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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방면 정수오 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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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7.05 조회2,4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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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성이 따로있는 것이 아니니라. 때는 해원시대이므로 덕을 닦고 사람을 올바르게 대우하라. 이것이 곧 피난하는 길이니라.』 

    

  대구방면 정수오 선감(71)은 조선 말기는 물론 3.1운동 후 크게 유행했던 십승지지(十勝之地) 사상에 심취한 선친을 따라 길지(吉地)를 찾아 왔다가 도(道)와 인연을 맺은 수도인이다. 그의 선친은 뿌리 깊은 유교가문의 영향을 받았으나 어느 때인가부터 정감록 등의 도참설에 심취하게 되어 황해도에서 승지(勝地)를 찾아 온 가족이 경북 단양으로 이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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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도(入道)하시게 된 동기를 들려 주십시오. 

  

  우리 집은 황해도 연백에서 1만 5천여 평의 농사를 짓던 대농이었어요. 선친께서는 당대에 인근에서 지식인으로 알려졌던 분으로써 그 당시 정감록에 깊이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일제 말기의 극도로 혼란한 시대였기 때문에 곧 난리가 일어난다는 소문이 퍼지는 등 사회적 불안감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그러한 와중에 선친께서도 숙고 끝에 정감록 등의 비결서에 밝혀진 십승지를 찾아가면 살 수 있다는 말을 믿고 단양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단양에서 처음에는 돈을 벌기위해 누에고치 농사도 짓고 직조기술도 습득하면서 생계를 꾸려가던 중 동서인 이관성이라는 수도인으로 부터 진주(眞主)즉 진인(眞人ㆍ도주님)을 찾아야 한다는 도담(道談)을 듣고 입도하게 되었습니다. 

 

 

입도 당시에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들려주십시오. 

  

  그때는 지금과 달라서 반드시 축시(丑時)에만 입도치성을 드렸어요. 나는 그 때 평범한 제사를 지내는 줄로만 알고 별 생각 없이 참석했던 것인데 입도치성을 드리고 나니 도심(道心)이 새롭게 자리잡기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어렵게 찾은 이 길을 끝까지 따르리라고 결심하고 3일째 되던 날부터 포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끝에 부모님과 큰형님(지금의 정명재 교감)마저 포덕하게 되었습니다. 

 

 

수도하시면서 어려움도 많았을 것으로 짐작되는데요. 

 

  요즈음 수도하는 젊은이들은 그 때에 비하면 너무나 좋은 여건 속에서 수도하고 있어서 가끔 격세지감이 느껴져요. 그때는 사회분위기도 지금과는 크게 차이가 나는 시대였지요.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았구요. 일일이 말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고... 한가지 예를 들면 그 당시에는 쌀을 구경하기 힘든 때였어요. 그 와중에서 수도인들은 안팍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이겨내며 수도해야 했었습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추억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보람있었던 일도 많았습니다.     

  정수오 선감은 그런 고행속에서도 후각인 연로하신 부모님이 지극한 성ㆍ경ㆍ신 (誠敬信)으로 수도에 임하셨기 때문에 큰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고 밝힌다. 선친이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주민들에게 덕을 많이 쌓은 것이 수도하는 중에도 다행스럽게 생각되었다는 정선감은 그 많던 재산을 광산업에 실패하면서 다 탕진하고서 도를 닦게 되었다며 지금은 그런 일들이 모두 상제님의 뜻이었던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오늘의 수도인들에게 당부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나는 특별한 좌우명도 없고 다만 꾸준한 마음으로 오늘까지 한길만을 걸어왔을 뿐입니다. 젊은 수도인들에게 굳이 당부하고 싶다면 역시 일심(一心)을 가지고 꾸준히 수도에 정진하는 자세를 강조하고 싶어요. 상제님께서도『마음을 간직하기가 죽기보다 어려우리라』고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운수마당까지 가는 데는 정말 인내와 끈기로 뭉쳐진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슬하에 1남 1여를 둔 정선감은 현재 부인과 함께 고희(古稀)의 연령을 무색케하는 젊음을 유지하며 여전히 수도와 방면 포덕사업에 여념이 없다. 그는 여러 차례 자신의 오늘이 있기까지에는 선친의 덕이 크게 작용했다고 강조하며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이란 말이 있듯이 선친께서 생전에 쌓은 적선의 공덕으로 자신이 지금까지 수도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힌다. 

  전경에 『사람들이 예로부터 길성소조(吉星所照)라 하여 길성을 구하러 다니나 길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라. 때는 해원시대이므로 덕을 닦고 사람을 올바르게 대우하라. 여기서 길성이 빛이 나니 이것이 곧 피난하는 길이니라.』는 상제님의 말씀과 같이 정수오 선감은 길지를 찾아 피난민의 대열에 끼였다가 도를 찾게 된 드문 인연의 수도인으로써 자신은 오로지 모든 것을 상제님의 뜻에 맡기고 도를 따르는 사람일 뿐이라고 겸손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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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회보> 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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