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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화의 모델이 되기까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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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귀순 작성일2018.02.14 조회3,7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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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1 방면 차선감 성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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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 시작되다

 

17년 전 몹시 추운 겨울날, 까맣게 잊고 있던 친구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결혼해서 읍에서 식당을 하고 있다고 꼭 놀러 오라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친어머니가 안 계셔서 어릴 때부터 고생을 많이 하고 자랐습니다. 그래서인지 속이 참 깊은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를 포덕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날 저녁에 곧장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네. 잠깐만 앉아 있어.”

 

그 시간이 가장 바쁜 것 같았습니다. 주문이 많아 도와주려고 해도 가만히 있으라고만 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모자를 푹 눌러 쓴 손님 한 분이 들어왔습니다.

 

“친구야, 어서 와. 내 친구다, 인사해.”

 

바쁘게 움직이면서 큰 소리로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멀찌감치 서로를 바라보며 머리로 인사를 했습니다. 왠지 저를 보고 쑥스러워하면서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남자가 왜 저러지? 얼굴을 몇 번이고 마주치면서도 말을 못하고 머리를 숙이는 것입니다.

 

저는 그날 후에 그 친구를 또 찾아갔습니다. 식당에 막 들어서는데 친구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차 한 잔 하자.”

커피를 타서 들고 오면서 저를 바라보고

“저번에 내 친구라고 인사했잖아. 모자 쓰고 온 친구.”

“응.”

“너 때문에 아프다.”

“왜?”

“그날 널 보고 한눈에 반했는지, 상사병 같아.”

“요즘에도 그런 사람이 있니?”

“증훈, 그 친구 진짜 순수하고 착하거든, 밥 한 번 먹고 데이트 한 번 해줘라.”

“뭐? 싫어. 내가 왜?”

 

“밥도 못 먹고 며칠째 시름시름 앓고 있단다. 너만 생각나고, 누우면 천정에 네 얼굴만 둥둥 떠다닌대. 그래서 잠도 못 잔다고 한다.”

 

“어제 나를 찾아와서 한 번이라도 만나게 해달라고 애원하고 갔다. 내가 이 자식 정신 차려라. 너를 만나 줄 사람이 아니라고 말은 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너무나 딱해서 내가 부탁한다.”

 

“왕 부담. 난 그런 사람 싫어. 처음 볼 때부터 좀 이상해서.”

“우리 다 친군데 부담 갖지 말고 한 번 만나 주면 안 되나? 내가 부탁할께. 사람 좀 살려 주라. 너 때문에 죽게 생겼다.”

 

“내가 왜? 뭐? 사람을 살려 주라고?”

순간 내 머리 속에는 포덕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번이면 되지?”

“그래 한 번이면 된다.”

“네가 친구라고 하니까, 한 번만 만나 줄게.”

우리는 약속을 하고 만났습니다. 서로 마주 보고 앉았는데 처음 하는 말이 웃겼습니다.

 

“제가 무섭지 않습니까?”

“아뇨. 착하게 생겼네요.”

“네? 다른 아가씨들은 제가 무섭다고 다들 싫어했어요.”

“제가 보기에는 법 없어도 살 사람 같아요.”

“그런 말 처음 들어 봅니다. 고맙습니다. 좋게 봐 주셔서.”

 

식당 하는 친구 말처럼 착한 사람 같았습니다. 호감 가는 얼굴도, 제가 좋아하는 이미지도 아니지만, 눈을 보는 순간 아난존자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수도해서 잘 닦으면 자기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여자를 보호해 주고 아껴줄 사람이지,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경주 불국사를 돌아 기림사를 관람하고, 감포 바닷가를 산책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어느 마을에 차를 세워놓고

 

“잠깐만 차에 앉아 계세요.”

 

하더니 골목길로 사라졌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는데 골목길에서 신발을 신지도 않고, 맨발로 어떤 분이 급하게 뛰어오셨습니다. 차 문을 열더니 내 손을 잡고 내리라고 하였습니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니,

 

“아가씨, 놀라지 말고 따라와요.” “내가 증훈이 엄마입니다.”

