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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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2.10 조회2,809회 댓글0건본문
국법(國法)을 준수(遵守)하며
사회도덕(社會道德)을 준행(遵行)하여
국리민복(國利民福)에 기여(寄與)하여야 함.
글 연구위원 주현철
어느 사회나 구성원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규범들이 있다.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듯이, 함께 모여 살아야 하기 때문에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가리기 위해 규범을 세우고, 그에 따라 선(善)과 악(惡), 정의(正義)와 불의(不義)를 구분하고 있다. 그것이 양심(良心)이나 일반적인 상식 등에 비추어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 마땅히 지켜야 하는 도덕규범이든, 강제적인 성격을 띤 법이든, 모든 사회는 나름대로의 다양한 규범을 가지고 있다. 이 규범이 지켜질 때에 사회는 질서를 유지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사회는 무질서한 혼란 상태에 빠지게 된다.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법이 도덕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강제나 규제보다도 자각에 의한 실천이 더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사회화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람들 각자의 양심(良心)에 기초한 자발적인 인식이 싹터야 한다. 양심은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사회질서를 파괴하려는 일체의 행동을 거부하고, 남을 배려하고 남과 화합하고 질서를 유지하여 사회발전에 기여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은 법보다 도덕이 우선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법은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규범으로서 범죄를 예방하고 그 죄를 처벌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을 근본적으로 선(善)하게 만들 수는 없다. 도덕은 강제력을 갖는 법과 달리 각성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규범이기 때문에, 인간을 어느 정도 선(善)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도덕보다 더 강력하게 작용하는 것은 상제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진리와 교훈인 신법(神法)이다. 도덕은 인간 상호관계만을 규정하지만 신법(神法)은 초월자이신 상제님과의 관계로까지 승화되어 절대선(絶對善)을 추구하기 때문에, 도덕보다 인간을 근본적으로 선(善)하게 만들 수 있다. 또한 도인(道人)들이 상제님을 신앙하고 그 진리에 따르는 것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관점에서 볼 때,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법이나 도덕보다 상제님의 진리(神法)가 더 근본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를테면 범죄는 인간의 탐욕과 감정으로 저질러진다. 도덕은 그러한 탐욕을 경계하고 감정을 조절케 해준다. 신법(神法)은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이 도통(道通)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여 도통을 위해 탐욕과 극한 감정을 근절케 하고 양심에 따라 행동하도록 인도한다.
사실 상제님의 진리의 말씀대로 살면 국법이나 사회도덕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우리 도(道)에서는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하여 인간 본래의 청정무구(淸淨無垢)한 본성(本性)인 양심을 가질 것을 강조하고 있다. 무자기란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 즉,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으로서 일체의 죄악을 근절할 수 있는 근원이다. 남이 있을 때나 혼자 있을 때나, 어두운 곳에 있을 때나 밝은 곳에 있을 때나, 어려울 때나 편안할 때나 항상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간직해야 한다. 마음은 일신(一身)의 주(主)다. 인간의 언행(言行)은 바로 마음의 표출인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인성의 본질인 정직(正直)과 진실(眞實)한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어떤 죄악(罪惡)도 범하지 않고 비도덕적인 행위도 하지 않을 것이다.
또 우리 도(道)에서는 사회도덕을 준행(遵行)하여 사회화합에 기여하기 위한 근본정신으로서 해원상생(解相生)과 보은상생(報恩相生)을 제시하고 있다. 해원(解)은 척()을 푸는 일이다. 척()을 맺는 것도 나요 푸는 것도 나라는 것을 깨닫고 내가 먼저 풀음으로써 상대는 스스로 풀리게 된다. 양편의 척이 풀려 해원이 되고 해원이 되어야 상생(相生)이 된다. 상생이 되면 화합·단결·상부상조는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인간은 세상을 살면서 무수한 은혜를 입으며 살아간다. 보은(報恩)은 내가 입은 은혜에 보답하는 일이다. 은혜란 남이 나에게 베풀어주는 혜택(惠澤)이고 저버림이란 그 혜택을 잊고 배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 도리이다. 이러한 실천을 통해 사회는 상생(相生)이 되고 화합(和合)도 이룩될 것이다. 물론 자신이 입은 은혜에 보답하지 않는다고 해서 법에 저촉되어 신체적인 벌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짐승도 자신을 길러준 주인에게 순종하여 고마움을 표시한다. 은혜에 보답할 줄 모르는 사람은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질타를 받는다. 이는 인간에게 신체적인 형벌보다 더 가혹한 형벌이 아닐 수 없다.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할 줄 아는 삶, 이것이 인간적인 삶이며 도인(道人)다운 삶일 것이다.
