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하고 인간적인 神, 저승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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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공균 작성일2019.07.22 조회5,878회 댓글0건본문
연구원 이공균
긴 팔에 늘씬한 다리, 창백하리만큼 하얀 피부에 짙은 눈썹, 몸에 딱 맞는 정장은 도시적인 세련미를 더욱 부각시키고, 망각의 차를 따르는 유려한 손놀림은 놀란 망자를 다독여 무사히 하늘로 오를 수 있게 한다. 떠나는 망자를 배웅하며 시종일관 예를 갖추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드라마 ‘도깨비’에서 나왔던 저승사자다.
80년대 이전에 태어난 대부분 사람에게 저승사자는 드라마 ‘전설의 고향’에서 본 모습으로 관념화되어 있을 터이다. 창백한 안색과 대비되는 검은 색 두루마기와 갓을 쓴 무서운 모습으로 말이다. 하지만 요즘 저승사자는 다르다. 일단 잘생겼다. 멋은 기본이고 싸움도 잘한다. 그리고 인간적이다. 죽음을 안내하는 존재라는 두려운 이미지를 잊게 만들 정도의 치명적인 매력을 소유하고 있다. 현대판 저승사자. 이들이 등장하는 드라마 ‘도깨비’, ‘블랙’이나 영화 ‘신과 함께 - 죄와 벌’이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 사찰의 명부전(冥府殿)에 걸기 위해 그린 지옥의 저승사자 모습.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www.museum.go.kr)
우리나라에서 저승사자라는 관념이 언제 형성되었는지 알기 힘들다. 저승사자에 대한 분석도 단편적이기 때문에 저승사자의 활동에 관한 내용조차 그 의미를 알기 어려운 실정이다. 다만, 도교와 불교의 내세관과 중국 설화와 소설의 영향을 받아 바리데기, 안락국전 등 한국 샤머니즘 저승관이 만들어졌다고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고대 중국에서의 소설적 서사(敍事)의 형성과정 - 저승사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의 저자 서경호 씨는 내세를 믿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그곳에 이르는 과정이므로 ‘저승으로 어떻게 가는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레 생겼고, 그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한 가지 해답이 저승사자라고 설명하고 있다.01
시대가 바뀜에 따라 저승사자의 모습도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바뀌어 왔다. 사찰의 명부전(冥府殿)에서는 고대 갑옷을 입고 있는 장군의 모습으로, 제주도 신화 차사본풀이에서는 관복을 입고 포승줄을 들고 있는 관병의 모습으로, 그리고 검은색 두루마기와 갓을 쓴 모습과 말끔한 정장 차림의 최근 모습이 시대의 변화를 증명한다. 구전으로 전승되는 신화, 전설, 설화가 당대 사람들의 상상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사람들의 상상 세계는 저승사자에게 유독 인간미를 강조한다. 죽음에 연결된 두려움을 희석하고자 함일까? 망자의 사정을 보고 며칠의 유예를 준다든지, 가택신과 옥신각신한다든지, 음식이나 옷을 대접받고 망자를 데려가지 못하거나, 동명이인의 망자를 데려가 염라대왕에게 꾸지람을 듣는 등의 모습이 민담을 통해 자주 나타난다. 위엄 있는 첫 등장과는 달리 동정심과 욕심을 가지고 있으며, 잦은 실수를 하는 등 인간미가 넘친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업무에 시달리는 공무원을 보는 듯한 짠함이 느껴진다.
저승사자는 이승과 저승에 모두 포함되는 중의적인 존재는 아닐까? 앞서 말했다시피 저승길을 안내하는 역할 외에는 그가 가진 인간미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행동의 의미를 제대로 알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 존재는 오랜 시간 동안 대중의 마지막을 함께 해왔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대중의 바람이 담긴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을 보며 대중의 정서와 친숙하게 맞닿아 있음이 느껴진다. 죄인을 잡으러 오는 듯한 무서운 모습이 아닌, 저승길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말동무이자 내세로 안내하는 친절한 인도자의 모습으로 말이다. 멋짐은 덤이다.
▲ OCN 드라마 ‘블랙’(좌),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우)
01 박주리, 「한국 저승사자 연구」 (한양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12), pp.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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