 

손을 잡고 끌려가는데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따라갔습니다. 집 입구에 들어서는데 운동장 같은 넓은 마당에 구석마다 농사짓는 기계 여러 대가 놓여 있었습니다. 거실에는 가족분들이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어머님은 제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같이 식사를 하자고 계속 수저를 손에 쥐어 주시는데,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밥을 먹었는지 뭘 먹었는지도 생각이 잘 나질 않습니다. 만나는 첫날에 시어머님, 아주버님, 큰형님이 될 분들과 저녁밥을 함께 먹게 되었습니다.

 

아버님은 어머님이 38세 되시던 때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어린 자식 6남매를 홀로 키워서 시집 장가보내서 다들 잘살고 있는데, 장가 못 간 아들 하나 때문에 노심초사 애가 타고 있었다고 합니다. 맞선도 무지하게 많이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 때에 아들이 아가씨를 데리고 왔다고 하니까 너무 반가운 마음에 신발 신을 겨를도 없이 뛰어 나오신 것입니다.

 

한 번만 만나 준다고 약속한 그날에, 난 시어머님과 가족을 만나고 시댁에서 식사까지 하였습니다. 이렇게 인연이 맺어질 줄은 꿈엔들 생각했겠습니까! ‘내가 한 번이라는 말을 안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머리 숙인 그 남자가 저의 인연이 되어 같이 수도를 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두 분 어머님이 맺어준 결혼

 

어느 집 부모님이라도 모두 같은 마음이시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어머니도 제게 짝을 지어 주고 눈 감고 싶다고, 형제들에게 비상을 걸어 놓았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께서 건강이 더 안 좋아지시는 바람에 사실 증훈씨보다 제가 더 급한 상황이었습니다.

 

“막내가 수도한다고 돌아다니다가 나쁜 놈들에게 붙잡혀 가면 어떻게 할래?”

“너희는 따뜻한 방에 배부르고 등 따뜻하니까 편하지?”

“막내 하나 어떻게 못하나?”

 

아무 남자나 선보고 대충 짝지어 결혼식을 올릴 것 같았습니다. 저도 급한 마음에 시간을 좀 더 늦추는 방법을 찾아보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 내가 남자를 데리고 가면 된다. 그러면 시간을 늦출 수 있다.’라고 생각하고 형식상이라도 남자를 구해야 했습니다. 저는 급한 마음에 증훈씨가 생각났습니다. 일단 이 고비만 넘기고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연락을 했고, 우리 집 사정을 얘기했습니다. 한 번만 우리 엄마 만나주면 된다고 말을 하면서, 부담 갖지 말라고 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묻는 말에 대답만 하고 다른 말은 하지 않기로 약속을 하고 친정어머니를 만나러 갔습니다. 친정어머니는 만나자마자 부모님과 가족 상황을 물어보시더니

 

“내 딸 좋아하는가?”

“네.”

“어디 보자~.”

하시면서 머리부터 발까지 천천히 살펴보시더니,

 

“몸이 좀 말랐네. 여자가 가서 잘 걷어 먹이면 되고, 인물은 남자 인물 이 정도면 됐고, 얼굴만 쳐다보고 사는 것도 아니니까, 키는 이만하면 됐다. 결혼 날 잡자.”

 

전화통을 당기시더니 어디로 전화를 하십니다.

“너 막냇동생 결혼 날 잡자. 내일 저녁에 집으로 다 모이거라.”

그러더니 바로 “뚝!” 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으셨습니다.

“자네, 내일 올 수 있나?”

“네.”

“내일 형님들이 오면 내가 시키는 말 할 수 있겠나?”

“네.”

“결혼하면 내 딸 대순진리회 안 다니게 할 자신 있는가?”

 

증훈씨는 대답을 못했습니다.

“내일 형님들이 물어보면 자신 있게 대답하게나. 대답을 잘해야, 결혼도 할 수 있다. 다른 조건은 없다. 수도한다고 돌아다니는 것만 안 하게 하면 된다.”

       

큰일이 나 버렸습니다. 이걸 어떻게 수습하지? 비상이 걸렸습니다. 갑자기 이럴 줄 몰랐습니다. 일단 돌아갈 때, 증훈씨와 다시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이날부터 진지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지금 제가 수도하고 있는 것을 그만둘 생각은 없습니다. 몸이 아파서 수도 생활을 시작했어요. 수도 후 건강해지면서 살아갈 이유가 생겼어요.”

