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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방면 윤월연 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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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1.19 조회2,1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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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력 3월, 본부성을 모신 다음날 여주본부도장에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 가운데 종무원 2층에서 영덕방면 윤월연 선감과 인터뷰를 가졌다. 선감께서는 몸이 다소 불편하셨지만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주셨다. 윤월연 선감은 1931년 9월 10일(陰) 생으로, 1975년 11월 30일(陰)에 입도(入道)하셨고 1983년 9월 24일(陰)에 선감 임명을 모셨다.

 

처음 도(道)를 접하게 된 동기와 그 과정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부모님께서는 불교를 믿으셨고, 그 윗대의 집안 어른 중에는 스님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 내력 때문인지 저 자신도 종교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이런 경향은 대구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한 후로 점점 강해져 종교를 하나 가져야겠다는 마음을 굳히게 했습니다. 사람은 믿음을 가지고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마침 앞집에 살고 계시던 분의 소개로 성당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5ㆍ16 군사혁명으로 어수선하던 때 사람들에게 많은 돈을 떼이면서 우울증 증세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 불러도 모르고, 매사에 초조함을 느낄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하다가도 ‘내가 왜 이럴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당시는 잠도 오지 않고 어떤 생각이 불쑥 불쑥 일어나 마음이 어지러웠습니다. 게다가 이명(耳鳴)처럼 자꾸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산 속에 들어가면 괜찮을까 해서 갔더니 더 시끄러웠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갔더니 청천벽력 같은 암(癌) 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담당의사가 “많이 살아도 6개월입니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꾸준하게 방사선치료를 2개월쯤 받고 나니 점차 회복되는 기미가 보였습니다. 이때 같이 치료를 받던 암환자들은 모두 유명을 달리하였습니다.

  투병생활을 계속하던 어느 날, 꿈에 할머니가 나타나 “부처님을 믿어라.”고 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명성이 자자한 바위며 암자, 절 등을 찾아다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꿈에 할머니가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할머니께 “부처님이 계신 곳이 많은데, 어느 곳에 가서 믿어야 할까요?”라고 여쭤 봤더니, 할머니께서는 “이 세상에서 제일 큰 부처님만 믿으면 된다.”고 하시는 겁니다. 그 말씀이 잘 이해되지 않아 일단 집 근처에 있는 부처님께 정성을 드렸습니다.

  얼마 후, 지금의 제 선각인 장옥분 선감께서 대순진리회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선감께서는 제 친정과 한동네에 살았고 더구나 남편의 절친한 초등학교 동창이 다름 아닌 이분의 남편이었습니다. 정말이지 얼마나 깊은 인연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선감께서는 저를 만나려고 노력하던 중 높은 산에 자신의 키보다 더 큰 호박이 나타나는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그 꿈을 꾸고 나서 3일 후에 저를 만나게 되어 너무 기뻤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선각을 통해 처음 대순진리회를 접했던 저는, 매스컴에도 한번 안 나오고 듣도 보도 못한 곳이라 ‘사이비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문득 제가 선각을 대순진리회에서 빼내 드려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철없는 생각과 행동이었습니다만 선각을 찾아 중곡동 도장까지 간 것이 지금의 제가 있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는 도장을 증축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어렴풋이 생각나는 것은 북각도 있고 종각도 있고 해서 이 정도면 국가에서 정식 허가를 받았겠다고 짐작했습니다. 도장을 둘러본 후, 선각께서 여러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입도식을 하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희 식구 모두 함께 해도 되는지 여쭈어보니까, 가족이 함께 하면 더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후 대구에 내려가서 가족들에게 “이제 내가 살 길을 찾았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이것저것 믿으면 좋다고 하면서 돌아다니더니 이제는 또 무엇을 믿어야 좋다는 거요?”라는 것입니다. 남편의 그런 핀잔에도 저는 생사(生死)를 한번 넘어봤기 때문에 겁나는 게 없었습니다. 저의 끈질긴 설득 끝에 집안 식구들 모두 입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낮 12시가 넘어야 입도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집에서 미역국에 떡을 하고 탕국에 조기도 굽고 부침개, 나물 등을 준비해 입도식을 하였습니다. 치성을 마치고 음복을 하는데 선각이 밥도 맛있고 떡도 맛있어서 모든 일이 잘 되겠다고 하였습니다. 입도 후 할머니께서 믿으라고 하신 제일 큰 부처님이 바로 대순진리회의 구천상제님이란 것을 깨달았을 때는 너무도 기뻤습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수도를 해 오셨고, 또 그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한때 방면에 회관이 없었는데, 다행히 저희 집이 큰 편이라 여기서 입도식을 많이 올렸습니다. 그 덕에 우리 집 며느리가 매일 부침개 굽고 입도치성을 준비하느라 참으로 고생이 많았습니다. 더욱이 수도하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 공무원 생활을 하던 남편이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남편은 몸이 불편하던 저에게 틈틈이 한약을 챙겨주었고, 가정부에게 집안 살림을 맡겨 저의 고단함을 덜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입도 후에는 참된 정성은 자기 스스로 들여야 하는 것임을 알았기에 불편한 몸이었지만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제 몸이 아프고 도를 닦는다며 가정에 소홀했던 점이 몹시 가슴 아팠습니다. 그래도 도통을 위해 밤낮없이 수도에 매진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날 도전님께서 직접 시료를 봐주신 일이 있습니다. 현재 이정도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모두 도전님께서 베풀어주신 큰 은혜 때문이라 믿고 있습니다. 지금도 저는 기도하고 심고 드릴 때 도전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입도 후 도밖에 몰랐던 저는 매일 포덕사업을 위해 다니다보니 티눈이 발에 안 생긴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진리가 옳고 틀림없음을 알았기에 목숨을 걸고 사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회관에서 자면 마음이 편안해서 그런지 하루를 멀다하고 이곳에서 모든 일과를 보냈습니다. 제가 입도하기 전에 여러 종교에서 배웠던 것들이 우리 도에 들어와 보니까 기초지식이 되어 도를 닦는 데 조금은 수월했습니다. 대순진리회 안에는 타종교의 사상들을 아우를 수 있는 진리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수도생활 중 가장 보람이 있었던 일을 말씀해 주십시오.

