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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으로서 수도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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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민상 작성일2018.12.12 조회4,1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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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33 방면 선무 송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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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방면 선각분의 추천으로 대학생 외수 수강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대순진리를 알게 된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수도하고자 하는 열의가 식어 있었고 목적의식도 많이 해이해진 상태였습니다. 기도, 치성 등의 도 행사들에 습관적으로 참여는 하고 있었지만, 제 의지보다 수동적으로 해나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대순진리에 대해 깊이 이해하여 ‘아! 내가 이래서 수도를 해야 하고 어떻게 해나가야겠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어 적극적이며 능동적으로 수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막막해 구체적인 목표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었기에 이번 수강이 저에게 참 중요한 의미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기대했던 바대로 이번 수강을 통해 많은 부분에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우선 대순진리회의 종지, 신조, 훈회·수칙 등은 수도하는 데에 있어 정말 중요한 부분이지만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깨달음을 얻은 것이 있었는데, 바로 제가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군인이 총을 못 쏘면 군인이라고 할 수 없듯이, 스스로가 대학생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만한 능력과 자격을 갖추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진정한 대학생이라고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당장 저를 포함한 제 주위 학우들을 둘러보아도 대학생으로서 무언가 찾아가려 하기보단 눈앞에 닥친 학점이나 사회에서 요구하는 소위 스펙 등을 채우기에 급급합니다. 우리는 바쁘게, 그리고 열심히는 살아가지만 정작 중요한 점은 놓치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전경』의 교운 1장 32절에 보면 상제님께서 “학교는 이 학교가 크니라. 이제 해원시대를 당하였으니 천한 사람에게 먼저 교를 전하리라”고 말씀하시면서 김 경학의 집에 대학교를 정하시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를 보면 상제님께서 교를 전하는 장소로 대학교를 지정하셨으며 그 당시에도 대학교를 크게 생각하고 계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의가 사라지고 세상에 도가 없어진 현실에서 대학의 교육은 그 본업을 수행할 수 없으며, 대학생 스스로도 어떤 목표를 세울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기에 이번 수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대학생 수도인으로서 올바른 목표 설정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우선, 대학이 어떤 기관인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사서 중의 하나인 『대학』과 상제님께서 직접 『전경』에서 말씀하신 구절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율곡 이이 선생이 학문하는 태도와 방법에 대해 논한 책인 『격몽요결』의 「독서(讀書)장」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先讀小學 於事親, 敬兄, 忠君, 弟長, 隆師, 親友之道 一一詳玩而力行之
次讀大學及或問 於窮理, 正心, 修己, 治人之道 一一眞知而實踐之
먼저 『소학』을 읽어, 어버이를 섬기고 형을 공경하며, 임금에게 충성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스승을 높이고 벗을 사귀는 도리에 대해 일일이 자세히 익혀서 힘써 실행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대학』과 『대학혹문』을 읽어, 이치를 궁구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며, 자기 몸을 닦고 남을 다스리는 도리에 대해 일일이 참되게 알아서 진실하게 실천해야 할 것이다.

 
  율곡 이이 선생은 독서가 도에 들어가기 위한 궁리의 전제가 되며, 단정한 자세로 깊이 정독할 것을 가르치면서 독서의 순서를 제시해줍니다. 첫째는 『소학』, 그 다음은 『대학』입니다. 『소학』은 우리의 생각이 형성되기 전에 부모를 섬김과 형을 공경함과 스승을 높임과 벗과 친한 도리 등 일상생활의 소소한 부분들을 가르치는 학문이고, 『대학』은 소이연(所以然), 그것이 왜 그래야 하는 지를 가르치는 학문입니다. 고구려의 교육 기관이었던 태학(太學)이나 오늘날의 대학교라는 명칭도 모두 『대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또, 『대학』은 상제님께서 아우인 영학에게 여러 차례 읽기를 권하셨던 책이며 특정한 대목을 드시며 종도들에게 자주 언급하신 책입니다. 교법 2장 26절에선 『대학』을 되풀이 읽으면 활연관통한다고 하셨으며, 교운 1장 55절에선 특히 『대학』의 경1장에 대운이 있으니 많이 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글에서 우리가 알아보고자 하는 대목은 대운이 있다고 하신 『대학』의 경1장 첫째 구절입니다.

  

大學之道는, 在明明德하며, 在新民하며, 在止於至善이니라.
『대학』이 추구하는 길은 밝은 덕을 밝히는 것에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에 있고, 최선의 경지에 머무르는 것에 있다.

  

  명명덕(明明德), 신민(新民), 지어지선(止於至善)이 바로 『대학』의 삼강령으로 경1장에서는 이러한 삼강령을 먼저 제시하고, 이어서 삼강령을 실천할 수 있는 팔조목을 들며 그 실현과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이 삼강령에 『대학』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종합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구절에서 대학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 기관이며 대학생으로서 어떻게 학문해야 하는 지에 대한 혜안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학』의 첫 걸음은 명명덕(明明德), 즉 밝은 덕을 밝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밝은 덕, 즉 이상적 존재인 성인으로 완성될 가능성을 타고났는데 세속적 욕심에 가려 그것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합니다. 『대순진리회요람』 ‘훈회’에도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습니다. 
 
