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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이끌어준 입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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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용일 작성일2018.01.22 조회3,6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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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4 방면 교감 김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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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1985년도에 입도해서 상급 임원 임명을 모신지도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 보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항상 부족한 마음뿐입니다. 사실 입도를 하게 된 것은 죽기 직전까지 갔던 큰 딸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는 저도 몸이 너무 아파 병명도 없이 병원신세를 지고 있었지만 가정에 소홀한 남편 대신 6남매를 키워야하는 형편이어서 아프다는 핑계로 누워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친정어머니가 나오셔서는 저보고 때가 어느 땐데 이러고 있냐며 크게 호통을 치셨습니다. 생전에 어머니는 매일 새벽마다 부엌에 청수를 떠놓고 조왕신께 정성을 드리셨습니다. 그리고 막내인 제가 고생하는 것을 늘 마음 아파하시며 가슴에 제 걱정을 품고 돌아가셨습니다. 입도하기 전에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한 번은 점을 보러가니 점쟁이 말에 친정어머니가 옥황상제님 선녀가 되어있다고 했습니다. 조왕공을 많이 드리셔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런 어머니가 꿈에 나오셔서 한복을 빨리 입고 따라나서라고 하시니 저는 정신없이 어머니를 따라가다가 꿈에서 깼습니다. 제 상황이 오죽 답답하셨으면 어머니가 직접 제 꿈에까지 나타나셨을까요?

 

그 길로 큰 딸을 찾아갔는데 아들까지 있던 큰 딸이 숨을 제대로 못 쉬면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1시간 쯤 지나자 딸이 깨어났는데 얼마나 무서웠는지 저보고 대구 팔공산에 있는 갓바위에 가서 정성을 드려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사실 그 전에 갓바위에 정성을 드리러 갔던 날 바로 그날 둘째 딸이 어디서 넘어져 팔에 깁스를 해서 그 후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큰 딸이 꿈에 큰 기와집에 갓을 쓴 부처님이 계시더라고 하면서 반야월 사는 딸 친구얘기를 하는 겁니다. 친구가 3년 동안 계속 자연 유산되다가 입도치성 모시고 나서 임신해서는 지금 6개월 됐다며 아무래도 거기 가서 정성들여야 자기가 살 것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딸 친구네로 갔더니 저를 포덕하려고 세 분이나 찾아오셨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포덕사업 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열정적이십니까. 저한테 계속 교화를 하시는데 다급한 마음에 하나도 안 들리고 일단 포덕소부터 가자고 했습니다. 포덕소에 마침 입도하시는 분이 계셔서 상차림을 먼저 봤는데 정말 산신제 드리는 것처럼 어찌나 깨끗하던지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또 그 배례법이 어찌나 마음에 와 닿던지요. 상제님께 4번 올리고, 도주님께 4번, 그리고 부처님께 3번 올린다는데 속으로 ‘아! 그래 절을 무조건 많이 한다고 좋은 게 아니지. 내가 동서남북에 절하러 다녀봤지만 이렇게 딱 떨어지게 절하는 데는 처음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좋은 마음으로 정성을 올려선지 몰라도 기분이 좋아 집으로 돌아가면서 주변에 사람이 없다 싶으면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면서 갔습니다. 그리고 큰 딸 집에 도착해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큰 딸이 머리를 싹 걷어 올리고는 옷을 깨끗이 갈아입고 거실에 앉아 있는 게 아닙니까. 그러면서 저를 기다렸다는데 정말 놀랐습니다.

 

그 후로 교화를 들으면서 포덕소를 다니고 있었는데 하루는 주인집 아주머니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주인집은 부부가 생선 장사를 하면서 당시에 돈을 정말 많이 벌었습니다. 그 집에 고등학생 아들이 있었는데 그렇게 부모 속을 썩였답니다. 답답한 마음에선지 주인집 아주머니가 저를 붙잡고 어디서 정성을 드리냐고 하면서 같이 좀 가게 앞장을 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얼떨결에 포덕소로 데리고 갔습니다. 선각께서 교화를 하셨는데 치성물을 준비하라고 하니까 그렇게 돈 많은 사람이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돈을 다 어디에 쓸려고 그랬는지 사람 욕심이 정말 끝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입도 열흘 만에 포덕을 했는데 그 뒤로는 말만 하면 자연스레 포덕이 됐습니다. 하지만 먹고 사는 데 힘들다 보니 어느 날부터 포덕도 뜸하게 되고 포덕소에 가는 일도 점차 줄었습니다. 그때 선각께서 “때 꺼리도 못 벌어 놓고 뭐한다고 정성드릴 시간도 없냐.”며 호통을 치셨습니다. 그 말씀에 ‘그래, 맞지. 내가 벌어먹고 살겠다고 정성을 안 드리면 안 돼지.’ 싶어 그때부터 주문을 외우고 수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주인 집 아주머니가 아들 좋게 하려고 자꾸 저를 찾아와 포덕소에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그 모습에 ‘그래도 내가 선각인데 좋은 모습을 보여야지.’ 싶어 그때부터 열심히 포덕하고 교화하러 다녔습니다.

 

그런데 잘 되던 포덕도 가족들은 잘 안 됐습니다. 죽다가 살아났던 큰 딸도 입도를 안 한다니 말입니다. 참 이상하지요. 그런데 어느 날 손자가 다 죽어가는 것처럼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런 손자를 안고 사위가 덜컥 저를 찾아왔습니다. 어쩌겠습니까? 물 한 그릇 떠놓고 속으로 상제님, 도주님, 도전님 다 찾아가며 정말 애타게 심고 드렸습니다. 그러고 그 물을 애한테 먹였더니 놀랍게도 애가 정신을 차리고서 박수를 치는 거였습니다. 너무 놀란 큰 사위는 그 길로 입도치성을 모셨고, 지금은 정리가 됐습니다. 큰 딸도 물론 입도해서 선사가 됐고요.

그 후로 자식들이 다 입도해서 막내딸은 몇 달 전에 선무 임명을 모셨습니다. 어린 시절 잘 먹이지도 못하고, 잘 입혀주지도 못한 엄마를 원망 안 하고 도와주려는 자식들이 너무 고맙고 또 미안합니다. 이렇게 글을 올리면서도 참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저의 경험이 조금이나마 수도인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 몇 자 적어봅니다. 이렇게 도문에 들어와 수도하고 임원까지 될 수 있게 해주신 상제님의 덕화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대순회보 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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