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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 방면 박운성 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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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4.19 조회2,4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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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그 세월 동안 인간의 마음은 얼마나 더 변할까. 하기야 하루에 12번도 더 변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하는데 이루 셀 수가 없을 것 같다. 아마 세월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변화에도 참된 마음을 찾아 지켜나가는 것이 수도가 아닐까 싶다.

  이번 호에는 40년 인생 동안 초지일관 수도의 길을 걸어오신 달성방면 박운성 선감을 달성회관(대구시 남구 대명동 소재)에서 뵙고 말씀을 들어 보았다. 몇십 년의 수도 인생이 편안한 모습과 담담한 어조에 녹아있었다. 달성선감께서는 1926년 8월 1일 생으로 1969년 (음)9월 9일에 입도하셨으며, 1975년에 선감 임명을 모셨다.

 

 

처음에 입도할 당시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3형제 중에 둘째였는데 어릴 때부터 왠지 모르게 역학 쪽으로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의 형이 일본에 있었을 때 그와 관련된 책을 구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수상(手相), 사주역학(四柱易學), 관상(觀相), 성명학(姓名學)과 관련된 책을 읽고 섭렵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최면술에도 심취했었는데 상대방을 재운 상태에서 제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을 보게 하는 기술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단계도 만족이 안 되어 다른 것을 찾다가 나중에는 『염령투시술』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영(靈)으로써 투시해 보는 것인데 한때 상자 안에 들어가 있는 글자를 보려고 일주일 정도 정신을 모은 적이 있었습니다. 결국 큰 대(大)자가 보여 그것을 이야기해 주자 주위 사람들이 놀래더군요. 참 신기합디다. 이런 것도 헛것이 보이는 허령(虛靈)과 같은 일종이었죠.

   당시 저는 그림에도 소질이 있어서 간판을 해주는 업종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여러 가지 사회활동도 했는데 나중에는 늑막염이 생겨 수술을 한 뒤 2~3년간 집에 드러누워 있었습니다. 그때 외가 동생이 와서 도 닦는 분이 계신데 그분이 낫게 해준다고 해서 만나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상제님을 믿는 증산계열 쪽 교단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야기하는 것이 좀 무식하지만 신기(神氣)가 있어 뭔가 앞날을 내다보는 듯한 말을 하더군요. 그 사람은 저에게 “박 선생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도를 닦아야 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알고 있는 주문 중에 하나를 적어주고 갔는데 지금의 기도주(祈禱呪)였습니다.

   나중에 기도주를 오래 읽다 보니 신명이 오고 조상이 오더군요. 어이쿠! 그러다가 이보(耳報)가 된 거죠. 이보는 신(神)이 귀에다가 앞날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이 되자 입에서 말이 줄줄 나왔죠. 갑자기 “신아 신아 삼아 삼아…” 기가 차더군요. 그때는 그냥 모르고 입에서 나오길래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도통주(道通呪)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꿈을 꾸면 천상이 보이고 선녀, 갑옷을 입은 신장이 나타나 글자로도 암시를 주곤 했습니다. 여러 가지 꿈 중에 제일 신기한 것은 청림도사를 찾아가라고 한 것입니다. 청림도사가 도주님이잖아요. 당시에 청림도사가 누구인지도 몰랐죠.

   또 한번은 모시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 한 분이 찾아와서 사주ㆍ관상 업종을 하려고 하니 입간판을 써 달라고 왔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풍채를 보니 보통사람이 아닌 것 같아 모르는 척하고 저의 사주를 봐달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사주를 보고 저를 한참 보더니 한동안 말을 하지도 않고 이상하다고 고개만 흔드는 것입니다. 이윽고 한참 뒤에 “왜 선생은 이렇게 좋은 사주를 가지고 계신데 소업(小業)을 하십니까? 도를 닦아 많은 도인을 이끌 팔자인데 빨리 도를 닦으십시오.”라고 말을 꺼냈습니다. 이미 그전부터 도를 닦으려고 마음은 먹었지만 그렇게 말하니 힘이 더 나더군요.

   당시 주위에서 저를 박도사라 불렀었는데 제가 사주도 봐주고 아는 것도 많다고 해서 별의별 손님이 다 왔습니다. 그러다가 저의 선각인 정선덕 선감(이하 경산선감)이 저의 집에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하도 아는 것이 많고 역학 쪽으로 더 많이 아니까 포덕하려는 말도 못 꺼내고 2~3년간 왔다 갔다 하기만 했었죠. 나중에 그분 집에 들렀다가 종이 뭉치에 있던 납폐지 도장을 보다가 기도주가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이 공부하는 것이 맞구나.’하고 입도할 마음을 가졌습니다.

   제가 입도할 당시, 경산선감은 포덕을 하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경산선감은 훗날 저에게 제가 입도하기 이전에 도전님으로부터 들었던 말씀을 하더군요. 대구에 큰 일꾼이 나올 것이라고.

