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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매백골이장지(不埋白骨而葬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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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22.06.05 조회1,6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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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서는 『전경』에 기록된 “불매백골이장지(不埋白骨而葬之)”라는 한문 구절의 해석(解釋)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한문의 해석은 난해한 경우가 많다. 한자 하나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고, 또한 다양한 품사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떻게 끊어서 읽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가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전후 맥락과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오역의 가능성을 줄이게 된다.
  행록 1장에 있는 이 구절은 불(不) 자를 어디에서 끊어 읽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경우이다. 그에 따라 어떤 맥락에서 해석하는 것이 좀 더 타당한지를 검토해 보고 전체적인 의미를 파악해 보고자 한다. 다음은 이 문장이 나온 행록의 원문이다.

 

금산사 청련암(靑蓮庵)의 중 김 현찬(金玄贊)이 전부터 상제의 소문을 듣고 있던 차에 상제를 만나게 되어 명당을 원하니 상제께서 그에게 “믿고 있으라”고 이르셨도다. 그 후 그는 환속하여 화촉을 밝히고 아들을 얻었느니라. 그리고 김 병욱(金秉旭)이 또한 명당을 바라므로 상제께서 역시 “믿고 있으라”고 말씀하셨도다. 그 후 그도 바라던 아들을 얻었느니라. 수년이 지나도록 명당에 대한 말씀이 없으시기에 병욱은 “주시려던 명당은 언제 주시나이까”고 여쭈니 상제께서 “네가 바라던 아들을 얻었으니 이미 그 명당을 받았느니라”고 이르시고 “선천에서는 매백골이장지(埋白骨而葬之)로되 후천에서는 불매백골이장지(不埋白骨而葬之)니라”고 말씀을 하셨도다. 그 후 얼마 지나 현찬이 상제를 뵈옵고 명당을 주시기를 바라므로 상제께서 “명당을 써서 이미 발음되었나니라”고 말씀이 계셨도다.(행록 1장 37절)

 

  “불매백골이장지”는 상제님께서 명당을 원하는 김병욱 종도가 자식을 얻도록 해주시고 하신 말씀이다. 여기에서 매백골(埋白骨)은 죽은 이의 뼈를 묻는다는 것이고, 장지(葬之)는 장사지낸다는 것을 말한다. 불(不) 자는 부정사로서 동사를 부정하는 역할을 하는데, 말 이을 이(而) 자를 중심으로 앞부분인 ‘묻는다’는 동사만을 부정하느냐 아니면 전체 문장을 모두 부정하느냐에 따라 해석상의 차이가 생긴다. 두 가지 해석에 대해서 차례로 살펴보자.

 

 

