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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방면 안남희 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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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1.05 조회1,4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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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쾌한 봄의 소리가 귓가에 점점 가까워지는 4월. 도장 일각문 주변의 돌담에도 개나리와 영산홍이 일제히 합창을 시작하고 있다. 그 가녀린 꽃들은 신(神)이 내려주신 선물이 아닐까. 그렇다고 그저 봄이기에 가녀린 꽃들이 빛을 발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눈 덮인 엄동설한을 묵묵히 이겨낸 가녀린 꽃의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나 할까. 어찌 보면 그 가녀린 꽃은 우리 어머니의 상(像)인지도 모른다.

  오늘 그런 어머니의 상(像)과 닮은 분을 인터뷰하게 되었다. 바로 영천 방면 안남희(安南姬) 선감이다. 왜소하고 가냘픈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봄 햇살 같은 따뜻함과 우직함이 배어나왔다. 안남희 선감은 1930년 10월 26일 생으로 1974년에 입도 하셨으며 1987년에 선감 임명을 모셨다.

 

 

Q. 처음 도(道)를 접하게 된 과정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1974년. 저는 대구 칠성시장에서 야채장사를 하며, 홀로 오남매를 키워야 하는 미망인이었습니다. 당시 가녀린 여인네 몸으로 장사하는 것 치고는 잘되는 편이라, 경제적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그랬기에 오남매의 학업도 수월하게 뒷바라지를 할 수 있었답니다. 그렇게 늘지도 줄지도 않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하루하루의 삶은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장 통에서 우연히 가깝게 알고 지내던 이웃 사람과 마주치게 되어서, “안녕하세요, 어디를 그렇게 급히 다녀오세요?”라고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 분이 “명성이 자자한 철학관이 있어, 그곳에 다녀오는 길입니다.”라고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문득 그 말에 제 신세가 야속했답니다. 집안의 가장인 남편을 여의면서, 남은 자식들의 앞날만을 바라보며 살아왔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제 몸뚱이 무엇 하나 성한 데가 없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어머니들이 다 그러실 것입니다. 자식하나 더 챙겨주고 먹이고 입히고, 이것이 부모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107_웹이미지_012.jpg  이런 일이 있은 후, 마음 때문인지 건강은 호전될 기미가 없었습니다. 견디다 못해 병원도 갔지만, 뚜렷한 병명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나날을 계속 보내니 무기력해지고, 마음 한편이 답답하고, 괜히 침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 자신조차도 이런 상황이 의아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점집에 들렀는데, 제 병이 신병이라 곧 죽을 팔자이니 굿을 해야 낫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굿은 정말 싫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상제님께서 “현세에 아는 자가 없나니 상도 보이지 말고 점도 치지 말지어다.”(교법 1장 65절)라고 하신 말씀이 참으로 옳으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원인도 모를 마음의 고충을 겪던 중, 시장 2층에 함께 장사를 하시는 분이 마음속에 있는 것을 잘 풀어주신다는 입소문을 듣고 직접 찾아 갔습니다. 막상 가게에 들어서기 전, 괜한 짓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무거운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저만의 기우였던 같습니다. 그 분은 웃으며 저를 맞이해 주셨고, 담소를 나누다 보니 모든 일들이 맞아 떨어졌습니다. 더구나 속이 시원할 정도로 이해가 잘 되니 삶의 답답함도 해소 되는 것 같았습니다. 잠시 후, 저보고 입도치성을 모시고 나면 한결 안심(安心)·안신(安身)이 되니 드려 보라고 권하셨습니다. 전 두 말 할 것도 없이 입도치성을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입도치성 당일, 전 가게에서 일하는 종업원 한사람도 같이 데리고 갔습니다. 마침 도착해 보니 저 말고 다른 분도 계셨는데, 그 사람이 지금 포항방면의 조동희 교감입니다. 조교감은 지금까지도 같이 수도하고 있으니 도우(道友)의 인연이 깊나 봅니다.

