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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킨과의 대화 : 물질에 치우친 서양의 문명에 대한 우려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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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1.25 조회4,6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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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위원 백경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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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머리말
  교통과 통신의 발달은 세계를 하나의 생활공동체로 만들어 놓았다. 모두 물질문명의 공헌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때문에 과거에 제각기 특색 있게 만들어지던 문화는 그 전통적인 모양과 특징을 잃고 혼합되어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조류로 나타나고 있다. 이때 발달된 대중매체는 그 파급력이 대단하여 과거 어떠한 진리나 경전보다도 단기간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주어 사회분위기를 주도하게 된다. 문제는 이렇게 영향력이 큰 대중매체가 만들어내는 문화가 물질적이며 감각에 호소하는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말초적 감성을 자극하기 위하여 감각에 영향을 주는 요소만을 찾아 물질적으로 ‘강화’ 시킴으로써 대중의 이목을 현혹하려는 오늘날 문화 성향은 상당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러시아 출신 소로킨01 박사는 물질적 감각 문화의 퇴락 단계라고 말하고 있다.02 그는 문화의 단계를 3단계로 나누고 있는데, 최근의 문화 현상을 400년 전부터 빠르고 대담한 수준의 물질적 변화가 몰고 온 ‘감각 문화’라는 개념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이마두(利瑪竇, 1522~1610) 사후(死後) 서양의 문명이 물질에 치우쳐 천도(天道)와 인사(人事)의 상도(常道)가 어겨지는 데까지 이르렀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소로킨의 후계자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해롤드 브라운(Harold O. J. Brown) 박사의 저서 『감각의 문화』를 중심으로 소로킨의 견해를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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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역사의 문화적 전개
  역사의 본질은 변화다. 이때 변화란 자연에 순응하는 자율적 변화를 말하지 않는다. 봄이 되면 꽃이 피고 여름이 되면 녹음이 우거지고 가을이 되면 단풍이 들고 겨울이 되면 눈이 오는 변화를 우리는 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동물들은 적응하기 위하여 변화를 시도한다. 이것은 변화임은 분명하지만 역사라 하지는 않는다. 수천 년 전 호랑이의 삶이나 현재의 호랑이의 삶에는 달라진 게 없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울 안에서 살게 된 것 말고는 말이다. 자연에 순응하면서도 자연과 달리 긴 시간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자율적 변화 즉, 전(前) 시대의 패러다임에 단절을 선언하며 앞날을 향한 창조적 변화가 있을 때 비로소 역사라 한다.03 이러한 의미에서 역사를 갖는 것은 인간뿐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을 역사적 존재(Homo Historicus)라 한다.
  인간만이 변화를 일으키는 역사적 존재가 되었다는 데에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사관(史觀)이 나타나 있다. 인간정신이 변화의 주체가 된다는 정신사관과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재화와 그에 대한 욕구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유물사관이다. 그러나 다른 동물들은 물질적으로 만족하고 나면 그것으로 그치고 마는 것에 비해, 인간은 다시 정신적 욕구를 채우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역사는 결국 인간정신의 산물이며, 자유의식의 지속적인 발현으로 창조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때의 창조는 선행 세대가 이룩해 놓은 문화를 부정하며 변증법적으로 이루어진다. 그 결과 앞 세대가 이룩한 문화를 포함하고 흡수하여 새로운 문화의 층을 이룩하게 된다. 결국, 새롭게 만들어지는 역사는 문화의 누적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 단계를 소로킨은 다음과 같이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1) 관념(觀念) 문화 단계
영적인 진리와 가치를 가장 숭고하고 진실 된 실재로 여기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때는 고상한 원리들을 고수하기 위하여 현실적인 쾌락과 당면한 목표들을 희생시킨다. 자기부인(自己否認), 금욕(禁慾), 순교(殉敎) 등은 관념 문화 단계의 관점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2) 이상주의(理想主義) 문화 단계
관념 문화 단계와 감각 문화 단계가 절충된 것. 영적인 진리와 가치들은 어떤 것들보다 상위에 둔다. 하지만 동시에 물질적인 가치와 감각적인 세계의 매력에 개방적이다. 따라서 이상주의 문화 단계의 성향은 감각적인 형태로 발전하는 경향을 띠게 된다.

  

  3) 감각(感覺) 문화 단계
오로지 증명할 수 있는 것만을 믿으며 영적인 진리나 종교적인 이상처럼 감각으로 느낄 수 없는 것에 희생하려 하지 않는다. 감각에 호소하거나 감명을 주는 물질적인 요소만이 관심의 대상이다. 당당하고 인상적이며 육감적인 것만 추구하며, 무절제한 탐닉을 오히려 장려하는 문화다. “내일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말고 “먹고 마시고 즐기라”는 의식을 조장하며 물질주의에 열광하게 한다.