이렇게 상제님의 진리에 따라 생활하면 국법을 어길 리 없고 사회도덕에서 벗어날 리가 없다. 그러나 이 사회는 우리 도인(道人)만이 활동하는 무대가 아니라, 여러 종교와 종파의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는 공동의 공간이다. 우리 도(道)가 옳으며, 그래서 누구나 우리 도인이 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저급한 또는 깨달음이 부족한 사람들로 간주한다면, 타종교인들과의 마찰은 불가피할 것이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독단으로 간주되어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고 사회를 어지럽히는 결과를 초래하여, 국법에 저촉되거나 사회도덕에 역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도(道)는 국법을 준수(遵守)하며 사회도덕을 준행(遵行)하여 국리민복(國利民福)에 기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도인(道人) 스스로가 이를 깨닫고 지혜롭게 처신함으로써 건전한 사회인으로 성숙할 수 있고 사회화합에 기여하며 종단의 발전에도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는 국가와 사회와 개인에게 순기능을 하기도 하고 역기능을 하기도 한다. 종교적 가르침에 따라 어떤 사람은 사회 봉사활동에 적극 참여하며, 어떤 사람들은 신앙적 동기로 자신의 모든 것을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종교적 가르침에 따라 시한부 종말론자는 가정과 직장을 포기하고 종교집단에 참여하여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어떤 종파는 수혈을 거부하고 군입대를 거부하며, 신앙적인 이유로 타인의 목숨을 위협하고 온갖 테러를 자행하며 법에 정면으로 도전하기도 한다.
우리 도(道)는 “국법에 순응하고서야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다.”(『대순지침』, 33쪽)고 하여 준법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수도를 한다는 이유로 국법을 어겨서는 안 되며 사회화합에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일탈행위(逸脫行爲)라고 한다. 사회 안에서 일탈행위가 만연하게 된다면, 그 사회는 혼란에 빠져 해체의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우리 도(道)에서는 상제님의 진리를 근본으로 훈회(訓誨)와 수칙(守則)을 정하여 사회 안에서 도인(道人)들의 일탈행위를 억제하고 예방하는 역할을 다하고 있다. 우리 도(道)는 도인들이 이기적인 욕심을 충족시키려는 의도를 예방하기 위하여 도덕적 가르침을 제공하고 이것을 지키지 않는 것을 죄로 규정함으로써, 도인들의 일탈행위를 억제하여 사회통합에 기여하고 있다. 우리 도(道)가 지향하는 규범적 가치는 사회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며, 대체로 사회가 개인에게 지키도록 요구하는 바람직한 가치와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도(道)의 규범이 강력한 힘을 가지는 것은 절대자이신 상제님의 진리가 그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 도(道)는 사회적 무질서를 예방하고 억제하면서 사회의 도덕성 확립을 도와주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또 우리 도(道)는 사회의 기본적인 가치와 규범의 근거를 확립하고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집합적인 의식을 마련해 줌으로써, 사회가 하나의 도덕 공동체로서 질서와 안정을 누릴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여 사회화합을 도모하고 있다. 이를테면 개인들을 집단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해주고, 때로는 위기에 직면한 개인들로 하여금 그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고, 사회에서 소외당한 계층에 대한 사회복지 역할을 감당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생활을 원만히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를 깊이 인식하여 도인(道人)들 각자가 사회의 모범이 되어 사회화합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우리 도인들은 참다운 인간의 정서와 의지인 양심(良心)을 지키는 전인적(全人的) 인간,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화합과 협동을 앞세우며 사회에 봉사할 줄 아는 사회적(社會的) 인간, 자유와 정의와 평등을 사랑하는 민주적(民主的)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포괄한 인간상이 바로 우리 도(道)에서 지향하는 진정한 수도인(修道人)인 것이다.
《대순회보》 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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