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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칙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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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2.10 조회2,2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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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日常) 자신(自身)을 반성(反省)하여

과부족(過不足)이 없는가를 살펴 고쳐 나갈 것

글 교무부

 

  사람들이 자신을 뒤돌아보거나 주위를 살펴볼 겨를도 없이 너무 바쁘게 살다보면, 인간성 상실의 문제에 대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어떤 문제들은 크게 부풀어져 있고, 어떤 문제들은 서로 뒤엉켜 앞뒤를 분별할 수 없게 된 것도 없지 않다. 이런 문제들을 간과(看過)하거나 방치한 채 그대로 둔다면, 우리가 아무리 피땀 흘려 열심히 일한다 해도 그 노력의 보람은 허사로 돌아갈 위험마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들을 조급하게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순서가 있기 때문이다. 바쁜 일과 속에서도 여유를 내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자기 스스로의 마음과 행동을 뒤돌아보고, 신중하게 문제의 실마리를 풀고 새로이 엮어 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누구나 이를 위해서는 생각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본의 아니게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 원효대사는 ‘부모 된 사람은 자식을 키우기 위해 하루에도 백 번이나 죄를 짓는다.’고 하였고, 톨스토이는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는데 잘못은 인간적인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반성(反省)에 달려 있다. 반성이란 과거 자신의 마음가짐과 언행(言行)에 대하여 잘못이나 부족함이 없는지 돌이켜보고,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뉘우치고 부족한 것을 채워나가는 행위이다.

  우리가 몸을 깨끗이 하기 위해 세수하고 목욕을 하는 것과 같이, 마음을 깨끗이 하기 위해 반성하여 잘못을 개선(改善)하는 일은 한평생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한다. 반성은 양심(良心)을 회복하여 그에 따라 행동하고자 하는 인간의 가장 순결한 마음가짐이다. 마음에는 양심(良心)과 사심(私心)이 있다. 양심(良心)은 천성(天性) 그대로의 본심(本心)이며 사심(私心)은 물욕(物慾)과 도덕성(道德性)의 결여(缺如), 이성(理性)이 아닌 감정(感情)에 의해 생기는 마음이다. 사심에 사로잡히면 도리(道理)에 어긋나는 언동(言動)을 감행(敢行)하게 되고, 죄악(罪惡)을 저지르고 남에게 척()을 짓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심에서 벗어나 올바른 행동을 하고 모든 죄악을 근절(根絶)하며, 맺혔던 척()을 풀고 다시는 척()을 맺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자신을 반성하여 잘못을 고쳐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보다 완전한 인간으로 발전하기를 갈망하는데, 반성은 이러한 인간의 희망을 현실로 바꾸어 줄 것이다. 낡은 세포를 생명력 있는 세포로 바꾸는 신진대사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건강한 신체를 가질 수 있듯이, 낡은 정신을 새로운 정신으로 바꾸어야 건전한 사고를 할 수 있다. 반성은 언제나 인간을 날로 올바르고 새롭게 만들어 주려는 기능과 역할을 다한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모르고 지나치거나 알면서도 뉘우치지 않고 개선(改善)하려고 하지 않으면, 뜻하지 않게 불행한 미래를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상제님께서는 항상 종도(從徒)들을 처음 대할 때, 반드시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낱낱이 회상(回想)케 하여 마음속으로 사(赦)하여 주시기를 빌게 하고, 미처 생각지 못한 허물을 하나하나 깨우쳐주시고, 또 반드시 그의 몸을 위하여 척신(神)과 겁액(劫厄)을 풀어주신 것이다.(행록 4장 47절 참조) 상제님께서는 “허물이 있거든 다 자신의 마음속으로 풀라. 만일 다 풀지 않고 남겨두면 몸과 운명을 그르치니라.”(교법 2장 16절)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상제님께서는 잘못을 뉘우치고 습성을 고치지 아니하면 앞날에 난경(難境)이 닥쳐 몸[一身]과 운명(運命)을 그르치기 때문에, 평소의 허물을 뉘우쳐 앞길을 닦도록 하신 것이다.