  

  문화는 상이한 여러 단계를 거치는데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각각의 단계는 순수하게 관념적이고 영적인 단계에서 벗어나 감각중심의 물질주의로 변해갔다. 그러나 문화를 단계별로 나누었다고 하여 한 시대가 어느 하나의 문화라고만 할 수는 없다. 가장 원시적인 문화조차도 복합적인 차원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각각의 문화 단계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사회에 문화의 통합적 기능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문화 폐단은 이러한 조화가 사라지고 물질에 치우쳤다는데 문제가 있다.

  

  3. 물질에 치우친 문화
  과거에는 예술이나 문학이 그 시대의 정신이나 사고방식의 표출로 여겨졌다. 이들은 원칙적으로 도덕적이고 교육적이며 일반 대중의 덕성을 북돋워 전체 문화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예술과 문학은 저급한 문화를 양산하여 교양을 갖춘 세련미 대신 원초적이며 퇴폐적인 풍조를 만연시키는 면이 강하다. 이는 감각문학과 예술이 오직 사람을 자극하고 흥분시키며 매혹하는 것을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감각 문화는 초감각적인 가치가 현실에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적으로 고결하거나 훌륭한 것이 있다는 생각 자체를 거부한다. 그러므로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법적, 도덕적, 관습적 제약들을 제거해 왔다. 또한, 어떤 내용이든지 표현할 수 있는 제한 없는 자유를 예술적 진보라고 생각하게 한다.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는 분위기 속에서 외설적이고 선정적이며 잔인하고 타락한 예술로 평가되어 금지당해도 ‘예술에 대한 탄압’이라 규정하여 반발한다. 통신이나 방송에 관련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흐름을 타고 나가야 한다.”하며 보다 자극적인 소재를 내 놓기 위해 노력한다.04
  브라운 박사는 관념예술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한 것에 관심을 집중하도록 유도한 것에 비해 감각예술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기분을 전환해주고 매혹하는 데에만 열중하여 궁극에 작품을 구경하는 사람을 꾀어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자기만족에 빠지게 한다고 진단했다. 결국, 포르노보다 좀 더 세련된 방법으로 제작된다는 차이 외에 목적에서는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05 이러한 예술은 주로 전문적인 예술가들에 의해 이루어지며 비판의식 없는 대중과 대중에게 아첨하는 대중매체가 있어 성공을 거둔다고 그는 말한다. 폭력과 무절제한 성적 표현, 신성 모독 그리고 모든 종류의 타락된 것을 판매하여 이익을 챙기려는 영상매체의 물질적 목적에 사회는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이로써 방송이나 영화뿐 아니라 가정이나 학교에서의 일상적인 대화와 생활은 물론 사회의 질까지 예전에는 천박하다고 일컬어지던 수준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cf044e7f1c2e727e7d218c2d3975339f_1543126
  사회지도층의 생활도 그렇다. 문화·경제·정치 세계의 상류층을 차지하고 있는 자들은 일반 대중에게 성실함과 이타주의 그리고 예절에 모범이 되기는커녕 타락한 행실과 품위로 법정에 서는 일이 빈번하다. 이는 감각 문화의 윤리 체계가 표방하는 최상의 목표가 감각적인 행복, 쾌락, 공리성, 안락함의 극대화에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초감각적 가치도 믿지 않는 속에서 윤리체계의 명령은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며 편의 위주로 개인과 집단에 따라 언제나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즐거움을 얻고 고통을 피하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는 공리주의적 사고에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물질적 사고는 소위 사회 상류층을 욕망에 따라 삶을 전개하도록 유도한다. 여기에 자신들의 사교성을 보여주려고 사회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부류와 친하게 지내며 그들에게 칭찬과 존경을 아낌없이 퍼붓는다. 그뿐만 아니라 가끔 자신의 모습을 저급한 예술의 소재로 제공할 의도가 있음을 비치기도 하고 기꺼이 조잡하고 음란하며 선정적인 예술의 후원자가 되려 한다. 미덕을 행하는 사회지도자는 보이지 않고 휠체어에 전신을 감싸거나, 반대로 안면을 몰수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법원에 조사를 받으러 가는 모습은 불감증에 걸린 감각 문화에서 볼 수 있는 실종된 윤리의식의 일부이다.
