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없어도 있는 듯이 잠시라도 방심 말고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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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22.10.13 조회10,448회 댓글0건본문
죄가 없어도 있는 듯이 잠시라도 방심 말고 조심하라.
(교법 1장 36절)
위 성구는 사람이 올바른 마음을 가지기 위해 항상 조심해야 할 것을 ‘죄’라는 용어를 통해 간결하게 말씀해주신 구절이다. 도인은 도에 어긋남이 없는지 일상 자신을 살펴 잘못이 있다면 고쳐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죄가 있는 것을 살펴 고치기도 쉽지 않은데, 죄가 없어도 있는 듯이 조심하라는 상제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어떠한 가르침을 전하는 것일까? 이 글은 수도에서 죄가 무엇이며 왜 인간이 방심하면 안 되는지 알아보고, 죄가 없어도 있는 듯이 조심하라는 상제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어떠한 자세를 요구하는 것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수도에서 죄의 의미
죄(罪)라는 글자는 그물 ‘망’(罒) 자와 아닐 ‘비’(非) 자로 구성되어 있다. 『설문해자』는 죄에 대해서 망(罒)은 물고기를 잡는 대나무 그물을 가리키는데 진나라 때까지 ‘죄(辠)’라는 글자로 사용했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 청나라 학자 단옥재(段玉裁, 1735~1815)는 진시황(秦始皇, 기원전 259~기원전 210)이 ‘죄(辠)’라는 글자가 황제를 의미하는 ‘황’(皇) 자와 형태가 유사해 죄(罪)로 바뀌었다고 주(注)를 달았다.01 그물을 던져 짐승을 잡듯이 올바름에 어긋나는 비리(非理)를 저지른 사람을 모조리 잡아들이는 뜻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을 알 수 있다.02
일반적으로 죄는 양심(良心)이나 도리(道理)에 벗어난 행위, 잘못이나 허물로 인하여 벌을 받을 만한 일, 법률에 위반되어 처벌을 면하지 못하는 불법 행위, 종교적 교리(敎理)에 어긋나는 것03 등의 의미로 정의하고 있다.04 이렇게 볼 때 죄는 인간이 지녀야 할 올바른 마음과 행동에서 벗어나거나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행위 등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서 공동체에서 요구하는 올바른 기준에 어긋나는 잘못이라고 볼 수 있다.
『전경』에는 죄와 관련된 다양한 구절이 등장한다. 상제님께서는 죄 중에 노름의 죄가 크다고 말씀하셨는데, 노름할 때는 자신이 상대의 돈과 재물을 얻기 위해 상대를 끌어들여 속이게 된다. 마찬가지로 그 상대도 다른 상대의 것을 얻기 위해 속이게 만든다는 점에서 노름은 서로 속이게 만든다. 이렇게 노름이란 나도 죄를 짓고 남까지 죄를 짓게 만든다는 점에서 상제님께서는 노름의 죄가 매우 크다고 하신 것이다.05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道理)에 어긋날 때도 죄가 된다. 상제님께서는 정남기의 집에 가셨을 때 그의 아우가 부모에게 한 불경한 태도를 보시고 그의 죄를 뉘우치게 하셨다.06 경(敬)은 상대에 대해 공경하고 삼가는 마음이다. 부모에게 불경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은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무례함을 보였다는 것이며 당연히 지켜야 할 도리에 어긋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에게 지켜야 할 도리에 어긋나게 행동했을 때 죄가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도(道)와 법(法)을 어지럽히면 죄가 된다는 설명도 보인다. 상제님께서는 수운(水雲) 가사에 등장하는 “난법 난도(亂法亂道)하는 사람 날 볼 낯이 무엇인가”라는 구절을 인용하시면서 삼가 죄를 짓지 말라고 당부하셨다.07 도가 우주가 가는 길[天道]이자 인간이 가야 할 길[人道]이라고 본다면 법은 공동체가 지켜야 할 규칙이라고 할 수 있다. 도와 법을 따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해 질서를 어지럽힌다면 죄가 된다는 점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전경』에 등장하는 죄는 일반적으로 정의하고 있는 죄의 개념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도전님께서는 “우리 법에 어그러지면 죄고 잘못이다. 즉 잘못된 일을 죄라고 한다.”08라고 말씀하셨다. “도가 음양이며 음양이 이치이며, 이치가 곧 경위이며 경위가 법”09이라고 했듯이 우리 법에 어그러진다는 것은 이치와 경위에 벗어난다는 것이며 도에 벗어난 것이다. 도에서 벗어나 잘못된 일이 곧 죄가 되는 것이다.