 

대순진리회에서 수도하면서 사는 것이 맞는 것 같다며, 결혼할 수 없는 이유를 있는 것, 없는 것, 생각나는 것부터 만들어 가면서 얘기를 하였습니다. 밥도 할 줄 모른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렇게 결혼조건에 부적합한 부분만 골라가면서 말을 했는데도 그 사람 대답이

“내가 다해 주면 안 됩니까? 못하는 건 제가 다하면 됩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뭐 이런 사람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는 저의 수도하는 현실이 참 어려웠습니다. 선사 체에 선무가 없었고, 포덕도 어려웠습니다. 한편으로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도를 잘하고 싶은 마음에, 내 조건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나를 도와줄 수 있겠는지 그냥 한번 물어보았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생각나는 대로 다 말했습니다.

 

“첫째, 집에 못 들어가는 날이 많습니다. 둘째, 아기를 못 낳아 드립니다. 셋째, 제게 필요한 만큼의 돈을 주셔야 합니다. 넷째, 대순진리회는 죽을 때까지 해야 합니다. 다섯째, 밥도 못하고 할 줄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도 괜찮겠는지요?”

 

“네. 다 해드릴 수 있습니다. 저도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대순진리회에서 수도하라고만 안 하시면 됩니다.”

“그럼, 전적으로 수도하는 것, 모두를 도와주신다는 말씀입니까?”

“네.”

전 일부러 부담되는 것만 고르고 골라서 말을 했는데도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자신이 있다고요? 약속을 꼭 지킬 수 있습니까? 그러면 다시 생각해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 가족을 만나게 되면 나랑 약속한 것은 절대로 말하면 안 됩니다.”

라며 신신당부하였습니다.

“걱정하시지 말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만 알려 주십시오.”

“우리 가족이 원하는 조건에, 무조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하면 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합의를 보고 시댁으로 연락했습니다. 당장 아가씨 데리고 오라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동안 시어머님께서는 아들 짝을 찾아 달라고 조상님께 빌고 또 빌었다고 합니다. 그렇게도 기다렸던 소식이라 그런지 결혼하기도 전에 경사 났다고 집안이 잔치 분위기로 가득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결혼을 했습니다.

 

저희 방면에서는 저의 갑작스런 결혼 소식에 이런저런 말들이 돌아 다녔습니다. 사랑에 빠지면 수도도 못하게 될 거라는 것이었습니다. ‘내 마음속에 안 들어와 보았으니, 어떻게 알까? 모르는 것이 당연하지.’ 그다지 개의치 않았습니다. 신명 앞에 진실로 상제님 사업을 잘하려고 택한 길이지. 남자가 필요해서가 아니므로 기죽지 않았습니다.

 

       

아기와 소원

      

신혼 초에는 결혼생활에 적응이 잘 안 되어서 힘이 들었지만, 변함없는 남편의 따뜻한 마음으로 잘 참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 결혼 전 약속대로 남편은 잘 도와주었습니다. 시학·시법 공부 오고 갈 때, 수강, 연수 때 태워주고 데리러 오는 등 이런 모습을 보고 주변 수도인들이 점점 부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태기가 생겼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말을 안 할 수도 없고, 아기를 안 가지기로 했는데, 아기 낳지 말자고 약속했는데,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저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는 수도생활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당당하게 자식을 안 낳는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걱정되니까 잠도 안 왔습니다. 남편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말을 듣자마자 남편은 무릎을 꿇더니 제 다리를 잡고 애처롭게 바라보면서 말을 하였습니다.

 

“하늘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소원이 하나 있었는데, 만약에 결혼을 한다면 딸 하나 갖고 싶었습니다.”

 

딸이 아니라도 좋으니 낳기만 해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었습니다. 본인이 다 키우겠다고 하면서 간절하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말이 제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머리에는 다른 생각으로 꽉 차 있었으니까요. ‘공부, 공부…’ 공부를 못한다는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고민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를 찾아온 새 생명은 어떻게 해야 하나? 분명 그 생명도 원 풀고 싶어서 나를 찾아오지 않았을까?’ 도를 닦고 싶어서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입니다.