백골을 묻지 않고 장사 지낸다

  부정사를 ‘묻는다’는 동사에만 적용하였을 경우 “불매백골이장지”는 “백골을 묻지 않고서 장사 지낸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러한 해석은 백골을 묻고서 장사 지내는 “매백골이장지”와 대비되어 묻는 방법과 묻지 않는 방법의 차이에 초점을 두고 이해하게 된다. 따라서 장사를 지내는 방법, 곧 장법(葬法)의 변화에 대한 말씀으로 풀이될 수 있는 해석이다. 매장문화가 팽배하여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보면 이러한 해석이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장례에는 크게 풍장(風葬)과 수장(水葬), 화장(火葬), 토장(土葬) 등의 시신 처리방식이 있는데 특히 시신을 땅에 묻어 매장(埋葬)이라고도 불리는 토장의 풍습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청동기 시대 이후이다. 초기 매장의 모습이 땅 위가 솟지 않은 평평한 평장(平葬) 이었다가 기원전 8세기 이후부터 무덤 위에 흙을 쌓아 봉긋하게 만든 봉분이 나오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돌을 이용한 고인돌과 돌무지무덤에서 점차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중국식 봉분이 등장하게 되었다.01
  중국 문화의 영향 아래 유교식 장례문화가 발전하게 된 조선 시대에 이르면 전통적인 무덤 문화가 완성되는데 후기로 넘어갈수록 매장의 풍습은 풍수지리사상과 결부되면서 명당에 대한 선호를 가져오게 된다. 본래 고대부터 이어졌던 풍수지리의 관념은 사람들이 살기 좋은 거주지를 찾고, 안전한 묘터를 확보하려는 노력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땅에 대한 숭배사상과 관련된 것이었다.02 하지만 조선조에 들어서면서 성리학적 가치관 아래 체계화된 풍수지리사상은 조금 달라진다. 조상과 자손이 같은 기(氣)로 연결되어있다는 동기감응(同氣感應)의 철학 속에서 좋은 묫자리를 얻어야 자손이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의식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03 이것은 일반적으로 좋은 집터와 절터 등을 찾는 양택(陽宅) 풍수와는 구별되는 음택(陰宅) 풍수 사상이다.
  조선 시대의 음택 명당에 대한 선호는 좋은 묫자리를 차지하려는 경쟁으로 치달으면서 묫자리와 관련된 소송인 산송(山訟)이라는 커다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다. 산송에 대한 기록은 1664년 현종(顯宗, 1641~1674) 때 처음 등장하는데 조선 후기에는 산송이 노비소송, 전답(田畓)소송과 더불어 조선 시대의 3대 민사소송으로 커질 만큼 일반화된다.
  남의 묘에 몰래 묘를 쓰는 투장(偸葬)이나 위력으로 남의 땅에 억지로 묘를 쓰는 늑장(勒葬)은 후기로 갈수록 극심해졌고, 왕릉 근처에 조상의 묘를 묻는 행위까지 성행하게 된다.04 투장은 신분을 막론하고 이루어졌다. 정조(正祖, 1752~1800) 때 한 유학자는 자신의 노비가 선조의 묘를 쓴 산에 몰래 투장했으니 모두 옮겨달라고 상소하기도 한다.05
  정약용은 그의 저서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산송의 세태를 개탄하면서 “묘지에 관한 송사는 지금 고질이 되었다. 싸우고 구타하여 살상하는 사건의 절반이 이 때문에 일어나며, 남의 묘를 파내는 범행을 스스로 효도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06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 왕이 내린 판결을 모은 법전인 『신보수교집록(新補受敎輯錄)』에는 산송 항목을 별도로 설정하였고, 투장을 할 경우 남의 집을 뺏는 것과 동일하게 처벌한다는 법적 규제가 생긴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07
  이를 보면 명당을 구해 후대에 복을 구하려는 사람들의 바람이 비단 사대부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명당에 대한 바람이 대중적인 열망이 된 것이다. 그러나 땅은 정해져 있고 사람의 열망은 커지다 보니, 좋은 묫자리를 구하려는 노력이 남의 것을 빼앗아 내가 잘되고자 하는 욕심으로 변질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당시의 시대 상황을 보면 상제님께서 하신 “불매백골이장지”의 말씀이 명당을 구해 조상의 묘를 쓰려는 행위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토대로 하신 것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상제님께서 화천하신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매장문화는 여러 가지 이유로 비판을 받게 되었고 축소되는 과정을 겪는다.08 이 때문에 “백골을 묻지 않고서 장사 지낸다”는 해석을 장법의 변화로 이해하고 매장이 점차 감소해 가는 변화를 그 근거로 말하는 견해도 있다. 현대사회에서 매장은 화장으로 전환되는 추세이고 서양의 사례이긴 하지만 인간의 시신을 퇴비화하는 기업도 생기고 있으니 장법의 변화는 사뭇 급진적이기까지 하다.09

 

202203091440_Daesoon_253_%EB%8C%80%EC%9B ▲ 조선 시대 명당을 차지하려는 사대부들의 경쟁을 소재로 만든 영화 ‘명당’ 캐릭터포스터, 2018.

