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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나연 작성일2018.12.06 조회3,6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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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반 방면 교정 정나연 876a48a2667458f36c0ee04ef0520d5f_1544075 

 

  대순진리회에 입도한 후 가장 먼저 본 영상은 ‘화평의 길’입니다. 이제 갓 입도해서  상제님이 누구신지, 도주님은 또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제게 ‘화평의 길’은 낯선 내용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오래전에 만들어진 사극을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결국, 정신을 반쯤 출장 보낸 채 ‘화평의 길’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을 번쩍 뜨게 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마음을 속이지 말라. 언덕을 잘 가지라. 척을 짓지 말라. 은혜를 저버리지 말라. 남을 잘 되게 하라.”
  ‘마음을 속이지 말라, 은혜를 저버리지 말라, 남을 잘 되게 하라’는 것을 제외하고 다른 두 가지는 무척이나 생소한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뭔가 아주 중요한 내용인 것 같아서 그 부분을 여러 번 돌려보며 내용을 받아 적기까지 했습니다. 선각에게 그게 무엇인지 물었더니 훈회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수도인들의 실천사항이라는 말을 듣고 나니 포덕소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대단해 보였습니다.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었으나 시간이 늦은 관계로 저는 집에 돌아가야 했습니다.
  집으로 가는 내내 훈회의 내용이 머릿속을 떠다녔습니다. 특히 두 번째인 ‘언덕을 잘 가지라’는 말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언덕을 잘 가지라? 언덕?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 언덕인가? 그럼 소를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되고 도움이 되는 이가 되라는 말인가?’
  생각은 계속되었으나 답을 알 수 없어 궁금증만 커졌습니다. 다음날 오후가 되어서야 알았습니다. 훈회의 언덕은 소가 비빌 언덕이 아니라 언덕(言德)이라는 것을. 차마 말은 못 하고 속으로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소가 비빌 언덕이라니…….
  제가 유독 언덕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 때문이었습니다. 성격이 그렇다 보니 말재주와는 거리가 멀었고 말수 또한 적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유독 말에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이런 제게 ‘언덕을 잘 가지라’는 말의 신세계였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말에 덕이 있으려면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마음은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하나씩 하나씩 묻고 공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집에 가는 날보다 포덕소에 머무는 날이 더 많아졌습니다.
  어느 날 포덕소에 계시던 분들이 모두 나가시고 혼자 있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청소도 하고, 전화도 받는 등 이것저것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내수 임원분께서 오셨습니다. 다소 듬직한 체구를 가진 분으로 경상도 특유의 억양과 강한 어투를 소유한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저를 보시더니,
  “혼자 있어요?”
  “네.”
  “그래요? 선감 계세요?”
  “선감요? 안 계시는데요.”
  “어디 가셨는데?”
  “네? 모르는데요.”
  “뭐라고? 포덕소를 지키고 있으면서 선감 어디 가셨는지 모른다고?”
  순간, 저는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포덕소에 있으면 선감께서 어디 가시는지 알고 있어야 하는 건가? 선감께서 나가실 때 어디 가시는지 여쭤봐야 하는 건가? 여쭤봐도 되는 건가? 어떻게 여쭤보지? 내가 잘못한 건가?’
  여러 가지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임원분의 말씀을 듣는 중에 갑자기 정신이 멍해졌습니다. 그러더니 환영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긴 손톱이 달린 하얀 손이 나타나더니 제 가슴팍을 움켜쥐고는 살 한 줌을 뜯어내는 것이었습니다.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고통은 마치 사실처럼 느껴졌습니다. 한참 동안 가슴을 움켜쥔 채 서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임원분은 가시고 저만 혼자 서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환영은 무엇이었을까요? 나중에 생각해 보니 임원분께서는 저를 포덕소 당직자로 오해하시고 책임을 알려 주려 하셨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지역 사람인데다가 당시에는 평도인이다 보니 임원분의 말씀 속에 담긴 진의를 생각하기도 전에 먼저 그분의 억양과 말투에 큰 상처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 아픔은 제게 하나의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말은 비록 형체가 없지만 살아 있어서 사람을 해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저는 한참을 충격 속에서 살았습니다. 혹시나 제 말이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할까 싶어서 조심하다 보니 말하는 것이 두려워졌고 말수 또한 더욱 줄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두려움에서 저를 건져줄 일이 일어났습니다. 마치 말이 꼭 그렇게 부정적인 영향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 주기 위해 마련된 신명의 안배 같았습니다.
  그날은 금강산토성수련도장 연수를 가기 위해 방면 버스를 탔던 날이었습니다. 인솔하시는 내수 임원분께서 나오시더니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찾아다니시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궁금했으나 뒤쪽에 앉아 있어서 그분들의 대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알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제 앞자리에 앉은 분과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어머~, 강내수 오랜만이에요. 다시 만나니까 정말 반갑네요. 그동안 좋은 일이 있었나 봅니다. 얼굴이 정말 예뻐졌네요.”
  “네. 안녕하셨습니까? 선감예.”
  “정말 반가워요. 우리 강내수, 연수 오랜만에 가는 거죠?”
  “네.”
  “그래요, 얼굴이 밝아 보여서 참 좋네요. 강내수를 보니까 제가 든든해지네요.”
  “감사합니다.”
  “연수받는 동안 우리 잘해봅시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참 간단한 대화였습니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난 가족처럼 무척이나 반가워했습니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화하는 내내 손을 맞잡고 있었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제 가슴이 훈훈해지고 행복해졌습니다. 무엇보다 제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오가는 말들이 참으로 정다웠다는 것입니다.
  ‘저렇게 말할 수도 있구나. 말소리가 마치 노랫소리 같아. 나도 저렇게 말하고 싶다!’
  그저 감탄만 하고 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특별히 다른 말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누구나 만나면 나누는 아주 평범한 대화였습니다. 하지만 그 평범한 대화가 상처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한 저에게는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안겨주었습니다. 저만 이렇게 느끼나 싶어서 주위를 둘러보니 버스에 계시던 분들 역시 두 분을 보며 웃고 있었습니다.
  저만 그렇게 느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서로를 생각하고 보고 싶은 마음이 말에 묻어 나와서 그랬던 걸까요? 이날의 일은 상처로 딱딱하게 굳어 있던 제 마음을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부드럽게 치료해 주었습니다. 상처가 나는 것도 그렇지만 치료되는 것 역시 한순간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경험은 제가 평도인이었던 시기에 말이 가진 위력이 어떤 것인지 몸소 깨닫게 해준 큰 사건이었습니다. 형체도 없는 것이 살아 움직이며 사람을 아프게도 하고 따뜻하게 치료도 하는 것을 직접 느끼면서 언덕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말에 담긴 진의와 함께 그것을 전하는 방법 또한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말이죠. 이 글을 쓰며 그때를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오늘 제가 했던 말들은 어떠했는지 잠시 돌아봅니다.

<대순회보> 2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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