 

‘다시 생각을 해보자. 그렇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단 말인가?’

 

고민 끝에 저는 선감께 말씀드렸고 의논을 했습니다. 배가 불러오면 공부를 할 수가 없으니, 시법공부를 마무리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왕에 생긴 아기를 어떻게 하겠나? 머리 좋은 아기 낳고 싶으면 축시 기도나 빠지지 말고 하시오.”

라고 하시는데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시학공부가 나왔는데 갈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시학공부를 하고 싶은데, 배가 불러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날 밤에 저는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결혼한 것은 수도를 잘하려고 했을 뿐인데, 이게 무슨 꼴이야, 내가 목숨 걸고 해오던 공부도 못 가고, 왜 이러고 있는 거야.”

 

어찌 그리도 서럽던지, 부모님이 돌아가셨어도 그렇게 서럽게 울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밤새 울다 잠이 들었나 봅니다. 그때 우는 저를 본 남편은 말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팠다고 합니다. 내 애기 때문에 저 사람이 하는 공부를 못하게 되었으니,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며칠 뒤에 방면 선감께서 우리 집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다 같이 인사를 하고 앉았는데, 첫 마디가

 

“우리 마누라 공부 보내주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의아해하셨습니다.

 

“공부는 아기 낳고 공부 자리가 생기면 다시 가면 됩니다. 정성을 잘 드리면 다시 복이 찾아오겠지요.”

 

이날 선감께서는 ‘한 외수가 수도를 안 해봐서 공부가 뭔지도 모를 텐데. 이 사람 큰 도인 되려나? 차선감 만났을 때, 동해에서 큰 고기를 잡는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이 한 외수 꿈인가? 앞으로 도인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드셨다고 합니다. 제게 기대를 많이 하셨는데 큰 사업도 못하고 결혼을 했으니, 선감께서 얼마나 큰 실망을 하셨을지 알 것 같았습니다.

 

 

저는 선감 말씀에 따라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밤 1시 기도를 한 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기도하면서 배 속의 아기와 대화를 했습니다.

 

“네가 수도해서 도통하고 싶어 나를 찾아 왔다면 수도할 수 있게 해 줄게. 나의 소원도 들어다오. 네가 태어나면 네 아빠 손잡고 상제님께 인사드리러 가는 것이 내 소원이다. 꼭 그렇게 해다오.”

 

저는 아기 태명을 ‘소원’이라고 부르면서

 

“소원아~ 소원 들어줘.”

 

라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임신 중이라 피곤할 때도 있었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청수를 떠 놓고 정성을 들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본 남편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요즘 세상에 잠도 안 자고 밤마다 찬물 떠 놓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네.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왔나? 보통사람은 아니네.’

 

어쩌다 피곤해서 살짝 잠이 들 때면

 

“기도시간입니다.”

 

하면서 저를 깨워 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흘러갔을 때쯤, 남편이 수도 한번 해보겠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기쁜 마음보다 놀라움이 먼저였습니다.

 

“입도를 하겠다고요?”

 

“네”

 

저는 처음 약속대로 수도하자고 권유하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도 말을 하지 않았는데! 그 사람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이 뭘까? 결혼하기 전 약속한 것이 대순진리회 안 한다는 조건 하나였습니다. 그럼 ‘무조건’이 되는 것이네. 전 신나서 입도치성 준비를 했습니다. 저의 집에서 지성으로 입도치성을 모셨습니다. 더욱이 아기가 태어나면서부터는 회관에 주일 기도를 모시러 다니고, 도장에 참배 가고, 포덕하는 등 본격적인 수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실업자가 되면서


이러한 우리의 행복은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시련이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일하던 학원이 부도가 났습니다. 밀린 임금도 받지 못해 생활이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린이집까지 이유 없는 투서가 들어와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딸이 3살 되던 해였습니다. 우리 생활은 말할 수 없이 어려워졌습니다. 남편은 가장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괴로워할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급하게 친구 회사에 임시직으로라도 일을 나갔습니다.

