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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自覺)’의 참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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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20.06.24 조회1,5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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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에는 마음을 닦아나가는 노력과 함께 진리를 깨달아가는 과정도 필요하다. 수도하면서 우리는 도우들에게 진리를 잘 깨달아가라는 애정 어린 조언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깨달음이란 남이 대신해 줄 수 없고, 자신의 정성과 노력으로 얻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일러 ‘자각’이라고도 말한다. 일반적으로 자각은 현실에 기초하여 자신의 입장이나 능력을 깨닫는다는 의미로 쓰이는데, 여기에는 자신의 잘못된 점을 파악하고 진리를 바르게 인식한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이는 자각이 지닌 본래의 좋은 모습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얻는 자각이기 때문에 진리가 아닌 자기만의 생각으로 쉽게 빠질 수 있다는 데 있다. 자각의 어두운 얼굴은 바로 이처럼 잘못된 자기 생각을 올바른 깨달음이라고 착각할 때 드러난다. 다음은 이와 같은 사실을 경계하신 도전님 훈시 말씀이다. 

 

 

도는 자각(自覺)을 하는 것이라고 해서, 각자의 깨달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있을 수가 없다. 자각이란 도의 진리가 옳다는 것을 자꾸 깨달으라는 것이지 자기 생각대로 멋대로 하라는 게 아니다.01 

 

 

  위의 말씀은 자기 생각에서 벗어나 진리를 깨닫는 자각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진리는 시간이 지나고 장소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참된 이치이다. 반면에 개인이 경험하는 사실들은 특정한 상황에서 단편적으로 경험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자신이 경험한 사실과 그로 인한 판단이 진리와 부합되는지 끊임없이 돌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 자칫 잘못하여 자기가 경험한 특정한 사실에만 빠져버리면 진리와는 동떨어진 독단과 아집 속에서 길을 헤맬 수도 있다. 이것은 일부만을 보고 전체를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격이다. 더욱이 인간은 사실을 너무나 쉽게 왜곡해서 받아들이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생각이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인간의 생각이 편협하고 많은 오류를 지닐 수 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해야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생각이 얼마나 쉽게 왜곡해서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로 인해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지 다양한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행동경제학의 창시자이며 노벨상 수상자로 알려진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1934~ )은 인간이 사실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원인이 편한 것을 선호하는 생각의 구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의 의사결정 과정을 복잡한 계산이나 집중력이 필요한 영역과 큰 노력 없이 직감적으로 작동하는 영역으로 구분하였다. 우리가 수학 문제 같은 복잡한 내용을 확인할 때에는 전자의 의사결정 영역을 활용해서 비교적 정확한 답을 예측한다. 반면에 누군가의 표정을 보고 그의 감정을 단번에 아는 것과 같은 직감적으로 작동하는 의사결정의 영역은 복잡한 노력 없이도 빠른 판단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직감적인 인식의 영역은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된다는 편이성 때문에 선호되지만, 사실을 단순화해서 인식하기 때문에 그만큼 왜곡해서 받아들일 가능성을 더욱 크게 한다.02

  이처럼 인간의 잘못된 인식에 관해서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내용이 ‘인지적 편향’에 관한 것이다. 인지적 편향은 사람이 똑같은 정보나 경험에 노출되더라도 개인의 성격과 생각, 가치 기준에 따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취사 선택해서 받아들이는 편향적 인지 습관을 말한다. 이와 같은 인간의 편향적 사고는 개인이 겪는 다양한 경험과 자각의 성취들이 편향적인 자각으로 흘러갈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인간이 지닌 생각의 편향성으로부터 탈피하여 진리를 바르게 깨달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자신이 지닌 생각과 경험을 타인과 공유하며, 소통하고 배워나가는 것은 분명히 중요한 방법이 될 것이다. 우리가 진리에 대해서 서로 토론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도전님께서는 진리 토론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도를 믿어 나가거나, 이 사회를 살아가는 중에 우리는 항상 서로가 배우고, 자신도 모르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무심코 서로 대화하는 가운데, 말하는 사람은 아주 쉽게, 대수롭지 않게 하지만,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귀가 번쩍 뜨이는 커다란 깨우침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 토론회를 통하여 이렇듯 어렵게 얻은 각자의 깨달음이나 경험, 서로의 의사를 충분히 교환하게 되면, 서로 크게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될 것입니다.03 

 

 

  진리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듯 진리에 대한 깨달음도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자신의 깨달음만이 옳다는 생각은 서로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스스로 망치게 한다. 말씀하신 대로 각자의 깨달음이나 경험, 의사를 서로 교환하며 배우기 위해서는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생각들을 접해 보게 될 것이고 그 속에서 공통된 진리의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깨달음에 대한 확신이 생기기도 하고, 때론 잘못된 자기 생각을 반성하기도 하며 진리라는 커다란 산에 조금씩 가까워질 것이다. 자각의 참모습은 이때 비로소 드러난다. 

  진리를 바로 깨닫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타인과 소통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자신을 과신하는 순간 자각의 어두운 얼굴은 우리의 왜곡된 시야 사이로 너무나도 쉽게 고개를 들 것이기 때문이다.

 

 

 

 

 

01 「도전님 훈시」 (1991. 2. 20). 

02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이진원 옮김 (파주: 김영사, 2012), pp.6~147 참조.

03 「도전님 훈시」 (1986.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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