 

 

초창기 어떻게 수도를 하셨는지, 그리고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이렇게 도를 찾다가 정작 제가 입도를 하고 나니 장사할 마음도 생기지 않고 손님도 갑자기 끊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모든 것을 정리하고 도에 매진하게 되었습니다. 차도 아랫사람들에게 다 줘버리고 제가 하던 일들도 그만두었습니다. 그래도 그동안 저를 잘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꽤 많이 찾아왔습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입도를 해서 일심으로 하면 일이 잘 된다.”라고 말을 해주었는데 저의 말을 믿고 입도를 했었죠.

   제가 입도할 당시는 중곡동 도장을 지을 때였습니다. 처음에는 도장이 평평하지 않은 언덕이었습니다. 요즘이야 포크레인이 있어 쉽게 땅을 팠겠지만 그 당시는 일일이 곡괭이로 팠습니다. 그때 도인들, 정말 고생이 많았습니다. 공사할 때 먹을 것도 거의 없었습니다. 큰 시장에 가서 채소 이파리 등을 주워 와서 소금과 같이 밥을 먹었을 정도이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입도를 해서 공사현장에 가보니 도인들이 리어카 끌고 다니면서 공사를 하고 있더군요. 그런데 대순진리회로 넘어 온 도인들이 별로 없었던 터라 공사비도 많이 부족했었습니다. 시멘트를 사서 올리면 철근이 부족하고 또 철근을 사 올리면 목재가 부족했었습니다. 그래도 도인들의 끊임없는 정성으로 그때그때마다 일이 되었습니다.

  그 후 계속 포덕을 하면서 93호에 선무 임명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71년도에 선사 임명을, 75년도에 선감 임명을 모셨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포덕을 했던 호수가 꽤 되었는데, 후각 중 책임자격의 임원들이 각자 호수를 가지고 다 가버리자 80호만 남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나간 사람들 중에는 제가 자신들의 선각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일체 다른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섭섭한 마음을 가지지 않습니다. 당시 도전님께서 제가 겪었던 이 일에 대해 “달성이 다 통솔해야 돼. 그렇지만 그 사람들은 너의 말을 듣지 않는다. 나중에 그 사람들이 불행한 일을 겪는 것을 볼 것이야.”라고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남아 있었던 80호를 보니 선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이후 제가 직접 다시 뛰어다니면서 새롭게 사업을 했습니다. 그렇게 거의 8년 동안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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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達城)방면 호를 어떻게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호수가 되어 경산선감과 같이 도전님께 방면 호를 상고하러 갔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도전님께서는 그때 당시에 중곡동 사무실에 계셨습니다. 도전님께서는 방면 호를 정하는데 어떤 이름이 좋으냐고 물어보시기에 달성이라고 말씀을 올렸습니다. 제가 포덕을 제일 많이 한 곳이 달성이라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도전님께서 제 이름을 물어보시면서 “달성이라고 하면 됐다.”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생각을 해보니 달성이라는 호와 저의 이름이 관계가 있는 듯합니다. 달성 이름 자체는 그 기운이 강합니다. 성(城)을 흙 토(土)와 이룰 성(成)으로 파자하면 중앙 5ㆍ10토를 이룬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오행의 중심인 토를 이룬다고 하니 달성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강하겠습니까? 게다가 제 이름이 운을 이룬다는 운성(運成)인데 그러한 운을 이루고자 하니 결국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암시가 있었던 것이겠죠. “나는 해마를 위주하므로 나를 따르는 자는 먼저 복마의 발동이 있으리니 복마의 발동을 잘 견디어야 해원하리라고 타이르셨도다.”(교법 2장 15절)라는 『전경』 구절이 정말 맞는 말입니다.

 

 

수도 과정 중에 최근에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수도에 있어 가화(家和)를 중요시 합니다. 수반들이 수도를 하다가 고비를 겪은 후 가화가 되어 수도를 잘 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내수 선무가 있었는데 얼굴이 너무 어두워 보여 따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남편이 거의 매일 술로 지내고 형편도 어려워 단칸방 신세를 지고 있더군요. 그래서 제가 다음과 같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지금 당장 집에 가서 벽지를 새로 다 바르고 가구도 조금 위치를 바꿔놓고 음식을 해놓은 뒤에 화장을 하고 한복을 입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남편이 술을 마시고 들어왔는데 부인이 일체 말은 하지도 않고 음식을 내어 놓았습니다. 아침에는 또 부인이 남편이 술을 깨라고 해장국도 해주었다고 합니다. 조금씩 술이 깨다보니 처음에는 자기 집이 아니었는지 당황해했죠. 나중에는 남편이 “너 미쳤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날 저녁에 평생 뭐하나 사오는 남편이 아닌데 애 옷하고 돼지고기를 사왔지 않겠습니까. 남편은 ‘부인이 왜 그렇게 했을까?’하고 너무 궁금해 곰곰이 하루 동안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자 부인한테 왜 그렇게 했냐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자기는 선감께서 시킨 대로 했다고 하니 그 사람한테 가보자고 해서 데리고 왔었죠. 몇 일 후 두 부부가 찾아왔습니다. 제가 오히려 남편한테는 인물도 좋고 풍채가 훤하다고 하고서 부인한테는 오히려 혼을 냈습니다. 그동안 도를 닦아 그렇게 밖에 못하냐고, 이렇게 좋은 남편을 당신 때문에 신세 망쳤다고 말하며 남편한테 정말 잘하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그 남편이 집에 돌아와 부인과 대화를 나누다가 도를 어떻게 닦느냐고 물었답니다. 나중에 도장에 참배를 온 다음 그동안 부인한테 품었던 의심을 풀고 지금까지 도를 잘 닦고 있습니다. 결국 가화를 하는 것은 자신이 하기 나름이라는 것입니다.

