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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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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민 작성일2018.11.20 조회1,3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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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4 방면 평도인 김민  

 

  벌써 햇수로 5년 전 8월의 일이다. 고장 난 휴대폰을 서비스센터에서 고치고 전원을 켜니 어머니로부터 부재 중 전화가 수십 통이 와 있었다. 아무리 급하고 화가 나셨어도 이런 적이 없으셨는 데 하는 생각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며칠 전 통화에서 잇몸에서 피가 계속 나오는데 멈추지 않고, 부딪힌 곳도 없는데 온몸에 멍이 들었다는 말씀이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왠지 모를 불안감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딸 전화가 왜 이렇게 안 되니? 엄마 지금 신촌 세브란스 병원 내 어린이 병원 10층에 있어. 당장 입원해야 되는데 보호자가 있어야 된다고 해서 전화했던 거니 얼른 와라.”
  입원하셔야 한다는 말씀에 잠시 당황하다가 선각께 자초지종을 설명드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안내 데스크 직원에게 “어머니께서 어린이병원 10층에 입원한다고 하시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요?”라고 물어보니 “저기 편의점 좌측으로 돌아서 쭈욱 가셔서 횡단보도 건너면 어린이 병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 10층이면 무균실 병동인데….” 하며 말을 흐렸다.
  무균실 병동? 우리 어머니가 왜?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는 마음으로 어린이 병원 10층으로 가니 간호사실에 여름 내내 농사짓느라 까맣게 그을려서 누가 봐도 농사꾼의 모습을 하신 어머니가 보였다. 나는 옆에 있는 간호사에게 “무슨 병인가요?”라고 물으니, 간호원은 “현재 나타난 증상으로는 백혈병이 의심됩니다.”라고 말해주었다.
  우리 어머니가 백혈병에 걸리시다니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이런 내게 간호사는 당장 입원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면서 어머니에게 이것저것 인적사항을 상세하게 조사하는데(골수이식을 염두에 둔 듯) 어머니 직계가족의 생사여부를 소상하게 물어봤다. 종합병원은 병실이 쉽게 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그날 다행히 퇴원한 환자가 있어 곧바로 입원하실 수 있었다. 4인용 병실 안 침대 주변에 보기에도 두껍고 더워 보이는 투명 천이 커튼처럼 쳐져 있었다. 어머니께서 침대 위에 누우시는 걸 보니 비로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잠시 휴게실로 나와서 선각께 전화를 드렸다. 선각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쉴 새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동안 어머니께 잘못한 일들만 생각나고 혹여 나로 인해 저런 큰 병이 걸리신 것이 아닐까 하는 자책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한 내게 선각은 차분하면서도 진심어린 말씀을 해주셨다. “상제님께 간절히 어머니를 살려달라고 심고 드리면 어머니는 분명 잘 극복해내실 거니까 기운내라고.” 사소한 것에 목숨 걸고, 언제나 걱정거리를 끌어안고 사는 나를 선각은 항상 안타까워하시며 긍정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애를 써주셨다.
  이번에도 선각과 통화하면서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 것일까라는 생각에서 그래도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라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고 있었다. 더구나 백혈병은 고액암에 속하는 혈액암인데 어머니께서 선견지명이 있으셨는지 암보험과 다른 보험을 두 개 이상 더 가입하셔서 어마어마한 병원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 어머니께서 다행이지 않느냐고 내게 말씀하셨다. 또 치료약 값이 비싸 예전에는 약값을 지불할 수 없어서 치료를 포기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어머니가 입원한 그해부터 나라에서 약값을 부담해줘서 환자 본인은 약값의 5%만 지불하면 되었다.
  무엇보다 수도하기 전의 나였다면 결코 어머니의 간병을 선뜻 자청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친척들로부터 장녀라는 이유로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랐다. 장녀로서의 도리는 생각지도 않고, 그저 받는 것에만 익숙해 있었고,  그런 사실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었는데 수도하면서 이런 나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가족에게 비춰진 나의 모습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가족보다는 남에게만 잘하는 차가운 딸이었고, 언니, 누나였던 것이다. 어머니와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진심으로 어머니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선각께 말씀드리고 그날부터 6개월간의 어머니 간병을 시작했다. 입원하시고 일주일 정도는 무수한 검사의 나날이었다. 피가 부족한 어머니는 일명 빨간 피와 노란 피를 수혈 받으시면서 동시에 검사를 위해 매일 다량의 ‘피’를 뽑았다. 백혈병에 대해 알고 싶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세브란스 병원이 백혈병을 잘 치료하기로 손꼽히고 게다가 담당의사도 그 분야에서 꽤 유명한 분이셨다. 며칠 뒤 담당의사는 어머니의 정확한 병명이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고, 발명 후 15일 이내에 치료하지 않으면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매우 운이 좋으신 분이고, 골수 이식을 하지 않고 약물치료만으로 나을 수도 있다고 했다. 너무나 기뻐서 선각께 전화 드리고 아버지께 전화 드리면서 나도 모르게 수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더욱 기운을 내서 어머니의 간병을 시작하는데 하루 일과가 정말 숨 가쁘게 돌아갔다. 매번 대소변 양을 재서 체크하고, 병원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사고, 병원 밥을 전혀 드시지 못하는 어머니께 살균한 제품을 사느라 시장과 가까운 마트를 찾아 돌아다니고, 너무 못 드시면 누룽지를 끓여 드렸다. 어머니의 갑작스런 오한과 여러 증상들 때문에 무균실에서의 잠 못 이루는 긴장된 하루가 빠르게 지나갔다.
