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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년(丙申年)에 찾아온 붉은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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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1.26 조회4,4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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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위원 이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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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사다난했던 을미년 한 해가 가고 병신년 새해가 밝았다. 2016년 병신년은 십간(十干)의 3번째인 병(丙)과 십이지(十二支)의 9번째인 원숭이[申]가 만나 만든 ‘붉은 원숭이의 해’다. 해마다 띠에 색이 붙는 것은 오행에 따른 것인데 갑을(甲乙)은 청색, 병정(丙丁)은 적색, 무기(戊己)는 황색, 경신(庚申)은 백색, 임계(壬癸)는 흑색에 해당한다. 십간의 병은 음양오행에서 화(火)에 해당하므로 강한 양의 기운이 밝게 뻗어나가는 것을 상징하고, 십이지의 원숭이는 방향으로는 서남서, 시간으로는 오후 3시에서 5시, 달로는 음력 7월에 해당하는 방위신이자 시간신이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병신년’이란 어감이 좋지 않아 예년과 달리 신년사나 마케팅에서 ‘붉은 원숭이의 해’란 표현을 더 많이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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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문화권에는 십간과 십이지의 조합인 간지(干支)를 활용해 시간과 방위, 계절, 색상 등을 나타내는 매우 독특한 표현양식이 있다. 여기서 간(干)은 줄기[幹]의 의미로 열 가지이므로 십간[天干]이라 하고, 지(支)는 가지[枝]의 의미로 열두 가지이므로 십이지[地支]라고 한다.01 그중에서 사람이 태어난 해의 지지에 열두 동물의 이름을 붙여 이르는 말을 중국에서는 ‘십이생초(十二生肖)’라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열두 띠’라 한다. 자(子: 쥐)·축(丑: 소)·인(寅: 호랑이)·묘(卯: 토끼)·진(辰: 용)·사(巳: 뱀)·오(午: 말)·미(未: 양)·신(申: 원숭이)·유(酉: 닭)·술(戌: 개)·해(亥: 돼지)가 그것이다. 이러한 열두 동물의 배열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동물의 발가락 수(홀·짝수 교차 배열)나 그 시간에 활동하는 동물의 생태에 따라 정했다는 견해가 설득력이 있다. 
  한국인은 누구나 ‘띠’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이 태어난 해의 띠동물의 형상과 습성을 개인의 운명과 성격에 결부시키기도 한다. 중국에서 비롯된 열두 띠 문화가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유입되었는지 명확하지 않으나 관련된 문헌자료나 유물의 기록에 의하면 삼국시대쯤일 것으로 보고 있다. 그 문화가 음양오행설과 결합하여 천문이나 역법에서는 방위나 시간의 개념으로, 사주·궁합·택일 등에서는 사람의 운명을 예지하는 비결로 활용된다. 또 능묘의 호석(護石)이나 사찰의 불화와 민화 등에서는 벽사진경(辟邪進慶)의 수호신으로 등장하고, 도기·토기·목기 등의 생활용품에서는 길상(吉祥)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다양한 민속문화를 형성해 왔던 열두 띠 문화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운명을 예지하고 성격이나 행동을 규정하는 속신(俗信)의 성격으로 강하게 남아 있다.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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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열두 띠동물 가운데 원숭이는 인간과 가장 많이 닮은 동물이다. 재주가 많고 영리해 도구를 사용할 줄 알며, 부부간의 정(情)이나 자식에 대한 사랑이 사람 못지않다. 