 


  하지만 당시 명당을 구하며 문제를 일으킨 시대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불매백골이장지”를 “백골을 묻지 않고서 장사 지낸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이렇게 해석할 경우 상제님 말씀을 장법의 변화라는 한 가지 측면에서만 이해할 소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상제님 말씀 속에서 “불매백골이장지”는 “매백골이장지”와 대비되어 설명되고 있다. 이 해석에 따르면 두 내용의 가장 중요한 차이로서 백골은 묻는 방식과 묻지 않는 방식의 차이만이 강조될 뿐이다. 필연적으로 장법의 변화에 중심을 두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백골을 묻지 않고 장사 지내는 변화를 시대적인 것으로 이해할 때 이러한 장법이 과거에는 없었냐 하는 문제가 생긴다. 백골을 묻지 않고서 장사지내는 대표적인 장법으로 화장의 문화는 불교적 영향 아래 이미 예전부터 많은 나라에서 통용되고 있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고려 시대에는 매장과 함께 화장도 일반화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10 “불매백골이장지”를 장법의 변화만으로 이해하는 것이 시대적으로 적확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는 상제님의 말씀을 토대로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불매백골이장지”는 후천에서의 일을 말하고 있다. 상제님께서 열어놓으신 후천은 천ㆍ지ㆍ인 삼계(三界)가 새롭게 개벽된 이상적인 세상으로서 인간이 ‘불로불사(不老不死)’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11 이러한 『전경』의 상제님 말씀 속에서 설명되고 있는 전체적인 내용을 고려하여 “불매백골이장지”에 대한 두 번째 해석을 살펴보자.

 

 

백골을 묻지도 장사 지내지도 않는다

  “불매백골이장지”의 두 번째 해석은 “백골을 묻지도 장사 지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12 이것은 장사 지내는 일 자체까지도 부정한다는 점에서 앞의 해석과는 차이가 있다. 곧 묻는다는 방식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죽음에 대한 부정의 의미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해석될 가능성이 있는지 다른 말씀들을 살펴보자. 먼저 상제님께서는 인간의 수명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세상에서 수명 복록이라 하여 수명을 복록보다 중히 여기나 복록이 적고 수명만 길면 그것 보다 욕된 자가 없나니 그러므로 나는 수명보다 복록을 중히 하노니 녹이 떨어지면 죽나니라.(교법 1장 16절)

 

  상제님 말씀 속에서 사람들의 수명은 복록에 따라 정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이 쌓은 복록에 따라 살다가 죽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인간은 결국 죽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불매백골이장지”를 인간이 죽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상제님께서 복록에 대해 하신 또 다른 말씀을 보면 인간의 수명에 관한 다른 내용이 등장한다.
  상제님께서는 “나를 좇는 자는 영원한 복록을 얻어 불로불사하며 영원한 선경의 낙을 누릴 것이니 이것이 참 동학이니라.”(권지 1장 11절)고 하셨고, “인간의 복록은 내가 맡았으나 맡겨 줄 곳이 없어 한이로다. 이는 일심을 가진 자가 없는 까닭이라. 일심을 가진 자에게는 지체 없이 베풀어 주리라.”(교법 2장 4절)라고도 하셨다. 복록에 따라 인간의 수명이 정해지지만, 상제님을 따르는 자는 영원한 복록을 얻어 불로불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상제님께서 후천의 일을 말씀하신 다른 구절에서 더욱 직접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후천에는 또 천하가 한 집안이 되어 위무와 형벌을 쓰지 않고도 조화로써 창생을 법리에 맞도록 다스리리라. 벼슬하는 자는 화권이 열려 분에 넘치는 법이 없고 백성은 원울과 탐음의 모든 번뇌가 없을 것이며 병들어 괴롭고 죽어 장사하는 것을 면하여 불로불사하며 빈부의 차별이 없고 마음대로 왕래하고 하늘이 낮아서 오르고 내리는 것이 뜻대로 되며 지혜가 밝아져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시방 세계에 통달하고 세상에 수ㆍ화ㆍ풍(水火風)의 삼재가 없어져서 상서가 무르녹는 지상선경으로 화하리라.(예시 81절)

 