  돌이켜보면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서투른 신입 간호사의 실수로 링겔 바늘이 빠져서 밤새 바닥에 피가 쏟아진 적이 있었는데 다행히 옆에 환자가 화장실 가다가 발견해서 위기를 넘기셨고, 또 거의 식사량은 없으신데 한 달 만에 12킬로그램 이상이나 체중이 느시는 바람에 다리가 퉁퉁 부어서 화장실 가기도 힘든 상황이 되니 의사들은 임시방편으로 이뇨제를 투여했고 하루에 수십 번 씩 소변을 보고 체크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결국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갖 검사를 하니 심장주변에 물이 차서 체중이 급격히 증가한 것이라고 하며 의사는 내게 수술할 것을 권했다. 수술 동의서에 사인하면서 수없이 상제님께 심고를 드렸다. 무려 다섯 시간 이상의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사나흘이 지나자 조금씩 부기가 빠지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예전의 체중을 되찾으셨다.
  항암 1차를 마치고 과다한 항생제 투여로 인한 부작용으로 제중원에 있는 격리병동으로 병실을 옮기게 되었다. 격리환자라는 주변 병동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와 함께 생과 사를 오가는 다른 중환자들과 지내야 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병실의 맞은편에 있던 환자가 어머니와 나이, 병명, 심지어 담당의사도 같았다. 그분은 증세가 심해서 의식이 거의 없어 자식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심각한 상태였다. 곁에서 간병하시던 그분의 남편은 어머니의 나날이 좋아지는 병세에 대해 무척이나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는 하셨다. 게다가 나와 남동생이 교대로 24시간 어머니 곁에서 간병하는 것도 드물게 찾아오는 당신의 아들들과 비교가 된다며 한숨을 짓기도 하셨다. 이런 인연으로 만나서 가슴 아프지만 죄송스럽게도 그분들을 보면서 어머니는 더욱 힘을 내서 치료에 전념하실 수 있었다. 그렇게 격리병동과 집을 오가면서 항암 4차를 무사히 마치시고 퇴원하게 되었지만 완전히 완쾌된 것은 아니라서 퇴원 후에도 두 달에 한 번씩 피검사와 유전자 검사를 위해 시골에서 서울로 오시기를 반복하셨다. 그러다 드디어 올해 8월 담당의사가 더 이상 항암제를 먹지 않아도 되고, 이렇게 좋은 케이스는 드물다고 말했다며 어머니는 기쁨에 차서 내게 소식을 전하셨다. 더불어 어머니께서는 “엄마 대소변 받아내는 것 쉽지 않았을 텐데 …. 고맙다. 딸아! 엄마가 많이 사랑한다.”라고 처음으로 내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쓰셨다. 평소 닭살스럽다고 안하시던 표현이었는데 아프시고 난 뒤로는 여러모로 많이 변하셨다.
  어머니와 다정하게 이런 대화를 나누는 날이 오다니, 도 닦는다고 어머니께서 모질게 대하셨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간병하면서 병원과 집을 오가며 기도를 모시고, 수호를 단 하루라도 반드시 가고자 했고, 목숨보다 소중한 공부도 놓치지 않고 들어갔었다. 그때마다 남동생에게 내 사정을 얘기하고 나대신 간병하기를 청했다. 고맙게도 남동생은 나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 주었다. 또한 어머니는 간병비를 챙겨주셔서 월성을 모실 수 있었다. 오랫동안 절에 다니셨던 어머니이지만 간곡한 나의 권유에도 아직 입도하시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때 이후로 예전에 비하면 생각이 많이 바뀌셨다.
  오늘날 이런 나의 긍정적인 변화와 가족들과의 사이가 원만해진 것은 ‘道’를 만나서 수도하지 못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항상 진심으로 걱정해주시고 이끌어주시는 선각이 계시고, 언제나 따스한 온기를 전해주셨던 방면 식구들 덕분에 절망스러웠던 그 시간을 잘 견딜 수 있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고, 어머니가 병에 걸리시고, 사춘기 시절 원인 모를 이유로 빠져버린 머리카락은 예전처럼 돌아오지 않았지만 이렇게 상제님의 도문소자로 수도할 수 있어서 지금 저는 무척이나 행복합니다. 상제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대순회보> 1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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