  진리체계에 대한 위기도 물질문명이 몰고 온 색다른 문제다. 관념문화와 대조적으로 감각 문화는 오로지 증명될 수 있는 것만을 믿고 경험할 수 있는 것만을 생각하고 검증할 수 있는 것만을 신뢰하며 실험할 수 있는 것만 고려한다.06 그런데 감각 문화의 완숙기에 이르자 과학적인 진리와 물리적 사실에 관련된 증거들조차 의심하게 되었다. 그것은 과학의 한계와 내적인 오류에 부딪히면서 시작되었다. 이로써 확실한 사실과 과학적인 증거조차 관찰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다를 수 있다는 풍조가 생겨난 것이다. 자연과학에서 밝힌 사실도 확실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포스트모던 사회가 된 것이다. 사람들은 진리는 실재하지 않는다는 회의론자가 되거나, 객관적인 실재를 추구하는 대신 자신만의 진리 세계를 창조하기 시작했다. 이런 풍조는 종교에도 영향을 끼쳤다. 신앙의 교리가 이제는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진리라고 높임을 받지도 못하고 객관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비난받지도 않는다. 단지 ‘나를 위한 진리’로 생각되어 받아들여지거나 ‘나에게는 도움이 안 되는 것’, ‘나하고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판단하여 간단히 거부하게 되었다. 소로킨은 참된 것은 무엇이나 거부하는 급진적인 회의론과 모든 것이 참되다고 말하면서도 시간과 장소,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조건적인 의식으로는 인류가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갈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감각 문화로 들어오면서 사회를 유지하는 법에 대한 의식도 변하였다. 관념적 단계에서 법령은 하늘의 뜻에 기초하여 윤리의 체계를 세운 것으로 이해되었다. 사람들도 자신들이 세운 법이나 여러 명령이 신적인 법에 합치하리라는 가정 위에서 지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감각 문화에서 인간의 법은 신적인 법을 반영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단순히 권력을 가진 입법자의 의지를 구체화한 것이라는 의식이 널리 퍼졌다. 인간 행동을 규제할 높은 수준의 고귀한 기준이 없어진 것이다. 이는 법과 공권력에 대한 거부를 낳게 된다. 공동이 지켜야 할 객관적 가치와 질서가 없어지고 순간적인 욕구와 기호를 최선의 것으로 여기는 감각 문화가 만연하게 되면 그 사회와 문화는 더는 지속하지 못한다는 것이 소로킨의 의견이다.
  소로킨은 앞에서 살펴본 문화 예술, 사회지도층, 진리, 법의식, 윤리의식 외에도 민주주의, 교육, 의학에 걸쳐 감각 문화가 가지고 온 서구사회의 위기를 잘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사회 위기를 경고하고 관심을 표하며 규제나 통제를 주장하는 사람은 즉시 골수 보수주의자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뿐만 아니라 본보기가 될 이타적인 의사, 성직자, 테레사 수녀처럼 훌륭하게 자신을 헌신한 사람은 지나칠 정도로 매체의 검증을 받게 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흠이 발견되면 모든 장점을 단번에 날려버리고 사람들이 그를 본받지 못하게 하여 즐거움과 편리함의 추구를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집단을 위하여 변명거리를 제공한다.07 이제 극기, 예절, 겸손 같은 덕목은 지나간 시대의 유물처럼 조롱거리가 되거나 잊히고 있다. 어떤 본보기나 노력으로도 감각 문화의 조류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물질에 치우친 서구문화는 퇴락하는 감각 문화의 후기 단계에 깊이 들어와 제동장치 없이 나락으로 질주하고 있다. 소로킨은 말한다. “서구사회는 몸과 마음이 모두 병들어 있다. 사회 전체가 상처투성이로 멍들어 있으며,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는 신경조직은 아예 없다.”08 그는 과거 어떤 영역에서 사용되었던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조치들로도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그의 제자 브라운은 현재의 위기는 사회전체에 걸쳐 퍼져있는 질병과 같아서 사회의 모든 영역이 이 질병에 감염되어 있다고 했다. 선체에 여러 개의 어뢰를 맞은 군함처럼, 서구 문화는 한두 개의 구멍이 아니라 모든 구멍을 정해진 시간 내에 막지 못하는 한 반드시 침몰하고 말 것이라는 그의 말은 물질문명의 말로에 대한 심각한 경고가 아닐 수 없다.   