  보람보다는 오히려 늘 걱정이 더 앞섰습니다. 수많은 도인들이 도 밖에서 상제님의 덕화를 손상시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누구를 대하더라도 덕화손상을 시키지 않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작게는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남에게 덕을 베풀고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마음 상하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병원이나 어딜 가더라도 대순진리회의 진리가 옳고 바르다고 말합니다. 이는 제 자긍심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가화(家和)가 안 된 사람에게는 자기 가정 하나 잘 못 다스리면서 천하사(天下事)를 어떻게 하겠냐며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자고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하였습니다. 먼저 집안이 잘 다스려져야 천하사인 도의 일에도 아무 거리낌 없이 매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에 먼저 할 일과 나중에 할 일을 알면 도에 가까워진다고 하였으니, 가화를 이루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수도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을 들 수 있겠습니까?

  도(道)를 닦기 위해서는 조상의 공덕과 자신의 공덕, 그리고 인망(人望)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포덕(布德)입니다. 저는 포덕이 잘 안 될 때, 3일을 굶어보기도 했습니다. 포덕 못하면 선각도 굶고 나도 굶었습니다. 우리 사업은 ‘콩나물 키우기’와 같아서 시루 안에 콩나물을 가득 채워 놓지 않으면 가는 콩나물이 넘어져 잘 크지 않습니다. 한 방면도 이와 같아서 사람이 어느 정도 있어야 체계가 잡히고 원만하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른 일도 잘 안 되는 것입니다. 도전님 훈시 말씀에 "체계 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이 도를 닦는 것이니, 경상애하(敬上愛下)의 융화로 단결해야 한다.(『대순지침』 65쪽)"고 하셨듯이 방면에 임원만 있고 밑에 수반이 없으면 수도를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비록 자기 밑의 수반이라도 자기 도인이 아닙니다. 모두가 양위 상제님의 소중한 도문소자이기 때문에 임원이라고 해서 수반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됩니다.

  또한 대순진리회에서 수도해 나가려면, 세 가지 보따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각각 가정과 사회, 그리고 도에서 쓰는 말과 행동의 보따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처신처세를 잘해야 한다는 뜻이죠. 더욱이 우리 도 안에서 수도를 해보니, 진리가 참으로 좋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신이 바르게 도를 닦고 사회에서 그대로 실천해 나가기만 하면 하나도 빠질게 없습니다. 상제님의 진리대로만 하면 어딜 가더라도 다 존경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점들을 아직 도를 접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저는 대순진리회가 바로 서야 사회가 바로 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도인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도의 법을 어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도(道)는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도를 하나하나 접해 가면서, 가장 무서운 게 도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 도는 신도(神道)이기 때문에 절대로 속일 수도 없고 속여서도 안 됩니다. 이 세상은 죄로 먹고 살지만 다가오는 선경세상은 선으로 먹고 살아야 합입니다.

 

도전님의 말씀 가운데 항상 생각하고 계신 부분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원래 제가 평소에 속상한 일이 있으면 잘 우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도전님 덕분에 어지간해서는 잘 울지 않습니다. 언젠가 제가 도전님께 “도전님! 제가 한 일 년만 걱정하고 일 년 후에는 안 하겠습니다.”라고 직접 말씀을 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도전님께서는 “윤선감! 윤선감 마음이 1년 괴로우면 내 마음이 1년간 괴로워요.”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나서 속상한 일로 울음이 나오려 할 때 마음속으로 ‘도전님 죄송합니다.’라고 심고 드리면 곧 울음을 그칠 수 있었습니다.

 

현재 도장에 수호를 서고 계십니다. 어떤 마음으로 수호에 임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여주본부도장을 짓고 공부를 돌릴 때 수호를 처음 서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지방에서 도를 잘 닦고 법을 잘 지켜도 도장(道場)이 없으면 도통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생명보다 소중한 시학ㆍ시법공부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이 공부가 차질 없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도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만, 가장 큰 공부가 바로 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도인들은 이러한 점을 명심하면서 도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진실된 마음을 가지고 수호에 임해야 한다고 봅니다.

 

끝으로 수도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예전의 임원들에 비해 지금 임원들은 예(禮)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도는 체계이며 질서인데 체계질서가 무너지면 곧 도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또 도전님께서 “도는 오른 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몰라야 하고,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몰라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자만하지 말고 도를 순수하게 닦아야 함을 일깨워 주신 말씀입니다.

  운수(運數)가 가까워질수록 도는 멀어져만 갑니다. 잘하는 사람에게도 배울게 있고 못하는 사람에게도 배울게 있습니다.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못하는 사람도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잘하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도인들은 절대로 뿔뿔이 흩어져서는 안 됩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있듯이, 모두 똘똘 뭉쳐서 수도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도를 바르게 깨닫기 위해서는 지식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봅니다.

《대순회보》 82호,「도인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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