 이대로 살다간 나 역시 무의미한 쳇바퀴 속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성인’이라 불리는 분들이 존재하는 걸 보면 인생에 ‘뭔가’는 있을 것 같았다. 찾을 수만 있다면 일 년의 휴학 기간 그 ‘뭔가’를 찾고 싶었다. 찾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내 인생의 방향성은 잡으리라 다짐했다. 휴학 기간 동안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도 하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면서 정신세계에 관한 책들을 접하게 되었다. 영적 스승이라 불리는 ‘오쇼 라즈니쉬’나 ‘크리슈나무르티’의 책들, 고대 우리 조상의 정신세계가 담겨있는 『한단고기』나 『천부경』, 그리고 불교나 유교 관련 책들을 읽었다. 그렇게 책을 읽던 중, 아! 하는 순간에 말 그대로 강한 전류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관통하는 경험을 여러 번 하게 되었다. 뭔가 확 뚫리는 느낌이었다. 학창시절엔 단지 시험 보기 위해 공부했던 내용이 그제야 살아 움직여서 내 심금을 울렸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래, 인생에는 내가 그토록 바라던 ‘뭔가’가 존재해. 이렇게 허무하게 살려고 태어난 건 아닌 거야.”라고 속삭이며 느꼈던 그때의 그 감동은 글을 쓰는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기존의 종교 진리들을 다 포용하고 넘어서는,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참된 이치[眞理]를 깨닫고 싶다. 만약 그 진리가 밝혀진다면 이 세상의 수많은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어 평화가 올 터인데. 반드시 진리를 찾아서 전 세계에 그 진리를 펴고 싶다.’는 큰 뜻을 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서늘한 가을바람이 부는 날 선각자를 만나게 되었다. 유·불·선의 기성종교를 다 포함하는 큰 도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혹시 ‘진리’의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선각을 계속 만나서 교화를 들었다. 어느 날 저녁, 가슴이 벅차오르며 눈물이 쏟아졌다. ‘결국 내가 만날 것을 만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날 밤은 기쁨을 만끽하느라 잠도 오지 않았다.
  입도 후에는 서울의 서쪽에 있는 화곡동 집에서 동쪽의 중곡동 회관까지 먼 거리를 교화를 듣기 위해 다녔다. 집에서 한참 걸어나가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탄 후, 한 번 갈아타고 또 한참 가다가 내려서 마을버스로 갈아타서 회관에 도착하기까지 2시간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그 시간이 지루하지도 아깝지도 않았다. 그게 정성이라고 일러준 선각의 말씀이 가슴 깊이 새겨진 탓일 것이다.
  그렇게 선각을 만나기 전, 어떤 기수련 단체를 다니고 있었다. 언니가 평생회원으로 가입했기에 가족 1인은 무료라 수시로 그 선원에 가서 수련도 하고 얘기도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고, 심지어 지방수련회까지 다녔다. 지금 생각해도 꽤 열심히 다녔던 것 같다. 하지만 입도 후 두 가지를 하는 셈이 되니 비교가 되기 시작했다. 그 기수련 단체는 고지가 보이고 한계가 보이는데, 대순은 한량없게 느껴졌다. 끝도 한도 없는 무한한 뭔가를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 수련단체의 수련법은 건강하지 않으면 그 행공자세들을 견디기가 힘들고 다치기도 쉬웠지만, 대순의 수련법은 정말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법이었다. 상제님이 인간으로 오셨다는 것은 믿기지 않았지만 이런 쉬운 수도법은 정말 하느님이 아니면 내어놓기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기존의 단전호흡에 길들어 있던 나는 두 군데를 몇 달간 같이 다니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선원(기수련하는 장소)에서 100일을 기약하고 새벽 수련을 다니던 중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씻고 나가려고 들어간 욕실에서, 갑자기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내 귀 가까이에 대고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꾸짖는 듯한, 한편으론 안타까움이 묻어있는 음성이었다. 분명 사람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마이크 소리가 울리는 것처럼 그 작은 욕실 전체가 크게 울리는 듯한 소리였다.
  “이제 천하창생이 진멸한 지경에 닥쳤음에도!”라고. 너무나 깜짝 놀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이후에야 뭐가 뭔지 확연히 구분되었고, 그 뒤로는 선원에 나가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그 구절은 『전경』의 교법 1장 1절의 첫 부분이었다.
