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恩惠)를 저버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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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2.10 조회2,746회 댓글0건본문
글 연구위원 주현철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 사람들은 인간으로서의 근본을 망각해 가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은혜의 힘이 아니라면, 아마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을 지도 모른다. 직접적으로는 자신을 낳고 길러주신 부모와 자신이 성장하기까지 돌봐주신 스승을 비롯한 주변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을 것이고, 간접적으로는 의·식·주(衣食住)를 해결할 수 있도록 옷을 만들고 농사를 짓고 집을 짓는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을 것이다. 알고 보면 인생은 모든 것이 은혜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중에서도 오직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신 부모의 은혜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효(孝)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고리타분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간주하여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또한 현실이기도 하다.
부모는 자식을 낳아 양육하기 위하여 온갖 정성을 기울인다. 능력이 닿는 한 자식을 남보다 더 잘 되게 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부모이다. 잘났건 못났건 현재 자신이 성장하기까지 삶을 희생하신 부모의 은혜에 보답해야 하는 것은 자식으로서 당연한 도리이다. 그런데 은혜를 망각하여 부모가 능력이 없으면 업신여기고, 돈을 주지 않는다고 폭행을 가하고, 병들었다고 거들떠보지 않고, 심지어는 부모를 내다버리는 무지막지한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스승을 해(害)하는 하극상(下克上)이 벌어지기도 하고, 심지어는 국방의 의무를 피하기 위하여 국적을 바꾸거나 온갖 불법을 동원하여 국가를 배신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사람들은 근본을 도외시한 채 비정하고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이미 이러한 인간성 상실의 시대를 예고하신 바 있다. 『전경』에 “아버지·임금·스승의 은혜를 잊는 것은 무도(無道)이다. 세상에는 충·효·열(忠孝烈)이 없다. 이것으로 인해 천하(天下)가 모두 병에 걸렸다.(忘其父者無道 忘其君者無道 忘其師者無道 世無忠 世無孝 世無烈 是故天下皆病).”(행록 5장 38절 참조)라고 하였다. 이렇게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당연한 도리(道理)인 은혜를 망각하고 외면함으로써, 세상은 중병(重病)에 걸려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도리는 효(孝)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효(孝)를 만덕(萬德)의 근원이요, 백행(百行)의 원천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무리 과학문명이 발전하고 시대와 세계질서가 변한다 하더라도 효(孝)의 정신은 변치 않아야 한다.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남을 미워하거나 업신여기지 않으며, 매사에 경거망동하지 않는다. 진실로 효도하고서 어질지 않은 사람이 없고, 효도하고서 의롭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효도하고서 예의가 없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형을 섬기면 우애(友愛)가 되고, 친구를 위하면 신의(信義)가 되고, 아랫사람을 돌보면 인자(仁慈)한 것이 되며, 국가를 위한다면 충성(忠誠)이 되고, 국민을 다스린다면 사랑이 될 것이다. 이렇게 효도하는 마음이 서게 되면 만 가지 착한 마음이 여기에 따라 저절로 생기는 것이다. 사회도덕 규범을 정의롭게 세울 수 있는 기본 덕목은 효도인 것이다. 모든 정의가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할 줄 아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우리 도(道)에서는 은혜(恩惠)란 남이 나에게 베풀어주는 혜택(惠澤)이요. 저버림이라 함은 잊고 배반(背反)함이니, 은혜(恩惠)를 받거든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또 인간이 살아가면서 입게 되는 다양한 은혜의 형태와 보은(報恩)을 해야 하는 필연성과 실천방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생(生)과 수명(壽命)과 복록(福祿)은 천지(天地)의 은혜(恩惠)이니 성(誠)·경(敬)·신(信)으로써 천지(天地) 보은(報恩)의 대의(大義)를 세워 인도(人道)를 다하고, 보명(保命)과 안주(安住)는 국가(國家) 사회(社會)의 은혜(恩惠)이니 헌신(獻身) 봉사(奉仕)의 충성(忠誠)으로써 사회발전(社會發展)과 공동복리(共同福利)를 도모(圖謀)하며 국민(國民)의 도리(道理)를 다하고, 출생(出生)과 양육(養育)은 부모(父母)의 은혜(恩惠)이니 숭선(崇先) 보본(報本)의 대의(大義)로 효도(孝道)를 다하고, 교도(敎導) 육성(育成)은 스승의 은혜(恩惠)이니 봉교(奉敎) 포덕(布德)으로써 제도(弟道)를 다하고, 생활(生活)과 녹작(祿爵)은 직업(職業)의 은혜(恩惠)이니 충실(忠實)과 근면(勤勉)으로써 직분(職分)을 다해야 한다.(『대순진리회요람』, 20쪽 참조)
이렇게 사람들은 은혜 속에 태어나서 성장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한평생을 지낸다. 인간 개개인의 존재는 별개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로 연관되어 있는 은혜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출생으로부터 은의(恩義) 어린 사회를 떠나서 단 하루라도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은혜는 위에서 아래로만 베풀어주는 것만은 아니다. 상제님께서 “스승은 제자가 없으면 설 곳이 없다.”고 하셨으니, 그 말씀에 은의(恩義)가 깃들어 있음을 기억하라고 하였다.(『대순지침』, 66-67쪽 참조) 이 말씀을 근거로 하자면, 자식이 없으면 부모가, 후각(後覺)이 없으면 선각(先覺)이, 아랫사람이 없으면 윗사람이 은혜를 베풀고자 하여도 베풀 수 없는 것이다. 역설적(逆說的)이긴 하지만 은혜를 베풀 대상이 있는 것만으로도 은혜를 입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인간사회는 일방적이라기보다는 상호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은혜의 공간인 것이다.
남이 나에게 조금이라도 호의를 베풀어주면 결코 그것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하나하나에 마음을 쓰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 세상은 나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있기에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상부상조하며 살아야 한다. 이것이 나를 이 세상에 존재케 한 상제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 될 것이다.
우리 수도인들은 일상적인 은혜에 보답해야 하는 것은 물론, 상제님의 하해(河海)와 같은 은혜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탄생 이전부터 단순히 생물학적인 차원을 넘어 신비로운 과정을 거쳐 무한한 은혜 속에서 태어난다. 인간의 출생은 부모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지만, 부모 이전의 근원적인 사실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전경』에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헤아릴 수 없는 공력을 들이나니라. 그러므로 모든 사람의 선령신들은 육십 년 동안 공에 공을 쌓아 쓸 만한 자손 하나를 타내되 그렇게 공을 들여도 자손 하나를 얻지 못하는 선령신들도 많으니라. 이같이 공을 들여 어렵게 태어난 것을 생각할 때 꿈같은 한 세상을 어찌 잠시인들 헛되게 보내리오.”(교법 2장 36절)라고 하였다. 이렇게 인간이란 존재는 자손을 내기 위해 60년간 공력(功力)을 쌓은 선령신의 은혜와 상제님의 덕화(德化)로 결정되는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인간에게 생명의 기쁨을 주시고, 상극(相克)과 진멸지경에 빠진 인류를 구제하시어 상생(相生)의 터전을 마련해 주시고, 또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사슬을 벗겨 지상낙원(地上樂園)에서 영생(永生)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다. 인간이 이러한 상제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오직 상제님의 진리를 성심(誠心)을 다해 실천하는 것뿐이다.
《대순회보》 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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