  상제님께서는 후천의 일을 말씀하시면서 백성은 병들어 괴롭고 죽어 장사하는 것을 면하여 불로불사 한다고 하셨다. 면한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 벗어나거나 일을 당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죽어 장사하는 것에 대한 부정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것은 “매백골이장지” 전체를 부정하여 죽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과 의미가 상통한다. 도전님께서도 후천을 묘사할 때 영원한 복록이 있는 세계로 설명하신 것을 보면 후천은 영원한 복록이 있는 세계이고 이는 곧 인간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13
  이러한 상제님의 다른 말씀들을 토대로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해하면 “불매백골이장지”가 장사지내지 않는다는 해석, 즉 죽지 않는다는 의미와 연결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상제님의 말씀처럼 인간이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상제님의 다른 말씀을 토대로 죽지 않는다는 것에 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모든 만물은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죽는 과정의 순환 속에 있다. 이것은 에너지인 기(氣)의 집합(集合)과 이산(離散)과정으로 이해된다. 생명이 탄생하는 것은 흩어졌던 기가 뭉쳐서 하나의 개체를 형성하는 것이고, 죽는다는 것은 혼(魂)과 백(魄)의 기가 흩어져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상제님께서는 인간이 죽고 사는 것이 정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것에 따른다고 말씀하셨다.14 그런데 이런 순환의 과정에서 죽음이 없어진다는 것은 기가 흩어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에 따라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 모두 질적인 변화를 겪게 됨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상제님께서는 “도를 닦은 자는 그 정혼이 굳게 뭉치기에 죽어도 흩어지지 않고 천상에 오르려니와 그렇지 못한 자는 그 정혼이 희미하여 연기와 물거품이 삭듯 하리라.”(교법 2장 22절)라고 하셨다. 이를 보면 인간의 불로불사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의 영위라기보다는 수도를 통해 변화된 인간의 정혼이 흩어지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모습으로도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나가며