 


 

저는 기도만 했습니다. ‘왜 갑자기 한 번에 일이 터진 걸까? 무슨 이유일까? 내가 복이 없는 걸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기도 모시며 심고 드리고, 또 심고 드렸습니다. 그러나 제겐 뾰족한 대책이 없었습니다. 힘겨워하고 있을 때, 교감께서 전화가 와서 무슨 일이 없는지 물어봤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일 없다고 말했지만, 얘기를 나누다 보니 자초지종을 다 털어놓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지금 고성제생병원 공사하는데, 공사 받들러 보내면 어떻겠는지요?”

순간 ‘맞다. 보내야 되겠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평소에 남편에게 교화를 하면 ‘내 마누라인데~’ 하며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 옆에서는 도를 빨리 깨닫지 못할 것 같은 생각에, 이 사람을 어떻게 하면 도를 제대로 깨닫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할 때 교감을 만난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 남편은요. 어느 한 곳에서 집중으로 교화가 들어가야, 도를 제대로 받아드릴 것 같아요.”

라며 남편의 성향을 교감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공사 받들면 좋은데, 기회가 되면 그렇게 해 보세요.”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공사’라고 말씀하시는데 번쩍하는 것입니다. 남편하고 의논해 보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남편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하지? 가려고 할까? 내 말을 따라 줄까?’ 이런저런 연구를 하는데, 문득 ‘이건 분명 조상님께서 우리가 제대로 된 수도를 하길 원하시는 것 같아. 그래서 이 시련을 주시는 것이 맞아. 이제 이유를 알겠어.’ 이때 상제님 말씀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天將降大任於斯人也 必先勞其心志 苦其筋骨 餓其體膚 窮乏其贐行

拂亂其所爲 是故 動心忍性 增益其所不能(행록 3장 50절)

천장강대임어사인야 필선노기심지 고기근골 아기체부 궁핍기신행

불란기소위 시고 동심인성 증익기소불능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임무를 맡기려 하실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수고롭게 하고, 힘줄과 뼈를 괴롭게 하며,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궁핍하게 하며, 그 하는 일을 어그러뜨리고 어지럽게 하나니, 이렇게 하는 것은 마음을 분발시키고 성질을 참게 하여, 그가 잘하지 못했던 일들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어떻게 하든 공사 받들러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떠한 방법을 찾아서라도. 그래야 앞으로 우리 가족이 잘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퇴근한 남편과 식사를 하면서, 차분하게 상제님 천지공사를 받들러 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였습니다. 지금 직장 구하기가 힘이 드니까 그곳에서 성실하게 하면 우리 업도 닦이고, 끝까지 잘하면 병원 직원도 될 수도 있음을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아내와 딸을 두고 긴 시간을 떨어질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3일 안에 빨리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도장에서 연락 오면 바로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남편은 입을 다물고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틀이 지나고 3일째 되는 날 저는 강력한 수단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편이 공사 받들러 가지 않으면 함께 살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된 수도를 하게 하려고 조상님들께서 우리를 힘들게 하신 것임을 설명하였습니다. 앞으로 달콤한 사랑만 가지고 살아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신 것임을. 조상님들이 우리를 잘살게 해 주려고 하는데 싫다고 하면 더 이상 희망이 없으니, 앞으로 당신하고 살기가 너무 힘들 것 같아서 포기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남편이 말할 수 없이 괴롭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 괴로운 가슴에 못질을 했습니다. 독하게. 그 사람이 없으면 저 자신도 지금보다 더 힘들다는 것을 왜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으니까, 저는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제야

 

“정말 당신이 원하는 것입니까? 내가 없어도 효경이 데리고 잘 살 수 있겠어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걱정하시지 마세요. 주위에 언니들도 많고 어머님도 계시고, 수도인들도 많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럼 가서 해 볼게요.”

그제야 대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도장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내일 바로 현장으로 올라오라고 했습니다. 하루 만에 급하게 준비를 해서 떠나는데, 딸이 아빠 목을 틀어 안고 얼마나 슬피 우는지 주위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멀리 가는 것을 느낌으로 알았나 봅니다.

 

 

 

 <대순회보 1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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