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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록 3장 26절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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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3.23 조회3,8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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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호 대원종 : 행록 3장 26절의 이해
행록 3장 26절의 이해
 

 
상제께서 섣달에 원평에 와 계셨을 때에 박 제빈(朴齊斌)이 전라도 전주에 출두하고 군수 권 직상(權稷相)이 파직될 것이란 소문이 떠돌므로 김 병욱도 전주 군장교에 있는 신분으로서 일이 어찌 될까 염려하여 상제를 찾아뵈옵고 걱정하니 상제께서 “근심하지 말라 무사하리라”고 일러 주셨도다. 며칠 후에 박 어사가 전주부에 들어섰으나 그의 면관비훈이 전주부에 내려오므로 상제의 말씀대로 일은 무사하였도다. (행록 3장 26절)
 
 
  19세기는 제국주의가 팽배하여 서구 열강들이 세계 곳곳을 점령해서 식민지로 삼았던 때이다. 조선 또한 이를 피해갈 수 없었다. 근대적인 조약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1876년 일본과 ‘조일 수호조약(강화도 조약)’을 맺은 이후 여러 나라와 각종 조약을 맺게 되었다. 결국 대외적으로 청국과 일본, 미국, 러시아 등 조선을 노리고 있는 국제 열강에 의해 전쟁이 일어나면서 나라가 불안하였다. 대내적으로는 개국(開國)과 쇄국(鎖國) 정치로 분열되고, 세도정치와 삼정(三政)01의 문란으로 민란이 끊이지 않았다.
  사회가 변동하고 기존의 가치 질서가 무너지는 불안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인간으로 강세하신 상제님(1871~1909)께서는 상생(相生)의 도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 세계의 민생을 구하기 위해 1901년에서 1909년까지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하셨다.
  행록 3장 26절 내용의 시기는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행하시던 때로 1904년 12월로 짐작된다. 당시는 일본인이 경복궁으로 난입하여 친러파였던 명성황후(明成皇后, 1851~1895)를 시해한 이후 일본이 조선의 정치를 완전히 장악하여 1904년 2월 8일에 러일전쟁까지 일으킨 때이다.
  어사 박제빈(朴齊斌, 1858~1921)에 의해 군수가 파직될 것이란 소문이 떠돌아 염려하던 김병욱(金秉旭, 1874∼1938) 종도에게 상제님께서는 무사할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김병욱 종도가 어떻게 곤경에서 벗어나게 되는지 당시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전북 전주에 출두한 어사 박제빈은 조선 말기의 문신이었으나, 1910년 한일늑약으로 국권이 피탈되어 백성들이 모두 슬퍼할 때 일본정부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았던 친일파 인사이다. 그는 1874년 4월 정시(庭試) 병과(丙科)에 1등으로 합격해 9월 승정원 가주서(假注書)에 임명되고 난 이후 승승장구하여, 1900년 2월부터 1907년 1월까지 다섯 차례 궁내부 특진관(宮內部特進官)02에 임명되었다.03 그 사이 1904년 8월 24일 전라북도 순찰사04에 임명되었던 것이다.05
  전라북도는 상제님께서 강세하시어 천지공사를 행하시고 화천하신 지역이다. 상제님께서는 주로 고부, 군산, 김제, 부안, 순창, 완주, 익산, 전주, 정읍 등에 머무셨는데, 박제빈이 전라북도 순찰사로 온 그해 12월에는 전북 김제시 원평에 계셨다.
  상제님 종도인 김병욱은 1901년에는 전주 진위대 정위(正尉)06로, 1906년에는 시종원(侍從院) 부경(副卿)에 임용되어 칙임관(勅任官) 3등에 서임된 인물이다.07 그의 손자에 따르면 당시 700마지기 논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08 1903년경 상제님과 인연을 맺은 그는 1903년 4월 박영효(朴泳孝, 1861~1939)가 혁명을 도모하는 일에 연루되어 곤경에 처하게 되었을 때 상제님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였다.09 1904년에도 전주 군수가 파직되면 그 영향이 자신에게 미칠 것을 염려했던 그는 상제님의 예지(豫知)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이렇듯 어사 박제빈이 갑자기 면관비훈(免官秘訓)10을 받게 되자 전주 군수 권직상(權稷相)11은 파면당하지 않았고 이에 김병욱 종도 또한 무사할 수 있었다. 박제빈이 갑자기 직책에서 물러나게 된 것은 1905년 1월 2일 의정부 참정(議政府 參政) 김성근(金聲根)이 고종에게 각도(各道)에 순찰사(巡察使)들이 일처리를 살피고 백성들의 고통을 알아내기는커녕 도리어 폐단을 많이 빚어내고 있다고 주청을 올렸기 때문이다.12 고종이 이를 윤허하여 박제빈은 소환(召還)되었고, 1905년 1월 18일 러일전쟁에서 친러 혐의를 받고 평리원(平理院)13 에 구속되었다. 그는 전쟁이 끝난 1905년 10월 5일에 석방되었으며14 이후 본격적으로 친일파가 된다.
  상제님께서는 미래를 미리 내다보시는 선견(先見)과 통찰력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우주 삼라만상(森羅萬象)을 삼계대권(三界大權)으로 주재(主宰) 관령(管領)하시며 관감만천(觀鑑萬天)하시는 전지전능(全知全能)한 분이다.15 비록 상제님께서 김병욱 종도가 무사할 것을  예언하신 내용만 기록되어 있지만, 김병욱 종도는 상제님의 덕화로 무사했을지도 모른다. 상제님께서 “너희들이 믿음을 나에게 주어야 나의 믿음을 받으리라.”16라고 하셨듯이 상제님을 믿고 잘 따르던 김병욱 종도의 정성과 천지공사에 쓰일 막중한 임무17 때문에 그가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典經』
부산근대역사관, 『근대 외교의 발자취』(1876~1905), 부산: 영신애드, 2005.
수요역사연구회, 『식민지 조선과 매일신보』, 서울: 신서원, 2003.
_______, 『일제의 식민지 지배정책과 매일신보』, 서울: 두리미디어, 2005.
이덕주, 『조선은 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는가』, 서울: 에디터, 2002.
이병근 외 11명, 『한국 근대사회와 문화Ⅰ』, 서울: 서울대학교, 2006.
이이화, 『오백년 왕국의 종말』, 경기도: 한길사, 2006.
편집부, 『친일인명사전』, 서울: 민족문제연구소, 2010.
홍성덕, 김철배, 박현석 옮김, 『전주부사』, 전주: 신아, 2009.
황현, 임형택 외 옮김, 『역주 매천야록』하, 서울: 문학과지성사, 2005.    
김시태, 「日帝에 貢獻한 朝鮮貴族列傳」, 『청맥』 3권 7호, 1966.
≪황성신문≫ 1901년 8월 6일.
교무부, 「김병욱 종도 손자 김진문 씨 인터뷰」, 2013. 03. 07.
네이버지식백과(http://terms.naver.com/).
조선왕조실록(http://sillok.history.go.kr/).
 