  상제님께서는 좋은 땅을 구해 복을 받으려는 잘못된 욕심이 만연했던 시대적 배경 아래 “불매백골이장지”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불매백골이장지”를 화장문화가 보편화된 현재의 시대적 상황을 근거로 “백골을 묻지 않고 장사 지낸다”라고 해석하여 장법의 변화와 관련된 내용으로 보는 것은 상제님의 말씀을 축소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상제님 말씀의 전체적인 맥락을 생각해보면 묻고 장사 지내는 장법이 변화하리라는 것은 사실 부차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이 말씀은 장법의 변화가 아니라 패러다임의 변화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패러다임은 상제님께서 열어놓으신 후천, 곧 인간이 영원한 복록을 얻어 불로불사 하는 세상으로 인간이 존귀해지는 시대적 변화와 관련된다.
  물론 “백골을 묻지도 장사 지내지도 않는다”고 해석하는 것에도 한계는 있다. 이것은 “불매백골이장지”가 후천에 관한 말씀이라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또한, 후천을 말씀하셨다고 해서 “죽어 장사하는 것을 면하여 불로불사”(예시 81절)한다는 말씀이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닐 수 있고, “정혼이 굳게 뭉친다”(교법 2장 22절)는 말씀처럼 죽음에 대한 부정의 방식이 여러 가지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온전한 의미를 찾아가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처럼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해보려는 시도는 상제님 말씀의 뜻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해보고자 하는 노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후행 연구들이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도전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해 주셨다. “지금은 지존시대가 다 되었다 하나 이사 갈 때 방위 보고 묫자리를 보는 등 아직도 땅에 의존하는 것은 땅에서 권한을 가졌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신봉어인(神封於人)으로 이 권한을 사람이 맡아서 하게 된다.”15 땅에 의지해서 살아갔던 지존(地尊)의 시대에는 좋은 땅을 얻어 잘되고자 하였다면, 앞으로의 시대는 사람에게 권한이 주어지므로 사람을 통해서 잘되는 인존(人尊) 시대로 볼 수 있다. 땅에서 찾았던 명당을 사람에게서 찾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상제님께서 김현찬과 김병욱 두 종도에게 자식을 태어주시면서 명당을 말씀하신 의미도 이런 인간의 변화된 위상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인존의 시대에 태어난 한 생명에게는 우리가 여태껏 생각지 못한 무한한 가능성이 숨어 있다. 이것은 반대로 얘기하면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명당이 아닌 흉지로도 발음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상제님의 뜻을 좇아 행해나가는 수도의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을 명당으로 만들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매장과 무덤은 결국 죽은 자를 기리고자 하는 데 의미를 두지만, 산자를 위한 명당은 수도를 통해 변화된 자신이 영원한 복록을 얻고자 함에 있을 것이다. “불매백골이장지”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상제님의 공사(公事)를 통해 생로병사의 한계를 뛰어넘어 질적으로 변화된 인간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01 박태호, 『장례의 역사』 (파주: 서해문집, 2008), pp.21~25 참조.
02 통일신라 시대에 사상적으로 정립되기 시작한 풍수지리사상 또한 당(唐)나라 때 전래된 것으로 땅의 부족한 부분을 조형물이나 자연물로써 보완하고자 하는 형세론적 관점이 주를 이뤘다. (박종덕, 「려말선초 풍수지리사상의 기반과 형성」, 『한국민족문화』 64 (2017), pp.80~83 참조)
03 김경숙, 『조선의 묘지소송』 (파주: 문학동네, 2012), pp.48~50 참조.
04 『순조실록』 순조 18년(1818) 2월 24일, “麗朝諸陵步數內偸葬, 萬萬驚駭, 所謂金履坦之無難犯葬, 封域則夷之, 象設則埋之云者, 果是實狀, 則節節悖惡.”
05 『일성록』 정조 14년(1790) 2월 14일, “제 선조의 분산((墳山)이 남양에 있는데 제 노비의 족속인 조상주(趙尙柱)가 신미년(1751, 영조27)에 분산에서 지척인 지점에 투장하여 제 아비가 관에 정소하였습니다. … 삼가 바라건대 조가 놈이 범장(犯葬)한 것을 모두 파서 옮기게 해 주소서.”
06 정약용, 『역주 목민심서』 4, 다산연구회 역주 (파주: 창비, 2018), p.377.
07 김경숙, 『조선의 묘지소송』 (파주: 문학동네, 2012), p.62 참조.
08 매장문화에 대한 사회적 비판은 주로 국토의 효율적 운영을 방해한다는 것과 호화분묘로 인한 환경피해 및 국민의식의 저해를 들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매장문화의 비판 논리와 그에 따라 개정된 관련법률에 관해서는 김기덕의 논문 「한국의 매장문화와 화장문화」, 『역사민속학』 16 (2003), pp.114~115 참조.
09 나한테 토마토를 심어줘”…美, ‘인간 퇴비화’ 법안 첫 시행 (2019년 5월 23일 KBS 인터넷뉴스)
10 화장은 승려의 다비(茶毗) 의식을 통해 불교의 일반적인 장법으로 내려왔다. 우리나라의 화장은 불교가 전래된 신라 시대 이후 귀족과 왕족에서 점차 민간 층으로 확산되었다. 화장은 화장한 유골의 처리방식에 따라 산골(散骨)과 장골(藏骨)로 구분된다. 산골은 유골을 빻아 깨끗한 바다, 강, 냇가에 흩어버리는 방법이고, 장골은 유골을 용기에 담아 탑과 부도에 안치하거나 땅속에 묻는 방법이다. (정길자, 「고려시대 화장에 대한 고찰」, 『역사와경계』 7, 1983, pp.31~32 참조.)
11 예시 80절 참조.
12 이 구절에서 말 이을 ‘而’ 자의 앞뒤 내용은 병렬보다는 인과관계로 해석하는 것이 적합해 보인다. 다만 해석의 과정에서 부정사가 전체를 부정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하고서’나 ‘하여서’의 표현을 쓰지 않고 맥락에 맞게 의역하였다.
13 「도전님훈시」 (1988.7.7), “포덕이란 상제님께서 천지신명(天地神明)들의 하소연에 따라 이 땅에 오셨고, 진멸지경(盡滅地境)에 빠진 인간과 신명을 널리 구하셔서 영원한 복록(福祿)이 있는 후천선경(後天仙境)으로 갈 수 있도록 하셨다는 것과, 이에 맞추어 수도(修道)를 함으로써 큰 운수(運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천하창생(天下蒼生)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14 행록 5장 32절 참조.
15 「도전님훈시」 (1989.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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