원숭이가 한국에서 비치는 대체적인 모습 또한 꾀 많고, 재주 있으며 흉내 잘 내는 장난꾸러기나 모성애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설화에서는 원숭이의 재주나 잔꾀의 과신을 경계하는 내용이 많고 너무 사람을 닮은 모습, 간사스러운 흉내 때문에 재수 없는 동물로 기피하기도 한다. 띠를 말할 때 ‘원숭이띠’라 하지 않고 ‘잔나비띠’로 표현하는 것도 이 같은 속설 때문이다.03 그러나 불교의 영향과 중국·일본의 원숭이 풍속의 전래 등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희석되면서 원숭이의 좋은 측면이 부각되고 사기(邪氣)를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믿어졌다. 특히 중국에서는 원숭이가 건강과 성공, 수호의 힘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졌다.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동국무원(東國無猿)이라 하여 이웃한 중국, 일본과는 달리 원숭이가 서식하지 않는다. 조선 초기에 중국이나 일본에서 선물용으로 들여왔을 거란 가설도 있다. 그러나 선사시대 유적에서 원숭이 뼈가 발굴되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도 한때 원숭이가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평양 상원군 검은모루 동굴과 충북 청원군 두루봉 동굴, 제천 점말 동굴 등에서 원숭이 뼈가 발견되었다. 문헌기록상 원숭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법흥왕 14년(527년) 자연의 이변을 기술한 기사에서 이차돈이 순교할 때 “곧은 나무가 부러지고 원숭이가 떼 지어 울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택리지』 충청도편에는 정유재란 당시 명나라 군사들이 원숭이 수백 마리를 전술용으로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한반도에서 원숭이를 형상화한 작품이 등장하기 시작한 건 삼국시대부터이다. 5~6세기로 추정되는 신라시대 무덤에 원숭이 토우(土偶: 흙으로 만든 사람이나 동물의 상)가 종종 발견된다. 신라 사람들은 잡귀를 쫓아낸다 하여 원숭이를 무덤의 부장품으로 사용하거나 부적으로 가지고 다녔다. 불교가 전래된 후 통일신라시대에는 원숭이 상이나 조각이 다른 12지(支) 동물과 함께 무덤을 지키는 호석으로 쓰인 경우가 많았다. 손에 무기를 들고 갑옷을 입은 수수인신(獸首人身)의 원숭이 상이나 조각이 강력한 호국의 방위신으로 채택되어 왕이나 귀족의 무덤을 지켰던 것이다. 이밖에도 원숭이상은 탑상(塔像), 부도(浮屠), 불구(佛具) 등에서 불법을 수호하고 삿된 것을 물리치는 신성한 영물로 묘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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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원숭이상은 조선왕조에 이르기까지 능묘는 물론 불교 건축물이나 회화, 공예품, 그 밖의 일상적인 생활도구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게 활용되었다. 원숭이의 생태적 특성을 고려한 원숭이 모자상이 청자나 백자에 생생하게 그려졌고, 고려시대에는 특히 원숭이로 만든 인장(印章) 꼭지가 유행했다. 회화 속에서 원숭이는 십장생(十長生)을 배경으로 천도복숭아를 든 채 장수(長壽)를 상징하고, 포도 알을 따먹는 모습을 통해 부귀다산(富貴多産)을 상징하였다. 불교설화와 관련해 스님을 보좌하거나 단순히 자연 속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원숭이에 관한 이야기가 많지 않지만 십이지 동물의 하나로 우리 생활 곳곳에 길상의 소재로 등장한다. 각종 그림과 문방구, 도자기 등에 등장하는 원숭이는 출세나 벽사(辟邪)를 상징하며, 설화와 가면극에서는 재주꾼으로 등장한다. 특히 민속신앙에서는 원숭이가 『서유기』에 나온 손오공처럼 지혜롭고 용맹하여 사기(邪氣)나 잡귀를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믿어졌다. 그래서 큰 건물의 지붕이나 사찰에 원숭이상을 세워 나쁜 기운이나 잡귀(雜鬼)를 막고자 했다. 우리나라의 궁궐 지붕 위의 잡상(雜像)에 원숭이가 등장하고, 강화도 전등사 대웅전 추녀를 원숭이가 받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조선시대에는 특히 공부하는 선비의 사랑방에 원숭이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았다. 문방사우(文房四友) 중 하나인 벼루나 연적에 원숭이가 자주 등장하고, 원숭이 그림도 많이 그려놓았다. 