마음은 일신(一身)의 주(主)이니 사람의 모든 언어(言語) 행동(行動)은 마음의 표현(表現)이다. 그 마음에는 양심(良心) 사심(私心)의 두 가지가 있다. 양심(良心)은 천성(天性) 그대로의 본심(本心)이요. 사심(私心)은 물욕(物慾)에 의(依)하여 발동(發動)하는 욕심(慾心)이다. 원래(原來) 인성(人性)의 본질(本質)은 양심(良心)인데 사심(私心)에 사로잡혀 도리(道理)에 어긋나는 언동(言動)을 감행(敢行)하게 됨이니 사심(私心)을 버리고 양심(良心)인 천성(天性)을 되찾기에 전념(專念)하라.

 
  거울에 때가 끼고 먼지가 쌓이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듯, 우리 마음도 사심으로 가득 차게 되면 제 기능을 못하고 죄를 저지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때를 벗겨내어 인간의 천성인 양심을 찾는 것이 『대학』에서 말하는 대학생의 첫 걸음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본인의 천성을 스스로 밝히는 것에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끊임없는 계발과 노력을 통한 수양으로 자신의 밝은 덕을 밝혀야 함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밝은 덕을 찾은 뒤엔 신민(新民),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신민(新民)이라함은 타고난 밝은 덕을 밝혀 인격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자신 한 사람에게서 그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성인이라면 타인을 이끌어 함께 나아가려는 책임과 사명을 가지고 자신이 궁구한 이치를 타인에게 올바로 전달해야 합니다. 상제님께서 성인으로 보내셨던 요왕, 순왕, 탕왕, 문왕 등은 모두 자신이 나날이 정진하여 새로워지고 밝은 덕을 밝혔던 분들입니다. 하지만 거기서 그쳤다면 천하를 손에 넣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덕을 밝혀 온 백성들을 새롭게 발전할 수 있도록 이끌고 격려했기 때문에 백성들의 인망(人望)에 올라 천하를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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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제님께서 삼계공사를 행하신 가장 큰 종교적 법리는 상생의 법리입니다. 이러한 상생법리는 남을 잘 되게 하는 것이 곧 나도 잘 되는 길임을 자각하는 협동의 원리입니다. 그렇기에 대학생 수도인 여러분은 이를 명심하여 남을 잘 되게 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밝은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한 뒤에 『대학』에서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는 지어지선(止於至善), 즉 최선의 경지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최선이란 언제 어디서나 가장 합당하고 적절하게 처신하고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머무른다 함은 정적인 개념이 아니라 언제, 어디, 어느 상황에서든지 가장 옳은 쪽에 머물러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적극적인 개념입니다. 지어지선(止於至善)의 뜻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구절이 있습니다.

爲人君엔 止於仁하고 爲人臣엔 止於敬하고 爲人子엔 止於孝하고 爲人父엔 止於慈하고 與國人交엔 止於信하니라.


  이는 『시경』의 한 구절인데, 문왕의 경우를 예로 들어 지선의 경지에 머무는 것에도 여러 가지 덕목이 있음을 설명한 것입니다. 그것은 곧 인(仁), 경(敬), 효(孝), 자(慈), 신(信)으로, 임금의 자리에 있으면 어짐의 정치를 베풀고, 임금을 모시는 신하의 입장에서는 공경을 다하여 섬기고, 자식의 입장에서는 부모에 효도를 다하고,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애로 자식을 대하고, 나라 사람들과 사귈 때는 믿음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렇듯 지선의 경지에 머무르는 것은 사실 아주 어렵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가 처한 입장에서 할 일을 다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대학생 수도인 분들에겐 대순진리회의 실천 덕목인 ‘훈회’와 ‘수칙’을 직접 실천하며 대학 생활을 하는 것을 지어지선(止於至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훈회·수칙을 단순히 머리로 아는 것과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정말 다른 차원입니다. 막연히 ‘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던 훈회·수칙도 막상 자신에게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학생 수도인 분들이 대학 생활의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그것을 지키고 실천해 나가려고 노력한다면 『대학』에서 말하는 지어지선(止於至善)의 경지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대학』을 통해 대학의 의미와 우리가 대학생으로서 실천해야 할 덕목들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여기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명명덕(明明德), 신민(新民), 지어지선(止於至善)의 출발점이 바로 자기 수양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학』에서 말하는 자기 수양의 출발점은 격물과 치지입니다. 격물치지란 세상 만물의 현상과 질서를 끊임없이 탐구함으로써 인간의 내부에 지식과 지혜가 축적되어 진리를 충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세상의 현상과 질서에 대한 탐구가 오롯이 담겨 있는 진리가 바로 대순진리이기에 대순진리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대학생, 그리고 도인으로서의 본분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다음으로 『전경』에 상제님께서 학교를 세우신 이유에 대해 직접 말씀하신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세상에 학교를 널리 세워 사람을 가르침은 장차 천하를 크게 문명화하여 삼계의 역사에 붙여 신인(神人)의 해원을 풀려는 것이나, 현하의 학교 교육이 배우는 자로 하여금 관리 봉록 등 비열한 공리에만 빠지게 하니 그러므로 판 밖에서 성도하게 되었느니라” 하시고 말씀을 마치셨도다. (교운 1장 17절)

