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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의 덕화로 새 삶을 얻은 나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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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호 작성일2018.01.27 조회3,9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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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방면 교령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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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한 기억을 상기시켜 보건대 아마도 고등학교 때의 일로 기억된다. 당시 부모님은 집 한 채를 방면 포덕소로 내어드리고 매일 그곳에서 생활하다시피 하시며 포덕사업에 매진하셨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부모님의 수도생활을 지켜보며 자라 온 나로서는 때때로 부모님의 수도생활을 못마땅히 여겨 불평불만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만의 직접적인 원인이 부모님의 수도생활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 쓰나미처럼 불어 닥친 한 사고는 여태껏 가져온 대순진리회에 대한 나의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사고당일.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아침 일찍 등교해 야간 자율학습까지 마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방과 후 돌아와 보니 작은아버지께서 집에 와 계셨다. 당시 작은아버지께서는 인근의 아파트에 살고 계시는 터라 퇴근 후 자주 들르셔서 이것저것 챙겨주시기도 하시고, 가끔은 집에서 주무시고 가시는 경우도 있었다. 그날도 작은아버지께서 주무시고 가신다기에 우리 형제들은 작은아버지 곁에 둘러 앉아 한참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 자정이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잠이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냥 잠결에 잘못 들었으려니 생각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그러나 이내 전화벨은 다시 울려대기 시작했다. 따르릉 따르릉~ 이번에는 작은아버지께서 일어나셔서 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그런데 전화를 받으시던 작은아버지의 낯빛이 매우 어두워 보였다. 표정을 통해 대충 짐작하기에도 좋지 않은 일임이 분명했다. ‘우리 집에 걸려온 전화인데, 이 시간에 누가 무슨 일로 전화한 것인지, 그것도 좋지 않은 일로…’ 속으로 이 같은 생각을 머릿속으로 되 내이고 있을 때쯤 통화를 마치신 작은아버지께서는 우리들에게 상황을 설명하시고 형과 함께 황급히 병원으로 가셨다.

 

어머니께서 방면 도인분들을 교화하고 늦게 귀가하시던 중 교통사고를 당하신 것이다. 사고 다음날 형에게 들은 말에 따르면 어머니께서 운전하시던 차량을 마주오던 대형트럭이 받고서 뺑소니를 쳤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장면을 목격한 택시기사분이 타고 있던 승객을 내리게 하고 사고차량에서 어머니를 구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다고 한다. 당시 그 기사분은 늦은 시간인데다 차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되어 처음에는 운전자가 사망한 줄로만 알고 자신도 그냥 지나칠 요량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고 장소가 인적이 드문 곳이라 만약 모르는 척하고 그냥 지나쳐 버리면 혹시 살아 있을지 모를 한 생명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직접 사고차량으로 향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고마운 분이다.

 

한편 뒤늦게 소식을 듣고 아버지와 방면선감께서 병원으로 달려오셨다. 당시 어머니의 몸 상태는 거의 사망 직전이었다. 급하게 달려오신 방면선감께서는 응급실에 실신해 있는 어머니의 손을 잡으시고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태을주를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선감께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태을주를 하시면 피가 멈춰서 어머니께서 숨을 쉬고, 잡고 있던 손을 떼면 파손된 장기와 갈비뼈, 그리고 여기저기 찢어진 곳에서 피가 계속해서 흘러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수술실로 옮겨졌다. 당시 의사들은 어머니의 상태가 매우 위독한 상황이라 수술을 해도 생명은 보장하기 힘들다고 말하며 수술실로 옮겼다고 한다.

 

이 일이 있은 다음날, 나는 우선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 도착한 나는 먼저 담임선생님을 찾아뵙고 상황을 설명한 후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는 동안 머릿속은 온통 어머니 생각뿐이었다. 그 당시 나의 심정은 어머니가 곧 돌아가실 것만 같아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했다. 슬픔도 잠시, 순간 나는 속으로 ‘불철주야 상제님의 덕화를 펴기 위해 일심으로 수도에 매진해온 결과가 고작 죽음의 기로에 서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분노의 감정이 치밀어 하늘을 원망하고 지금까지 믿어 온 도를 원망하였다.

 

이 같은 심정으로 병원에 도착한 나는 병실에 누워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순간 밀려오는 슬픔에 울컥 눈물이 솟구쳤다. 당시 어머니의 모습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 모습에 나는 넋을 잃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는 곧 정신을 차리고 어머니 곁에 앉았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몇 시간을 그렇게 앉아 있을 때쯤 조용한 병실에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수화기로 들리는 여성의 음성은 분명 낯익은 목소리는 아니었다. 전화상의 그 여성분은 대뜸 나에게 “지금 병실에 세 사람이 있네요. 어머니가 오른쪽에 계시죠. 곧 시료를 볼 테니 병실에서 움직이지 말고 심고 잘 드리세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당시 나는 이유도 모르고 그냥 시키는 대로 조용히 눈을 감고 얼마동안 심고를 드렸다. 그리고 다음날. 정말 기적 같은 일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웬만한 장기는 다 파손된 대다 갈비뼈까지 부러지고 몸 군데군데가 찢겨져 거동은 고사하고 생사의 기로에 있던 어머니가 놀랍게도 병석에서 일어나서 걸으시는 것이다. 사고 당일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촬영할 때만 해도 의사들은 하나 같이 어머니의 상태를 한동안 지켜봐야 한다며 장담하지 못했었다.

 

그러던 어머니의 건강상태가 하루아침에 호전되었으니 주치의는 놀라움을 금치 못해 어머니에게 다시 정밀검사를 해보자고 권유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검사 결과 모든 장기가 원래의 상태를 회복하고 다 부러져 있던 갈비뼈가 모두 붙어버린 것이다. 이에 의사들은 의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며 어머니께 말하기를 “아주머니 혹시 다른 기 치료 같은 거 받으세요?”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머리를 저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 현실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당시 나도 내 눈을 의심할 정도였으니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아마 믿기지 않을 거라 생각된다.

 

이 일이 있은 후 어머니의 건강 상태는 급속도로 호전되었고, 어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퇴원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시료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후에 다른 분들께 들어서 시료라는 것을 알고서는 한순간 도를 향한 불신으로 잘못된 생각을 했던 내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힘들 때일수록 더욱더 마음을 다잡고 일심으로 상제님께 심고 드렸어야 했는데, 힘들고 가슴 아픈 상황이 닥치니 이겨내지 못하고 도를 원망의 대상으로 삼았으니 지금 생각하면 한없이 부끄럽고 죄스러울 뿐이다. 정말이지 상제님의 덕화가 없었더라면 지금 나는 어머니라는 이름조차 부르지 못하고 평생 가슴에 품고 살고 있을 것이다. 이 일이 있은 후로 나는 도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지금은 나의 직계 선각이기도 한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밝은 마음으로 매사에 감사하며 수도에 정진하고 있다.

 

<대순회보 1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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