원숭이 ‘후(猴)’가 제후 ‘후(侯)’와 음이 비슷해 원숭이가 제후처럼 높은 벼슬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당시 높은 관직은 부와 명예를 모두 얻을 수 있는 인생의 지복(至福) 가운데 하나였다. 조선 후기 회화 작품인 「안하이갑도(眼下二甲圖)」는 원숭이가 나뭇가지를 이용해 개울 건너편의 게를 잡는 그림이다. 여기서 게는 갑(甲)의 뜻으로, 곧 과거의 장원을 가리켰기 때문에 사대부가에서는 과거를 준비하는 자손들에게 이 그림을 자주 선물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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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시풍속에서 새해 ‘첫 원숭이날’을 상신일(上申日)이라 한다. 전남지방에서는 이날을 좋은 날이라 하여 음주와 가무를 즐기며 노는 곳이 많았다. 위험한 일을 하지 않았으며 칼질을 하면 손을 벤다고 해서 삼갔다. 제주도에서는 이날 자른 나무로 집을 짓거나 연장을 만들면 거기에 좀이 먹게 된다고 해서 나무를 자르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방아타령 가운데 “경신년 경신월 경신일 경신시(庚申年 庚申月 庚申日 庚申時) 강태공의 조작방아”라는 구절이 있다. 오행과 간지의 배합에 있어서 경(庚)과 신(申)은 모두 금(金)에 속하는데, 귀신은 금을 꺼리기 때문에 경신(庚申)이 붙은 때에는 어떤 일을 해도 탈이 없다는 데서 나온 이야기다. 또 우리나라 도가(道家)에서는 육경신(六庚申)이라는 수행을 하였다. 경신일 때마다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여섯 번 새우면 삼시충(三尸蟲)이 사람의 죄를 천제(天帝)께 고하지 못해 만사가 뜻대로 된다는 속신이 있었다. 
  원숭이가 등장하는 속담은 주로 원숭이의 생김새나 재주를 소재로 하면서도 그 재주를 과신하거나 잔꾀를 경계하는 내용이 많다. “원숭이 낯짝 같다.”, “원숭이 똥구멍 같다.”, “원숭이 흉내 내듯 한다.” 등은 술을 많이 마셔 얼굴이 붉게 된 사람이나 남의 흉내를 잘 내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조삼모사(朝三暮四)]”, “관 쓴 원숭이(원숭이 같이 경솔한 관리)” 등은 원숭이의 재주에 빗대어 인간의 재주를 과신하지 말고 그 잔꾀를 경계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편 자식 잃은 슬픔을 “단장(斷腸)의 슬픔” 또는 “애끓는 슬픔”이라 한다. 여기서 ‘단장’이란 말은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나오는 표현으로, 창자가 끊어질 만큼 지극한 모정을 지녔던 원숭이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04
  이러한 원숭이의 생태적 특성은 포유류 중 사람 다음가는 고등동물로 대뇌가 발단한 영장류에 속한다. 유럽·오스트레일리아·북아메리카를 제외한 전 세계에 분포해 살고 있다. 북으로는 일본원숭이가 살고 있고, 남으로는 주로 열대지방에 분포되어 있다. 원숭이의 유전정보는 사람과 98% 이상 유사해 외모뿐만 아니라 행동양식까지 사람과 닮았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의학 분야의 주된 연구대상이 되었고 우주 개발에도 참여하는 등 과학연구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원숭이는 일반적으로 어린이 3~4세 수준의 지능을 가졌으며 6~7개의 단어를 외울 수 있다고 한다. 인간과 생태적으로 유사해 팔다리의 움직임이 자유롭고 모성애도 강한 동물이다. 갓난아기 원숭이가 손발에 힘이 붙기까지는 결코 어미의 품속에서 떼어놓는 일이 없다. 하지만 원숭이는 주로 수컷 한 마리가 암컷 여러 마리를 거느리고 살기 때문에 수컷을 중심으로 철저한 서열 체계가 갖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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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이 인간을 가장 많이 닮은 영장 동물인 원숭이는 우리 민속에서 방위신이자 시간신으로 인간을 수호하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출세와 장수(長壽)’, ‘재주꾼’, ‘모성애’ 등을 상징하는 길상의 동물로 여겨졌다. 원숭이해에 태어난 사람은 원숭이의 생태적 특성에 빗대어 재주가 많고 영리하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의 재주를 과신한 나머지 방심하게 되는 측면도 있다. 일찍이 상제님께서 “장교자패(將驕者敗: 장수가 교만하면 패한다)”05라고 하시며 수도인들의 자만을 경계하신 바 있다. 