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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특별한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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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동재 작성일2018.04.05 조회4,0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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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양34 방면 교무 신동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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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시작은 지금부터 약 9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저는 주로 외국인(일본인)을 대상으로 하는 작은 관광호텔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출근을 해서 전번 근무자(야간근무자)에게 그 동안 일하면서 있었던 일을 인수인계 받는데 “어느 할머니가 사람을 찾아줄 수 있느냐 하는 무리한 부탁을 하니 업무에 지장이 오기 때문에 정중히 거절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손님의 부탁을 거절하라는 썩 달갑지 않은 인수인계 사항이었지만 일단 알겠다고 하고 근무교대를 했습니다.

 

 

그날은 평소에 비해 체크아웃 손님이 많아서 바쁜 날이었습니다. 체크아웃 시간이 다가오자 손님들은 더욱 몰려서 정말 바쁘게 일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 왔습니다. 돌아보니 어느 할머니 한 분이 손에 메모지를 한 장 들고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순간 ‘아, 전번 근무자가 말했던 분이 이 분이시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예상대로 정말 미안하지만 부탁이 있는데 혹시 들어줄 수 있냐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한국에 따로 이런 부탁을 할 사람이 없어서 그렇다고. 면전에서 바로 거절 할 수가 없어서 일단 메모지를 봤습니다. “탈북자 구호센터”의 “○○○”이라는 사람을 찾아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전화번호나 주소도 없고 단서라고는 위 두 가지가 전부였습니다. 단번에 봐도 지금 바로 찾을 수는 없고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손님께 사실대로 “이것은 여기서 바로 찾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객실 번호를 알려주시면 제가 찾아보고 체크아웃 하시기 전까지 답변을 드리겠습니다.”라고 답변을 드리고 객실 번호를 물어보고 확인을 하니 바로 오늘이 떠나는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름이 한글이름이었습니다. 그 순간 ‘일본말을 하는데 이름이 한국식이면 재일동포구나. 그리고 할머니 연배이시면 1세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손님께 물어보았습니다.

 

“오늘 떠나시는 날이네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혹시 재일동포세요?”

“네, 재일동포입니다.”

 

“할머니, 그런데 왜 처음부터 계속 일본어로만 이야기 하셨어요? 혹시 한국말은 전혀 모르세요?”

 

“그게 아니고 한국어를 조금은 하는데 재일동포라고 말하면 무시할까봐, 그리고 한국사람이 한국어도 잘 못하니까 부끄럽고 그것을 한국 사람들이 싫어할까봐 재일동포라는 것을 말하지 않고 숨겼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평소에 가지고 있던 재일교포에 대한 많은 생각들-역사의 소용돌이에서 한국ㆍ북한ㆍ일본의 관계 사이에서, 일본사회에서 수많은 핍박과 고통과 차별을 당했던, 지금도 공공연히 당하고 있는 것에 대한 연민, 같은 민족으로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 등-이 교차되면서 ‘이 부탁을 꼭 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이미 시간이 꽤 흘러 주변에 다른 직원들은 빨리 대충 거절하고 밀려있는 다른 손님들을 응대해주기를 바라는 눈치였습니다.

 

“할머니, 이 부탁은 알아보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으니까 할머님 주소하고 연락처를 알려주시면 제가 최대한 찾아보고 결과를 답변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 후 연락처를 받고 명함을 드리고 헤어졌습니다.

 

그날 퇴근 후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탈북자구호센터”를 단서로 찾아보았지만 그런 이름으로 된 단체는 없었습니다. 탈북자 관련 단체를 찾아보니 크고 작은 단체가 수없이 나왔습니다. 말 그대로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였습니다. 휴… 일단 가장 규모가 큰 곳부터 전화를 해보았습니다. 그런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다음 규모의 단체로 차례대로 전화 걸기를 수차례. 하지만 역시 그런 사람은 없었습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한 곳에서 그분이 예전에 탈북자 관련해서 일을 하기는 했었는데 소식이 멀어진 지 한참 되었다는 소식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다시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어제 그 할머님의 얼굴을 생각하니 이렇게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결국 찾지 못했다고 전화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제 꼭 찾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는데 이렇게 포기를 하다니.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까 한참을 생각하던 중 ‘그래 이름으로 한번 검색을 해보자’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라 이름으로 검색을 해 보았습니다.

 

○○○.

 

그런데 검색 결과 중에 어떤 뮤지컬의 포스터가 나왔습니다. “○○ ○○○”라는 제목의 뮤지컬인데 그 뮤지컬을 만든 사람의 이름하고 같았습니다. ‘설마 이분인가?’ 하고 그 뮤지컬에 대해 알아보았더니 북한의 어떤 수용소(감옥)의 실상을 말하는 내용의 뮤지컬이었습니다. 그 뮤지컬이 북한 수용소의 실상을 잘 표현해내서 한때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었습니다.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뮤지컬을 실마리로 회사 이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 다 된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찾았구나.’ 그런데 각종 신문기사, 공연포스터를 아무리 찾아도 회사의 이름만 나와 있을 뿐 연락처는 없었습니다. 또 다시 시작이었습니다.