  당시 같이 새벽 수련을 하던 한 동생이 있었다. 눈 감고 수련하던 중 어떤 사람이 앞에 힘없이 서 있길래 자기 모습 같아서 안아주었다고 한다. 그 후 사람이 개나 소, 뱀과 같은 동물로 보여서 무섭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신의 세계를 믿지 않던 나는 그녀의 말을 이상하고 신기하게만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결국 그 동생은 일상생활도 제대로 못 하고 직장까지 그만두게 되었다. 나중에야 심각성을 느끼고 선각자를 만나게 하였으나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그녀의 눈에 상대의 목소리는 귀에 들리지 않고 입만 움직이는 게 보이자 놀라서 도망치듯 가버렸다. 그 뒤로 한 번 통화하고는 연락도 끊겨 버렸다.
  몇 년 뒤, 보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보게 되었다. 지하철을 탔는데 자리가 없어 서 있었다. 그런데 바로 앞자리에 그녀가 앉아 있었다. 반가움에 아는 척을 하려고 했으나 이내 접었다. 그 눈에는 초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 넋이 나간 모습이 눈에 선하다. 너무도 가슴 아픈 모습이라 지금도 마음 한구석이 짠하게 저려온다. 내가 조금만 더 도를 빨리 깨달아서 전했더라면 ….
  그 뒤로는 사실, 찾던 도를 만나 행복한 시간이었다기보다는 너무나도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 나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치를 알 듯 말 듯하면서 뿌연 안개에 휩싸인 느낌이란 정말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다. 종교를 믿어본 적이 없던 나는 상제님, 신명, 척신 등 이런 개념들이 너무나 낯설었고 인정하기 힘들었다. 진리를 깨닫게 해 달라고 심고를 드리는 것조차 나에겐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심고를 몇 번밖에 못 드렸는데도 언젠가는 그 해답을 얻게 되더라는 것이다. 어느 순간 저절로 알게 되거나 묻지도 않았는데 누군가로부터 답을 듣게 되거나.
  입도 후 일 년이 지난 어느 가을날이었던 것 같다. 집으로 오는 버스에서 창밖을 보며 서서 오는데, 순간 ‘내가 수도하려고 태어났구나.’라는 생각이 심연에서 올라왔다. 그리도 찾던 삶의 목적을 ‘그냥 알게’ 되었다.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원하던 답을 이렇게 쉽게 깨닫게 되다니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면서 창밖의 풍경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였고, 여러 힘든 일들을 겪다 보니 또다시 예전에 겪었던 ‘허무’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수도해서 도통하면 뭐하나, 개벽이 올 때 다 살리지도 못할 것이고, 누군가는 죽을 텐데 나만 살아 도통해서 부귀영화를 누린들 무엇하나, 다 허무하다. 이런 생각들이 끊임없이 밀려와서 나를 또 슬럼프에 빠뜨렸다. 허우적댔다. 그때 선각이 해주신 교화가 있었는데 아직도 그 기억은 잊혀지지 않는다.
  고대 우왕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9년 홍수로 백성을 위해 치수사업을 하면서 당신 집 앞을 지나가면서도 한 번도 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사지공(無私至公)한 우임금의 큰마음에 감동되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계속 나와서 그쳐지지 않았다. 그런 사사로움이 없는 지극히 공적인 삶이 너무나 멋지고 존경스러웠다. ‘그렇게 살면 허무하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선각이 물끄러미 날 바라보시면서 화장지를 건넸다. 그리고는 ‘도통천지보은(道通天地報恩)’이란 『전경』구절을 적으시면서 도통은 내가 잘 되고 조상 살리기 위함뿐만이 아니라 천지의 은혜, 상제님의 은혜를 갚는 게 근본 목적이라는 것이었다. 얼마나 반가운 말씀이었는지. 내가 살아야 할 이유, 삶에서 이뤄야 할 목적이 그 말씀 속에 들어 있었다. ‘도통천지보은’이란 구절을 알게 된 후부터는 ‘허무’라는 단어는 내 인생에 다시는 끼어들지 못했다. 그리고 도를 제대로 닦아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했다. 그렇게 내 수도 인생이 시작되었었다.