잠시라도 방심 말고 조심하라
그렇다면 인간은 왜 죄를 짓게 되는 것일까? 인간에게는 물건을 보면 그것을 가지고 싶은 견물생심(見物生心)이 존재한다. 좋은 물건을 보면 그 물건을 얻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마음은 자기 분수에 넘쳐 무엇을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욕심으로 발동하기 쉽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이 지닌 마음의 속성을 잘 설명한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편의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다.”(人心惟危, 道心有微)라는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
주자(朱子)는 성인(聖人)이라도 배고프면 먹고 싶고 갈증이 나면 물을 마시고 싶은 것이 바로 인심(人心)이라고 보았다.10 인심은 인간의 생존을 보존하기 위한 마음이라는 점에서 선악으로 정의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인심은 몸의 욕구로 인해 나타났기에 욕심에 치우친 인욕(人慾)으로 흐르기 쉬운데, 악(惡)으로 흐를 위험이 있어 위태롭다고 보았다. 이에 반해, 올바른 이치를 따르고자 하는 도심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은미하다고 본 것이다.
인심이 인욕으로 흐르기 쉬워 위태롭다고 보았듯이 인간은 욕심 때문에 양심을 버리기 쉽다. 맹자(孟子)는 “사람이 닭과 개가 도망가면 찾을 줄을 알지만, 마음을 잃고서는[放心] 찾을 줄을 알지 못한다.”11라고 말했다. 인간이 닭과 개라는 물질적 대상은 소중하게 생각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소중한 마음을 찾지 않듯이 자기 욕심으로 인해 잃어버린 양심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욕심으로 양심을 버린다는 것은 ‘마음을 다잡지 아니하고 풀어 놓아버린다.’12라는 방심(放心)의 의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대순사상에서 인간은 하늘이 부여한 성품을 지니는데, 그 마음을 천성 그대로의 본심인 양심(良心)으로 보고 있다. 인간 내면에 ‘진실하고 순결한 본연의 양심’13이 있지만, 한편으로 물욕에 의해 발동하는 욕심인 사심(私心)도 있다. 문제는 사심에 사로잡혀 마음을 속여 도리(道理)에 어긋나는 말과 행동을 감행하게 될 때, 죄를 짓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짓는 모든 죄악의 근원은 마음을 속이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14
『대순지침』에는 “사(私)는 인심이요 공(公)은 도심(道心)이니, 도심(道心)이 지극하면 사심(私心)은 일어나지 못하느니라.”15라고 하여 인심과 도심을 사적인 마음과 공적인 마음으로 구분하고 있다. 앞의 『서경』에서 제시한 인심은 자기 생존을 위해 가지는 마음이라는 점에서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성격을 지닌다. 이와는 다르게 대순진리회에서는 인심을 ‘사’(私)로 두고 있다. 이것은 인심의 성격을 지극히 개인만을 위하는 마음으로 보기 때문이다. 인심이 자기 개인만을 생각하는 사심이라고 본다면 도심은 자기 이익을 초월해 공동체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공적인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도심을 지향(指向)해야 하고 인심인 사심을 지양(止揚)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심을 따르지 않고 자기 개인을 생각하는 사심에 사로잡히는 것이 방심이라고 본다면 방심으로 이르게 하는 사심을 제거하기 위해서 공적인 마음인 도심을 지극히 해야 함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자신의 분수를 넘어선 물욕에 사로잡힐 때 마음을 속이기 쉬운데다가 더욱이 수도 과정에서 복마(伏魔)의 발동까지 겪게 되면서 더 죄를 짓기 쉽다. 인간의 마음은 신(神)이 드나들고 작용하는 기관으로서 그 신에 혹 선(善)한 것도 있고 혹 악(惡)한 것도 있다.16 수도 과정에서 척신의 발동으로 인해 마음의 분란이 생겨도 죄를 짓지 않으려고 진실한 마음으로 수도하게 될 때 해마(解魔)가 되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호리가 천 리 간다”17라는 말이 있듯이 처음에 털끝만 한 사소한 차이를 용인해버리면 나중에 엄청난 간격으로 벌어진다. 자신에게 필요 이상의 것을 소유하려는 욕심으로 인해 마음을 속이는 순간, 그러한 마음을 방치해버리면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욕심이 점차 커져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이어져 결국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넘치는 물욕을 용납하지 않는 것을 신[不受濫物濫欲曰信]”18이라고 했듯이 수도에서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려는 지나친 물욕에 빠지지 말고 도리를 지켜나갈 때 올바른 믿음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상제님께서 방심이라는 단어 앞에 ‘잠시라도’라는 표현을 사용하신 것도 인간이 얼마나 자신의 마음을 속이기 쉬운지를 보여주신 것이다.