 

 

Q. 지금까지 수도해 오신 과정이 궁금합니다.

  입도 후, 주로 경산선감께서 교화해 주셨습니다. 틈나면 대구선감과 고령선감 그리고 조태룡 선감께서도 교화해주셨습니다. 당시 많은 교화를 해 주셨는데, 딴 생각이 들지 않고 자연스레 귀 기울여 졌습니다. 아마 마음이 간절했던 것 같습니다. 더욱이 저의 심신(心身)이 건강해야 오남매의 뒷바라지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 들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 성지우성(誠之又誠)하라는 말씀처럼, 정성을 드렸습니다. 그 정성을 드리려는 미천한 저의 마음을 알아 주셨는지 포덕사업이 잘 되었습니다. 또한 삶이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것인지 왜 일찍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심신의 피곤함은 온데간데없고, 몸 어디에선가 기운이 용솟음쳤습니다. 이렇게 가냘픈 몸을 가진 제가 이런 모습도 있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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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번은 겨우내 감기에 걸려 거동이 힘들었는데, 하루라도 정성 드리기를 게을리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나갔습니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포덕하고 방면 가서 교화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운이 솟았습니다. 수도인들 모두가 그렇겠지만, 저 또한 후천오만년의 운수를 받는다고 하니까 더 열심히 뛰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합니다. 얼마나 바쁘던지 간밤에 잠은 잤는지, 끼니는 해결 했었는지 모를 정도로 포덕사업과 교화에 분주히 뛰어 다녔습니다. 아마 속된말로 ‘미쳤다’고 하는 것이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오죽하면 오남매를 돌볼 틈 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포덕사업에 매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부족한 제가 선무임명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임명을 모시고 나니, 포덕이 순풍에 돛단배처럼 순조롭게 흘러갔습니다. 많은 시간을 포덕과 교화에 할애 했습니다. 또 한 번의 임명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바로 선사였습니다. 이때 선각분이 저에게 불고가사(不顧家事)를 권하였습니다. 전 잠시 망설였습니다. 오남매에게 들어가는 학비와 가정의 의식주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내 선각께 고민을 털어놓고 의논해 보았습니다. 그러자 선각께서는 아무 걱정 말라고 하며 다 먹고 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힘을 얻어 저도 다시금 마음을 다져먹고 지금껏 포덕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107_웹이미지_014.jpg  그 무렵 장남이 결혼을 해서 저에게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첫 손자가 생겼습니다. 그래도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가정을 돌봤습니다. 그것은 제 가정하나 돌 볼 수 없는 사람이 큰일을 하겠다고 하면, 이를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자식들의 교육에도 무엇보다 인성(人性) 배양에 힘썼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수반들에게도 가정이 안정되어야 수도도 잘 할 수 있음을 수시로 교화했습니다. 그럼에도 수반들 중 가화가 안된 수반이 있으면 직접 찾아갔습니다. 교화도 하고 각자의 고충도 들어보고 문제가 있다면 서로 힘을 모아 해결점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러한 노력이 선·후각 사이의 정(情)이 쌓여 한 가족처럼 지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수반들이 모여, 제가 1987년도에 선감 임명을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

 

   