 

  4. 나가는 말
  소로킨이 1940년대에 분석한 감각 문화의 여러 측면은 참으로 놀라울 정도로 현 사회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그의 제자 브라운은 문화의 기본 형태가 변화할 때 언어습관, 의복 형태, 태도, 오락, 부모와 자식의 관계,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 세대 간의 관계가 모두 변한다고 말한다. 그것도 처음에는 서서히 변하다가 나중에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전에는 개별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던 예외적인 문제들이 사회에 만연하게 되고 빈발하게 된다. 범죄, 폭력, 정신 질병, 전쟁, 혁명 등이 그 예다. 서구 문화는 200 년경 로마처럼 감각 문화의 마지막 지점에 이르렀고, 이러한 상태로 간다면 서구 문명은 로마가 쇠퇴할 때와 마찬가지로 더는 지속할 수 없다고 브라운은 보고 있다.
그러나 소로킨이 바라보는 미래는 부정적이지 않다. 로마가 쇠퇴했지만, 유럽은 기독교를 받아들여 정신적 자각으로 부흥을 경험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쇠퇴일로에 있던 유럽이 가히 혁명적인 새로운 이상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제 서구 사회의 부흥은 이러한 “자각의 은혜”를 받아들일 때에만 일어날 수 있다고 소로킨은 주장한다. 특히 그는 물질이 아닌 영적(靈的)인 내용이 부흥을 위한 방향전환에 반드시 필요하다 하였다. 영적인 내용이라는 것은 순전히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라 종교적인 요소들을 담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긍정적인  현상으로 단(丹)이나 요가, 명상에 심취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감각 문화의 폐단이 관념적인 회귀를 갈구하여 일단의 운동을 낳은 예(例)다. 그러나 아직 서구사회는 쇠퇴하던 로마 세계를 변혁시켰던 만큼의 영적인 은혜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감각의 문화』에서 소로킨과 그의 제자 브라운이 물질에 치우친 문화 위기를 생생하고 분명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 것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서술한 내용은 그들의 식견을 독자의 입장에서 공감하여 피력했을 뿐이다. 감각 문화의 단계에 들어와 예술, 법, 종교, 철학, 의학, 언론, 사회 전 분야의 위기를 다룬 그의 탁견은 필자에게 상제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소로킨은 성직자도 예언자도 아니었다. 러시아의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두 번이나 사형선고를 받고도 살아남아 미국으로 추방된 사회학자다. 충분히 서구사회의 몰락에 대하여 비관적인 시각을 지닐 수 있었던 그가 서구의 몰락을 사회학적으로 암울하게 분석하면서도 어떤 미래학자보다 희망을 가졌던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절대자가 인류를 위해 ‘어떤 계획을 세워놓으셨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사회학자 소로킨이 본 물질에 치우친 서구사회는 절망 자체였다. 그의 희망은 인류가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절대자가 친히 도와줌으로써 서구사회가 소멸하지 않고 구제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사회학자로서 이 말을 한 소로킨을 위로해 주고 싶다. 로마의 병폐는 외부에서 유입된 차원 높은 관념체계가 있어 치유될 수 있었다. 서구문화는 이미 지구 전반의 문화가 되었다. 오늘의 감각 문화가 만든 병폐는 이제 전 지구적 문제다. 지구 밖 새로운 관념의 문화가 유입되고 이를 받아들이는 영적인 각성이 없이는 로마가 망하고 맞이하였던 유럽의 부흥을 다시는 볼 수 없을지 모른다.


 <대순회보> 1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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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피티림 알랙산드로 소로킨(Pitirim Alexandrovich Sorokin: 1889~1968); 러시아 북부의 코미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페테르부르크대학을 졸업하고 모교의 교수가 되어 철학ㆍ심리학ㆍ윤리학ㆍ사학ㆍ법학의 연구를 거쳐 범죄학에서 사회학으로 방향을 전환, 1917년 모교 최초의 사회학 교수가 되었다. 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져 A.F.케렌스키 내각의 각료, 러시아 공화국회의 및 헌법회의 위원을 역임하였다. 11월 혁명(구력 10월) 후 케렌스키파라고 하여 사형선고가 내려졌으나, 구명운동으로 1923년 국외 추방령에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1930년에 귀화하였다. 1924년 미네소타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1930년 하버드대학에 사회학부를 창설하는 등 미국 사회학계의 거두가 되었다. 그의 사회학은 종합사회학으로 농촌사회학, 특히 러시아혁명의 체험에 의한 사회문화변동론에서 그 본령을 볼 수 있다.
   주요 저서에 『사회이동 (Social Mobility)』,『사회적ㆍ문화적 동학 (Social and Cultural Dynamics)』,『혁명의 사회학 (Sociology of Revolution)』,『사회ㆍ문화 및 퍼스낼리티 (Society, Culture and Personality)』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02 해롤드 브라운, 차성구 역, 『감각의 문화』, 예영커뮤니케이션, 2000, p.38.
03 이상현, 『다시 쓰는 역사 그 지식의 즐거움』, 세종 연구원, 2008, pp.29~40 참고.
04 해롤드 브라운, 차성구 역, 『감각의 문화』, 예영커뮤니케이션, 2000, p.180.
05 같은 책, p.70.
06 같은 책, p.92.
07 같은 책, p.212.
08 같은 책,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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