수백 명이 이용하는 기차는 한 번의 작은 실수라도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철도기관사는 출발 전에 안전 점검을 반드시 수행한다. 각종 기기장치의 상태를 확인하고 계기판에 나타난 수치를 통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점검한다. 운행하면서도 목적지까지 계속 살피며 마음을 놓지 않는다. 이렇게 사소한 문제도 무시하지 않고 항상 세심히 살피는 것은 기차를 무사히 정해진 시간에 목적지까지 운행하기 위해서이다.
수도의 목적인 도통은 자신의 수도 여하에 달려있어 바르게 수도하지 못하면 도통을 받을 수 없다. “창생이 큰 죄를 지으면 천벌을 받고 작은 죄를 지은 자는 신벌 혹은 인벌을 받느니라”(교법 1장 32절)라고 했듯이 수도 과정 중에서 마음을 속이거나 잘못된 행동으로 죄를 지을 때, 그에 해당하는 벌을 받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 행동에 대한 판정을 받는 신명공판(神明公判)은 운수를 받는 자리에 가서 있는 것이 아니고 수도 과정에서 먼저 받게 된다.19
그렇지만 수도 생활을 하면서 자기 행동이 죄가 되는 것이 아닌지 두려워하는 마음에 오히려 해야 할 일을 회피하려는 마음이 생길 수 있다. 자신의 마음과 행동이 죄가 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할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도의 이치와 경위를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봐야 한다. 자신의 언어ㆍ행동ㆍ처사가 도의 이치와 경위에 어긋난 것은 아닌지 살펴 마음을 속이지 않는 자세로 사심(私心)을 버리고 양심을 회복하기 위해 모든 정성을 다해야 한다.
우리는 연원(淵源)을 따라 조상과 선각의 정성으로 도에 입문하였고 상제님의 진리를 배워 도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통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도에 어긋나지 않는 수도를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일상 자신을 살펴 잘못이 있다면 반드시 고쳐야 하고 마음을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매사 조심해야 한다. 죄가 없어도 있는 듯이 잠시라도 방심 말고 조심하라는 상제님의 말씀은 일상에서 자신이 마음을 속이고 있는지 살펴 항상 부족함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기대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모든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와도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01 허신 찬ㆍ단옥재 주, 『說文解字注』, (상해: 상해고적출판사, 2001), p.355. “捕魚竹网, 从网非聲, 秦以爲辠字. 注: 始皇以辠字似皇, 乃改爲罪.”
02 하영삼, 『한자어원사전』 (서울: 도서출판3, 2014), p.593.
03 기독교는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이브가 선악을 분별하는 선악과(善惡果)를 따 먹지 말라는 창조주의 말씀을 어겼기 때문에 죄를 지었다고 보고 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니고 태어났기에 오로지 죄인을 대속한 예수를 믿음으로써 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종도,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죄에 대한 인식」, 『한국중동학회논총』 31-1 (2010), p.164]; 불교에서 죄는 법성(法性: 眞理)에 반대하는 행위, 혹은 계율에 위반되는 행위를 의미한다. 악한 행위는 인과응보의 원칙에 따라서 고(苦)의 과보(果報)를 받게 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죄업(罪業)’이라고 불린다. [김승동, 『콘사이스판 불교사전』 (서울: 민족사, 2011), p.999]; 유교는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와 도덕을 강조하는데, 그런 점에서 인간이 지켜야 할 올바른 규범에 어긋날 때 죄라고 볼 수 있다. 죄가 개인의 욕심에 치우쳐 타자의 이익을 침범하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도덕적 수양이 강조되었다.
04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https://stdict.korean.go.kr).
05 교법 1장 58절 참조.
06 교법 1장 40절 참조.
07 교법 1장 33절 참조.
08 「도전님 훈시」 (1993. 8. 18).
09 『대순지침』, p.18.
10 『朱子語類』, 卷78, “雖聖人不能無人心, 如飢食渴飮之類.”
11 『孟子』, 「告子 上」, “人有鷄犬放則知求之, 有放心而不知求.”
1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https://stdict.korean.go.kr).
13 『대순진리회요람』, p.15.
14 『대순진리회요람』, p.19 참고.
15 『대순지침』, p.93.
16 행록 3장 44절, “心也者鬼神之樞機也門戶也道路也. 開閉樞機出入門戶往來道路神, 或有善或有惡.”
17 『사기(史記)』 「진서(晉書)」 우예전(虞預傳), “失之毫釐, 差以千里.”
18 교법 3장 47절.
19 『대순지침』,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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