 

이번에는 회사 이름을 단서로 다시 몇 시간의 노력 끝에 마침 그 회사에서 신규인력을 채용하기 위해 인터넷상에 올린 광고를 찾게 되었습니다. 회사의 전화번호를 찾아내서 그 분을 찾았더니 그 회사의 사장님이었습니다. 당연히 회사 직원들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사장님의 개인정보를 알려주지 않으려 했고 또 몇 번의 설명과 설득 끝에서야 겨우 개인 연락처를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 주인공하고 통화를 한 후 할머니하고 그 분을 연결시켜 드렸습니다. 정말 제가 찾아내고서도 찾아낸 것이 신기했습니다.

 

나중에 설명을 들으니 그 할머님의 아버지가 예전에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귀국선(북한에서 남한보다 북한이 좋으니 북한으로 와서 살라고 재일교포들에게 선전하며 배를 일본으로 보내 실제로 적지 않은 재일교포들이 그 배를 타고 고향인, 북한으로 가서 살았습니다. 당시 한국은 재일교포들에 대해서 북한에 비해 많이 신경을 쓰지 못하는 실정이었습니다)을 타고 가족들을 두고 조국으로 가신다고 홀로 북한으로 가셨습니다. 그러나 실제 도착한 북한은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힘들었고 일본으로 다시 돌아올 수는 없었습니다. 그 힘든 시기에 할머니의 아버지를 많이 도와주셨던 분이 계셨고 그분의 아들이 바로 할머니가 찾았던 ○○○씨였던 것입니다. ○○○씨도 결국 탈북을 하고 그 후 한국으로 와서 뮤지컬을 만들고 유명 영화의 각본ㆍ각색 등을 하시는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 일을 계기로 인연이 되어서 명절에도 인사를 드리고 정기적으로 서로 연락을 하고 지내게 되었습니다. 서로 각자 살아가는 이야기, 가족 이야기 등을 나누는 중간 중간에 저도 대순진리회의 수도인으로서 도장사진과 훈회ㆍ수칙 및 대순진리의 교리를 틈틈이 편지에 적어서 알려주었습니다. 그러자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더 좋아하시면서 다음번에 한국에 가면 꼭 같이 도장에 가자고, 입도치성도 모시자고 약속했습니다. 그렇게 연락을 하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 할머님께는 암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들이 한 분 계셨는데 어느 날 병세가 악화되어서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그 아드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꼭 입도치성을 모셔주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을 하면서 지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평상시대로 전화를 걸었는데 우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셨습니다. 설마? 이틀 전에 그 아들이 죽었다고 하는 소식이었습니다. 너무나 슬프게 우시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저도 너무나 정말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당장이라도 일본으로 날아가서 뭐라도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제가 할 수 있었던 건 없었습니다. 전화로 위로해 드리는 것 밖에는. 그리고 며칠 뒤 저는 일본으로 갈 준비를 했습니다. 할머니도 연세가 80이신데 솔직히 언제 돌아가실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무리를 해서라도 꼭 입도치성을 모셔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렇게 해서 11월 26일 도쿄의 할머니 댁에서 입도치성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박경자 할머니가 아닌 박경자 내수가 된 것입니다. 너무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대순진리를 많이 알지 못하면서도 저를 믿고 상제님 전에 정성을 드리며 입도치성을 모시고 그 연세에 미리 치성물까지 준비해 놓으시고 하나하나 정성껏 치성준비를 하시는 박경자 내수. 무사히 치성을 모실 수 있게끔 음적 양적으로 돌보아주신 방면 선각분들, 본인도 일본에 갈 일정이 있었지만 그래도 하루 시간을 비워서 같이 치성을 모셔준 방면의 선무, 그리고 양위상제님, 도전님, 천지신명, 조상님 등 모든 분들께 정말이지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꿈만 같았습니다.

 

일본에서 돌아온 후 도장에서 수호를 마치고 집에 와보니 편지가 와 있었습니다. 정성껏 적은 편지와 편지 속에 고이 모셔져 있는 성금, 그리고 정말 마음에서부터 감사하고 이 고마움을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렇게 인연이 깊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자 깊은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더욱이 할머님께서 편지를 부칠 때는 자전거를 타고 20분을 가서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더욱더 고맙고 감사함을 느낍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옆에 그 편지가 보입니다. 편지를 보자 일본에 도착해서 처음 만나던 날 울면서 반기던 그 모습이 다시 떠오릅니다. 꿈에도 생각 못했던 인연. 이제는 단순한 지인이 아닌 선각과 후각으로서 같이 상제님의 진리를 수도해 나갈 깊은 인연이 되었습니다. 정말 많이 부족한 저이지만 상제님의 진리를 올바르게 전해서 같이 후천세상까지 꼭 함께 가기를 상제님 전에 기원합니다. 상제님 감사합니다.

 

 

<대순회보 1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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