Q. 방면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어느덧 포덕사업이 번창하니, 여러 방면이 독립해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독립된 방면들이 더욱더 성장하는 것을 보며, 개인적으로는 너무 좋았습니다. 그러나 남은 우리 방면 사업이 더 이상 성장을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가 87년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양위 상제님께서 짜 놓으신 법방(法方)에 맞게 닦으면 운수가 있음을 믿고 모두들 열심히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또한 서로에게 다 잘 풀릴 것이라 격려도 하며 수도해 갔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정성이 부족했던지, 지금껏 동고동락 했던 선사와 교정이 여러 수반들을 데리고 태극도로 넘어가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 순간은 정말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이 괴로웠습니다. 도전님께서 “배반자에게 후의(厚意)를 베풀어서 과오를 뉘우쳐 감동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라는 말씀도 계셨듯이, 일일이 수반들 찾아 만나서 설득도 하고 유혹의 손길을 뻗친 그 사람과 담판까지 했건만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돌아서서 가는데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돌아선 것에 비할 바도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서럽고 분하고 배신감이 들던지 뺨 맞은 듯이 눈물이 흐르던 그날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괴로움과 아픔이 채 가시기 전, 연동흠이 남아 있는 수도인들을 현혹해 데리고 나가버렸습니다. 이젠 사업이 중단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습니다. 하루 순간에 세상 모든 것을 잃고, 빈손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설상가상 이젠 얼마 남아 있지도 않은 수도인들인데, 임원이 수반들과 함께 무극대도에 넘어가는 큰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모든 사건들을 겪고 나니 지금껏 함께 수도했던 사람들이 야속하고 괘씸해졌습니다. 한편으로는 내가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이 뒤섞여 마음껏 울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이 모든 것이 내 부족한 탓이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수도인이 좀 나오면 선사들이 데리고 나가고, 더 합심해서 수도인이 모여 방면을 성장시키면 또 누가 데리고 가고 그랬습니다. 그래도 현혹한 사람이 밉지 떠난 수반들을 미워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사업이 성장하기까지 함께 해오던 도우(道友)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죄가 미운 것이지, 어디 사람이 밉겠습니까. 근래에 길을 지나다 가끔 만나기도 하는데, 왠지 모를 반가움이 밀려옵니다. 아마 제가 포덕하고 교화했던 수반들이었기에 많이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갔던 사람들이 지금은 도를 안 닦고 있는 사람도 많고 후회하는 사람도 많답니다.

 

 

Q. 자녀분들은 어머니께서 수도하시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제 나이 여든입니다. 이 나이에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고 하는데,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자식들은 결코 반대하거나 싫은 내색 없이 어머니께서 좋으시면 하라고 말해 줍니다. 하지만 종교의 자유가 있으니 자기들한테 강요는 하지 말라고 합니다. 다행히도 아들딸들이 아무 탈 없이 착실하게 성장해 주었습니다. 젊을 때 포덕에 전념하다 보니 다른 어머니처럼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주지 못했지만, 그나마 장남이 재주가 있어서 동생들을 잘 이끌어 주었습니다. 처음엔 손자들 자주 만나지를 못해 서운해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월성도 빠짐없이 모시고 회관이나 도장에 큰 행사가 있을 때면 물질적으로 조금씩 성의를 보이기도 합니다. 손자들도 이제 직장을 다닐 만큼 컸습니다. 이 모든 것이 양위 상제님과 도전님의 덕화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Q. 수도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이제 수호하러 도장에 오는 것까지는 힘에 부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나마 성(誠)을 모시러 올 수 있는 건강함에 감사할 뿐입니다. 도장에서 같은 방을 쓰는 다른 연로(年老) 임원들도 서로가 안 오면 나도 안 온다고 그럽니다. 그만큼 성 모시러 도장에 오는 것이 중요하기에 서로 챙겨주며 맡은 소임을 다하려 하는 것입니다. 또한 부덕한 저에게 이 자리를 만들어주신 모든 수도인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수도를 하다보면, 여러 가지의 고난과 시련이 누구에게나 닥치기 마련일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저 또한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이를 볼 때, 꼭 수도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종통(宗統)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에 맞게 수도를 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상제님의 진리를 받들어 50년 공부종필(工夫終畢)의 법(法)으로써 수도 법방을 짜 놓으신 분은 도주님이시고, 우리는 그 수도 법방에 따라 수도를 하고 또한 도통을 이루게 됩니다. 법방을 따르지 않고 수도한다는 것은 곧 난법난도자가 됨은 자명할 것입니다.

  또한 포덕사업에 있어서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도전님 말씀에 “체계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이 도(道)를 닦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선·후각의 상호 관계 속에서 수도를 하기 때문인데, 결국 상하간의 신뢰가 형성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전님께서 “백성이 국가를 믿지 않고 자식이 부모를 믿지 않는다면 난신적자(亂臣賊子)가 될 것이다.” 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나라를 세우기는 힘들지만, 망하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말은 이것을 가리킬 것입니다. 아울러 제가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은 모두 양위 상제님과 도전님, 그리고 조상의 덕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대순회보 1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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