 

 

도전님의 말씀 가운데 항상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입도하고 3년 만에 선사 임명을 모셨습니다. 당시는 임원의 수가 적어서 선사임명을 모셔도 도전님께 인사를 드리러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저에게 해주신 말씀이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책임이 막중하니 책임을 완수하라.” 정말 그렇습니다.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해야 합니다. 남에게 맡겨서는 안 됩니다. 도는 각(覺)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자신이 깨달아서 해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자신의 본분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을 미루면 안 됩니다. 제가 저녁 늦게 책을 보다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한자(漢字)가 나오면 내일 아침에 볼까 하고 누워있어도 잠이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 자전에서 찾아보면 그때 본 글자는 잊혀지지 않습니다. 책임감으로 인해 일을 미루지 않고 그때그때마다 일을 마무리하다 보니 일상생활에서도 이렇게 나타나는가 봅니다.

 

 

현재 도장에 수호를 서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방면의 임원들에게 철두철미하게 수호를 서라고 다 보냅니다. 종단 대순진리회는 양위 상제님과 도전님의 종통이 이어져 내려와 있는 곳입니다. 또한 그 진리는 종지에 나타나 있습니다.바로 수호는 도의 진리를 지키는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수호를 가면 자신의 본분을 다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수도인들에게 바라실 내용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도전님께서 몇몇 임원들에게 “무엇이 제일 좋으냐.”라고 물어보신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임원이 포덕을 말하자, 도전님께서 “좋지.”하고 말씀하셨고 다른 임원은 포덕을 해서 유공을 많이 하는 것이라 하자 또 “그것도 좋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세 번째 딱 한마디만 하셨습니다. “다 좋지만 정성(精誠)이 제일 좋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도에는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만자족(自滿自足)해서는 안 됩니다. 호수가 많다고, 자신이 선감이라고 해서 아랫사람을 하대해서는 안 됩니다. 바른 언행과 처사를 통해 잘못을 지적할 때는 분명하게 지적하고 칭찬할 때는 따뜻하게 칭찬을 해주는 올바른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또한 물욕(物慾)을 버려야 합니다. 물질은 도에 필요하면 다 들어옵니다. 도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신명이 다 가져다주는데 왜 욕심을 가집니까?

  마지막으로 말조심입니다. 자기 수도는 자기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에 대한 비방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또 누가 ‘이 사람은 이렇고 저 사람은 저렇다.’라고 비방을 하는데 자세하게 알지도 못하고 덮어놓고 인정을 합니다. 혹 그런 말을 듣더라도 “차후에는 잘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후덕하게 언덕을 잘 가져줘야 합니다. 『전경』에 구중곤륜산 심심황화수(口重崑崙山 深心黃河水)라는 구절이 있지 않습니까? 입이 곤륜산만큼이나 무거우니 수도생활에 얼마나 과묵해야 할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구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수도를 하다보면 겁액(劫厄)을 겪게 됩니다. 그것은 주어진 목표를 가기 위해서 거쳐야 할 당연한 과정입니다. 그러나 이런 겁액에 굴복되어 말과 행동으로 죄를 짓고 수도를 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봐 왔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모든 정성을 다해 목적한 바를 항상 생각하고 말없이 지켜나갈 때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수도인 여러분들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취재 후기   

  어느 수도인치고 수도하면서 파란만장한 경험이 없었을까? 40년의 수도생활에서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역경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달성 선감과 대화 속에 그런 면을 느낄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고생했다는 표현이 없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아예 취재를 마치고 방면 임원들에게 그분에 대해 물어보기까지 했다. 많은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단지 지면의 제한으로 자세히 싣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달성방면 모임원이 했던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당시에 수도하셨던 원로임원 분은 고생을 고생이라고 여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정말 그 자체가 재미있어 수도를 하신 것 같습니다.” 정말 맞는 말이다.   

  달성선감께서는 교무부 연구에 도움을 주시기 위해 당신께서 직접 친필로 작성했던 도전님 말씀을 주시면서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셨다. 정갈히 적은 글을 보노라면 그분의 정성이 느껴진다. 한 자 한 자 흐트러짐 없는 글자체에서 그분이 가고자 하는 길이 보여 진다.

  달성선감은 과거에 술을 정말 좋아하셨지만 최근에는 절제를 하신다. 그래도 기분이 좋을 때면 마음먹은 만큼만 마신다고 한다. 음식도 소식을 하시며 규칙적인 생활을 하신다. 지금도 주일 때마다 연구하신 내용을 교화해 주시면서 수반들에게 몸소 수도의 귀감이 되고 계신다. 

<대순회보> 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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