도전님께서도 일체의 자부자찬(自負自讚)의 마음을 버리고 수도의 완성을 기하라고 하셨다.06 그러므로 2016년 병신년 붉은 원숭이의 해를 맞아 모든 도인들은 자만자족을 경계하고, 원숭이의 재주와 지혜를 본받아 당면한 문제와 어려움들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야 한다. 또한 원숭이의 지극한 모성애처럼 상호 통심정의 자모지정(慈母之情)으로 화합단결하여 상제님의 덕화(德化)를 널리 펼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대순회보> 1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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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중국 상나라 때부터 연ㆍ월ㆍ일 등의 날짜를 기록하는 데 사용한 십간ㆍ십이지의 기원에 관해서는 첫째 황제 때의 사관(史官)인 대요(大撓)가 창제했다는 설, 둘째 천황씨가 간지를 창제했다는 설, 셋째 황제시대 간지가 하늘에서 하강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십간ㆍ십이지를 조합해서 만든 육십갑자는 황제 때 대요가 만들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김만태, 「민속신앙을 읽는 부호, 십간ㆍ십이지에 대한 근원적 고찰」, 『민족문화연구』 54 (2011), pp.272-275 참조]
02 한국문화 속에서 띠동물에 대한 담론은 보통 세 가지 경우에 집중된다. 첫째는 연말연시에 새해를 맞이하여 그 해의 수호동물인 12지의 동물을 통해 한 해의 운수를 점치는 것이다. 둘째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아이의 운명을 띠동물과 연관시켜 미래를 예지하는 것이다. 셋째는 그 아이가 자라나서 결혼을 앞두고 결혼 상대의 띠와 궁합을 맞추면서 띠를 거론하는 것이다.[천진기, 『문화의 비밀을 푸는 또하나의 열쇠 한국동물민속론』 (서울: 민속원, 2004), p.435]
03 우리나라에서 이 ‘원숭이’라는 단어는 18세기경부터 사용되었고,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납’으로 적고 있다. 여기에 동작이 날쌔고 빠르다는 뜻의 ‘재다’가 붙고 음운의 변화를 거치면서 ‘잔나비’로 바뀐 것이 오늘에 이른 것이다.[이찬욱, 『한국의 띠문화』 (서울: 황금시대, 1999), pp.122-123 참조]
04 “중국 남북조시대 진(晉)나라의 환온이 초(楚)나라를 치기 위해 배에 군사를 나누어 싣고 양자강 중류의 협곡인 삼협을 통과할 때였다. 환온의 부하 하나가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붙잡아서 배에 실었다. 어미 원숭이가 뒤따라왔으나 물 때문에 배에 오르지 못하고 강가에서 울부짖었다. 배가 출발하자 어미 원숭이는 강가의 험난한 벼랑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배를 쫓아왔다. 배는 백 리쯤 나아간 뒤 강기슭에 닿았다. 어미 원숭이는 서슴없이 배에 뛰어올랐으나 그대로 죽고 말았다. 그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니 너무나 애통한 나머지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 이를 들은 환공은 대단히 화를 내며, 그 새끼 원숭이를 잡았던 부하를 파면시키도록 명하였다.”[유의경 저, 『세설신어』4(서울: 동서문화사, 2011), 임동석 역, p.1751 참조]
05 행록 4장 3절. 상제님께서 남기신 이 말씀은 “장차 교만하면 실패한다.”는 의미로 해석하기 쉽다. 그러나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戰勝而將驕卒惰者敗(전승이장교졸타자패)”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항우(項羽)의 삼촌 항량(項梁)이 진(秦)과의 몇 차례 전투에서 승리하자 진(秦)을 가볍게 여기고 교만한 기색을 보였다. 이에 송의(宋義)라는 사람이 “戰勝而將驕卒惰者敗(전쟁에 이겼다고 장수가 교만해지고 병졸이 나태해지면 패하고 말 것입니다)”라고 간하였다. 그러나 항량은 송의의 이 말을 귀담아 듣지 않더니 마침내 총력을 다해 반격하는 진군(秦軍)과의 전투에서 패해 전사하고 말았다. 이러한 고사에 비추어본다면 “장교자패(將驕者敗)”는 ‘장수가 교만하면 패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06 『대순지침』, p.5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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