  지난 과오를 끄집어내어 아쉬워하고 괴로워하고 남을 원망한다고 더 나아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고치지 않고, 또 그것으로부터 교훈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또 하나의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흔히 자기기만과 자기 합리화에 빠져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변명과 거짓말을 하게 된다. 여기에 정도가 더해지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독선(獨善)이 견고하게 자리를 잡는다. 독선(獨善)은 발전을 저해(沮害)하고 운명에도 영향을 미쳐, 자신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독선(獨善)은 내가 제일이라는 생각에서 나온다. 독선은 보통 사람을 무능한 존재로 보고, 그 인격을 무시하며, 그 존엄성을 천시(賤視)하는 데서 오는 마음의 태도이다.

  독선(獨善)이 통하는 곳에서 화합과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다. 자기의 주장만 옳다고 하고 남의 주장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독단적·폐쇄적인 태도는 개선(改善)과 진보(進步), 타협(妥協)과 협동(協同)을 심각하게 저해한다. 독단(獨斷)은 이기주의를 낳는다. 이기주의란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사상이므로 서로 돕고 힘을 모아서 사는 민주 사회와는 양립될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개인주의는 너와 나의 평등한 인격 가치를 근본으로 하지만, 이기주의는 다른 사람의 인격가치를 무시하고 한 개인의 목적을 위해서 다른 개인을 수단화하는 것을 근본으로 한다. 독선적인 사람에게는 필연적으로 많은 적(敵)이 수반되며,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그와 함께 남아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결국 허허벌판의 바람 앞에 놓인 촛불과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항상 자신을 반성(反省)하여 독선(獨善)의 뿌리를 제거해야 자신이 바라는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우리는 남의 허물을 들춰내고 비난하는 행위를 경계해야 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크고 작은 잘못과 결점이 있다. 그것을 낱낱이 지적하면서 비난한다면 결코 개선(改善)시킬 수가 없다. 지적 받고 질책 받은 사람은 그만큼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고 반성의 기회를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그 사람 또한 상대의 잘못을 찾아내려고 할 것이다. 비난은 선의(善意)의 충고와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 비난은 척()이 되어 또 다른 비난을 낳지만, 선의(善意)의 충고는 덕(德)이 되어 사람을 정화시켜주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남의 허물이 눈에 띌 때는 그 시선을 돌려서 자기 자신을 주시하여 자신의 허물을 찾아보아야 한다. 또 상대가 나에게 잘못을 할 때는 상대방을 원망하기에 앞서 먼저 나의 허물이 없는가를 살펴야 한다. 만일 허물이 내게 있으면 반성하여 뉘우치고 그 허물을 다 풀어야한다. 하지만 허물이 나에게 없는 데도 나를 비방하거나 욕보일 때는 그 독기(毒氣)가 본처(本處)로 돌아간다.(교법 2장 28절 참조) 본처(本處)란 나에게 잘못의 누명을 씌운 상대를 일컫는다. 다시 말해서 말을 만들어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자, 잘못도 없는 사람에게 누명을 씌워 사욕(私慾)을 채우려는 자는 스스로 그 벌을 받는 법이다.

  우리는 항상 어떤 위치에 있든 반성하고 뉘우치며, 잘못을 개선(改善)해 나아가야 한다.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것을 반성해야 하고,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한 것을 반성해야 한다. 참아야 할 일을 참지 못한 것을 반성해야 하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것을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남에게 의존하고 추종하여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자신의 주체성마저 상실한 적이 없었는지를 반성해야 하며, 도인(道人)의 신분으로 불의(不義)에 굴복한 일은 없었는지, 또 상제님의 진리에 충실했는 지를 반성해 보아야 한다.

  한 치의 가감(加減)이나 가식(假飾)이 없이 자신을 냉철히 돌아보고 반성할 때, 진정한 자기 발전을 이룰 수 있다. ‘남들도 다 마찬가지인데’, ‘남들은 나보다 더하는데’라는 생각으로 삶을 살아간다면, 태만(怠慢)에 익숙해질 것이고, 또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 자신도 악(惡)의 수렁에 빠질 것이다. 남들이 다 그렇게 하더라도 나만은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삶의 자세는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고, 삶의 진정한 가치와 보람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항상 자신을 반성(反省)하여 넘치거나 부족(不足)한 점이 없는가를 살피고 고쳐서, 자신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대순회보》 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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