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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하니 작성일2018.11.21 조회1,3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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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40 방면 선무 유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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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에게는 사랑스런 두 아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때때로 저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됩니다. 저는 그 시절에 행복했던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당시 부모님께서는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서류상 이혼을 하셨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생활은 같이하시는 상태였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는 가정불화로 이어졌고 이때부터 부모님의 사이는 점점 멀어져 다투는 일이 잦았습니다. 한참 사랑받아야 할 시기에 갑작스럽게 불어온 가정의 풍파는 어린 제가 감당하기에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저에게는 두 살 터울의 오빠가 있는데, 어머니는 장남인 오빠를 집안의 대들보로 여겨 큰 기대를 하시고 모든 정성을 쏟아 부으셨습니다. 저 또한 오빠처럼 어머니로부터 관심 받고자 저 나름대로 노력해보았지만 오빠와는 달리 영특한 자식이 못되었는지 하는 행동마다 미운 짓만 골라한다며 늘 혼만 나곤 했습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스스로 모든 것을 원망하여 반항심만 키우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었습니다. 제가 대순진리회에 입도한 시기도 이때 즈음입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입도식을 하며 제가 유일하게 간절히 빌었던 소원은 ‘가족의 화목’ 단 하나 뿐이었습니다. 이는 저와 관련된 모든 불운이 불행한 가정 때문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저는 우리 가족만 다시 화목해진다면 많은 부분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하지만 입도 후 부모님께서는 서류상 이혼이 아닌 정식으로 이혼을 하시어 가정이 깨지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말미암아 가정환경도 어수선한 상태라 마음은 늘 불편하였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생각과는 달리 수도와 포덕을 비롯해 뮤지컬 배우를 꿈꾸며 몸담아온 극단생활 어느 것 하나 뜻대로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런 저런 어려움이 계속 불어 닥치자 모든 것이 원망의 대상이 되어 수도는 고사하고 조상님까지도 원망스러워 괜스레 선각분들께 화풀이를 하곤 했습니다. 머릿속을 맴도는 이런 생각은 저로 하여금 또 다른 원망을 불러왔습니다.
  ‘이게 다 내가 사랑받지 못 해서 그런 걸 거야.’ 마음 한 구석에 숨어 있던 어린 시절 상처받은 내면아이의 욕구가 또 다시 꿈틀 거린 것이다. 모든 잘못된 일의 원인을 부모로부터 사랑 받지 못한 탓으로 귀결시킨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을 원망하며 심신이 힘든 저를 선각분들은 끝까지 놓지 않으셨고 정성껏 인내하시며 교화하셨습니다. 선각분들은 이런 저에게 수시로 『전경』을 읽으며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잡고 어려운 상황을 이겨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시며 저를 공감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수도생활을 하다가 선무 임명을 모시게 되었고, 그 후에는 이제 자신을 사랑해주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스스로의 행복을 빌었습니다.
  21살이 되었을 때 저는 돈을 더 모아서 제가 좋아하는 뮤지컬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회사에 입사하였고, 그곳에서 신랑을 만나 결혼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신랑은 저를 아껴주고 이해하며 공감해주어 너무나도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신랑과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첫 아이의 출산 이후 남편의 태도가 평소와는 많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전과는 다르게 변해가는 남편의 모습에 저는 어찌 해야 할 바를 몰랐고, 남편과의 사이는 점점 소원해져 갔습니다. 그런 와중에 둘째를 출산하게 되어 연년생 두 남자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예전과는 다르게 마음이 멀어진 신랑과 제 손이 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 아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고 힘겨웠습니다. 문득 문득 멍하니 생각에 잠길 때면 ‘내가 왜 이렇게 됐지?’ 하며 땅이 꺼질 듯 한 한숨이 나왔고, 혹시나 부모님과 같은 부부생활이 될까봐 두렵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럴 때 마다 상제님께 심고를 드렸지만 마음 한편에는 저를 뒤돌아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원망을 쏟아냈던 것 같습니다. 점점 숨을 쉬는 것도 힘들 정도로 또 다시 저를 포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하루는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지내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치 저의 어린 시절을 보는 듯 했습니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부모상을 내가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이들에게 상처만 주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다잡고 힘을 내고자 다시 선각분들을 찾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미안한 마음에 입이 떨어지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선각분들은 이런 저를 사랑으로 감싸주셨고 그 도움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수도생활을 다시 시작하고 바른 마음으로 수도하며 수련에도 정성을 다하였습니다. 그렇게 수련을 하다보니 어느 날 남편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혼자서만 지내던 사람이 어느 날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갑작스레 짊어진 가장의 무게가 얼마나 힘겨울까? 이는 지금까지 제가 헤아리지 못한 남편의 모습이었습니다.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 책임감과 본인의 사회적 지위를 비롯해 이런 저런 내면에 쌓인 고민들로 괴로워하는 남편을 생각하니 남편의 마음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신랑을 위해 정성을 다하기로 마음먹고 감사와 사랑으로 남편의 힘겨운 모습을 끌어안았습니다. 그러자 차츰 멀어지고 소원해진 부부사이가 가까워지게 되었고 대화시간도 많아졌습니다. 이로서 남편은 전과 같이 자상한 신랑으로 돌아왔고 입도까지 하게 되어 부부가 같이 수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때때로 신랑과 같이 참배도 가며 두 사람이 많은 부분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다시 주변 사람들이 알아 줄 만큼 다정한 부부가 되었습니다. 남편은 제가 도장 참배를 가고 싶다하면 열 일 제쳐두고 도장에 데려다 주고 성(誠)날이 되면 아이들을 돌봐주며 저를 지지해주고 있습니다. 저로부터 비롯된 변화가 모든 것을 새롭게 변화시켰고 이제는 매사에 감사한 마음이 저절로 들어 항상 남편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 행복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저로부터 시작된 자그마한 변화를 매사에 실천하며 정성을 다해 수도를 하자 신기하게도 어린시절 어머니가 제 볼을 깨물며 사랑스럽게 안아주던 모습과 아버지가 놀이터에서 놀아주시던 행복한 기억이 하나 둘씩 떠올랐습니다. 한 번도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저도 부모님에게 사랑을 받았던 모습이 떠오른 겁니다.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사랑받지 못했다고 원망만 했는데 왜 과거에는 그런 기억이 생각나지 않았던 걸까요. 눈물이 났습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낳아주시고 힘든 시절 버텨가며 저를 키워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가족들을 돌아봤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일을 하시며 아버지의 삶을 살고 계시고 오빠는 요리사의 꿈을 이뤄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자유로이 일도 하시고 산악회 활동을 하시며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지내고 계십니다. 가족들의 모습을 보고 나니 저의 삶을 뒤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각분들의 마음이 보였습니다.
  선각분들은 제가 어떤 모습이든 항상 저를 격려하고 이해해주셨고 교화로써 바른 길로 인도해주시어 상제님을 찾아 바르게 수도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습니다. 다시 한 번 이 지면을 빌어 선각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또한 이런 인연을 주신 상제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무엇보다 저를 바꿔 나가기 위해 노력하며 수도의 중요성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상제님의 덕화 속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음에 행복을 느낍니다.  

<대순회보> 1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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