 
  상제님께서 학교를 세우신 이유는 첫째로 천하를 크게 문명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천하의 도를 모르고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도를 일깨워주고 인간의 목적을 주지시켜 올바르게 살아가게 하는 것이 바로 학교의 존재 이유이자 궁극적인 지향점입니다. 그렇게 되면 삼계의 역사라는 국가와 민족 그 이상의 차원에서 신인(神人)의 해원을 풀 수 있게 됩니다. 말이 참 어렵지만, 쉽게 생각하면 신(神)이 신(神)과 인(人)의 해원을 풀기 위해 삼계의 역사에 쓰일 만한 인간을 배출해내려고 대학의 가르침을 내는 것이라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도주님께서 선포하신 ‘전교’(교운 2장 26절)에 의하면 최초의 성인이었던 황제 헌원 이후 원의 시대가 나눠졌는데 만상만사가 모두 시작되고 모든 법과 글이 기원을 하고 있는 원의 시작인 초통 때에는 ‘初統初會世世聖’(초통초회세세성) 즉, 세대 세대가 모두 성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때는 요왕, 순왕, 우왕 등과 같이 성인이 곧 왕이었던 시대였고 도의 가르침이 세상에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그 뒤인 중통 때에는 ‘聖不道行但敎傳’(성불도행단교전) 즉, 성과 웅이 분리되어, 성인이 왕으로서 도를 행하지 못하고 단지 교만 전하게 됩니다. 석가 뒤엔 공자, 공자 뒤엔 예수가 성인으로 내려오셔서 각각의 지역에서 종교를 펼치시게 됩니다. 그 뒤로 현재에 이르기까지는 그 가르침이 이어져 내려오기는 하지만 미미하여 세상이 혼란스러워지게 됩니다.
  위에서 상제님께서 언급하셨듯이, 세상에 도가 사라지게 되었기에 천하를 다시 문명화하기 위해 학교를 세우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대 인간의 문명 자체가 하늘의 가르침을 받지 않아 학교 교육이 올바로 작용하지 못하기에 판 밖에서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도를 펼치셨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대순진리이고, 우리가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대순진리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 덕목들을 생활에 접목시킨다면 대학생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이치에 맞는 대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대학’이라는 기관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필요한 여러 기술들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대학생 스스로가 올바른 삶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자기 수양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사물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세상에 대한 탐구는 상제님께서 밝혀놓으신 대순진리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이해를 기반으로 자신의 밝은 덕을 밝혀가는 자기 수양을 해나가야 하고, 실질적인 실천을 통해 타인에게까지 자신의 덕을 확충했을 때 진정 대학생으로서의 본분을 다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수강을 듣고, 그리고 이 글을 준비하며 상제님께서 세상의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까지 모두 통찰하시고 있다는 사실에 정말 놀랐습니다. 대학을 세우신 이유와 직접 도를 판 밖에서 성도하시게 된 이유, 그리고 전교에서 언급한 여러 성인들의 출현 배경과 그에 대한 설명들은 오직 상제님만이 알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교법 3장 47절에 나오는 한 구절의 내용을 끝으로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事之當旺在於天地 必不在人
然無人無天地 故天地生人 用人
以人生 不參於天地用人之時 何可曰人生乎
일이 마땅히 되어 가는 것은 천지에 달렸지 반드시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없으면 천지도 없는 것과 같아서 천지에서 사람을 내어 쓰노라. 사람으로 태어나 천지가 쓰고자 할 때 동참치 않으면 어찌 인생이라 하리오.


  이 구절은 상제님께서 인생의 의미에 대해 말씀하신 구절입니다. 천지의 은혜를 받고 태어난 우리 인간은 하늘의 뜻을 알고 적극적으로 그 쓰임에 합당한 인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상제님께선 사람을 삼계의 역사에 붙여 신인의 해원을 풀기 위해 학교를 세우셨다고 하셨습니다. 신(神)은 인간을 쓸 수 있기에, 인(人)은 원래 태어난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에 해원을 푼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지금 대학생 신분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은 곧 신인(神人)을 해원하는 엄청나게 큰 공사를 받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대학생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그 본분을 다하기 위해 열심히 수도하고 노력한다면 하늘에 크게 쓰일 수 있는 가치 있는 도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순회보> 1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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