 
01 조선 후기 국가재정의 근간을 이루었던 전정(田政)ㆍ군정(軍政)ㆍ환정(還政)을 일컫는 말.
02 조선 말기 왕실에 관한 여러 업무를 총괄하던 관청의 관리.
03 편집부, 『친일인명사전』 2편, (서울: 민족문제연구소, 2010) p.111 참조.
04 조선시대 재상으로서 왕명을 받아 군무(軍務)를 통찰하던 사신(종2품).
05  김시태, 「日帝에 貢獻한 朝鮮貴族列傳」, 『청맥』3권 7호, (1966), p.168.
  이와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면, 1926년에 발간된 『증산천사공사기(甑山天師公事記)』(pp.46~47)에는 전라북도 어사 안종덕(安鍾悳)으로 되어 있으나, 1965년에 발간된 『대순전경(大巡典經)』6판에는 박재빈(朴齋斌), 1967년에 발간된 『선도진경(宣道眞經)』 2판에는 어사 박제빈(朴齊斌)으로 되어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고종(高宗) 44권의 41년(1904) 9월 23일 기록을 보면 전라남도 순찰사가 종2품 안종덕(安鍾悳)이고, 전라북도 순찰사는 특진관 박제빈(朴齊斌)으로 되어 있으므로 전라북도 순찰사는 어사 박제빈임을 알 수 있다.
06 『황성신문』 1901년 8월 6일 p.2 참조.
07 『조선왕조실록』, 고종 47권 43년(1906), 3월 8일.
08 김병욱 종도 손자 김진문 씨 인터뷰 내용 中, (2013년 3월 7일)
09 교운 1장 12~14절. 참조
10 관리의 직책에서 물러나게 한다는 비밀명령.
11 『전경』에 기록된 1904년 전주 군수 권직상(權稷相)과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권직상(權直相)의 한자가 다르지만 유사한 시기의 전주 군수로서 동일 인물로 추정된다.
12 『조선왕조실록』, 고종 45권 42년(1905), 1월 2일 “의정부 참정(議政府參政) 김성근(金聲根)이 아뢰기를, ‘각도(各道)에 순찰사(巡察使)를 파견한 것은 일처리를 살피고 백성들의 고통을 알아내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인데 제대로 받들어 집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폐단을 많이 빚어내고 있다고 합니다. 경기 순찰사(京畿巡察使) 이용구(李容九), 충청도 순찰사(忠淸道巡察使) 이시재(李時宰), 경상북도 순찰사(慶尙北道巡察使) 홍우석(洪祐晳), 경상남도 순찰사(慶尙南道巡察使) 김연식(金璉植), 전라북도 순찰사(全羅北道巡察使) 박제빈(朴齊斌), 전라남도 순찰사(全羅南道巡察使) 안종덕(安鍾悳), 강원도 순찰사(江原道巡察使) 김성규(金聖圭), 황해도 순찰사(黃海道巡察使) 정규회(丁奎會)를 모두 즉시 소환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13 김시태, 「日帝에 貢獻한 朝鮮貴族列傳」, 『청맥』3권 7호, (1966), p.168 참조.
14 『조선왕조실록』, 고종 47권 43년(1906), 9월 10일.
15 『대순진리회요람』, p.7.
16 교법 1장 5절.
17 김병욱 종도가 천지공사에 막중하게 쓰여진 사례들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공사 1장 12절이다. 어느 날 상제님께서 국정을 잘 아는 김병욱 종도에게 “이제 국세가 날로 기울어 정부는 매사를 외국인에게 의지하게 됨에 따라 당파가 분립하여 주의 주장을 달리하고 또는 일본과 친선을 맺고 또는 노국에 접근하니 그대의 생각은 어떠하느냐”고 물으셨다. 그는 “인종의 차별과 동서의 구별로 인하여 일본과 친함이 옳을까 하나이다”고 상제께 대답하니 상제께서 “그대의 말이 과연 옳도다” 하시고 서양 세력을 물리치고자 신명공사를 행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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