  수도생활은 수도(修道)라는 말답게 첩첩산중이었다. 한 고개 넘으면 또 한 고개, 양파껍질 벗기면 또 껍질이 있듯. 인산수도(人山修道)가 이다지도 힘들 줄은 상상도 못했다. 누구는 포덕하고 수도하는 게 그렇게 재미있다는데 나는 힘들기만 할까? 물론 잠깐씩은 기쁨과 보람이 없진 않았다. 후각의 집에서 도담 나누다가 밤 1시 기도를 같이 모시고 아침 출근길에 나올 때면 뿌듯한 보람이 느껴졌다. 이것이 도 닦는 맛이구나 ….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괴로움 그 자체였다. 과거 큰 서원을 세웠던 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초라하고 자신 없는 존재만이 있을 뿐이었다. 물론 나보다 더욱 힘든 일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들어서 안다. 그러나 내 나름은 그 힘든 무게를 견디기가 너무 괴로웠다. 정말 수없이 눈물을 흘린 것 같다. 내 의지로 도저히 멈추지 않는 눈물도 수없이 흘렸었다.
  눈물에도 끝이 있는가 …. 세월이 지난 뒤, 어느 날 몸부림치며 불현듯 깨닫게 된 것은 ‘모든 게 내 탓’이었다는 것이다.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괴로움의 원인은 나 자신의 ‘고정관념과 어리석음’ 때문이었다는 것을. 남 탓을 하고 싶었지만, 인정하기 싫었지만 결국은 모든 게 나에게서 비롯한 것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천지종용지사(天地從容之事)도 자아유지(自我由之)하고 천지분란지사(天地紛亂之事)도 자아유지(自我由之)”라는 상제님의 말씀을 이제야 조금 깨닫다니. 세상 모든 일이 내가 하기 나름이고 받아들이기 나름인 것을, 왜 몰랐을까? 이런 간단한 진리를 깨닫지 못해 20년 가까운 세월을 혼돈 속에서 방황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기 그지없다. 상제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면 쉬웠을 것을.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으로 아는 것은 정말 천지 차이임을 절감한다. 이런 쉬운 진리를 마음으로 깨닫는 데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구나. 이제야 좀 알겠다. 고생(苦生)을 사서 하는 게 수도임을. 그리고 고생의 본질을 알게 되면 고생이 더는 괴로움[苦]이 아니라 즐거움[樂]임을. 마음먹기 따라서 그 누군가의 말처럼 도 닦는 게 정말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고생의 본질을 알고 보니, ‘어려움은 하늘이 나에게 준 숙제’였다. 내가 주어진 숙제를 어떻게 풀어낼지 하늘은 늘 지켜보고 계시고, 기대하고 계심을 생각하니 살아갈 힘이 난다. 상제님께서 『맹자』의 한 구절을 외워주시며 이 외에는 더 볼 것이 없노라고 하셨던 그 깊은 뜻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숱한 고생을 통해 인내심을 키워서 그전에 하지 못했던 바를 가능하게 해서 그 사람을 쓴다고 하였다. 하늘은 고난과 역경을 통해 마음을 강하게 단련시키고 지혜를 자라게 하여 나중에 크게 쓰시려고,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공을 들이고 계신 것이다.
  지금의 나는 기특하게도, 오랫동안 풀지 못했던 괴로움의 원리를 찾았고, 그 원리를 통해 오래 묵은 숙제들을 하나씩 풀고 있다. 모든 것에 내 탓을 하니 이렇게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20년이면 강산이 두 번 바뀔 시간이지만 난 아직도 하나의 허물만을 벗은 듯하다. 어떤 이는 지나간 일은 후회하지 말라 하지만 사실 후회가 많이 든다.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그러나 그때의 지혜가 짧았던 것을 생각하면 그래도 ‘내가 조금은 발전을 했구나.’라며 스스로 격려를 하게도 된다. 앞으로 또 다른 숙제를 하늘이 주시겠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있고 삶에의 자세가 조금 바뀌었고 삶의 목적이 뚜렷하고 비록 수행이 많이 부족하지만 내가 대순의 진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자신을 돌아보고 큰 뜻을 품었던 초심을 되살려 앞으로 다시 나아갈 힘을 얻기 위해서다. 잘못투성이, 자존투성이, 어리석음투성이에 꼬이고 꼬였던 내 마음을 반성하면 앞으로 그 엉켰던 실타래가 풀리리라 믿는다. 그리고 힘든 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켜준 선각분들과 후각들, 그리고 주변의 많은 사람이 내가 도 안에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는 데 여러모로 큰 도움을 주셨음을 고백한다.  

<대순회보> 1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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